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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라고 말하는 주자는 없다 대선 예비주자들은 미국의 영향력을 얼마나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대통령이 되기 위해 미국을 알현하는 것 같아 솔직히 기분 나빴다. 하지만 박정희, YS, DJ도 모두 갔다왔다. 그쪽 최고위층이 만나준다면 대권후보들 누구든 찾아갈 것이다. 이것을 부정하면 거짓이다. 미국이 한번 아니라고 하면 정말 피곤하고, 어쨌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신경이 쓰인다. DJ 말년이 이렇게 피곤한 것도 사실 부시가 방향을 틀었기 때문 아니냐.”(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측근 참모) “우리 내부의 친미인사는 수천, 수만명에 이른다. 미국이 직·간접적으로 관리하는 사람들이 국가기관과 기업 등 곳곳에 포진해 있다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이다. 꼭 그들이 아니라도 미국 국무성 관리가 <타임>, <워싱턴포스트> 등 유력 매스컴에 한국 정치정세에 대해 한마디만 던지면 당장 엄청난 파장이 몰려온다. 인정하기 싫지만 냉혹한 현실이다.”(노무현 민주당 상임고문의 핵심 측근) 대선 예비주자 진영은 올 대선에 미칠 미국의 영향력을 얼마나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답은 이렇게 상식을 벗어나지 않았다. ‘NO’라고 말할 수 있는 주자는 없다. 출마를 선언한 여야 예비후보들 가운데 누구도 미국 변수 앞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 지난 1월 미국을 방문해 딕 체니 부통령 등 공화당 핵심 인사들을 두루 만난 이회창 총재는 물론 민주당 예비주자도 대부분 미국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려 애쓴다. 특히 공화당 핵심들과 인맥 형성은 지상과제가 됐다. 햇볕정책 계승을 표방하지만 정작 미국의 최근 대북강경노선에 대해서는 할말을 다 못하고 있다. 민족감정과 미국의 현실적 힘을 저울질하며 애매한 줄타기만 거듭할 뿐이다.
이회창…공화당은 든든한 ‘날개’
한나라당은 이런 환대에 고무돼 있다. 방미 과정에 관여한 한 인사는 “이 총재를 만나고 싶어하는 미국 내 인사들이 너무 많아 다 소화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쪽은 이미 다음 대통령이 될 가능성 많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대선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기대도 감추지 않는다. 한 소장 당직자는 “97년 대선 때 미국은 100% DJ를 지원했다. 우리 눈에 빤히 보였다. 이제 그 흐름이 이 총재쪽으로 흐르고 있다. 노골적으로 후보를 지지하기는 어렵겠지만 알게 모르게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수밖에 없다”고 자신했다. 이 총재는 사실 방미 전부터 미국쪽에 우호적 분위기 조성을 위해 뛰었다. 전통적으로 우리 야당은 미국 민주당, 여당은 공화당과 가까운 인맥을 형성했다. 그러나 1992년 클린턴 행정부 출범과 YS, DJ 등 문민정권 등장 이후 공화당 인맥이 거의 끊겼다. 이 총재는 부시 당선 직후 공화당 인맥 복구에 공을 들였다. 한미의원외교협의회 회장인 정재문 의원과 간사 조웅규 의원이 핵심 역할을 맡고 박신일, 박진 특보가 측면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 안팎에서는 정 의원의 역할을 높게 평가한다. 정 의원이 영국 보수당, 독일 기민당, 미국 공화당 등 세계 보수정당 모임인 국제민주연합(IDU) 부의장으로 활동하면서 지난 10년 동안 관리한 공화당 인맥이 진가를 발휘한 때문. 정 의원은 1월 방미 때 실무 책임을 맡았다. 한승주 전 외무장관과 미국 내 이회창 총재 후원조직도 적잖은 보탬이 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이 총재는 이런 사실을 공개하지 않는다. 측근 참모들은 “친미·반미를 떠나 한반도 정치와 정세에서 미국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게 이 총재의 기본 노선”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영향력을 무시한 낭만적 정책은 위험하며 한반도 평화와 민족 이익을 위해 미국 변수를 냉철히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양날의 칼과 같은 미국에 대한 고려가 존재한다. 부시 행정부와의 접근이 대선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할 수 있지만 너무 밀착할 경우 반미감정과 사대주의 논쟁 등 역풍이 불 수 있다. 최근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 이후 민주당이 “이 총재가 방미 때 미국쪽과 사전 조율했다”며 공세를 취한 것도 한 예다. 결국 이 총재와 한나라당 노선은 공화당 정권 등장 이후 조성된 유리한 상황을 최대한 활용하되 민족감정을 자극하지 않는 절묘한 균형잡기다. 민주당 주자들도 정도 차이는 있지만 미국의 현실적 영향력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7명의 예비주자들 모두 DJ의 햇볕정책 계승을 외친다. 하지만 ‘악의 축’ 발언 등 미국의 강경기조에 대해 적극적 반격과 비판은 자제한다.
한화갑 고문…폭넓은 미국내 인맥
이인제 고문…인맥은 있으나 거리 두겠다
이인제 고문도 나름대로 미국 내에 우호적 여론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지난 97년 대선 패배 이후 98년 10월∼99년 4월까지 조시워싱턴대학, 조지타운대학 등에 머물며 한반도 전문가들과 폭넓은 교류를 했다. 이후 3차례 미국을 방문해 지속적으로 인맥을 관리하고 있다. 이 고문쪽은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 대사, 헤리티지재단의 에드원 풀너 총재 등과 친분이 깊다고 밝혔다. 린지 경제수석 보좌관 등을 배출한 부시 행정부의 싱크탱크인 AEI에도 폭넓은 인맥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고문은 미국이 대선에 영향을 끼치거나 주자들이 미국을 이용하는 것에 부정적이다. 핵심 측근은 “안보나 심리적 안정감, 남북관계와 통일을 위해 미국과 선린우방 차원의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면서도 “미국이 올 대선에 영향을 끼칠 수 없고, 끼치는 것도 바람직 하지 않다는 게 이 고문 생각”이라고 전했다. 참모들은 최근 “이회창 총재의 전략적 상호주의는 사실상 미국 보수파의 입맛에 맞춘 것이지만, 우리는 국방비, 통일 비용 등 경제적 이득을 고려할 때 햇볕정책만이 유일 대안이라고 확신한다”며 이 총재와 차별성을 드러내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그러나 이 고문 역시 미국의 대북강경론에는 말을 아낀다. “대북정책의 큰 변화 위에서 그런 표현이 나왔는지, 아니면 반테러 전쟁의 감성적 연장선에서 하나의 수사학적 차원에서 그런 표현이 나왔는지 확실히 알지 못한다”며 “북한도 국제사회에 대한 믿음을 강화하고, 정부가 미국과 충분히 정보를 교환하며 대화를 통해 한반도 정책을 온건하게 이끄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밝혔을 뿐이다. 미국과 국내 보수층의 불안심리를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만은 분명했다.
노무현 고문…실용주의적 용미주의자?
노무현 고문은 특별히 관리하는 미국 내 인맥이 없다. 여야 대선 예비주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아직 한번도 미국을 방문한 경험이 없다. 몇몇 참모들이 국제적 지도자 이미지 제고와 미국쪽 인맥 형성을 위해 방미를 권유했지만 거부했다. 노 고문은 평소 사석에서 “미국이 우리 유권자의 투표에 확실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 실증적으로 입증되지 않는 한 미국을 찾아 사진찍고 줄대는 대열에 합류할 이유가 없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노 고문 진영도 속이 편안한 것은 아니다. 자칫 반미주의자로 비치지 않을까 잔뜩 신경쓰고 있다. 한 핵심 측근은 “노 고문은 절대 반미주의자가 아니다. 굳이 표현한다면 실용주의적 시각의 용미주의자”라고 말했다. 세계를 적과 우방의 이분법으로 나누지 않고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되도록 자주적으로 미국을 활용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노 고문쪽은 “민주당 대권후보가 된 뒤 당당하게 미국에 가겠다”고 밝혔다.그러나 노 고문 역시 최근 미국의 강경노선에 대해 NO라고 말하지 못한다. “한반도 평화는 양보할 수 없는 생존권 문제이므로 남북과 북미관계는 어떤 상황에서도 대화로 풀어야 한다”고 원론을 되뇌일 뿐이다. 이인제, 한화갑 고문과 별 차별성도 없다. 언론개혁 등 민감한 사안에 명백한 태도를 밝히며 논쟁을 일으켰던 모습과는 다르다. 다른 최측근 인사는 “할말은 많지만 어쩔 수 없이 참는 소극적 전술을 택했다”고 전했다. 미국에 잘 보일 뜻도 없지만 정치·경제적으로 막강한 영향을 끼치는 현실을 무시한 채 대립각을 세워 비토를 당할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김근태…미국에 할말은 하겠다
정동영, 김중권, 유종근…강경노선에 제동걸기
정동영 고문과 유종근 전북지사도 미국이 대북강경노선 확대에 상대적으로 강한 제동을 걸고 있다. 정 고문은 “미국의 국가이익과 군 통수권자의 입장이 반영된 것으로 ‘악의 축’을 공개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지난 2월13일 부시 미 대통령에게 “모든 외교적 노력을 충분히 시도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한반도의 무력충돌을 전제로 하는 어떤 방법도 북한문제의 해법이 될 수 없다”면서 외교적 노력을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보냈다. 유 전 지사는 미국 경제계에 폭넓은 인맥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강경기조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각을 분명히 한다. “미국이 강온 양면전략으로 북한을 압박하면 할수록 북한은 반발할 것이며, 우리가 미국의 일방적인 압박작전에 끌려다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김중권 고문은 “미국의 새로운 대북정책을 탐색·적응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결국 대화를 통해 원만히 해결될 것”이라는 낙관론을 피력하고 있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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