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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오늘은 뭐하고 놀죠? 교사와 아이들이 함께 정하는 우리어린이집 교육 일정…부모들의 삶에도 큰 영향 끼쳐
1월25일 오전 10시50분께 서울 마포구 성산동 골목길엔 앙증맞은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이 동네 우리어린이집(www.scwoori.or.kr) 6∼7살반 꼬마들이 바로 옆 성미산으로 나들이를 나선 길. ‘꽃다지’와 ‘해바라기’, ‘양배추’ 선생님이 선창을 하면 14명의 아이들은 한꺼번에 나무 이름을 합창했다. 영하로 내려간 차가운 날씨에도 아이들은 둘씩 셋씩 손잡고 나선 나들이길이 너무 즐거운 듯 연신 “깔깔깔” 웃음을 토해냈다.
화요일 물감놀이, 목요일 찰흙놀이
5분 만에 오른 성미산은 순식간에 아이들과 교사들의 놀이터가 됐다. 가끔 비둘기를 잡으며 논다고 해 비둘기산으로 이름붙인 성미산 왼쪽 봉우리에서 아이들은 곧장 눈싸움을 시작했다. 쌀쌀한 기온 탓에 잘 뭉쳐지지 않는 싸라기눈으로도 아이들은 힘을 모아 해바라기 선생님을 집중 공격했다. 금세 해바라기 선생님의 머리며 등 위에 하얗게 눈가루가 쌓였다. 20여분 눈싸움 뒤 이번엔 눈이 얼어 빙판이 된 언덕길을 슬로프 삼아 눈썰매를 탄다. 어디선가 비닐부대 한장이 나오고, 금세 아이들은 줄을 맞춰 차례를 기다린다. “자, 부대 앞쪽을 잡고 몸을 뒤로 해.” 양배추 선생님의 힘센 팔에 밀려 아이들은 10여m를 주르륵 미끄러진다. 내려간 아이들은 다시 부대를 가져오고, 또 한번의 멋진 활강을 줄서서 기다린다. 그러나 한 바퀴를 돌고 나자 해바라기 선생님은 “어른들은 좀 쉴 테니, 너희끼리 해봐”라며 돌아서고 말았다. “우리는 힘이 약하잖아.” “해바라기 왜 그래.” 냉정한 외면에 술렁이던 것도 잠깐, 아이들은 금방 차례차례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며 두번씩을 더 탔다. 하루도 거르지 않는 나들이다보니 성미산 곳곳은 아이들의 놀이터로 바뀐 지 오래다. “저쪽 봉우리에 가면 ‘계단무대’와 ‘그늘나무’, ‘낙타무대’, ‘숲속마당’ 등에서 놀이를 합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하기도 하고, 식물도감을 가져와 풀 이름을 알아보기도 합니다. 여름엔 시원한 나무에서 쉬기도 하고요.”(꽃다지) 내려오는 길 동하와 형찬이는 메마른 나무 옆 게시판에 쓰인 글자를 가리키며 또박또박 “개나리”라고 읽어내렸다. 12시30분 어린이집에서의 점심시간도 시끌벅적했다. 메뉴는 돈가스. 가영이는 “이 돈가스 우리가 만들었다”며 입이 함지박만해졌다. 원장교사 ‘그대로’ 선생님은 “여기선 모두 생활중심 교육으로 프로그램이 운영된다”고 말했다. 성미산 나들이를 빼면 이곳의 일정은 날마다 다르다. 화요일엔 물감놀이, 수요일엔 전체놀이, 목요일엔 찰흙놀이, 금요일엔 놀이마당 등으로 대강의 틀만 정해놓고 그 내용은 그때 그때 다르게 채워간다. 월요일 모둠시간엔 교사와 아이들이 함께 한주간의 일정을 협의해 결정한다. 이날 아이들은 오후 강강술래놀이를 하기로 했다.
생활교육은 왜 하찮게 여기나
규격화한 학과공부를 따로 하지 않기 때문에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글과 숫자를 모르는 아이들도 있다. 이 때문에 기본적인 학습능력은 가르쳐야 한다는 일부 부모들의 요구도 연례행사다. 그대로 선생님은 “그렇게 하나둘씩 제도교육의 틀을 받아들이려면 차라리 유치원을 해야 할 것”이라고 되받아친다. 그는 “지난해에도 두명이 글씨를 거의 모르고 학교에 갔지만, 한 육개월 고생해 지금은 잘한다”며 “가자마자 알림장을 받아쓰게 하고 어려운 수학 개념부터 가르치는 공교육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문자, 숫자 능력만 대단하게 여기고, 생활교육을 통한 성취는 하찮게 여기잖아요. 컵나르기, 동생돌보기, 친구들과 잘 놀기, 풀 이름 알기는 왜 중요하지 않은 걸까요.” 이날 설거지 당번 권범 아빠도 옆에서 거들었다. “애엄마는 학과공부에 욕심이 있어요. 100만∼200만원짜리 교재도 사주고 학습지도 해봤지만, 그렇게 외우는 공부가 남는 것 같지는 않던데요. 그보다는 차 타고 가다가 궁금한 글자를 물어올 때 알려주면 잘 기억하더라고요.” 권범이네가 조합원이 된 건 지난 97년. 사설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모두 거치고 난 뒤였다. 권범 아빠는 조합원이 된 동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곳에선 아이가 집중력 없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한번은 유치원에 갔다가 영어시간에 권범이가 이해도 못한 채 앉아 있는 걸 봤다. 충격이었다. 아이의 문제만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여기 와선 나들이, 시장놀이를 통해 흥미를 많이 느낀 것 같다.” 이곳 조합원 자격을 얻기 위해선 만만치 않은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가장 먼저 어린이집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왔다. 450만원의 출자금에 다달이 30만원 넘는 보육료도 적은 부담이 아니다. 한달에 한번 방모임과 한달에 두번 터전 청소에도 빠지면 안 된다. 해마다 두번씩 아마(아빠엄마의 준말)라고 부르는 일일교사 활동도 해야 하고, 한해 네번씩은 조합원 교육도 받아야 한다. 다달이 한번씩 하는 교육조 조합원 교육은 따로 받아야 한다. 권범 아빠는 “부모 편할 대로 하자면 못 다닐 데”라며 “부모 아닌 아이를 중심에 놓는 선택”이라며 “아이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 그게 보람이고 즐거움이다”라고 말했다. 공동육아의 경험은 부모 세대의 삶을 사는 태도에도 작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공동육아라는 이름 그대로 부모가 함께하고, 조합원이 함께하는 공동체적 활동이 풍성하기 때문이다. 우영 엄마 박순옥(42)씨는 우리어린이집 처음으로 3남매를 모두 이곳에 보냈다. 큰아이 둘은 우리어린이집 출신 부모들이 함께 세운 도토리방과후에 다니고 있다. 그는 “가까운 곳에 모여 살면서 틈나는 대로 마실다니면서, 서로 이야기하는 재미가 여간 쏠쏠하지 않다”고 말했다.
지역주민들과 조합 만들기도
우리어린이집 조합원들은 지역 주민들과 힘을 합쳐 생활협동조합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구교선(41)씨는 “초기 조합원들은 비슷한 나이와 사회의식을 공유하고 있어 공동육아의 공동체성을 구현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도 겁없이 마음껏 해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손이선 사무국장은 “많은 조합원들이 참여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나 문제의식에 공감한 것이 공동육아가 성장한 배경”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새롭게 진입하는 조합원들의 경우 이런 공동체의식이 약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경란(40)씨는 “이른바 386세대 부모에서 다음 세대 부모로 갈수록 학과공부 등 제도교육 적응에 중점을 두는 모습도 없지 않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대로’ 선생님 정영화씨는 “조합원의 세대교체에 따라 초기 원칙을 견지하려는 교사들과 새 조합원들 사이에 공감대가 약해진 측면이 있다”며 “내 자식 하나 자연 속에서 잘 놀리고 잘 키워보자는 차원을 넘어서 공동육아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려는 노력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글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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