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02년01월23일 제394호 

과거청산, 그 험난한 여정

권력 지탱한 군부의 입김에 눌린 남미… 남아공의 성공사례에서 무엇을 배울 건가


사진/ 가해자들이 정치권력을 장악한 상황에서 과거청산은 불가능하다. 우리나라를 방문한 아르헨티나의 '오월광장 어머니회'가 민가협의 수요집회에 참석했다.(박승화 기자)


제3세계에서 과거청산 기구의 ‘척결 의지’는 그 나라의 민주화 수준을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그러나 과거청산은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기 십상이다. 과거의 가해자들이 여전히 권력에 잔존하는 상황에서 청산 작업이 이뤄지는 탓이다. 아르헨티나와 칠레 등 남미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아르헨티나의 과거청산 작업의 중심에는 ‘오월광장 어머니회’가 있다. 1976년 군부정권이 들어선 뒤 실종된 이들의 어머니로 구성된 오월광장 어머니회는 끈질긴 진상규명 활동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국제사회에 불처벌(Impunity)을 제기하여 대대적인 지원을 받기도 했다. 이들에 자극받은 유엔인권위원회는 1980년 ‘강제적 또는 비자발적 실종에 관한 실무그룹’을 설치하고, 각국 정부의 인권침해를 감시하는 활동에 나섰다.

오월광장 어머니회의 끈질긴 노력

국제사회의 호응과는 달리, 아르헨티나 국내의 과거청산 움직임은 더디게 진행됐다. 1983년 비뇨네 과도정부는 ‘국민화해법’을 통과시켜 군사정권 시절인 1973년부터 1982년까지 자행된 모든 정치 범죄에 대해 사면령을 내렸다. 이후 알폰신 문민정부가 들어서서 사면법을 무효화시키고 대통령 소속 ‘전국실종자위원회’를 설치했다. 그러나 알폰신 정부도 중령 계급 이하 모든 군인의 범죄를 면제하는 ‘직무준수법’을 만들어 군부와 타협한다. 1989년 들어선 메넴 정권 시절에는 거의 대부분의 군인이 사면됐다. 칠레에서는 군부가 정권을 이양하기 직전인 1978년 각종 실종 사건에 대한 사면령을 발표했다. 이처럼 남미에서 과거청산 작업이 더뎠던 이유는 군부가 여전히 권력의 한축을 담당하거나 위협적인 세력으로 남아 있는 탓이다.

80년대 내내 남미의 과거청산 작업이 군부의 벽에 막혀 지지부진했다면, 90년대의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은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과거청산에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1995년 11월 남아공 의회는 인종차별 시대의 인권유린 행위를 조사하기 위해 성공회 투투 주교를 위원장으로 하는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만들었다.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집권한 직후였다. 위원회에는 총 2만1300명의 피해사례가 접수됐다. ‘진실과 화해 위원회’는 청문회 형식으로 진행됐다. 개별 사안에 대한 직접 조사는 거의 없었다. 피해자가 300만명 이상으로 추산될 만큼 광범위하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보다는 ‘진실 고백을 통한 사면’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진실과 화해 위원회는 고백을 끌어내기 위해 당근과 채찍 전략을 채택했다. 자신의 인권침해 행위에 대해 양심고백을 하면 사면을 해주지만, 거짓증언이 밝혀지면 공소시효 없는 처벌을 받게 된다.

‘진실과 화해 위원회’ 절반의 성공

‘진실과 화해 위원회’는 3개의 하급 위원회로 구성된다. 인권침해위원회, 사면위원회, 보상 및 회복위원회가 그것이다. 사면위원회는 2000년 11월1일까지 사면신청자 7112명 중 849명에게 사면을 허용했고, 5392명에게는 사면을 거절했다. 4년에 걸친 활동 끝에 ‘진실과 화해 위원회’는 98년 7월 말 1차 활동을 종료했다.

비교적 성공적 모델로 꼽히는 ‘진실과 화해 위원회’도 남아공의 뿌리 깊은 인종갈등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차 활동이 종료될 시점인 98년 7월 남아공의 <비즈니스 데이>(Business Day)가 조사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39%는 위원회 활동이 인종갈등을 개선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응답했다. 반면 오히려 악화시켰다는 보는 입장도 38%로 팽팽히 맞섰다. 불만은 인종별로 고르게 분포된다. 흑인들은 사면 위주로 진행된 위원회 활동에 불만스러워하고, 백인들은 흑인의 폭발테러로 죽은 피해자들의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느낀다. 성신여대 조시현 교수(법학)는 “우리는 5·18, 의문사, 양민학살 등 사안별로 과거청산 운동이 이뤄져 청산 기구도 개별적으로 만들어졌다”며 “과거의 인권침해를 총괄적으로 반성하고 규명할 기구를 만든 점에서 남아공의 사례를 배울 만하다”고 지적한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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