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사 진상규명을 가로막는 것들… 유가족 보상방안도 마련돼야
사진/ 수사권이 부실한 의문사규명위는 이빨 빠진 호랑이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 2000년 10월17일 열린 조사단 출범식.(한겨레 김정효 기자)
“수지김 사건도 공권력에 의한 은폐·조작 사건이지요. 의문사 은폐구조와 다를 바 없습니다. 하지만 수지김 사건의 실체가 밝혀지고 있으나, 의문사 진상규명은 지지부진한 상태입니다. 수사권 때문에 생기는 차이입니다. 규명위에도 강력한 수사권을 부여해야 합니다.”
민간조사관 세명은 규명위에서 논의중인 의문사 특벌법 개정 초안을 앞에 놓고 목청을 높였다. 이들이 펼쳐놓은 개정안에는 강제구인권, 압수·수색권, 허위진술 처벌권, 통화내역과 금융거래자료 조회 등이 담겨 있었다. 조사관과 유가족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지난 1년여의 조사활동을 통해 필요성이 검증된 권한이지만, 국회를 통과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우선 강제구인권과 압수·수색권 부여는 현행 법체계와 충돌한다. 현행 형사법 체계가 검사만을 수사의 주체로 인정하고 있는 탓이다. 이들은 “강제구인권과 압수·수색권 부과가 어렵다면, 허위진술 처벌권은 반드시 주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사건현장이 사라진 지 오래된 의문사 진상규명 활동의 특성상, 증언이 결정적인 사건해결의 열쇠가 된다. 이 밖에 금융거래자료와 통화내역 조회는 입법 가능한 현실적인 조항들이다. 이 권한은 금융감독위원회 등 다른 국가위원회가 이미 확보하고 있다. 한 조사관은 “금융거래자료 조회 권한이 확보되면 프락치 운영 실태를 밝히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밝힌다. 권력기관이 프락치(망원)에게 활동자금을 지원하는 관례를 파헤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총련 투쟁국장을 지낸 김준배씨 사건을 비롯해 의문사에는 프락치 활동이 개입된 경우가 흔하다. 김준배 사건의 경우, 김씨의 친구가 프락치 활동으로 지원금을 받은 사실을 고백받고도 금융거래자료 조회권이 없어 실체를 밝히지 못한 형편이다.
이들에 따르면, 의문사 진상규명 여부와는 관계없이 유가족에 대한 보상방안도 마련돼야 한다. 이들은 “유가족 대부분이 감시당하고, 두들겨맞고, 구류를 살면서 권위주의 정권 시절을 견뎌왔다”면서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해 싸우는 과정이 곧 민주화 운동이었다”고 말한다. 만약 조사결과, 자식의 죽음이 의문사가 아닌 사고사나 자살로 밝혀질 경우, 유가족들이 보상받을 길은 막막한 형편이다. 개정안 초안에는 “위원회의 조사결과 위법한 공권력의 직간접적인 행사로 인하여 사망하였음이 확인된 경우에는 국제법에 따라 공소시효의 적용을 배제한다”는 조항이 들어 있다. 공소시효 배제 또한 입법이 어려울 전망이다.
그러나 상당히 실체에 접근한 서울대 최종길 교수 의문사의 가해자가 밝혀질 경우, 가해자에 대한 공소시효 문제가 현안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이 사건은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기 때문이다. 조사관들은 수사권 강화가 구시대 인물들의 인적 청산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강력한 수사권을 갖게 되면 개별 사안의 인권침해와 은폐구조를 밝힐 수 있게 됩니다. 폭압적인 권력 메커니즘이 밝혀지면 책임자가 드러나고요. 결국 인적 청산으로 이어지는 거지요.” 규명위쪽은 의문사 진상규명 활동의 종료 시점을 올 12월 말로 잡고 있다. 조사관들은 “시한 연장과 조사권 강화가 꼭 함께 이뤄져야 의미가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들은 “복잡한 위원회 내부사정상 이름을 밝히기는 어렵다”며 자리를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