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02년01월16일 제393호 

도시 디자인 전담조직 만들자

‘걷고싶은 도시만들기’ 프로젝트의 성과와 한계… 거리문화 수준향상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사진/ 1989년부터 5년동안 진행된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 디자인 사업. 통합적인 계획, 관리로 성공을 거뒀다.(Espaces publics, Paris project)


지난해 12월28일 서울시에서는 도시계획 방향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올 ‘사건’이 일어났다. 시청 산하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이 제시한 인사동 전통사거리의 도로폭 유지와 근대건축물 보존을 위한 ‘인사동 단위지구계획안’이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회의를 통과한 것. 지난해 입안된 이 계획안은 공평아트센터에서 태화관로를 거쳐 극동빌딩에 이르는 인사동 사거리 길의 도로폭을 20m의 대로로 바꾸기로 했던 서울시의 기존 도시계획안을 백지화하고 12m의 기존 도로폭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이 결정은 개발 일변도로 추진됐던 지자체의 도시계획이 처음으로 ‘문화재 보존’에 대한 고려로 그 방향을 선회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90년대 중반까지 도시계획은 우리 사회의 변화패턴과 마찬가지로 70년대 개발독재식 성장위주로 진행돼왔다. 높은 건물, 늘어나는 자동차는 도시화의 상징이었고, 가로수 그늘에서 쉴 권리, 편하게 보행할 권리는 도시화 작업에 고스란히 헌납됐다. 원활한 교통소통을 위해 너무도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불편한 지하도와 육교를 감수했다. 덕분에 서울 거리는 장애인이 없는 공간이 됐고 한국은 장애인 없는 나라로 보여지기도 했다.

주민과의 갈등으로 지연·중단도

그러나 90년대 중반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보행권 회복운동이 지속적으로 벌어지면서 건물 위주, 자동차 위주의 도시계획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서울시에서 99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걷고싶은 도시만들기’ 프로젝트는 거리를 보행자 중심으로 만들겠다는 발상의 전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 프로젝트의 성과와 한계는 환경 디자인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수준을 총체적으로 보여준다.

서울 시정개발연구원에서 1차로 완성된 9개구의 시범가로를 평가한 결과에 따르면 보행자 우선도로의 양적 증가는 충실하게 이뤄졌다. 광화문 사거리나 신촌 사거리 등 사람들의 이동이 많은 지역에 횡단보도가 설치된 것도 반가운 결과다. 그러나 시행과정에서의 크고 작은 오류 또한 적지 않았다.

“모두 꼼꼼히 둘러보지는 않았지만 시범 거리들이 지역적 특징없이 비슷비슷한 느낌을 준다” 걷고싶은도시만들기시민연대의 박종숙 간사의 인상비평이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현상공모로 선정한 설계 용역회사들은 상당수가 2개 이상의 구를 맡아 동시에 추진했다. 불과 1년 남짓한 시간에 여러 거리를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다보니 현장 이해나 조사가 미흡한 상태로 설계가 진행될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그 지역만의 독특한 환경이나 분위기에 걸맞은 거리가 나오지 못했다. 금천구에서는 구청장의 친필이 쓰여진 동상건립, 무리한 펜스 설치 등으로 주민들의 비판이 거세기도 했다.

주민과의 갈등은 때로 사업 자체를 지연시키거나 중단하기도 했다. 양천구는 지역상인 반대로 신정동 로데오거리 사업 자체가 유보됐고, 용산구 효창공원길 역시 지역상인 반대로 거리조성이 대폭 축소됐다. 여기서 시민의식의 한계도 여실히 드러난다. 주된 반대 이유는 “주차공간이 준다”, “차가 막힌다”는 것이었다. 관 못지않게 시민들 역시 오래 길들여진 개발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주택가 공터를 마을마당으로 바꾸기 위해 주민 조사를 하면 휴식공간보다는 주차장이나 쓰레기통 등을 요구하는 의견이 훨씬 많다”는 한 디자이너의 귀띔 역시 같은 맥락이다. 계단, 육교, 차 없는 보행천국으로 알려진 덴마크 코펜하겐조차 62년 보행자 가로망 확장시 지역상인들과 교통전문가들의 격렬한 저항을 받았던 점을 염두에 둔다면 지금 겪고 있는 진통들은 거리문화 수준 향상을 위해 거쳐야 할 수순인 셈이다.

주민 스스로 마을을 디자인한다


사진/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전문가, 행정기관이 함께 만든 서울 사당동의 양지공원(위쪽). 서울 용산구 청파동길은 주변 상인들의 반대로 도로 확장, 정비가 상당부분 축소됐다(아래쪽).(박승화 기자)


반면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시민들의 노력도 늘어나고 있다. 도시연대에서 운영하고 있는 주민참여 마을학교는 도시디자인을 시민 가까이 끌어오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도시연대가 2000년 마을만들기 사례로 연구한 사당동 양지공원은 시민과 전문가, 그리고 행정기관이 모두 주체로 나선 바람직한 사례다. 10년간 방치돼온 땅을 행정기관에서 주차장으로 만들려고 할 때 주민들이 안전, 소음과 매연 문제 등을 이유로 반대해 조성된 공원이다. 이때 반대운동을 주도했던 열명 안팎의 주민들은 조경학자의 설계과정에서 의견을 제시했고 시공과정에 감독관으로 참여했으며 공원에 설치할 작품을 직접 제작하기도 했다. 전문가는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해 설계를 조정했으며 동작구청은 전문가와 주민 사이의 미세한 갈등을 중재하는 등 유연한 태도를 보여줬다. 그러나 이곳 역시 조성 뒤 관리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구청은 구청대로, 시민은 시민대로 지속적 관리에 소홀하면서 활용도가 떨어졌기 때문. 양지공원을 사례연구한 박종숙 간사는 “마을 가꾸기를 하고 싶어하는 시민들이 많지만 대부분의 시도가 흐지부지되고 만다”면서 “행정기관의 적극적인 지원없이 시민의 노력만으로 환경이 개선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한다.

이번 걷고싶은 도시만들기 프로젝트를 평가한 서울 시정개발연구원의 박현찬 박사는 “전체적인 그림없이 산발적으로 진행되는 도시계획은 전통적인 가로등 아래 현대적인 벤치를 놓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면서 “전문가와 행정, 시민이 함께 참여하는 도시 디자인 업무 전담조직이 필요하다”고 결론지었다. 89년 시작해 94년 완료된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 재정비 사업의 성공은 통합적 도시 디자인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자크 시라크 파리시장 당시 이뤄진 이 사업은 전문가들이 가로, 거리시설물에서 교통까지 통합적으로 설계하여 진행했다. 이때 인근 건물의 용도를 제한하는 법안도 통과됐다.

서울시 도시환경개선단에서도 최근 도시시설물 디자인을 통합적으로 계획하고 심의할 디자인팀을 꾸리고 있다. 학계와 현장 디자이너 15명이 참가하고 있는 도시디자인위원회는 새로 설치되거나 교체되는 가로시설물에 대해 주변과의 조화 등을 고려해 좀더 적극적으로 거리 디자인에 개입한다는 계획이다. 실무를 담당하는 구단위의 디자인팀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아 어느 정도까지 통합조정이 실효를 발휘할지 짐작하기는 어렵다. 공공기관의 심의위원회들이 허수아비 심의에서 벗어나는 것이 첫걸음이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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