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02년01월09일 제392호 

과잉진료에 보험료 거덜난다

의료계의 지나친 진료행위로 재정난 심화… 의료공급 관리하는 제도적 장치 절실


사진/ 국내 의료계는 첨단 의료기기를 이용해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내고 있다. 한 환자가 위장조영 촬영장비로 진단을 받고 있다.(한겨레 장철규 기자)


언제부턴가 우리나라 도시의 어느 거리를 가도 ‘대장·항문 전문’이라고 적힌 간판이 자주 눈에 띄는 건 무엇 때문일까. 우리 국민이 유별나게 대장과 항문 질환을 많이 앓기 때문인가.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이유가 충분하지 않아 보인다. 갑자기 대장·항문 질환자가 급증했다는 연구결과는 없다. “의료시장은 정상적인 수요와 공급 쌍곡선이 존재하지 않는다. 일방적으로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구조다.” 전문가들은 ‘대장·항문 전문’ 간판이 크게 늘어난 까닭은 의료계가 새로운 공급을 창출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일방적인 공급으로 유별난 수요 만들어

지난해 건강보험이 최악의 재정위기를 겪으면서 정부는 ‘5·30 재정 안정화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는 이어 같은해 11월 “중간점검 결과 전체 목표의 97%를 달성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정부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더라도 이들 대책이 앞으로도 효과를 계속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의료공급자들이 강화된 심사에 적응해 합법적인 범위 안에서 진료공급을 늘리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전망대로 2006년에 보험재정이 흑자로 돌아설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건강보험 재정문제의 핵심을 우리나라의 의료공급 구조에서 찾는다. 구조적 문제는 몇 가지 세부적인 정책대안으로는 풀리지 않는다. 우리나라 의료기관은 병상 수 기준으로도 80% 안팎을 민간이 차지해 세계최고의 사적 소유구조를 띠고 있다. 의료인력 대부분은 전문의들이며, 96년 MRI 보유대수는 세계 3위, 최근의 근시수술 장비 보급률은 세계 최고수준이다. 모두 사적 소유구조 아래서 생겨난 기형적 구조이다.

보험 지불체계인 ‘진료행위 보상체계’도 의료공급구조를 왜곡시키는 것으로 지적된다. 우리나라는 진료행위 하나하나에 값(수가)을 매겨 급여비를 지불하는데, 이를 행위별 수가제라고 한다. 행위별 수가제는 의료공급자가 공급량을 아무리 늘려도 보험 급여비가 나온다. 이 때문에 의료공급자는 공급량을 최대한 늘리는 것으로 과잉경쟁의 돌파구를 찾는다. 불요불급한 환자에게 주사를 놓고, MRI를 찍고, 매일같이 병원을 다시 찾게 하거나 입원기간을 늘리는 것이다.

이에 따라 건강보험 재정을 근본적으로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의료공급 관리’ 방식이 도입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미 서구 선진국에서는 1980년대 이후 다양한 방식으로 공급을 관리해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첫걸음도 떼기 전에 의사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지난해 복지부가 주사제 사용행태 등을 조사해 남용실태가 드러나는 의료기관에는 보험급여에 불이익을 주겠다고 발표하자 의사들은 ‘진료권 침해’라며 들고일어났다.

포괄수가제 전면 시행을 누가 막는가


사진/ 의료공급 통제하면 '진료권 침해'? 의사들이 의약분업 반대시위를 벌이고 있다.(강창광 기자)


외국의 공급관리 방식에는 포괄수가제, 예산제, 총액계약제 등이 있다. 포괄수가제는 진료행위가 아닌 질병 자체에 보험수가를 정해놓는 방식이다. 과잉진료를 하더라도 정해진 보험급여비 외에는 더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과잉진료를 막을 수 있다. 예산제는 한해 보험급여비를 예산으로 책정해 지급하는 방식이고, 총액계약제는 의료공급자 단체와 1년치 보험급여비 총액을 계약해 공급단체 내에서 나눠쓰게 하는 방식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올해부터 포괄수가제가 부분적으로 도입될 예정이다. 신영전 한양대 의대 교수는 “포괄수가제는 가장 낮은 수준의 공급관리 방식이지만, 일단 우리의 여건으로는 1차적으로 적용해볼 수 있는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포괄수가제가 전면적으로 확대되려면 사회적 여론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공급자들이 자발적으로 수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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