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02년01월02일 제391호 

미-일 공조 vs 북-중 공조

일본의 대북 강경정책 강화되면 남북 화해정책 실효성은 더욱 더 멀어진다


사진/ 2000년 10월 베이징에서 열렸던 북-일 수교교섭 11차 회담. 이 회담 이후 두 나라간의 협상은 더이상 이뤄지지 않았다.(AP 연합)


일본의 괴선박 격침사건으로 동북아 정세에 긴장의 파고가 높아지고 있다. 일본 순찰선이 2001년 12월22일 중국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에서 국적불명의 선박을 격침한 데 대해 북한과 중국이 정면으로 비난하고 나섰다.

이미 식을 대로 식은 북-일관계

북한은 2001년 12월27일 외무성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통해 “일본 정부가 괴선박을 북한과 관련지으려 하고 있다. 우리 공화국에 대한 중대한 모략행위로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고 강력하게 비난했다. 북한은 하루 전 26일 <평양방송>을 통해 “동중국 해역에 정선해 있던 국적불명의 선박이 일본 순시선들의 무차별적인 기관포 사격으로 침몰됐다”며 “그들(일본)이 떠드는 정체불명의 선박사건이란 입만 벌리면 우리를 걸고 드는 데 버릇된 일본 반동들의 반공화국 적대시 정책이 빚어낸 또 하나의 엄중한 모략극이자 도발”이라고 주장했다.

중국도 25일 장치웨 외교부 대변인 명의로 논평을 발표하고 “중·일 양국의 동중국해 해역의 배타적 경제수역과 대륙붕의 경계선은 중국과 일본 쌍방의 주장이 중첩되는 해역이 아닌 중국쪽 배타적 경제수역으로 일본은 중국의 권리와 우려를 마땅히 충분히 존중해야 한다”며 “중국은 일본이 국적불명의 선박을 추격하면서 무력을 사용하고 이 선박이 중국의 배타적 경제수역에서 침몰한 사건에 대해 엄중한 우려를 표시한다”고 일본을 겨냥했다. 장치웨 외교부 대변인은 23일에도 논평을 내고 “이 선박의 침몰로 승무원 사망과 부상 사건에 대해 유감을 표시한다”고 말해 일본을 가해자로 침몰된 선박과 사망자 및 부상자를 피해자로 보는 듯한 태도를 나타냈다.

북한은 주로 일본이 괴선박을 북한 공작선으로 몰아가는 것에 대해, 중국은 일본이 중국의 배타적 경제수역에서 무력을 사용한 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일본을 몰아붙인 것이다. 자칫 이 문제가 북한과 일본, 중국과 일본 사이에 외교문제로 비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북-일관계는 결정적으로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당국자는 “괴선박이 북한 공작선이라는 사실이 증거를 통해 입증되면 북-일관계는 관계회복을 위해서는 상당기간 냉각기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좀더 조사가 필요하다”며 괴선박이 북한 공작선이라고 단정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일본 언론을 통해 괴선박이 북한 국적이라는 사실을 흘리는 등 기정사실화해가는 분위기다.

사실 북-일관계는 최근 일본당국의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총련) 압수수색과 북한의 일본인 행방불명자 조사 전면중지 선언으로 이미 악화될 대로 악화돼 있는 실정이다. 일본은 11월29일 총련 중앙본부를 강제수색해 총련의 후견인격인 북한을 자극했다. 일본 경찰은 총련계 금융기관인 조긴도쿄 신용조합의 자금유용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총련이 정경생 전 이사장에게 횡령을 지시하고 가·차명 계좌를 이용해 8억2천만엔을 받아쓴 혐의를 잡은 것이다. 일본은 고이즈미 총리까지 나서 “이 사건은 국내법에 따른 것으로 북-일관계와는 관계가 없다”고 사건의 확대를 막았다. 그러나 총련은 성명을 통해 “압수수색은 총련과 재일동포에 대한 주도면밀한 정치탄압”이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일본 ‘경제제재 가능성’도 시사


사진/ 북-일관계 악화로 인해 남북관계에 불똥이 튈 가능성이 높다. 손을 맞잡은 김대중 대통령과 고이즈미 일본 총리, 주룽지 중국 총리(왼쪽부터/ 한겨레 이정우 기자)


북한도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다. <노동신문>을 통해 일본의 조사를 비난한 데 이어 12월17일에는 조선적십자회를 통해 북-일수교회담의 합의사항인 일본인 행방불명자에 대한 조사를 전면중지한다고 밝힌 것이다. 북한의 일본인 행방불명자 조사는 99년 12월 북-일수교회담의 걸림돌이었던 일본인의 납치의혹 문제를 풀기 위해 북한 적십자회와 일본 적십자사간의 합의 형식으로 서로 일본인과 북한인 행방불명자에 대한 조사를 벌이기로 했던 것이다. 북한은 <중앙통신>을 통해 “해당기관과 협조 아래 일본이 의뢰한 행방불명자 조사에 성의를 다했지만 이 과정에서 일본이 주장하는 행방불명자란 우리 공화국 경내에는 없다는 것이 판명됐다”고 밝혔지만, 사실 총련 압수수색에 대한 보복조처로 받아들여졌다.

이런 일련의 사정 때문에 북한에 대한 일본의 감정은 냉담하다. 북-일수교협상도 2000년 10월 베이징에서 열린 제11차 회의가 결렬된 이후 재개될 조짐이 없는데다, 2001년 2월 미국의 부시 정부 출범 이후 북-미관계가 악화되고 있는 사정도 일본의 태도를 더욱 경직되게 만들고 있다. 또 이번 사건이 9·11 테러 이후 반테러 여론이 거센 국제정세에서 북한의 테러지원국 이미지를 굳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는 등 북한으로서는 불리하다.

일본은 북한의 비난성명이 나오자 곧바로 반박하는 등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후쿠다 야스오 관방장관은 27일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의 저질스런 비판은 완전히 타당성을 상실한 것”이라며 “일본이 취한 행동은 국제법과 관계법령을 토대로 한 조치였다”고 반박하고 나선 것이다. 또 다나카 마키코 외상은 이에 앞서 25일 “만약 선박에 남겨진 유류품 조사 등을 통해 괴선박이 북한의 공작선으로 특정될 경우 항의조치 이외에 내각이 모종의 조치를 검토해야 한다”며 경제제재 조처 가능성도 시사했다.

문제는 북-일관계 악화가 남북관계에도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점이다. 남쪽 정부의 대북정책의 핵심은 한-미-일 3자 공조체제. 이미 한-미 공조가 삐그덕대는 마당에 일본마저 대북 강경정책을 강화할 경우 남북 화해정책의 실효성은 더욱 멀어질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번 사건과 관련해 미국의 인공위성 정보가 일본에 제공됐다는 미-일 공조설이 보도되는 사정 등은 북-미관계도 조만간 풀리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 정부는 이번 사태의 배경과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한승수 외교통상부 장관은 24일 기자간담회에서 “중대한 관심을 갖고 관찰중”이라고 밝혔다.

선박 인양, 중국이 그냥 놔둘까

이번 사태가 얼마나 더 확대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일본은 일단 시간이 걸리더라도 침몰한 괴선박을 인양해 시시비비를 가리겠다는 태도다. 오기 지카게 국토교통상은 25일 “괴선박의 국적과 목적을 파악하지 않으면 앞으로 대응해나갈 수 없는 만큼 침몰한 선박을 인양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실제 괴선박이 침몰한 지역의 수심이 100m 남짓 하기 때문에 기술적으로는 인양하는 데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이미 일본으로서는 얻을 것은 다 얻었기 때문에 굳이 인양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는 분석도 만만찮다. 정부당국자는 “일본은 98년 미사일 발사시험, 99년 북한 공작선 영해 침범 등 ‘북한위협론’을 재무장 강화의 기회로 곧잘 활용해왔다”며 “이미 일본은 이번 사건을 통해 9·11 테러 이후 해외파병의 물꼬를 튼 자위대의 활동영역 확대에 더욱 박차를 가하기 위한 근거를 마련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실제 일본은 사건 직후 기다렸다는 듯이 해상 보안청이 맡고 있는 연안경비에 자위대가 참여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등 재무장 강화 차원에서 안보 관련 법안을 재정비할 방침임을 밝히고 있다.

오히려 인양해서 괴선박이 북한 공작선임이 확인되는 것 자체가 일본으로서는 부담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여론의 압력에 밀려 북한에 외교적 제재조처를 취해야 하는 사태가 올 경우 북한과의 지나친 대립에 따른 외교적 부담도 만만찮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 괴선박의 침몰지역이 중국의 배타적 경제수역이기 때문에 중국쪽의 동의없이 인양을 강행할 경우 중국과의 마찰도 감수해야 한다.

북한도 이번 사태를 확대할 뜻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27일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통해 일본을 강력하게 비난하면서도 “앞으로 일본이 어떤 대응을 하느냐에 따라 상응한 조처를 취할 것”이라고 여지를 남겨놓았다. 일본이 더 몰아붙이지 않으면 북쪽도 그만 덮어둘 수 있다는 뜻이다. 결국 공은 일본쪽에 넘겨져 있다.

박병수 기자 suh@hani.co.kr







.




↑Back to the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