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외쳐라, ‘이단자’ 지방인이여

모든 것이 서울로 집중된 ‘일극사회’… ‘비서울 국민’은 오늘도 몸부림 치고 있다

한국처럼 모든 게 서울로 집중돼 있는 나라도 드물다. 서울과 그 근역을 가리키는 수도권의 넓이는 전체 면적의 11.8%에 불과하다. 하지만 인구의 45.9%가 여기에 몰려 있다. 인구밀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진 일본 도쿄 수도권(32.3%)이나 파리(18.2%)와의 비교가 무색할 지경이다.

‘지방대생’으로 일컬어지는 사람들

권혁범 교수(대전대)는 이를 ‘일극사회’라고 일컫는다. 우리 사회가 ‘하나의 극(極)’, 즉 서울을 중심으로 짜여져 있다는 것이다. “부산은 인구가 400만명이 넘는데도 부산 사람들은 스스로를 ‘시골사람’이라고 생각합디다. 참 이상하지 않아요? 서울=중앙, 서울을 제외한 다른 지방=주변부라는 도식을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면화하고 사는 것 같아요.”

‘일극사회’의 핵심적 본성은 다른 극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배타성’과 ‘독점성’에 있다. ‘서울 대 지방’의 전통적인 이분법이 점점 ‘서울 대 비서울’ 구도로 단순화하고 있는 세태와 무관하지 않아보이는 대목이다.

서울로, 서울로. 마치 블랙홀처럼 빨려들 듯 서울로 향하는 한국인들의 행렬. 인터넷의 보급, 지방과 서울간 경제적 격차의 감소. 지방자치제 시행 10년에도 이 행렬은 좀처럼 멈출 줄 모른다. 한국인들은 왜 이렇듯 서울로 서울로 향하는 것일까? 아니, 이런 세태 속에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터를 잡고 사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살까? 남들은 서울로 향하는데 되레 거꾸로 지방으로 내려가 살겠다는 사람은 또 어떤 생각으로 지방살이를 자처하고 나섰을까? 도대체 한국에서 지방인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한겨레21>은 이런 궁금증을 안고 지난 3월8일부터 10일까지 서울-대전-정읍-마산-원주 등지의 전국 4개도에 걸쳐 1200km를 일주했다.

3월8일 오후 대전대학교 한 강의실. 대전대 정치외교학과 학생 6명이 모였다. 이 대학 권혁범 교수를 통해 마련한 자리다. 지방살이에 대한 지방대 학생들의 생각을 우선 들어보기 위해서였다.

“얼마 전 형이 병원에서 진찰을 받았는데 요도결석이라는 진단이 나왔어요. 대전시내에서도 꽤 큰 병원이었는데 레이저로 치료할 수 있는 기계가 없다는 겁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빌려와서 수술해야 한다는 거예요. 형이 하루도 직장을 비울 수 없는 처지라서 결국 그런 식으로 수술을 받았어요. 참 이해가 안 가더라고요.”(이영구·28·대학원생)

“같은 전공과목이라도 서울에는 교수님이 8∼9명이지만 지방은 3∼4명밖에 없어요. 3, 4학년이 되면 90% 이상의 학생들이 더이상 들을 게 없다고 하소연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친구들을 만나면 가장 먼저 듣는 말이 ‘너희들은 공기 좋은데 살아서 참 좋겠다’거나 ‘밤에 별이 참 많이 뜨지’ 같은 말입니다.”(최경진·25·4학년)

“초등학교 때부터 선생님들이 단골메뉴로 하시는 말씀이 너희는 지방에 살기 때문에 더 불리하다는 거였어요. 너희가 이렇게 놀 시간에 서울애들은 뭘 한다는 식이었죠. 그러다보니 서울사람이 입은 것이나 서울에서 유행하는 것이라고 하면 다시 한번 보게 돼요. 고등학교에서 한 친구가 서울대에 들어갔는데 고향인 영동시내에 플래카드가 걸렸어요. 지역의 많은 단체들이 생활비까지 보태주기 위해 장학금 사업을 벌인다고 난리를 쳤죠. 그런데 부산이나 광주에 들어간 친구들도 많았는데 꼭 서울대에 들어간 친구에게만 그러는 거예요. 대학에 들어오기 전까지 서울을 우리와 똑같은 일개 지역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김태숙·20·2학년)

대덕밸리에 희망을 걸고…

“서울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가끔씩 있는데 대부분이 한 학기나 일년을 투자해서 유학을 준비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제게는 그런 모습들이 끊임없이 자기계발에 주력하는 모습으로 보였어요. 그래서 주변환경이 중요한데….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진다면 차이가 좁혀질 것라고 생각해요.”(신순옥·24·3학년)

이들이 피부로 느끼고 있는 지방살이는 매우 구체적인데다 때로는 자괴감까지 깃들여 있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이들은 서울대생, 연세대생, 고려대생 등 학교이름이 붙지만 이들에겐 언제나 그저 ‘지방대생’일 뿐이다. 이들은 특히 지방대생의 서러움을 대학입학시험 직후나 취업 전후에 가장 크게 느낀다고 말했다. 대입 직후 언론은, 사람들은 수능성적에 따라 지방대와 서울에 있는 대학들로 서열이 매겨 이야기한다. 취업 때는 비참할 정도로 “극복하기 어려울 정도의 차별을 겪는다”고 한다.

김태숙씨는 ‘여성으로서의 정체성과 지방대생이란 정체성 가운데 어느 것이 먼저 다가오느냐’는 질문에 “지방대생이란 정체성이 훨씬 강하다”고 답해 지방대생들이 느껴온 소외감과 차별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케 했다.

같은 날 대전 한국과학기술원의 정보통신연구진흥원 지하 1층에 있는 벤처카페 대덕아고라. 이 지역 기업인들을 상대로 한 설명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 행사를 주최한 이는 바로 벤처기업 ‘대덕넷’(www.hellodd.com)의 대표 이석봉(40)씨다. 그는 본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라고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한 전형적인 서울사람이다. 그러나 지금 그는 스스로 대전사람이며 지방기업인이라고 말한다. 이씨는 왜 이곳 대전에 내려와 지방살이를 하고 있나?

“1996년 일본에 연수를 갔을 때, 일본사람들은 그때부터 한국은 정치 중심, 중앙 중심 때문에 더이상 성장을 못할 거라고 그래요. 그래서 한국에 돌아온 뒤 가만히 관찰해보니 진짜 우리 사회가 지나친 가분수 사회라는 걸 깨달았어요. 스스로를 돌아봤더니 나 자신도 지방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내가 한국사람인가 하는 회의가 들더군요.”

이런 회의는 그를 97년 지방으로 가도록 했고, 그래서 선택한 곳이 대전이었다. 대전은 대덕연구단지를 통해 형성된 벤처기업들이 몰려 있는 대덕밸리가 있어 독창적인 지방기업문화가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테헤란밸리가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파이낸싱을 기반으로 하는 20대들의 닷컴 위주라면 대덕밸리는 카이스트 박사 출신으로 연구원 경력이 10년 이상 되는 30대 후반이나 40대들이 하는, 탄탄한 기술력을 갖춘 제조업 벤처 중심입니다. 질적으로 다르죠. 사는 것도 그래요. 녹지가 풍부해 20분만 나가도 국립공원이 펼쳐지죠. 바다와 도예촌 등이 가까이 있어 문화적 정서적 갈증도 해소할 수 있습니다. 인간관계도 서울에는 익명성이 많지만 이곳에서는 훨씬 친밀감이 높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죠.”

지방에서 기업인으로 산다는 것

이렇듯 지방살이에서 희망의 싹을 엿보고 있는 이씨도 지방살이의 다양한 어려움을 털어놓는다.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아 승용차가 없으면 움직이기가 어렵고, 버스 한번 놓치면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 합니다. 특히 정보가 서울에 집중돼 있어 관련 분야에서 뒤처지지 않을까 불안하기도 하고요.”

실제 많은 지방기업인들은 지방에서 기업인으로 산다는 것은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라고 토로한다. 역시 대전에서 대전과 충남·북지역의 벤처기업 600여개를 묶어 ‘21세기 벤처패밀리’라는 네트워크를 주도하고 있는 ‘지니텍’의 이경수(41) 대표는 “기업활동을 법적으로 뒷받침할 법무법인이나 회계법인 하나 변변한 게 없다”고 말했다.

3월8일 밤, 취재진의 발걸음은 전북 정읍으로 향했다. 때마침 함박눈이 내려 고단한 취재진을 달래줬다. ‘팀플레이’라는 이름의 컴퓨터게임방을 운영하는 김진호(32)씨를 만난 건 밤 9시가 넘어서였다. 한국외국어대를 졸업한 김씨가 지방에 내려오기로 결심한 것은 1996년 초. 그가 지방행을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은 함께할 친구 세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대학을 다닐 때부터 그 친구들과 함께 컴퓨터에 관한 공부를 틈틈이 하면서 “인터넷의 등장은 공간적인 중심과 주변의 개념을 해체시킬 것”이라는 나름의 전망도 지니고 있었다.

‘새물결시스템’이라는 이름의 컴퓨터가게를 내고 업무용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관리해주는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인터넷 전용선을 마련해보려고 시청과 한국통신을 오가며 “남들 전깃불 들어올 때 촛불 켜고 살라는 얘기냐”며 호소했지만 모두 허사였다. “광주의 한 기업체에서 8천만원을 줄 테니 인터넷을 통해 외부에서 업무전반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개발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온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정작 그 프로그램을 개발한 우리한테는 인터넷 전용선이 없는 코미디 같은 현실이 눈앞에 펼쳐지더라고요. 서울로 다시 올라갈까 하는 고민이 처음으로 들기도 했습니다.”

결국 김씨를 뺀 나머지 3명은 각자 살 길을 찾아가야 했고 김씨는 개발한 프로그램의 애프터서비스를 위해 1999년까지 업체를 운영했다. 게임방을 운영하면서도 “50군데가 넘는 정읍은 게임방을 지역사회의 정보 인프라로 키우자”는 제안을 했지만, 다른 업주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젊은 사람이 세상을 덜 살아서 그렇다”거나 “너도 처자식 먹여살려야 하지 않느냐”는 말만 듣는다고 한다.

그러나 김씨는 지방 교육청을 통해 학교 전산담당 교사들을 상대로 방학중에 무료로 컴퓨터 네크워크 교육을 시키기도 하는 등 나름대로 지방에 기여할 방안을 연구해 실천하고 있다. 또 지방대를 나와 일자리가 없는 후배들을 위해 게임방 옆 사무실 공간을 프로그램 개발장소로 빌려주고 있다. 대여섯명의 후배들은 현재 전자결제시스템을 개발중이다. 김씨가 뿌린 지방살이의 씨앗은 과연 어떤 꽃을 피울까?

‘지방의 중앙’과 싸우며

3월9일 오전 경북 구미로 향한 취재진은 이곳에서 한국전기초자 대표이사인 서두칠(62)씨를 만났다. 서씨는 1997년 말 퇴출기업 1호로 지목됐던 한국전기초자에 전문경영인으로 들어가 불과 3년 만에 적자를 흑자로 돌려놓은 경영계의 신화로 통한다. 1997년 당시 598억원의 적자를 보던 기업이 지난해 1716억원의 단기순이익을 거두고 영업이익률도 상장사 가운데 최고수준인 35%를 기록한 것이다. 지난해에는 포항제철을 빼고 지방에서 최고 액수인 750억원을 세금으로 냈다.

서씨는 지방기업인들도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확인해주는 것일뿐더러 본사가 반드시 서울에 있어야 한다는 기업관행을 돌파한 또다른 성공사례이다. 서씨의 성공은 시종일관 노동자의 마음을 잡으려는 그의 오래된 경영철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정리해고 대신 일거리를 더 많이 창출하고 경영 전반을 종업원들과 철저히 공유한다는 정신을 그대로 실천한 것 등이 그렇다.

서씨는 사장으로 부임하면서 서울에 있던 본사 사무실을 전부 지방인 구미로 옮겼다. “공장은 지방에 있어도 한달에 한두번, 또는 일주일에 한두번 내려가 호통이나 치고 칭찬 몇마디나 하는 그런 사장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게 서씨의 신념이다. 그래서 그는 365일을 항상 현장에 붙어 있다. “지방에 가 있으면 퇴보하고 승진에 불리하다는 막연한 생각을 지닌 이들이 아직도 있습니다. 서울에 남아 있어야 한다는 막연한 강박관념을 버리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초국적 경제시대에 서울-비서울 논쟁에 매달려 있는 건 허무합니다. 전문적인 지방기업을 살리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입니다.”

3월9일 오후 경남 마산에서 마주한 ‘마창진 참여자치시민연대’(www.mcjss.co.kr) 사무국장 조유묵(37)씨. 그는 사무실에서 며칠 앞으로 다가온 김인규 마산시장 수뢰사건의 대법원 판결과 관련한 대책을 논의하고 있었다. 김 시장 사건에 대해 창원시장 등이 한나라당 중앙당에 다녀왔다는 언론보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씨는 자신은 이중모순 속에서 살고 있다며 허탈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저는 강원도 출신으로 마산은 타향입니다. 타향이면서 지방에 산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는 두 가지 어려움을 한꺼번에 짊어진다는 의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곳 사람과 결혼하고 애를 둘씩이나 낳아 기르며 산 지 10년이 넘는데도 고향에 가면 경상도 사람이라고 하고 여기서는 여전히 다른 지역 사람이라는 시선이 따갑습니다. 시장 수뢰 사건만 해도 그렇습니다. 뇌물을 받은 시장을 물러가라고 하는데 왜 ‘다른 지역 사람이 와서 이런 운동을 하느냐’는 논리를 들이대는지 알 수가 없어요. 또 최근에는 좀 나아지긴 했지만 시민운동 역시 서울 중심의 중앙집권적인 시스템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습니다.”

지역문화운동에 청춘을 불사르다

조씨의 경우는 한국에서 지방살이의 또다른 장벽을 잘 보여준다. 바로 다른 지역에 고향을 둔 이가 또다른 지역에 가서 터를 잡고 그들과 동화하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방증하고 있는 것이다. 조씨가 벌이는 싸움은 언제나 ‘지방의 중앙’을 대상으로 한다. 그는 이를 두고 “중앙의존세력, 개발의존세력, 반분권세력, 토호세력”으로도 부른다. 이들은 정권교체 등 중앙의 정치구도와는 무관하게 ‘지역 내 학연’ 등을 통해 똘똘 뭉쳐 기득권을 독점하고 있다. 지역언론 역시 이같은 구도안에서 자유롭지 않아 건전한 지방시민사회 형성을 가로막고 있다는 게 조씨의 분석이다.

조씨는 요즘도 활동이 몹시 조심스럽다고 한다. “서울사람이 내려와서 다 헤집고 다니다가 무책임하게 올라간다”는 얘기를 듣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란다. 조씨는 “마산과 창원이 도청소재지를 두고 갈등하는 양상을 보면서 중앙과 지방의 대립구도는 다만 서울과 비서울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지적했다.

3월10일 취재진은 차를 강원도 원주로 몰았다. 무용학원을 운영하는 정은경(30)씨는 땀이 흠뻑 젖을 정도로 큰소리로 중년 여성들에게 전통무용을 지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시선이 빨리 돌아가는 분도 있고 늦게 돌아가는 분도 있어서 일치가 안 되잖아요. 장구는 되는데 춤이 안 되는 분들도 많아요. 개인연습을 더 많이 해야 합니다.”

취재진을 만난 그는 대뜸 스스로를 “맨땅에 헤딩하는 독립군”이라고 칭했다. 문화, 특히 무용의 불모지대인 이곳에서 홀로 무용문화를 퍼뜨리는 데 애쓰는 자신의 처지를 빗댄 말이라고 했다.

1997년 정씨가 이곳에 학원을 처음 세우자 곳곳에서 문의전화가 왔지만 “블루스는 안 가르쳐주나요”라거나 “차차차 가르쳐주세요” 하는 전화뿐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15명의 중년여성들을 대상으로 전통무용단을 꾸리는 것과는 별도로 노인대학이나 평생교육원 등에 강의를 나가느라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정씨는 “주체성이 없는 지방살이만큼 허무한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무용대학이나 교수, 인간문화재, 공연관 등이 모두 서울에 집중돼 있는 현실에서 지역문화를 꽃피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지도 몰라요. 그래서 지역활동이 부족함을 느낄 때면 서울에서 그것을 채우며 활동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결코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20대를 다 바친 이곳에서 끝장을 볼 거니까요.”

중앙과 주변을 쉽게 가르고 계층화하는 버릇은 줄세우기를 좋아하는 우리사회의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서울 일극주의는 서울과 비서울을 나누는 현실 세계에서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 자라나는 독버섯이다. 차별과 배제의 논리를 구조화하는 서울일극주의를 없애기 위해서는 중앙만을 바라보며 해바라기가 된 중앙집권화한 우리의 마음과 의식을 바꾸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