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hani.co.kr/h21

기사섹션 : 특집 등록 2001.03.13(화) 제350호

[특집] 서울 떠나라? 안떠나!

김대중 정부 3년, 지역정책은 여전히 빈곤… 중앙부처 ‘혁명적’ 이전 필요

“서울로 오는 것을 막는 방식으로는 안 된다. 지방에 가서 기업하고 사는 것이 서울에서 하는 것보다 유리하게 만들어줘야 한다. 그래야 지역균형발전도 가능하다.”

김대중 대통령이 늘 입버릇처럼 해온 말이다. 사람이든 기업체든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건 모든 비용과 기회가 “옮겨서 낫다”는 생각이 들어야 가능하다는 얘기다. 서울로 몰려오는 것을 ‘규제’해온 정책의 한계에서 벗어나 지방 ‘육성’쪽으로 눈을 돌리자, 이것이 김대중 정부의 지방발전정책 슬로건이다.

몇 개 제도로 해결될 문제 아니다

김대중 정부 3년, 과연 그렇게 되고 있는가. 정부는 지난 수십년 동안 국토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온갖 대책을 펴왔다. 극심한 수도권 집중 방지를 위해 수도권정비계획법을 제정하고 수도권 대학모집 정원도 동결하는가 하면 제조업의 과도한 서울 집중을 막기 위해 수도권 공장건축허용량을 제한했다. 그러나 억제는 커녕 오히려 집중이 가속화되고 있다.

2000년 11월 기준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수도권인구는 2130만명으로 5년전에 비해 인구집중도가 45.3%에서 46.3%로 심화됐다. 경제력 집중도 여전하다. 통계청의 지난해말 시·도별 지역내 총생산을 보면 수도권 총생산비중은 전국의 46.2%로, 서울은 전년보다 0.8% 감소한 반면 경기는 0.8% 증가했다. 서울의 생산기반이 경기로 이전되고 있을 뿐 수도권 전체의 경제력 집중 현상에는 변화가 없는 것이다.

결국 정부는 지난해 대통령비서실장 소속 지역균형발전추진기획단을 꾸려 재경부 주관으로 지역균형발전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각 부처별로 흩어진 지역정책을 한데 모아 특별법으로 지역균형발전을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지역균형발전방안은 짜여져 있다. 국토연구원이 지난 99년 제4차 국토종합건설계획안을 마련해 지난해부터 2020년까지의 지역간 통합발전 청사진을 제시한 것이다. 중앙부처 한 지역발전 담당과장은 “국토종합건설계획이라는 기본 스케치가 이미 마련돼 있고 여기에 페인트로 색깔을 칠해나가면 되는 것인데 특별법을 만들면 혼란만 부추길 우려가 크다”며 갈팡질팡하는 지방균형발전정책을 비판했다.

그렇다면 실패는 어디서 오고 있는가. 한국지역학회 주성재 교수(경희대 지리학과)는 “숱한 수단을 동원해도 지역불균형이 해소되지 않는 이유는 수도권 자체가 갖고 있는 기득권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지방발전이 제대로 되려면 사람, 돈, 권한 등 세 가지가 동시에 지방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기득권의 핵심 부분들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주 교수는 이미 대전으로 내려간 철도청 등 외청 외에 중앙부처나 서울대학교 같은 굵직한 기관들을 지방으로 과감히 보내는 ‘혁명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토연구원 박양호 국토계획실장의 진단과 처방도 주 교수와 비슷하다. 박 실장은 “정부가 의지를 갖고 남해안 관광벨트 프로젝트 등을 추진해왔지만 실제 효과는 별로 없었다”며 “수십년간 누적돼온 서울 집중현상이 일시에 해결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몇 가지 제도개선이나 프로젝트로 되는 게 아니라면 뭔가 물꼬를 트는 특단의 조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선도 프로젝트’로 중앙부처를 지방으로 과감히 옮겨 관련단체와 기업 등이 자연스럽게 함께 따라가도록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박 실장은 “권력과 기능을 보내는 혁신적인 조처가 있어야 지방으로 가는 물결이 형성될 것”이라며 서울에 집중돼 있는 파워를 분산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등 모든 분야의 중추기능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구조적 상황에서 권한과 기능의 실질적인 분산조처가 뒤따르지 않은 채 이뤄지는 어떤 정책도 무위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금융 및 세제지원을 해줘도 기업들이 지방으로 내려가지 않은 현실이 말해준다.

사람, 돈, 권한 조화돼야

실제로 인구와 산업의 수도권 집중으로 골머리를 앓아온 독일은 정부부처를 베를린에 11개, 본에 6개 등으로 분산시켜 지방분산 효과를 보고 있다. 특히 프랑스는 10년간 파리 공무원 3만명을 지방으로 이동시킨다는 계획 아래 엘리트 공무원들을 배출해온 대표적인 교육기관인 국립행정학교를 파리에서 500여km 떨어진 곳으로 옮기기도 했다. 과감한 조처가 필요하다는 건 2010년이면 완전히 뚫리는 경부고속철도와 맞물려 있다. 지방침체 속에서 경부고속철도가 개통되면 오히려 고속철도를 이용한 서울 집중이 강화돼, 서울이 지방을 더욱 빨아들이는 블랙홀 현상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2010년까지는 시간이 별로 없는 셈이다.

정부의 지방문제 접근방식 자체도 문제로 지적된다. 충북대 강형기 교수(행정학)는 “서울의 문제가 불거지니까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나온 지방정책은 모두 한계를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과거 60년대 서울이 북한의 미사일 사거리에 들어가자 반공 안보차원에서 지방육성안이 나왔고, 서울의 과밀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서울 거주자가 아니면 주택청약을 제한한 것이 대표적이다. 서울로 오는 것을 막는 대신 광주나 대전 정도쯤에서 살도록 만들자는 거점도시전략도 서울문제 해결차원에서 착안됐기 때문에 실패했다는 게 강 교수의 논리다.

지방에 공장을 세우고 돈을 주는데도 지방산업단지 2300만평이 미분양상태라는 데서 보이듯, 서울 인구가 지방으로 가지 않는 이유는 뭘까. 강 교수는 이를 정부의 ‘토목적 발상’이 안고 있는 정책 빈곤에서 찾는다. 토목적 발상은 일터만 주면 된다는 식이지 살터와 놀터가 함께 존재해야 지방이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다. 그는 “모든 지방이 서울이 될 수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는 만큼 지방의 개성적 발전을 위해 지방에 권한과 자율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람, 돈, 권한이, 그리고 일터, 살터, 놀터가 동시에 어우러지지 못한 데서 오는 실패는 지방대육성정책이 고스란히 보여준다. 교육부 관계자는 “지방대 육성안은 박정희 정권시절 경제개발 5개년계획 때도 있었지만 돈을 쏟아부어 대학만 잘된다고 지방이 육성되는 건 아니다”며 “산업, 금융, 문화 등이 함께 활성화돼야 취업과 고용기회가 늘고 이 과정에서 돈이 돌고 인구도 늘어나며 이 속에서 대학은 지역사회발전을 위한 지식을 창출하고 그러면서 지방이 발전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과 지방간 불균형은 지역 학문 생산을 지원하는 정책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한국학술진흥재단은 학술지평가를 실시해 ‘등재후보학술지’로 인정되는 학회지만 연구비와 학회지 발간비를 지원해주고 있다. 문제는 지방에 근거를 둔 학회지는 지원에서 제외되기 십상이라는 점이다. 학술진흥재단 학술지등급평가팀 관계자는 “학회가 서울에 있느냐 또는 지방에 있느냐보다는 학술지에 투고하는 연구자가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는지 여부가 중요한 평가항목”이라고 말했다. 학회지가 ‘지방색’을 강하게 띠고 있으면 지원대상에 포함될 수 없다는 얘기다.

한숨 나오는 지방학회 현실

물론 지방학회라도 독보적 권위가 있다면 전국적으로 연구자들이 자기 글을 해당 학회지에 실으려 하겠지만, 특정한 지방발전방안을 연구하는 지역학회로서는 학술지인증을 받는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학술진흥재단의 등재후보학술지 심사를 맡은 적이 있는 한 지방캠퍼스 교수는 “실제로 심사를 좌우하는 건 서울에서 발간되느냐 여부”라며 “지역연구학술지는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한탄했다. 학술지 <지방정부연구>를 발간하고 있는 한국지방정부학회는 2년 전 학술진흥재단의 인정을 받기 위해 ‘부산경남울산제주행정학회’라는 애초의 이름을 지방정부학회로 바꾸기도 했다. 부산대 김인 교수(행정학)는 “지방발전을 위해서는 지역학 연구도 중요한 요소”라며 “그러나 지방 연구자들에 대한 학술운동 지원정책이 빈곤한 탓에 지역학 재생산 기반은 취약하기만 하다”고 한숨지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http://www.hani.co.kr/section-021005000/2001/021005000200103130350006.html



The Internet Hankyoreh copyright(c) webmaster@new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