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인형까지 만들어 “죽어라 죽어!”국사를 그르친 역사 속의 질투, 치사한 꼬드김과 모략질은 끝내 살육극으로
질투는 인간이 사회를 이루며 어우러져 사는 속에서 자연스레 나타나는 감정일 것이다. 우리 역사 속에서도 남보다 재능이 낫거나 출세를 하거나 재산을 모은 사람에 대한 질투 현상이 곧잘 일어남이 고찰된다. 역사속의 질투는 대개 정치적 동기와 개인 감정이 뒤얽혀 전개되는 특징이 있다.
신돈을 발탁했으나 처단하다
먼저 신돈에 대한 고려 공민왕과 당시 벼슬아치들, 그리고 신진사대부인 정도전, 조준 등의 질투가 눈에 띈다. 고려 말기 공민왕은 불법적인 사노비 증가와 불법점유 토지 확대 등 극심한 사회모순을 해결할 개혁정책에 노심초사하였다. 그러나 당시 기득권세력들인 기존 벼슬아치들로는 개혁이 어려웠다. 결국 공민왕은 신돈이라는 하급 신분 출신의 승려를 발탁해 개혁을 이끌 인물로 등장시켰다. 신돈은 기대대로 벼슬아치들이 불법으로 점유한 토지를 몰수하고 불법으로 평민을 노비로 만드는 짓을 막았다. 많은 토지를 보유하고 장리미를 주어 이식을 불리는 사원까지도 그 개혁대상에 포함시켰다. 신돈의 손으로 해묵은 고려사회의 비리는 척결되었다. 문제는 신돈의 성공이었다. 평민들은 신돈을 두고 “성인이 나타났다”고 칭송하며 떠받들었다. 결국 신돈의 권위와 인기는 공민왕을 능가하였고, 그를 발탁했던 공민왕조차 속내가 불쾌했다. 급속한 개혁정책에 대한 불만에 찬 벼슬아치들은 공민왕의 이런 질투심을 읽고 신돈을 헐뜯었다. 공민왕은 결국 마음을 바꾸어 신돈의 비리를 조작해내서 처단해버렸다. 신돈은 당시 개혁을 부르짖던 성리학자들로부터도 질투를 받았다. 성리학을 정치 이데올로기로 삼은 이성계를 중심으로 한 정도전, 조준 등 신진사대부들은 개혁을 추진하려는 의지에 차 있었다. 그런데 자기네들이 벌일 토지개혁 등을 신돈이 먼저 단행한 것에 질투를 느낀 것이다. 이들 성리학자들은 결국 조선개국 뒤 자기네들이 벌인 토지개혁 등 개혁을 높이 평가하면서 이미 신돈이 벌여놓은 개혁은 “보잘것없는 중의 행동”이라고 끌어내리고 인정하지 않는 식으로 역사를 조작하였다. 조선 중기에 개혁정책의 리더였던 조광조에 대한 박원종 등 훈구대신들의 질투도 주목할 만하다. 이들 훈구대신은 연산군을 몰아내고 중종을 옹립하는 정변을 단행한 뒤 권력과 이권을 독점했다. 이때 신진기예한 젊은 그룹이 정치무대에 등장하여 훈구대신들의 비리를 지적하고 나왔다. 이 그룹의 리더는 조광조였다. 조광조는 도학정치를 표방하고 중종에게 성군이 돼라고 압박하였다. 중종은 훈구대신을 견제하기 위해 조광조를 중용했다. 기록에 따르면 조광조는 인물이 잘나고 학식이 높으며 기개가 있었다 한다. 그가 거리를 지나가면 여성들이 담 구멍을 뚫고 훔쳐보았을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박원종 등 쿠데타의 주역인 훈구대신들은 속을 부글부글 끓이며 틈을 노렸다. 그리고 중종이 도학정치에 싫증을 내는 낌새를 알아차리고 조광조 일파를 ‘임금을 능멸하고 권력을 농간한다’고 꼬드기거나 스스로 임금이 되려 한다고 모략질하였다. 중종은 마침내 못 이기는 체하고 조광조 등에게 사약을 내리고 그 일파를 모조리 벼슬자리에서 쫓아냈다. 이순신과 원균의 예는 꽤 알려진 사실이다. 이순신은 젊을 때에 무관으로 국경지대에서 활동하였다. 그의 상관인 원균은 대대로 무관으로 출세한 집안 출신이었다. 그런데 이순신이 불과 몇 단계를 뛰어넘어 전라좌수사로 임명되었다. 마침 경상우수사로 있던 원균은 예전의 부하였던 이순신이 자신의 직위와 동격이 된 사실을 좀체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순신이 하는 일마다 협조를 거부하였다. 임진왜란이라는 국가적 환란을 겪으면서 원균은 중앙에 이순신을 모략하는 보고를 연달아 보냈다.
정약용에 대한 서용보의 질투
정약용에 대한 서용보의 질투도 우리 역사에서 눈여겨볼 만한 질투사례다. 조선 후기 임금인 정조는 자신이 사는 시대를 ‘대소변이 통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대승기탕(大承氣湯)이라는 극약을 써야 한다고 진단하였다. 그리고 개혁을 추진하면서 정약용 같은 젊고 유능한 인물을 등장시켰다. 지식과 재능, 정직과 덕망을 두루 갖춘 정약용은 정조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그런데 정약용이 젊었을 때 암행어사로 나가 당시 최대 명문가인 달성서씨 집안의 벼슬아치인 서용보의 불법사실을 적발해냈다. 서용보가 서원의 토지를 불법으로 자기소유처럼 만들었는데 이 사실을 적발했고, 서용보는 어쩔 수 없이 토지를 게워냈다. 서용보는 이를 계기로 정약용에 대한 직접적인 반감을 가졌다. 서용보는 또 당시 자신과 비슷한 나이에 정조의 총애를 받는 정약용에 대한 질투심에 정약용이 정책건의를 할 때마다 끊임없이 그를 헐뜯었다. 그의 질투는 정조가 죽은 뒤에도 지속됐다. 반대파들은 정약용을 천주교 신자라 하여 유배를 보내 강진에서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게 하였다. 이때 서용보는 중앙에서 영의정에 올라 온갖 영예를 누렸다. 당시 정약용의 유배기간이 길어지자 조정에서는 정씨의 유배를 풀어주자는 요구가 이어졌다. 하지만 서용보는 이 논의를 번번이 틀어막았다 한다. 서용보는 정치적 동기보다 정약용의 그 ‘잘난 꼴’이 보기 싫었을 것이다. 남을 욕하는 글을 전혀 쓰지 않은 점잖은 성격의 정약용조차 자신이 직접 지은 묘지명에 서영보가 자신을 질투하고 방해했다고 쓸 정도로 서용보의 질투에 한이 맺혀 있었다. 시아버지인 흥선대원군과 며느리 민비(명성왕후)의 질투도 대단했다. 19세기 끝 무렵 흥선대원군은 척족의 등장을 막으려 몰락한 민씨 집안의 딸을 며느릿감으로 골라 고종의 왕비로 들여보냈다. 그런데 고종이 성년이 되자 민비는 남편인 고종에게 “이제 당신 손으로 국사를 처리해야 한다”고 계속 간언했다. 그리고 흥선대원군과 한마디 상의없이 그의 궁중 전용출입문인 금호문을 폐쇄해 출입을 막고 정치에서 손을 떼게 하였다. 이로부터 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에 치사스런 질투와 갈등, 모략이 유발되었다. 특히 금호문을 폐쇄당한 흥선대원군은 얼마나 한이 맺혔던지 민비를 죽이려고까지 했다.
궁녀들의 질투극
임오군란이 일어나 군인들이 민비 타도에 나섰고, 민비 대신 궁녀가 죽고 민비는 궁중을 탈출했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다시 집권한 흥선대원군은 민비의 시체를 찾지도 않고 그녀의 죽음을 공식 선포하였다. 그뒤에도 두 사람은 권좌를 놓고 외세를 엎어가면서 번갈아 차지하였다. 역사에 유례가 없는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벌인 권력다툼은 끝내 나라를 빼앗기는 지경으로 전락하였다. 이들 두 사람의 이런 계속되는 싸움에는 정치적 측면 외에도 고종을 사이에 놓고 두 사람 사이에 전개된 개인 감정에 따른 질투가 크게 작용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여성들 사이의 질투도 상당했다. 과거 질투는 마치 여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남성들은 여러 명의 첩을 두었고, 본부인과 첩들은 한 남성의 사랑을 차지하려고 서로 모략을 일삼는 따위의 질투극을 벌이게 마련이었다. 남자들이 그 원인 제공자였던 셈이다. 궁중에서는 그 질투극이 더욱 극성스러웠다. 임금이 궁녀를 가까이하여 자식을 낳으면 내명부의 직함을 주었기 때문에 수많은 궁녀와 비빈(妃嬪)들 사이에서는 끊임없이 임금의 굄을 받으려 서로를 모략하고 헐뜯었다. 또 자기가 낳은 자식을 임금자리에 앉히기 위해 ‘윗전’에 알랑거리거나 정치세력들과 손잡고 온갖 공작을 벌였다. 말만의 모략이 아니었다. 무당을 동원하여 상대에게 저주를 퍼붇거나 인형이나 새뼈 따위를 상대가 사는 집 또는 방 앞에 묻기도 하고 상대 부모의 무덤에 묻기도 했다. 귀신이 씌여 병이 들어 빨리 죽으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 결정판은 변덕쟁이로 여러 차례 왕비를 갈아치운 숙종 때 인현왕후와 장희빈 사이에 벌이진 질투극이다. 장희빈은 인현왕후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그 효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당시 무속행위가 가장 왕성한 제주도의 무당과 무속도구를 동원하기까지 했다. 물론 이 둘의 질투극은 당쟁과 휘말리면서 커다란 살육까지 불러왔다. 이이화/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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