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동물도 질투를 하는가사람처럼 기쁨·슬픔·분노 느낀다는 과학적 증거 속출… 짝짓기 동안에 로맨틱한 사랑도
인간의 질투심에 관해 과학적 설명을 시도해 성과를 거둔 분야는 진화심리학이다. 진화심리학은 진화생물학과 인지심리학이 결합된 학제간 연구다. 요컨대 진화심리학은 진화론에 입각해 사람의 마음을 연구한다. 진화론의 중심 개념은 자연선택이다. 자연선택 이론은 적자생존으로 규정된다. 적자는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아 그들의 유리한 형질을 자신의 집단 속으로 퍼뜨리고 부적자는 도태되는 것이 자연선택이다.
인간의 질투는 구석기시대의 감정
생물이 자신의 집단 안에서 경쟁하는 다른 개체보다 생존 가능성이 높은 자손을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서는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생물학에서 적응이란 자연선택이 오랜 세월 지속적으로 작용하다 생물의 기능 중에서 효과적인 부분만을 선택해 진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의 마음을 이러한 적응의 산물로 간주하는 학문이 진화심리학이다. 진화심리학자들은 현대인의 머릿속에는 석기시대 조상들의 마음이 들어 있다고 주장한다. 인류의 조상들은 진화의 역사에서 99% 이상을 석기시대에 수렵채집을 하면서 살았다. 자연선택은 유목생활에서 날마다 부딪히는 문제들, 이를테면 사냥을 하고 양식을 구하고 짝짓기를 하고 자식을 기르는 따위의 일상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합한 신경회로망을 서서히 사람의 뇌 안에 새겨놓았다. 말하자면 현대인의 마음은 석기시대 조상들이 직면했던 적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연선택에 의해 설계된 수많은 정보처리 장치들의 집합체인 것이다. 진화심리학은 기본적으로 모든 인간의 마음이 보편적인 특성을 공유하고 있다고 전제한다. 그러나 한 가지 결정적인 예외는 불가피하게 인정하고 있다. 남녀의 성 역할이 다르기 때문에 자연선택이 남녀의 마음을 다르게 구성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인간의 짝짓기 행위를 분석한 대표적인 인물은 미국의 데이비드 부스 교수다. 그는 6대륙 37개 문화권에 속한 1만여명의 남녀를 대상으로 5년간 성의식을 연구한 결과를 94년 <욕망의 진화>라는 책으로 펴냈다. 그는 오늘날 남녀의 성 전략을 수렵채집하던 인류의 조상들이 짝짓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진화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부스에 따르면, 짝짓기 못지않게 짝지키기가 중요하기 때문에 인간은 짝을 지키기 위한 특유의 전술을 진화시켜왔다. 그 전술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짝의 요구를 잘 들어주는 것이다. 그러나 라이벌도 같은 전술을 시도할 수 있다. 따라서 인류의 선조들은 외부로부터의 잠재적인 위협에 긴장할 수 있도록 특별히 설계된 심리구조를 담보로 했다. 다름 아닌 질투심이다. 남녀간에 질투심을 느끼는 횟수나 강도에는 차이가 없다. 그러나 질투의 목적이나 내용에는 성의 차이가 나타난다. 남자들의 질투심은 짝이 다른 남자를 성적으로 좋아하는 배신의 눈치를 보일 때 발동하는 반면 여자들의 질투심은 짝의 투자가 다른 여자에게로 전환될 조짐이 나타날 때 발동한다. 다시 말해서 남자에게는 짝이 아이를 낳았을 때 자신의 자식임을 확신하기 위한 적응의 문제로 질투심이 생기는 반면에 여자에게는 짝에게 약속을 상기시켜 짝을 구속하기 위한 적응의 문제로 질투심이 일어난다. 요컨대 짝의 바람기와 맞서 싸우기 위해 진화된 하나의 심리적 전략이 질투심인 것이다. 부스는 2000년에 <위험한 열정>이라는 책을 펴냈다. 부제는 ‘왜 질투는 사랑이나 섹스처럼 필요한가’이다. 질투심이 결코 정신적인 질환이 아니라 짝지키기 전술로 진화된 구조라고 거듭 주장하고 있다.
돌고래와 물소, 기쁨을 느끼는 능력
짝지키기 전술은 동물세계의 짝짓기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곤충이 가장 흔히 사용하는 방법은 경쟁자들로부터 짝을 숨기는 것이다. 귀뚜라미 수컷은 원래 큰 소리로 우는데 암컷에게 다가갈 때는 다른 수컷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소리를 낮춘다. 숨기기 전술보다 적극적인 방법은 라이벌 수컷의 접근을 봉쇄하는 것이다. 가장 특이한 수단은 교미마개이다. 어떤 벌레는 교미가 끝나면 특수한 물질로 암컷의 생식기 입구를 막아서 다른 수컷들의 정액이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부스는 곤충들이 짝을 지키려고 취하는 행동 속에 숨겨진 적응 논리는 인간의 것과 흡사하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동물들도 사람처럼 짝이 바람피우는 것을 막기 위해서 질투심 같은 심리 전술을 진화시킨 것은 아닐까. 이 질문은 “동물들도 사람처럼 감정을 느끼는 능력을 갖고 있는가”라는 질문과 맥락을 같이한다. 다시 말해서 “동물들도 인간처럼 사랑하고 슬퍼하고 분노할 줄 아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나오면 동물들이 질투심을 갖고 있는지 여부를 알 수 있을 터이다. 생물학자들은 동물이 감정을 갖고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기를 꺼려했으나 최근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동물행동학과 신경생물학의 연구에서 동물도 사람처럼 감정을 느낀다는 증거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00년 미국의 마크 베코프 교수가 편집한 <돌고래의 미소>가 발간된 것을 계기로 동물의 감정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이 책에는 개, 고양이, 침팬지, 곰과 물고기, 이구아나 등의 연구에 생애를 바친 50여명의 사례보고서가 집대성돼 있다. 베코프 교수에 따르면 동물의 감정은 1차감정과 2차감정으로 나뉜다. 1차감정은 본능적인 것이라면 2차감정은 다소간 정보처리가 요구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1차감정은 공포감이다. 공포감은 생존 기회를 증대시키기 때문에 모든 동물이 타고 난다. 예컨대 거위는 포식자에게 한번도 노출된 적이 없는 새끼일지라도 머리 위로 독수리 같은 모양새만 지나가더라도 질겁을 하고 도망친다. 이러한 1차감정은 사람의 경우 뇌에서 가장 먼저 진화된 부분인 변연계에서 발생된다. 변연계는 물고기, 양서류, 파충류, 새, 포유류 따위에서 모두 발견된다. 2차감정은 기쁨, 슬픔, 사랑처럼 일종의 의식적인 사고가 개입되는 감정이다. 동물이 사람처럼 감정을 갖고 있는지 여부에 대해 논란이 되는 대상이 바로 2차감정인 것이다. 먼저 기쁨의 경우 많은 등뼈동물이 놀이를 하면서 즐거움을 느낀 사례가 관찰되었다. 돌고래와 물소가 좋은 보기이다. 또한 쥐가 놀이를 하는 동안에 뇌 안에서 도파민이 분비되는 것이 확인됐다.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은 사람의 뇌에서도 분비된다. 일부 동물들이 사람처럼 기쁨을 느끼는 능력을 갖고 있는 셈이다.
새와 포유류도 사랑을 한다.
슬픔 역시 야생동물들이 느낄 줄 아는 감정이다. 강치 어미는 고래가 새끼를 죽이면 슬프게 울부짖는다. 어느 침팬지는 어미가 죽은 뒤에 단식하고 결국 굶어죽었다. 가장 슬픔을 잘 느끼는 동물은 코끼리이다. 가족이 죽으면 시체 옆에서 밤샘을 한다. 많은 동물들이 로맨틱한 사랑을 한다. 구애와 짝짓기 동안에 대부분의 새와 포유류는 사랑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큰까마귀와 고래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러한 동물들의 뇌에서 옥시토신이 분비된다. 옥시토신은 사람의 뇌에서도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모성애나 섹스와 관련된다. 동물들이 감정을 느끼는 증거가 속속 확인됨에 따라 적어도 일부 등뼈동물은 공포나 혐오감은 물론이고 인간이 느끼는 대부분의 감정, 이를테면 기쁨, 슬픔, 분노, 연민 심지어 질투심까지 느낄 수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이인식/ 과학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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