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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지향을 단죄하지 말라! 국가인권위의 현대사 잠행 시나리오 1 홍석천의 동성애자 커밍아웃
부당해고 진정에 예정된 퇴출 주장
‘너무 버거워…. 하지만 국가인권위라면….’ 사흘째 홍씨의 머리를 짓누르는 고민이다. 방송사를 상대로 싸우는 일은 캐스팅 ‘당해야’ 살아남는 연예인으로서는 너무 버거운 일이다. 부당해고 소송을 내자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소송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사흘 전, 동성애자인권연대의 임태훈 대표는 국가인권위법에 ‘성적 지향에 의한 차별금지 조항’이 포함돼 있다고 알려주었다. 동성애자단체가 나서서 ‘제3자 진정’을 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내가 물러서면 다른 사람이 또 이런 일을 당할 수도 있잖아요. 한번 해보죠 뭐.” 용기를 낸 홍씨의 전화를 받은 임 대표는 서둘러 국가인권위를 찾아갔다. 임 대표는 동성애자인권단체들의 명의로 “커밍아웃한 지 일주일도 안 돼 홍씨를 <뽀뽀뽀>에서 퇴출시킨 것은 성적 지향을 문제삼은 부당해고”라는 요지의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틀 뒤, 국가인권위 소위원회는 조사 착수를 결정했다. 우선 홍씨를 불러 커밍아웃한 경위를 물었다. 한편 문화방송 관련자에게 진술서 및 관련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국가인권위법에서 피진정인에 대하여는 서면조사를 우선하도록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방송쪽은 “홍씨의 교체가 예정된 상태였다”며 “동성애자란 이유로 쫓아낸 것은 아니다”라는 요지의 답변서를 보내왔다. 인권위원들은 문화방송 관련자들의 진술이 타당하지 않다고 보고 피진정인에 대한 직접 조사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국가인권위 위원들과 만난 문화방송 관련자들은 같은 주장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홍씨와 대질신문 과정에서 “윗분들이 불편해 해서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한 담당 PD의 진술이 사실로 드러났다. 그의 교체를 미리 계획한 증거도 나타나지 않았다. 소위원회의 조사보고서를 토대로 전원위원회는 격론 끝에 전원합의로 구제조치 권고 결정이 내렸다. 다음날 국가인권위는 “봄철 개편에서 홍석천을 <뽀뽀뽀>에 복귀시키고 손해를 배상하라”는 권고문을 문화방송에 전달했다. 국가인권위의 권고를 놓고 문화방송 내부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한쪽에서는 권고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다른 쪽에서는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차별금지법’이 어디 있느냐”며 권고 거부를 주장했다. 문화방송이 머뭇거리는 동안, 국가인권위가 곤혹스러워졌다. 구제조치 권고가 강제 집행력이 없는 탓에 아무런 제재조치도 취할 수 없었던 것이다.
국가인권위 권고를 ‘국민여론법’이 지원
희망은 시민들 속에서 나왔다. 국가인권위의 조사기간 동안 잠잠해졌던 여론이 다시 들끓기 시작했다. 연일 문화방송의 홈페이지는 비난글로 도배되었다. 결국 부담을 느낀 문화방송은 권고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강제 집행력이 없는 국가인권위의 권고를 강제력으로 바꾼 것은 ‘국민여론법’이었다. 2001년 봄철 개편에서 홍씨는 <뽀뽀뽀>에 복귀했다. “어린이 여러분 반가워요.” 활짝 웃는 그의 얼굴에서 눈물자국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홍씨 사건을 계기로 국가인권위 인권정책실은 ‘성적 소수자 차별 금지법’ 연구에 들어갔다. 6개월 뒤, 국가인권위는 소수자 차별금지를 명시한 국제인권기준을 근거로 ‘소수자 인권보호법’ 제정을 국회에 건의했다. 국가인권위와 시민 인권의식의 공조가 만들어낸 해피엔딩이었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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