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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경비견, 정글에 희망을… 독립적 국가기구로 험난한 산고 치러… 국민적 여망에도 안팎 시련 끊이지 않아
김창국 위원장은 국가인권위 출범을 앞둔 11월 초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창업’이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한다”고 했다. 이런 기구는 일찍이 없었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입법·사법·행정 3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적인 국가기구의 모양새를 만드는 일이었다. 낯선 건 모양새만이 아니다. 국가인권위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 무엇을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소수자리까지 정확히 셈이 뽑아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두고두고 풀어가고 채워가야 할 숙제인지 모른다.
출범 열흘 만에 진정 600여건 접수
국가인권위는 흔히 ‘경비견’에 빗대어진다. 이 경비견은 기둥에 사슬로 묶여 있지 않는다. 어디든 휘젓고 다니며 인권을 감시한다. 감시대상은 국가기관은 물론 민간의 모든 영역을 아우른다. 그러나 인권침해를 발견했을 때 목청껏 짖어댈 수 있을망정, 물어뜯지는 못한다. 권고하거나 중재하거나, 기껏해야 고발하고 공표할 수 있을 뿐, 강제 구속력을 발휘할 권한은 없다. 이 때문에 국가인권위는 가능성이 활짝 열려 있되 한계 또한 뚜렷하다는 게 인권 전문가들의 평가다. 출범 열흘 남짓 만에 국가인권위에는 600건이 넘는 진정이 접수됐다. 국가인권위에 거는 국민들의 높은 기대수준을 반영한다. 접수창구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진정서들은 그동안 어디에서도 해결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다른 어디에 하소연 한번 해볼 수 없었던 온갖 애타는 사연들을 담고 있다. 그러나 국가인권위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만능해결사가 아니다.” 만능해결사가 될 수도 없고, 만능해결사여서도 안 된다는 얘기다.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보장된 조사권이 애초 민간 인권단체들이 요구했던 수준보다 크게 후퇴한 것은 분명하다. 수사기관이 수사중인 사안일 때 또는 재판이 진행중이거나 끝난 사안일 때, 국가인권위는 조사를 할 수 없다. 피해자가 수사기관에 진정이나 고소를 해 수사가 시작돼도 국가인권위는 조사활동을 중단해야 한다. 국가기관의 기능수행에 지장을 줄 경우 등 조사거부 사유를 폭넓게 인정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차 떼고 포 뗀 조사권은 실효성이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 뜻만은 아니다. 국가인권위의 결정에 강제력이 없는 것만큼은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 사정이다. 진정인 처지에서는 자신에게 피해를 입힌 국가기관을 국가인권위가 통쾌하게 때려주길 바라겠지만, 그렇게 되면 다른 국가기관들의 법률행위가 안전성을 잃을 우려가 높다. 검찰의 수사결과나 법원의 재판결과가 국가인권위에 의해 곧바로 뒤집어진다면 국가기관의 기능 자체가 무력화될 수도 있다. 국가인권위라고 해서 오류를 범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같은 국가기관이면서도 삼권분립의 견제에서 자유롭기에 반대로 물리력이 약한 건 숙명인지도 모른다. “대신 우리는 여론으로 싸운다.” 한 국가인권위 관계자는 “모든 국가기관들의 아웃사이더로서 우리의 마지막 수단은 조사내용이나 결정내용을 외부에 공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먹으로 직접 때려주지는 못하지만 권위의 힘으로 크게 망신줄 수는 있다는 얘기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국가인권위는 언론의 기능과 비슷한 면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인권문제만을 전문으로 다룬다는 점과 민간이 아닌 법률에 입각한 국가기구라는 점에서 국가인권위는 언론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칼자루는 없어도 권위의 힘은 막강
불법수사 실태 같은 관행화되고 구조화된 인권침해를 광범위하게 현장조사하고 정책대안을 내놓을 수 있는 곳은 국가인권위밖에 없다. 국내의 실정법이 인권 차원에서 문제가 없는지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관련법을 개정하도록 권유할 수 있는 곳도 다름 아닌 국가인권위다. 지난 12월7일 테러방지법 관련 청문회를 열어 각계 의견을 들은 것은 국가인권위의 정책기능을 처음으로 선보인 것이다. 국가인권위는 내부논의를 거쳐 이른 시일 안에 테러방지법에 대한 공식의견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국가인권위 관계자는 정책활동 등을 통해 인권환경을 바꾸는 게 왜 중요한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옛 국가보안법 위반자들을 민주화 유공자로 국가보상하면서 다른 한쪽에선 국가보안법 위반사범을 계속 양산하는 모순은 개별적 인권구제로는 도저히 풀 수 없다.” 국가인권위의 개별 구제활동은 헌법과 관련 실정법의 제한을 받지만 정책개발과 제안은 국제인권기준을 따른다. 우리 사회의 인권환경을 국제기준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게 국가인권위의 궁극적 과제인 셈이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의 가능성은 아직 미지수다. 걸림돌은 안팎에 동시에 존재한다. 다른 국가기관들의 견제로 아직 사무처조차 꾸리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국가인권위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다른 기관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정권이 바뀌면 국가인권위도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기대섞인’ 전망까지 돈다는 게 국가인권위쪽의 귀띔이다. 실제로 1970년대 국가인권위가 설립된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가인권위의 직원 수와 예산이 롤러코스트처럼 요동쳐왔다.
초유의 실험, 호랑이로 키울 건가
“국가인권위는 국가적 반성장치다. 끝없는 자기반성이 전제돼야 하고, 가장 민주적이고 효율적인 모델을 창출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과거와 최근의 많은 국가기구들이 그랬듯이, 국가인권위 스스로가 권력화와 관료화의 길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인권의 경비견이 아니라 인권의 걸림돌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국가인권위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 1년 동안 국민들에게 성공적인 활동을 보여주어야만 안팎의 시련을 이겨내고 제 궤도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상 초유의 실험적인 선긋기가 이제 막 시작됐다. 어떤 그림이 나올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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