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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구제로 한숨을 거두었다 국가인권위 현대사 잠행 시나리오 2 에바다 농아학교 비리 분쟁
이처럼 분쟁이 진행되는 내내 재단과 평택시청, 경찰서를 비롯한 지역 관청들 사이의 결탁 의혹이 제기돼 오고 있다. 97년에 발견된 관할 책임관청인 평택시청과 옛 재단 사이의 비밀합의서는 유력한 물증이다. 에바다 농아학교의 한 교사는 “아무리 비리 의혹을 제기해도 지역 수사기관이나 공무원에 의해 번번이 묵살되었다”고 돌이킨다. 에바다 농아학교는 10월27일부터 다시 휴교에 들어갔다. 김대중 대통령이 이미 4번에 걸쳐 해결을 약속했지만, 파행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있었다면, 에바다 사태는 7년이 지난 오늘까지 ‘현재형’일까?
대통령도 해결 약속했건만 파행 거듭
“예? 국가인권위요? 현장조사를 나오신다고요?” 96년 12월 말 에바다 농아원에는 침묵을 깨는 전화 한통이 울렸다. 국가인권위가 인권 침해를 조사하기 위해 현장조사를 나오겠다고 전화를 해온 것이다. 이미 농아원은 27일 새벽 벌어진 농성사태로 긴장이 감돌고 있는 터였다. 학생들은 농성에 들어가기 전인 11월26일, 에바다 학교의 한 교사를 통해 국가인권위에 ‘면전 진정 신청’을 해놓았다. 면전 진정 신청권은 국가인권위를 직접 찾아갈 수 없을 때, 인권위원을 현장으로 불러 직접 진정접수를 할 수 있는 권리다. 교도소 같은 구금시설이나 농아원 같은 다수인 보호시설에 수용된 사람들에게 적용된다. 현장 조사를 내려오겠다는 국가인권위의 전화에 농아원은 발칵 뒤집혔다. 재단 사람들은 학생들을 불러모아 놓고 함구령을 내렸다. 다급히 어디엔가 전화를 거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농아원 한켠의 노역장도 서둘러 폐쇄됐다. 다음날 국가인권위 조사단이 내려와 학생들을 만나 진정 내용을 들었다.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하고 돈은 한푼도 못 받았어요.” “이유도 없이 매일 욕하고 때렸어요.” “겨울에는 추워서 잠을 잘 수가 없을 정도예요.” 한맺힌 수화가 한꺼번에 쏟아져나왔다. 인권위원들을 둘러싼 학생들의 하소연은 그칠 줄을 몰랐다. 그러나 재단쪽은 “절대 그런 일 없다”며 완강하게 부인했다. 다음날 오전, 긴급하게 국가인권위 소위원회가 소집되었다. 안건은 ‘긴급구제 조치’를 내릴지 여부였다. 긴급 구제조치는 시급히 현장에 조사를 나가지 않으면, 인권침해가 지속될 가능성이 있는 진정 사안에 대해 국가인권위가 내리는 조치다.
지역적 이해관계 없어 사태 매듭 풀어
“비리를 은폐하기 위해 협박과 구타가 자행될 가능성이 큽니다.” 소위원회는 ‘긴급구제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했다. 조사단이 급파됐다. 조사단은 학생과 교사, 학부모를 만났다. 재단쪽은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다. 때마침 비리 책임을 놓고 내분 사태가 일어났다. 서무과 직원 한명이 “모든 책임을 나에게 뒤집어 씌우려 한다”며 양심선언을 한 것이다. 그 직원의 증언으로 후원금 장부 소각, 공금 유용, 상습적인 폭력 등이 밝혀졌다. 국가인권위 전원회의는 재단 이사장을 비리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로 결의했다. 에바다 농아원의 관할 관청인 평택시청에는 새로 구성될 재단이사회에 최씨 일가를 배제하라고 권고했다. 지역적 이해관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국가인권위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진정 접수 넉달 만에 에바다 사태는 매듭되었다. 에바다 사태가 알려지면서 전국의 다수인 보호시설에 훈풍이 돌기 시작했다. 개별 인권침해 사례의 구제가 가져온 ‘사전예방 효과’였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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