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사섹션 : 특집 | 등록 2001.10.10(수) 제379호 |
|
[특집] “여호와의 증인만의 문제 아니다” 반전 인터내셔널(WRI)의 양심적 병역거부운동 책임자 안드레아스 스펙과 바트 호어만
반전 인터내셔널(WRI)의 양심적 병역거부운동 책임자인 안드레아스 스펙(34·사진 왼쪽)과 바트 호어만(33). 호어만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이며 채식인이다. 마이너리티 중의 마이너리티인 셈이다. 스펙은 대체복무마저 거부한 완전 거부자(Total objector)이며 채식인일 뿐 아니라, 게이에다 왼손잡이다. 주류질서에서 철저히 벗어난 마이너리티 그 자체다. 나흘 내내 반바지에 티셔츠를 걸쳤던 그들은 그 차림 그대로 인터뷰에 응했다.
유럽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권이 인정된 역사에 대해 말해 달라. =호어만프로테스탄트 전통이 강한 나라에서는 일찍이 양심적 병역거부가 인정되었다. 노르웨이가 1900년 최초로 법적 권리로 인정했다. 네덜란드가 1922년에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한 반면, 이웃나라인 벨기에는 1964년에야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했다. 네덜란드는 프로테스탄트 국가이고, 벨기에는 가톨릭 전통이 강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스탈린 치하에서 폐지되기는 했지만, 1919년 러시아에서 종교적 이유의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했다. 왜 두 전통 사이에 차이가 생기는 것인가. =호어만양심의 자유가 종교개혁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근대 들어 양심의 자유에 기초해 병역을 거부하는 움직임은 청교도 혁명기 영국 수평파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반면 오랫동안 로마 교황청은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반대입장을 보여왔다. 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발표한 뒤 가톨릭 국가들도 병역거부권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평화운동가들은 어떤 역할을 했는가. =스펙20세기 초부터 수많은 비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이 저항을 지속해왔다. 투옥되면 단식하고, 밖에서는 지지시위를 벌이는 등 가능한 모든 비폭력적 방법이 동원됐다. 한국에서도 입법이 시도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 단체의 반발에 부딪혀서 진척을 보지 못하는 상황이다. =스펙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양심적 병역거부의 입법이 기독교 단체의 반발에 부딪혀 좌초된 일은 없었던 것으로 안다. 양심적 병역거부권은 여호와의 증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보편적 인권의 문제다. 한국 국회의원들이 만든 법안에는 양심상의 이유가 종교로 한정돼 있는데. =호어만종교적, 도덕적, 인권적, 철학적, 인종적 이유가 모두 인정되어야 한다. 유엔 인권위원회는 신념이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고, 유럽의회도 1997년 다양한 종류의 양심을 똑같이 인정해야 한다는 결의를 한 바 있다. 대체복무 기간도 논쟁거리다. =호어만유럽의회는 대체복무가 군복무 기간의 1.5배를 초과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제사면위원회(Amnesty)는 대체복무 기간이 군복무의 두배를 넘을 경우, 이를 거부한 완전 거부자를 양심수로 간주한다. 대체복무 기간이 지나치게 길어서 징벌의 성격을 가져서는 안 된다. 완전 거부자들이 대체복무마저 거부하는 이유는. =스펙완전 거부자들은 국가의 동원권 자체를 부정한다. 게다가 대체복무자도 전시에는 전쟁 지원을 나가야 한다는 규정을 가진 나라들이 있다. 전쟁이 터질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으니, 대체복무자도 군복무에 동원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내가 태어난 독일이 바로 그런 규정을 갖고 있다. 그래서 대체복무를 거부했다.
‘비폭력’을 강조하는 아나키스트 스펙은 “당신과 나는 다른 나라 사람이다. 만약 징집에 응해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이 터진다면 내가 친구인 당신을 쏘아야할 것 아니냐”는 말로 병역거부 이유를 설명했다. 호어만과 스펙에게 양심적 병역거부는 평화를 지향하는 사람의 지극히 ‘양심적인’ 선택인 듯했다.
터키 이즈미르=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