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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책 사줘요! 어린이도서연구회와 함께 <한겨레21>이 자신있게 권장하는 어린이책의 명작들
최근 들어선 조기교육 붐을 타고 어린이 책읽기에 대한 관심도 급증하고 있다. 책고르기의 고민 시점도 그만큼 빨라졌다. 전집류를 안겨주고 돌아서는 것으로 역할을 다했다고 믿는다면, ‘간 큰’ 부모 소리를 들어도 지나치지 않은 세태가 돼버린 셈이다. <한겨레21>은 어린이책 평가에서 국내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단체인 어린이도서연구회(이하 어도연)와 함께 어린이책의 명작 12권을 소개한다. 모두 어도연에서 최고의 평점을 받은 고전들이다. 물론 이것만으로 책읽기의 요구를 모두 충족시킬 수 없다는 점은 너무도 분명하다. 하지만 “누구나 꼭 읽어야 할 필독서”라는 점에서, 이제 막 책고르기의 고민에 들어선 이들에겐 첫 교본으로 삼을 만한 책들이기도 하다.
그림책
바빠요 바빠
가을이 되면 모두가 풍성한 수확을 준비하느라 바쁘다. 할아버지는 옥수수를 말리느라 바쁘다. 할머니는 참깨를 털고 고추를 말리느라 바쁘고, 마루는 닭을 쫓느라고 바쁘며, 생쥐는 콩을 훔치느라 바쁘다. 철학교수를 때려치우고 농부가 된 윤구병씨가 바쁘지만 풍성한 가을의 느낌을 감칠맛나는 시적 운율의 이야기로 살려냈다. 화가 이태수씨의 꼼꼼한 세밀화는 우리 시골마을의 정감어린 가을풍광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윤구병 쓰고 이태수 그림, 도서출판 보리(02-323-2653) 펴냄, 만 3, 4살, 7500원
새앙쥐와 태엽쥐
네덜란드 출신의 세계적 그래픽아트 디자이너 레오 리오니의 대표작. 콜라주 기법으로 진짜쥐와 장난감쥐의 우정이라는 주제를 간결하고 함축성 있게 표현하고 있다. 결말에 이르기까지 기승전결의 구조도 잘 살아 있다. 늘 사람들에게 쫓겨다니는 새앙쥐는 주인 은샘이에게 사랑받는 장난감 태엽쥐가 부럽기만 하다. 태엽쥐처럼 되고 싶어 마법사 도마뱀을 찾아가기까지 한다. 그러나 태엽쥐 붕붕이는 새 장난감이 생긴 은샘이로부터 버림을 받는다. 새앙쥐는 도마뱀의 마법으로 태엽쥐를 진짜쥐로 만들고, 둘은 사이좋은 친구가 된다. ‘정원의 자갈길 끝 머루덩굴 속’이라는 신비한 공간과 ‘마술 도마뱀’, ‘소원들 들어주는 보라색 조약돌’ 등이 등장해 환상적인 즐거움을 준다. 미국도서관협회 선정 어린이그림책, <뉴욕타임스> 선정 올해의 어린이책으로 뽑혔다. 레오 리오니 쓰고 그림, 이명희 번역, 마루벌(02-701-2390) 펴냄, 만 5, 6살, 7800원
꿀꿀 돼지
꿀이 많이 나는 북한 강계지방의 옛이야기를 그림책의 구성에 맞게 만든 작품으로, 특히 짜임새 있는 되풀이 구성이 돋보인다. 꿀이 많이 나는 마을에 부임한 욕심많은 사또는 꿀을 바치라며 백성들을 괴롭히다 벌에 쏘여 죽는다. 산신령은 사또를 동물로 태어나게 하려 하지만, 소와 말, 개, 닭들이 싫다고 한다. 돼지만이 꿀꿀거리며 먹이를 먹느라 싫다는 소리를 안 한다. 결국 사또는 돼지로 다시 태어나고, 그뒤로 욕심많은 사람을 꿀꿀돼지라고 부르게 된다. 리듬감 있게 점층적으로 되풀이되는 구성이 아이들의 긴장감과 집중도를 높인다. 욕심많은 성격이 잘 드러난 사또의 독특한 캐릭터도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한다. 김중철 엮고 최민오 그림, 웅진닷컴(02-3670-1862) 펴냄, 만 5, 6살, 6500원
강아지똥
권정생씨가 쓴 창작동화 <강아지똥>을 그림책으로 만들었다. 참새조차 더럽다고 퉤퉤거리는 하찮은 강아지똥이 민들레의 거름이 되어 아름답고 가치있는 존재로 피어나기까지의 과정이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이 동화엔 무엇보다 버림받은 존재, 소외된 존재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강하게 배어 있다. 권정생씨는 처마 밑에 버려진 강아지똥이 비를 맞아 땅 속으로 스며드는 그 옆에서 민들레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보고 <강아지 똥>을 썼다. 그는 ‘강아지똥과 같이 보잘 것 없는 것도 저렇게 자신의 온몸을 녹여 한 생명을 꽃피우는구나’ 하는 감동에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강아지똥과 흙덩이, 병아리 등 등장 캐릭터의 느낌을 담채화풍으로 살려낸 정승각씨의 그림이 이야기의 감동을 시각적으로 증폭해준다. 권정생 쓰고 정승각 그림, 길벗어린이(02-322-6012) 펴냄, 초등학교 1학년, 6800원
국내 창작동화
잔디숲 속의 이쁜이 1, 2
일개미 이쁜이는 구속과 억압이 싫어 무리를 떠나 숱한 난관을 겪은 뒤 똘똘이와 결혼해 가족을 이루고, 새 일개미 나라의 여왕이 된다. 이쁜이의 모험이 활달한 사건전개를 통해 재미있게 표현되고 있다. 이야기전개가 다채롭고 흥미진진해 400여쪽의 분량도 부담스럽지 않게 읽힌다. 이런저런 사건을 겪고 다른 개미들을 만나면서 이쁜이의 생각과 행동이 어떻게 성장해 나가는지가 잘 그려져 있다. 이원수 쓰고 이상권 그림, 웅진닷컴(02-3670-1862) 펴냄, 초등학교 4학년, 각권 6천원
몽실 언니
1984년 창작과비평사에서 출간된 뒤 50만부 이상 팔린 한국 리얼리즘 소년소설의 대표적 고전이다. <몽실 언니>를 읽는 것은 곧 해방, 전쟁, 분단으로 이어지는 우리 겨레의 슬픈 현대사를 돌아보는 것이다. 가난과 전란에 찢기고 짓밟히면서도 몽실은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다. 사고로 다친 다리를 절름거리면서도 몽실은 배다른 동생들과 병든 아버지를 돌보며 꿋꿋하게 고난을 헤쳐나간다. 서로 죽고 죽이는 비극적 역사의 한가운데서도 몽실은 작고 여린 몸으로 세상의 아픔을 보듬어 안는다. 권정생씨는 1981년 시골교회의 청년회지에 연재를 시작해 4회부터 <새가정>이라는 교회 여성잡지에 옮겨 실었다. 인민군을 인간적으로 묘사한 부분이 문제가 돼 잡지 연재가 금지됐다가, 일부 내용을 삭제하고서야 간신히 연재를 이어갈 수 있었다. 잘려나간 내용은 인민군 청년이 몽실이를 찾아와 통일이 되면 서로 편지를 하자고 주소를 적어주는 장면이었다. 빨치산이 된 그가 숨지기 직전 몽실에게 보낸 편지에서 “몽실아, 남과 북은 절대 적이 아니야. 지금 우리는 모두가 잘못하고 있구나”라고 말한 부분도 사라지고 말았다. 권정생 쓰고 이철수 그림, 창작과비평(02-718-0541) 펴냄, 초등학교 5학년, 6000원
괭이부리말 아이들 1,2
괭이부리말은 인천 만석동 달동네의 별칭이다. 고양이섬이 있던 바닷가 마을이라 이런 이름이 붙었다. 재개발에 밀리고 생활고에 치이면서도 서로 아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며 연대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마을사람들의 이야기가 따뜻하게 그려진다. 쌍둥이 자매인 숙자, 숙희와 부모가 모두 집을 나간 동수와 동준이, 이들을 감싸고 이끌어주는 영호와 김명희 선생님 등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바로 우리 이웃 그대로를 보는 듯 사실적이다. 송진헌씨의 연필 드로잉 삽화들도 글과 잘 어울린다. 1987년부터 괭이부리말에서 지역운동을 했고, 지금은 공부방을 열고 있는 글쓴이 김중미씨는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닮은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서로서로 동무가 되고 아픔과 슬픔, 기쁨까지도 같이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김중미 쓰고 송진헌 그림, 창작과비평(02-718-0541) 펴냄, 초등학교 5학년, 각권 6천원
마당을 나온 암탉
암탉 잎싹의 꿈은 알을 품어 병아리로 부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는 양계장에 갇혀 평생 알만 낳아야 하는 신세다. 잎싹은 결국 모이를 거부해 알낳기를 거부함으로써 폐계 처분을 받고 버려지는 쪽을 택한다. 힘겹게 자유를 쟁취한 그는 청둥오리 알을 품어 엄마의 꿈을 이루게 된다. 청둥오리 새끼를 제 족속들에게 돌려보내고, 마지막 순간 족제비에게 잡아먹히면서도 “자, 나를 잡아먹어라. 그래서 네 아기들 배를 채워라”라고 말하는 잎싹에게선 종을 뛰어넘는 모성의 장엄함이 느껴진다.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단단한 이야기 구성과 박진감 넘치는 문장이 돋보인다. 김환영씨의 그림들도 묵직한 감동을 더한다. 황선미 쓰고 김환영 그림, 사계절(02-736-9380) 펴냄, 초등학교 6학년, 7천원
외국동화
할머니
꼬마 칼레는 5살 때 교통사고로 부모를 한꺼번에 여의고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된다. 할머니는 얼마 안 되는 연금에 의지해 억척스레 살아가면서도, 칼레의 든든한 의지처가 돼준다. 물론 두 사람이 마음을 여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텔레비전을 보거나, 시장에 가거나, 여행을 가거나 두 사람의 삶의 방식은 너무 달랐다. 작가 페터 헤르틀링은 칼레가 다치고 할머니가 입원하는 것 같은 일상적인 사건들을 통해 칼레와 할머니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진정한 가족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때론 뭉클하게, 때론 유머러스하게 풀어나가고 있다. 페터 헤르틀링 쓰고 페터 크노르 그림, 박양규 옮김, 비룡소(02-3443-4318) 펴냄, 초등학교 3학년, 5500원
큰 숲 속의 작은 집
80년대 초 큰 인기를 모았던 TV 외화 시리즈 <초원의 집>의 원작이다. 모두 7권으로 된 연작의 첫권. 남북전쟁이 끝나고 서부 개척이 한창이던 1870년대 미국 북서부 위스콘신주의 울창한 삼림이 배경이다. 큰 숲 속의 자그마한 통나무집에 갈색 곱슬머리의 어린 소녀 로라가 아빠와 엄마, 메리 언니, 갓난이 여동생 캐리와 함께 살고 있다. 이들 가족이 자연의 아름다운 축복 속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일을 하나하나 제 손으로 직접 꾸려가며 느끼는 삶의 기쁨이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다. 작가 로라 잉걸스 와일더(1867∼1957)는 작가이자 기자이던 딸 로즈의 권유를 받고 1932년 65살의 나이로 이 책을 냈다. 로라 잉걸스 와일더 쓰고 가스 윌리엄즈 그림, 김석희 옮김, 시공주니어(02-588-0833) 펴냄, 초등학교 4학년, 6천원
늑대의 눈
한쪽 눈을 잃고 동물원에 갇힌 푸른 늑대와 부모를 잃은 흑인 아이 아프리카 은비야의 우정을 통해 모든 것을 수집하고 거래하려는 욕망만이 가득한 서구문명의 한계를 드러내 보이는 작품이다. 푸른 늑대는 인간에게 잡힌 동생을 구하려다 한쪽 눈을 잃고 동물원으로 팔려왔다. 은비야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부모를 잃고 상인에게 넘겨져 아프리카를 전전하다 맘씨좋은 노부부의 도움으로 도시로 오게 된다. 그곳 동물원에서 만난 둘은 눈빛만으로 서로의 마음을 읽으며 가까워진다. 사람들에 대한 불신과 분노로 마음을 열려 하지 않던 푸른 늑대였지만, 은비야의 투명한 눈동자를 지켜보며 결국 서로의 삶을 껴안게 된다. 프랑스 어린이문학의 고전으로 평가되는 이 작품은 10여개 나라에서 번역·출간됐고, 캐나다에선 만화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다니엘 페나크 쓰고 자크 페랑데즈 그림, 최윤정 옮김, 문지어린이(02-338-7224) 펴냄, 초등학교 5학년, 6500원
모모
독일 아동문학가 미하엘 엔데(1929∼95)가 1970년에 발표했다. 낡고 헐렁한 남자 웃옷을 입고 까만 고수머리를 한 여자아이 모모가 시간도둑에게서 사람들의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아오기까지의 환상적인 모험담을 담고 있다. 그 모험을 따라, 현대인이 잃어가고 있는 꿈과 시간의 의미가 입체적으로 펼쳐진다. 작가는 이 책에서 “시간은 삶이며, 삶은 우리 마음속에 깃들어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연세대 한미희 교수의 꼼꼼한 번역이 원문의 섬세한 문체를 살려내고 있다. 어른들이 함께 읽고 의미를 나눠보면 더욱 좋을 듯하다. 미하일 엔데 쓰고 한미희 옮김, 비룡소(02-3443-4318) 펴냄, 중학생, 8500원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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