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나의 눈, 나의 귀, 나의 손… 전혀 다른 차원의 삶…휴대폰이 신체의 일부가 돼버린 우리 모두는 호모텔리포니쿠스!
시도 때도 없이 터지는 이동전화 신호음이나 통화 소음에 슬슬 신경질을 부리게 되면서부터 은근히 이놈의 이동전화라는 것에 대해 모종의 반감을 품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바로 이 막연한 반감이 화근(?)이 되어 이동전화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으니, 참 괴상한 인연이랄 밖에 없다.
젊은 세대의 감수성을 점령하다
1999년 12월에 미국의 럿거스대학교에서 열린 이동전화학술회의에 참가했다. 미국과 유럽에서 20여명의 학자들이 모여 이동전화라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매체가 지닌 잠재력과 특성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이 회의는 올해 4월에 60명 이상이 모인 두 번째 회의로 연결되면서 이동전화의 사회문화적 영향에 대한 논의로 발전하였다. 올해 열린 회의의 제목은 “우리가 되어버린 기계”(Machines that became us)였다. 발표와 토론을 통해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하게 되었다. 우리 자신의 일부가 되어버린 이동전화가 일으키는 현상이 나라와 문화를 불문하고 매우 유사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나 역시 ‘호모텔리포니쿠스’(Homo Telephonicus)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이동전화의 보편적 호소력을 강조하고 왔지만, 여러 나라에서 온 연구자들의 발표는 기대 이상의 내용을 전달하고 있었다. 첫째는 이동전화가 단순히 기존 전화의 기능적 확장이 아니라는 점이다. 혹은 기존 전화의 확장이라고 한다면 대단히 혁명적인 확장이다. 일찍이 캐나다의 커뮤니케이션 철학자 맥루한은 모든 미디어가 인간 감각의 확장이라고 지적한 바 있는데, 맥루한이 이동전화를 본다면 자신의 공언에 대해 상당히 흡족해할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도대체 이동전화를 가지고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엊그제 내가 근무하는 학부의 홈페이지 게시판에다가 이런 질문을 올렸더니 대학 1학년생이 정답을 가르쳐주었다. “가장 중요한 기능- 전화를 걸 수 있다. 시계 대용으로 사용한다. 나의 액세서리 역할을 대신한다. 심심할 때 오락을 즐기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컴퓨터가 가까이 있지 않을 경우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나에겐 극히 없는 경우이나 채팅을 하기도 한다. 편지, 이메일 또한 사용 가능하다. (주로 우리는 문자를 사용한다) 정보를 기록한다- 주소 혹은 전화번호부 역할.” 또 이런 답을 한 학생도 있다. “제 휴대폰은 너무 약하여 호두를 깨먹는다거나 망치로 쓸 수 없는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신 안테나는 강하여서 귀가 간지러울 때 귀를 판다거나 코털이 삐져 나올 때 깊숙이 밀어넣을 수 있는 강점을 가지고 있지요. 요샌 어두운 밤에 차 열쇠구멍을 찾을 때도 핸폰의 화면으로 찾고 있답니다.” 익살이 섞였지만 그야말로 ‘나의 일부가 되어버린 기계’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이동전화를 기존 전화의 대용 정도로 사용하고 있는 세대(주로 기성세대)에 비해 젊은 세대의 이용자들은 이동전화와 함께 성장하면서 새로운 기계 감수성을 개발하고 있다고 한다면 너무 지나친 주장인가?
사회적 스트레스 일으키는 주범
이동전화가 없어진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상상해보라고 주문했더니, “- 음!! 어려운 질문입니다. 물론 핸폰이 없을 때도 살아오긴 했지만. 지금은 핸폰이 없으면 화병이 날 것 같습니다. 내가 없는 것도 답답하겠지만 내가 찾고자 하는 상대방이 핸폰이 없는 것이 더욱더 답답하니까여. 화병으로 우리나라 평균 수명을 단축시키겠네여-”라는 답을 낸다. 핸드폰을 ‘핸폰’으로 말하는 세대, ‘-네요’를 ‘-네여’로 쓰는 세대가 바로 이동전화세대이다. 이들은 부모의 감시로부터 벗어나 개인적 통신을 생활 속에 편입시킨 세대이며, 모르는 사람들로 가득 찬 지하철 안에서 거리낌 없이 사적인 대화를 나누는 세대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통화가 필요해서 전화를 하기보다는 전화가 있기 때문에 걸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하는 세대인 것이다. 이동전화가 가져온 두 번째 보편적 현상은 공공 공간에서의 무절제한 통화행위가 일으키는 사회적 스트레스 현상이다. 내가 전화하지 못하는 것도 스트레스지만 남들이 마구 전화하는 것을 참고 보는 것도 스트레스인 셈이다. 지난 봄 회의 때 사회를 맡은 어떤 교수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자기가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맞은편에 앉은 어떤 여자가 쉴 새 없이 휴대폰에 대고 떠들더라는 것이다. 들어보니 필경 지난밤의 잠자리 이야긴데 시끄럽기도 하려니와 어이가 없어서 빤히 보고 있었더니 이 여자가 문득 전화를 손으로 막고서는 똑바로 째려보며 이렇게 말하더란다. “실례지만 지금 사적인 통화를 하고 있어요!” 웃자고 한 소리겠지만 진실의 일면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상황을 두고 공중도덕의 침해, 에티켓의 상실을 탓하고 있으나, 이미 몸의 일부가 된 이동전화를 떼어버릴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몸의 일부라 하여 아무 부위나 마구 드러내고 다니지는 않는다. 얼마나 가릴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문화이듯 어디서 얼마나 사용할 것인가 역시 문화적 합의를 통해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렇게 하도록 하자. 휴대폰 쓰지 말도록 된 곳에서 전화하는 사람에게는 정중히 말을 걸어 자제를 시키고, 그럴 형편도 되지 못하면 눈알에 힘을 넣어 쎄게 째려보자. 세 번째로 이동전화는 우리의 일상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무수히 작은, 그러나 중요한 행위들을 조정해주는 역할을 한다. 집에 도착할 시간을 알려주고, 지각의 이유도 들려준다. 어린 아이들을 두고 일터에 나가는 내 아내는 집에 돌아오는 버스에 앉아 아이에게 숙제하고 가방 챙기고 엄마 기다리라고 원격조종하는 것을 일과로 삼고 있다. 보이지 않는 전파를 타고 아이도 엄마도 서로를 확인하며 다소간 마음을 놓는 것이다. 고속도로에서 차가 멈추어도, 산중에서 고립되어도 이동전화가 있으면 안심이다. 빠듯하게 짜여진 현대인의 시간표가 삐걱거릴 때마다 요술방망이처럼 나타나서 땜질을 해준다. 작고 하찮아 보이는 이러한 기능이야말로 우리를 휘어잡는 휴대전화의 마력이다. 우리 모두 호모텔리포니쿠스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기계의 효용은 쓰기 나름
새로운 매체가 등장할 때마다 사람들은 신매체의 위력에 매료되기도 하고 불안해하기도 했다. 전화가 그렇고 텔레비전이 그렇다. 지금은 인터넷과 이동전화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우려와 걱정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매체들은 인간의 진보에 기여한 바 크다. 시간과 공간의 벽에 갇힌 인간의 한계를 이들 매체들이 해소시켜왔다. <지붕 위의 바이올린>이라는 영화를 보면 유대인 아버지가 멀리 떠나는 딸을 황량한 기차역에서 배웅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들에게 이별은 영원한 이별, 기약없는 헤어짐을 의미했다. 불과 몇십년 전까지 우리는 이렇게 수만년을 살았었는데, 이제는 모두 아련한 옛일이 되었다. 미국인들은 텔레비전이 위험한 매체일 수 있다는 가정을 가지고 폭력적 효과를 실증하기 위해 지난 40년간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연구를 해왔는데, 아직 나는 텔레비전을 없애야 한다는 결과를 발견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기계의 효용은 쓰기 나름 아니겠는가? 커뮤니케이션 양식을 구어문화와 문자문화로 대별하여 연구한 월터 옹이라는 학자에 의하면 구어시대 인간과 문자시대 인간은 사고방식도 다르고 세계관도 다르다고 한다. 전자매체의 보급과 더불어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매개된 구어시대에 살고 있다고들 하는데, 나는 이것의 정체를 ‘이미지의 압도’와 ‘즉흥성의 지배’에서 감지하고 있다. 신문보다는 텔레비전에 의존하며 읽기보다는 보기를 좋아한다. 논리적으로 숙고하기보다는 감각적으로 판단하려는 위험성도 엿보인다. 언제나 연락이 가능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앞당겨 약속을 하기보다는 생각날 때 수시로 연락한다. 종로에서 사람을 만나다가 재미없으면 휴대폰을 타고 신촌으로 간다. 언제나 연결되어 있다는 말은 곧 최소한의 고립도 더이상 허락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혼자서 버스를 타고 갈 때도, 도서관에 있거나 심지어 화장실에 있을 때에도 호모텔리포니쿠스들은 더이상 혼자가 아니다. 혼자됨을 두려워하고 즉흥성에 몸을 맡기는 삶이 혹시 우리를 지치게 하지는 않을까? 요즘 유행하는 ‘느리게 살기’가 혹시 이에 대한 대응책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휴대폰과 더불어 놀고 그것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친구를 만나는 우리에게 확실히 이동전화는 전화 이상의 무엇이다. 휴가철에 반드시 챙겨야 하는 품목 1위, 이동전화. 일상을 떨쳐버리고 찾아나선 산과 바다에서도 우리는 결코 이것을 꺼두지 못한다. 세상과 나를 연결해주는 마지막 생명선인가?
김신동/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