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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들 “헤쳐 모여!” 언론을 둘러싼 날카로운 대립전선… 모든 분야에서 이념적 차이가 두드러지는 계기가 될 것인가
소설가와 국회의원의 싸움
소설가 이씨는 <조선일보>에 ‘신문없는 정부 원하나’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공식적으로 참여문학을 표방한 적이 없는 이씨였지만, 언론사 세무조사문제를 ‘마주보고 달리는 두대의 기관차’에 비유하며, 우리 사회의 가장 첨예한 정치적 이슈에 깊숙이 발을 담갔다. 이씨의 결론은 “나는 언론쪽에 손을 들어주겠다”는 것이었다. 많은 독자들은 그가 가리키는 언론이 ‘특정신문들’(혹은 ‘빅3’나 ‘비판언론들’)이라는 사실을 행간에서 어렵지 않게 읽는다. 추 의원은 이씨의 이런 글쓰기를 ‘곡학아세(학문을 왜곡해 세상에 아부하는 일)’라고 못박으며 “언론을 통해 성장한 지식인들이 언론의 사회적 책임문제에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추 의원이 이씨와 문학 논쟁을 하려 했던 게 아니라는 건 분명해 보인다. 그의 말에서 문학적 상상력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 능력에서 추 의원은 처음부터 이씨와 견줄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씨를 소설가보다는 정치인으로 인식했음직하다. ‘곡학아세 논쟁’이 달아오르자 이씨는 다시 <동아일보>로 옮겨 반론을 폈다. 이씨는 이 글에서 “문화인들도 정치와 연결을 가질 수는 있겠으나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라며 “모든 문화인을 이처럼 정치적인 눈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은 자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상은 왜 이씨의 ‘순수한 문화활동’에 정치색을 씌우려는 것일까. 그가 80년대 말 전교조 사태나 임수경씨 방북사건 때 방송에 출연해 ‘군사부일체’나 ‘예수’를 거론했을 때만 해도 사정은 이렇지 않았다. 그는 나름대로 초지일관하는데, 세상이 달라진 것일까. 당장 확실한 건 양쪽 사이에 ‘언론’이라는 화두가 놓여 있다는 사실 하나뿐이다. 언론을 사이에 두고 문화가 곧 정치가 되고, 정치는 다시 문화가 되는 (혹은 그런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언론사 세무조사문제는 직접적으로는 언론사와 정권간의 문제다. 크게 봐도 언론사와 언론사간의 문제일 뿐이며, 여와 야 사이의 문제로까지 설명하자면 제법 복잡한 방정식이 필요하다. 이들 사이에는 지금 열전이 한창이다. 그러나 이미 전선은 훨씬 넓게 확대돼 있다. 얼핏 한국사회의 ‘지성 대회전’으로까지 비친다. 언론학자들이 이번 싸움에 이러쿵저러쿵 훈수두는 것이야 본연의 업무일 수 있지만, 이문열씨를 비롯해 복아무개, 다른 이아무개씨처럼 자칭 “순수하게 창작만 한다”는 묵객들까지 줄줄이 논쟁에 뛰어들고 있는 건 예사롭지 않다. 그리고 그들은, 스스로 순수할지는 모르지만, 매우 격렬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우리 근대사에 이런 일은 드물었다. 소설가와 국회의원도 이런 국면에서 지금 맞붙어 싸우고 있다.
갑돌이와 갑순이, 철수와 영희의 선택
왜 하필 우리 사회는 언론을 두고 전선을 형성한 걸까. 매우 복잡한 고차방정식이 아니면 풀릴 것 같지 않은 이 문제의 해답은, 뜻밖에도 <조선일보>에 명쾌하게 나온다. “이 싸움은 한반도 전체의 명운을 앞에 둔 현 집권쪽의 ‘가는 길’과 비판진영의 ‘가는 길’ 사이의 일대 회전의 상징으로 읽는 것이 맞을 것이다. 적어도 ‘통일’, ‘민주’, ‘개혁’, ‘이데올로기’와 연관된 정치권력의 칼부림은 불가피하게 전 국가적, 전 국민적인 연관성을 함축하고… ‘통일’이 어떻게 귀결되느냐 하는 것은 비단 언론뿐 아니라 갑돌이와 갑순이의 구체적인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으며… ‘언론사태’ 이상의 총체적 폭발성을 갖는다.”(7월6일치 류근일 칼럼) 작금의 사태는 언론과 직접적 이해관계가 있는 일부 집단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1등 신문’에 어울리는 날카로운 분석틀을 가진 명칼럼임에 틀림없다. 다만 직접 이해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을 ‘갑돌이와 갑순이’로 지나치게 단순화한 건 못내 아쉽다. “그런 독자들이 ‘너희들 이번에 꺾이면 신문 끊을 거야!’ 하고 매일 같이 편지로 전화로 격려성 으름장을 놓고 있는 한 비판언론의 논조에는 추호의 흔들림도 없을 것이다.” 그의 글에서 ‘너희들 이번에도 버티면 신문 끊을 거야!’라고 말하는 수많은 ‘철수와 영희’는 배제돼 있다. ‘갑돌이와 갑순이’든 ‘철수와 영희’든, 더는 예전의 그들이 아니다. ‘좋은 게 좋다’던 시절은 이제 저물기 시작했고, 한없이 넓어 보이던 ‘회색지대’도 차츰 줄어들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커밍아웃시대다. 그들은 지금 언론을 향해,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특정신문들’(혹은 ‘빅3’나 ‘비판언론들’)을 향해 자신들의 태도를 분명히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눈여겨보면 스스로 커밍아웃하는 쪽이 있는가 하면 커밍아웃을 강요당한다고 느끼는 쪽도 있다. “신문에 글을 쓴 뒤부터 전화가 엄청나게 오고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이 섞인 이메일도 온다.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육두문자를 쏟아내는 전화가 다시 걸려온다. 신문에 글쓰는 것 때문에 혹시 위해를 입을지 모른다는 의식을 안 할 수 없다.”(이민웅 한양대 교수) “요즘은 50년대 자유당 시절을 연상케 한다. 극단적인 반공이데올로기가 득세하던 당시에는 좌파 지식인들이 발언을 못 했는데, 요즘은 거꾸로 우파 지식인들이 말을 못 한다.”(이인화 이화여대 교수) <조선일보> 7일치 4면에 실린 기획기사 ‘침묵 강요당하는 지식인들’에 등장하는 지식인들의 하소연이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서 최근 언론 세무조사와 관련해 ‘비판적 지식인들’에게 중국 문화혁명기에나 있었을 법한 협박이 자행되고 있다며, 언론을 둘러싼 최근의 국면을 ‘한국판 문화혁명’이라고 규정지었다. 지난해 <한겨레21>의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 학살사건 보도로 한겨레신문사가 테러당한 일은 언론 세무조사와 무관한 시기에 이뤄졌다거나, 국가보안법이 전가의 보도로 춤추는 극단적 반공이데올로기의 득세가 50년대 자유당 시절 이후 단 한번도 꺾인 적이 없고, 최근까지도 한완상, 최장집, 황태연 같은 지식인들이 사상검증의 제단에 바쳐졌다는 사실 따위는 물론 이 기사에 없다.
이쪽이건 저쪽이건 회색지대는 줄어들고…
어쨌든 그들은 꿋꿋이 <조선일보>에 이름과 글을 냄으로써 당당히 커밍아웃 대열에 동참한 뒤 전선의 맨 전위에 섰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그렇다. 그래서 소설가 복거일은 “한겨레신문에 말도 안 되는 소리, 논리도 없는 글을 써도 진보논객 소리를 듣는다면 그게 말이 되느냐. 글은 어느 매체에 쓰건 간에 그 글의 내용을 가지고 판단해야 한다”(같은 기사)는 등의 모호한 태도를 거두지 않는다면 더는 <조선일보>에 글쓰기가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반대진영에서도 커밍아웃 뒤 전선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의 커밍아웃은 대규모의 집단적 성격을 띤다. 이미 지난해와 올해 세 차례에 걸친 ‘조선일보 거부 지식인 선언’을 통해 사회운동가, 학자, 종교인, 예술인, 변호사 등 800여명의 지식인들이 <조선일보>에 기고는 물론 인터뷰까지도 거부하겠다고 밝히고 나섰다. 이 활동을 주도하는 ‘조선일보반대시민연대’에는 50여개의 단체가 이름을 걸고 있다. 지난 6월29일 발표된 ‘언론개혁 6월 선언’에는 166개 단체와 5500여명이 참가했다. 소설가 이문열은 이런 숫자의 위세에 의문을 표시한다. “요즘의 시민운동에서 이따금씩 홍위병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소수에 의한 다수 위장이다. 몇명이 어떻게 모여 이루어진 단체인지 모르지만 만들어졌다 하면 그 즉시로 익명의 다수를 위장하고 대표성을 주장한다. 며칠 전 야당 당사 앞에서의 시위에서는 160여개의 단체가 집결했다고 하는데 텔레비전 화면으로는 회장 부회장만 다 와도 그보다는 수가 많을 성싶었다.”(<동아일보> 7월9일) 옳은 지적이다. 그러나 이쪽의 회색지대도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는 걸 이씨는 놓치고 있다. 그동안 언론개혁운동에 관망적인 태도를 보여온 사람들도 이젠 행동을 구체화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정책위원장인 장상환 경상대 교수(경제학)는 이번 6월 선언에 비로소 이름을 올렸다. 민주노동당이 언론개혁문제에 꾸준한 관심과 확고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전선의 전면에 나서지 않았던 사실에 비추면 장 교수의 최근 태도 변화는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진다. “나는 사주 1인지배 체계가 부당내부거래, 과당경쟁 등의 고질적인 경제왜곡을 낳았다고 생각한다. 언론의 왜곡보도는 이런 경제왜곡 현상을 정당화하고, 또 강화해왔다. 최근에는 이들 언론이 약육강식의 지배이데올로기를 사회적 약자들에게 주입해 자기모순에 빠지게 했다는 판단에 이르렀다. 그래서 난 행동에 나섰다.” 장 교수는 “이제 교수들을 대상으로 정간법 개정을 촉구하는 서명작업과 심리학자들에게 사회적 약자들의 정신분석을 통해 언론의 폐해를 규명하도록 촉구할 예정”이라며 “언론개혁 없이는 경제정의도 없다”고 말했다. 최근 <조선일보> 구독중지운동을 시작한 민주노총의 위세는 가히 위협적이다. 산하 모든 노조는 물론 조합원들을 대상으로도 <조선일보> 절독운동을 벌여나가고 있다. 손낙구 민주노총 교육선전실장은 “적어도 1년 이상은 이 운동을 끈질기게 벌여 손에 잡히는 결과를 만들어내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민주노총이 김대중 정부와 전면대결을 벌이고 있는 처지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김대중 정부의 언론개혁을 받치고 나섰다는 건 심상치 않다.
민주노총의 중대한 결심
사실 민주노총은 그동안 언론운동단체들로부터 꾸준히 ‘구애’를 받았으나, 이름만 빌려주는 것으로 만족해왔다. “우리에게 언론개혁운동은 각양각색의 연대사업 중 하나였다. 눈앞에 더 급한 현안도 수없이 널려 있었다. 그러나 지난 총파업을 계기로 조합원들의 요구가 아래로부터 밀려왔다. 이대로 가면 우리의 어떤 투쟁도 언론에 의해 농락당하고 말 것이다. 다른 선택이 없다. 이제 언론개혁운동은 우리에게 가장 경제적이고 현실적인 무기다.” 민주노총 손 실장은 “대정부 투쟁을 의식해 언론개혁운동이 위축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언론개혁에 대한 시민단체들의 최근 움직임도 이런 ‘위기의식’에서 출발한다. “지금까지 시민단체들은 반개혁적인 언론들과도 대립하지 않으려고 해왔다. 언론보도가 운동의 대중화에 큰 구실을 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자신들의 활동분야에서 추진해온 개혁이 사실상 물건너 갔다는 판단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개혁과제에 제동을 건 언론을 바꾸지 않고는 개혁도 불가능하다고 보기 시작했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이제 시민단체들은 언론개혁을 진보개혁세력의 전반적인 위축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까지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근대화’를 이제서야 경험하는가
‘조선일보반대시민연대’ 공동대표인 김동민 한일장신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사안의 심각성에 비해 아직 시민단체들은 덜 심각하게 받아들인다”고 비판했다. “일부 시민단체 지도자들은 아직 <조선일보>에 미련을 못 버리는 것 같다. 언론운동단체들이 이들을 좀더 앞으로 이끌어내 확실한 대립전선에 나서도록 해야 한다.” 김 교수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제도개혁운동보다는 족벌언론과의 직접적인 전선을 그어야 하는데 언론개혁국민행동에 참가한 시민단체들은 이를 유보해왔다”며 “그러나 최근 이들 내부에서 조선일보에 대한 집중대응 요구가 높아가고 있어 양상이 달라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언론개혁’이라는 화두로 우리 사회 전체가 거대한 대립전선을 형성하는 모습은 마치 1987년 ‘호헌철폐 직선제 쟁취’라는 구호로 나라 전체가 찬·반으로 ‘헤쳐 모여’하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사회학)는 “그때와 지금은 본질은 똑같지 않지만 전선이 형성되는 양태는 비슷하다”며 “지식인들 사이에 ‘모든 세력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위장술은 줄어드는 대신 모든 분야에서 이념적 차이가 두드러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교수는 “좌파에서부터 도덕적 자유주의자까지가 한쪽으로 넓은 전선을 형성하고 다른 한쪽은 좀더 보수적인 쪽으로 쏠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결의 결과가 어떻게 매듭지어지든, 이번 사건은 한국사회의 소중한 체험으로 남을 것이다. “이념논쟁이 벌어지면서도 색깔시비가 제대로 먹혀들지 않고 있는 사실을 눈여겨봐야 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이념적 스펙트럼은 한쪽으로 치우쳐 있었거나 모호한 회색지대에 너무나 많은 자리를 내주어 왔다. 이념적 접점을 분명히 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빠뜨리고 지나갔거나 뛰어넘었던 근대화의 경험을 뒤늦게 치르는 걸 뜻한다.” 김정란 상지대 교수는 “그 경험은 매우 소중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한쪽에선 언론개혁 정국을 합리성의 회복이라는 큰 의미로 받아들이는 반면, 다른 한쪽에선 그 의미를 정치적 탄압으로 깎아내리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먼 훗날, 역사는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까.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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