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더위, 너를 넉다운시키마!비지땀씨와 한여름씨 부부의 시원하고 건강한 여름나기 이야기
경기도 과천에 사는 한여름(34)씨는 아침뉴스를 듣다가 가슴이 철렁했다. TV에서는 지나친 자외선 노출이 피부암을 부를 수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세수할 때마다 눈 밑에 도드라지는 기미가 신경쓰였는데…. 한씨는 출근준비도 미뤄둔 채 한참을 멍하게 있었다. 아, 나도 이렇게 속절없이 나이먹고 약해지는구나. 동네 아주머니들이 쓰고다니는 자외선 차단캡이라도 구해서 쓰고다녀야겠다고 맘먹는다.
‘지하철 고역’을 피하는 방법
남편 비지땀(37)씨가 비척거리며 방에서 나와 거실 소파에 몸을 내던지듯 널브러진다. 그 바람에 젖병을 입에 물고 뒹굴거리던 딸아이 산들이(2)가 화들짝 놀라며 울어젖힌다. 이제 곧 아들 초복이(7)가 일어날 테고, 오늘도 우아한 아침준비는 글렀다. 비지땀씨는 간밤에도 해가 길다는 핑계로 술타령을 하다 늦게 집에 돌아왔다. 유난히 땀을 많이 흘리는 그는 올 여름에는 더 허덕거린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가 죽기보다 싫다며 식사준비도 한여름씨에게 미뤄버렸다. 얼마 전에는 몸이 허한가 싶어 한의원을 찾기도 했다. 여자원장은 첫눈에 남편에게 “사우나 많이 가시죠?” 하고 물어왔다. <1>
땀 때문에 한의원 찾는 환자들이 요즘 부쩍 늘었다면서. 얄밉게도 원장은 남편이 콜라와 환타라면 사족을 못 쓴다는 사실까지도 알아맞혔다. 지나친 사우나와 과도한 청량음료 섭취는 모공을 약하게 하고 필요 이상의 땀을 쏟아내는 지름길이라는 것. 한씨는 문득 남편과 자신이 불쌍해졌다. 제대로 ‘밤일’을 한 날도 손꼽을 정도다. 창문을 열고 자니 밤새 소음에 시달리고, 수박 한 덩이라도 먹고 잔 날이면 소변은 왜 자꾸 마려운지. 뒤척이다보면 어느새 아침이다. 중년 이후에는 석달만 부부생활을 안 해도 사이가 멀어진다던데. 한씨는 더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여름 땡볕에서 놀던 초복이가 병원에 실려가 아이스박스 안에 누워 열을 식히던 날, 딸 산들이는 땀띠 때문인지 온종일 칭얼거렸다. 이들 부부는 서로 네탓내탓 하다가 온 동네가 떠나가라 싸움을 벌였다. 그런 비극은 다 더위 때문에 생긴 것이다. 이번 여름에는 기필코 더위를 이겨보자. 사람답게 살아보자. 한여름씨가 비장하게 두 주먹을 움켜쥔다. 출근길, 지하철을 2호선으로 갈아타니 한결 낫다. 4호선은 에어컨 바람이 왜 이리 심한지. 에어컨을 끼고 사는 남편과 달리 한씨는 실내에서 장시간 에어컨 바람을 쐬면 항상 코가 막히고 머리가 지끈거리는 빌딩증후군에 시달린다. 특히 출근길 지하철 에어컨은 정말 고역이다. 한씨는 차량 천장에서 에어컨 바람이 직통으로 나오는 곳을 피해 자리잡는다. 신형차량인 경우 가운데에 세개의 구멍이 몰려 있어 경로석쪽이 덜 춥고, 구형인 경우는 차량을 삼등분했을 때 경계에 해당하는 곳이 가장 춥다. 거꾸로 에어컨을 틀어도 더운 차량이 있다. 그럴 때에는 모터가 달린 칸을 피하면 좋다. 10량(0∼9) 기준으로 봤을 때 0, 5, 6, 9번째 칸은 모터가 없어 바닥의 시원한 기운이 마찰열로 날아갈 우려가 없다. 남편 비씨는 꼭 이 순서를 고려해 지하철을 탄다.
초복이의 배앓이가 사라지다
한씨는 점심시간에 의학정보 사이트를 뒤져봤다. 밤에 달리기를 하는 게 여름밤 숙면에는 좋지 않다는 이야기가 눈에 띄었다. 축구나 달리기 등 격렬한 운동은 흥분상태를 지속시키므로 숙면에 이르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땀을 많이 내는 운동은 아침시간에 하는 게 좋다는 조언도 나와 있었다. 모르는 게 병이구나. 퇴근길 한씨는 모처럼 장을 봤다. 젖먹이 딸은 어린이집에서,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은 동갑내기 아이가 있는 옆집에서 돌봐준다. 오늘은 아이들에게 솜씨를 발휘해 영양식을 해먹일 테다. 이웃에 사는 김순영씨는 만날 때마다 자연식을 하라고 권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하지만 순영씨가 추천한 대로 매실즙을 내어 생수에 타서 음료수 대신 마시게 했더니 여름이면 연례행사처럼 찾아오던 초복이의 배앓이가 사라졌다. <2>
오이와 애호박, 도토리묵을 사고 큰맘먹고 민어도 한 마리 골라 넣었다. 언뜻 엿본 순영씨네 밥상은 녹황색 채소 천국에 잡곡밥이 주식이었다. 그 집 아이들은 감기 한번 걸리지 않는다. 옆집 벨을 누르자, 아주머니가 안색이 새파래져서 나온다. 초복이가 이상하다고 했다. 계속 토하고 늘어져 있다는 것. 한여름씨는 직감적으로 이 녀석이 또 땡볕에서 정신없이 놀았구나, 싶었다. 한씨는 아이 옷을 벗기고 젖은 수건으로 몸을 닦아준 뒤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뉘었다. 그런 다음 보리차 1천cc에 설탕 2티스푼, 소금 1/2티스푼을 넣어 섞은 뒤 천천히 마시게 했다. 지난해 과도한 탈수증상을 다스리느라 난리칠 때, 전해질을 관장해 넣으며 의사가 일러준 방법이었다. 증상은 비슷했다. 여름철에 애들을 가장 괴롭히는 병은 뭐니뭐니해도 설사나 복통 등 소화기계 질환이다. <3>
올 여름에는 여느 때보다 수인성 전염병이 많이 발병한다고 하지만, 사실 병이 계절따라 오지 않은 지는 오래됐다. 가을쯤 오는 로타바이러스질환도 여름되기 전에 벌써 유행한 뒤 지나갔고, 장마 전후로 오는 바이러스성 뇌막염도 평소보다 한달은 빨리 왔다. 겨울에도 하수구 안으로는 뜨뜻미지근한 물이 흐르니 계절과 무관하게 전염병이 떠돌게 된 것이다. 한여름씨는 딸 산들이를 데려왔다. 분유수유만 한 탓인지 애가 피부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며칠 전 산들이라면 끔찍이 위하는 남편 비지땀씨가 어디선가 들은 대로 녹차 우려낸 찬물로 며칠간 애 몸을 닦아주어 땀띠에 효과를 본 일이 있다. 하지만 마지막날 애 배를 한참 내놓은 바람에 배탈이 나 이번에는 밤새 따뜻한 수건으로 배를 감싸주느라 잠을 설치기도 했다. 까마귀 고기를 먹었는지 좋은 일 하고도 꼭 하나는 까먹는 비지땀씨 덕에 손해본 일 어디 한두번인가. 한씨는 주말에는 꼭 황토염색 삼베를 끊어다 아이들 옷을 해입혀야겠다고 다짐한다. 모시보다는 삼베가 구김도 덜 가고 통풍성도 좋기 때문에 염색한 삼베를 찾는 이들이 많다고 하지 않는가. 이참에 황토염색한 침구류도 사와서 침실을 꾸며볼 작정이다. <4>
여름철 옷감, 어떻게 하면 잘 고를까
이 시각 비지땀씨는 야근을 하며 그야말로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하루종일 틀어둔 에어컨은 덜덜 소리를 내며 더운 공기를 내뿜는 것 같다. 얼마 전 어느 연구결과를 보니 직장인 세명 중 두명은 스트레스로 건강상 위협을 받고 네명 중 한명은 병으로 연결될 만큼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나와 있었다. 그리고 흡연자와 규칙적인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이 스트레스를 더 받는다고 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비지땀씨는 문득 자신이 한심하고 처량해진다. 규칙적인 운동과 금연·금주하는 바른생활이 어디 말처럼 쉬운가. 시험 잘 보려면 국·영·수를 중심으로 암기과목 열심히 하라고 하는 비결이나 똑같은 건강비법 아닌가. 하지만 비지땀씨는 자신의 음주습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야밤에 구운 돼지고기나 오돌뼈에 소주 한잔 하는 것이 유일한 낙인 비지땀씨는 죽어라고 채소를 멀리한다. 여름철에는 녹황색 채소가 좋다는 말은 알지만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와이셔츠가 다시 척척 감겨온다. 셔츠는 물론 여름양복도 한벌 장만할 때가 됐다. 아참, 오늘은 에어컨 청소하는 날이다. 에어컨이나 냉장고를 깨끗이 청소하지 않으면 이름도 요상한 세균이 나와 애들에게 특히 위험하다고 하지 않던가. 에어컨 사자고 우긴 쪽은 비지땀씨이므로 열흘에 한번씩 하는 에어컨 청소는 당연 비씨의 몫이다. 빨래와 다림질도 비씨의 몫이다. 다림질하기 너무 힘들다고 졸라서 에어컨을 샀건만 아내는 다림질할 때가 아니면 에어컨을 못 틀게 한다. 냉방병이 심하면 애들이 감기나 폐렴에 걸릴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맥주 한잔의 유혹도 포기한 채 곧바로 퇴근했다. 냉장고에 있는 캔맥주를 꺼내려는 순간 한여름씨가 무언가를 컵에 따라 내민다. 오미자차. 더위 물리치는 데는 최고의 명약이라고 덧붙인다. 아내가 드디어 나의 노고를 이해해주나 싶어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손에 들린 캔은 그대로 빼앗겨야 했다. 밤새 뒤척이며 잠을 설치는 가장 큰 원인이 술이라면서. 주말, 두 사람은 모처럼 애들을 앞세우고 쇼핑에 나섰다. 목이 굵고 허리가 긴 비지땀씨는 옷을 고를 때 디자인과 색상에 가장 신경을 쓴다. 하지만 오늘은 아내와 머리를 맞대고 공부한 대로 피부에 닿는 옷감의 재질과 통기성을 중심으로 골라보리라. 여름철 옷감으로는 피부 접촉면이 우둘투둘하거나 성글어 바람이 잘 통하는 게 최고다. 매장 점원을 상대로 꼼꼼하게 체크했다. 우선 구김은? 한번 손에 쥐었다 놓아보았다. 그 다음 통기성은? 흡습성은? 마지막으로 안감까지 확인한 뒤 마음에 드는 것을 한벌 골랐다. <5>
질문공세에 시달린 점원이 한숨 돌릴 새도 없이 와이셔츠를 고르기 시작했다. 와이셔츠는 면이 많이 들어가고 폴리에스테르가 약간 섞인 혼합섬유가 구김이 덜 간다.
녹차로 몸을 닦아주면 ‘기분좋은 수면’ 여성복 매장에서 아내의 민소매 티를 하나 골랐다. 천의 두께보다는 피부접촉면이 더 중요하다. 조금 두꺼운 천이라도 노출이 많은 옷이 얇고 피부를 많이 덮는 옷보다 시원하다는 게 아내의 주장이다. 아내는 며칠 사이에 건강박사가 돼 있었다. 그저께 휴일에는 더위 이기는 데 좋다며 오이소박이를 손수 담그기도 했고, 시커면 자신의 얼굴에 강판에 간 감자로 마사지를 해주기도 했다. 오랜만에 아내와 나란히 누워 마사지하는 기분이 짜릿했다. 물론 뒷설거지는 다 비씨의 몫이었지만. 심지어 그날 낮에는 땡볕에 하도 그을러 준화상상태인 초복이에게 계란 노른자를 프라이팬에 익힐 때 나온 기름을 발라주어 효과를 보았다고 한다. 역시 아는 게 약이다. 또 운동 나가는 비지땀씨에게 면티 대신 입으라며 까슬까슬한 합성섬유 남방을 권하기도 했다. 면티는 땀을 적당히 흘리는 사람에게는 좋지만, 비씨처럼 비오듯 흘리는 이들의 경우 땀을 흡수해 무거워지고 들러붙어 불쾌감을 준다는 것이다. 그동안 운동만 하면 솜뭉치가 되곤 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내에게 지적으로 밀리는 걸 못 참는 비지땀씨, 쇼핑을 마칠 즈음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아내를 잠시 기다리게 해놓고 사라졌던 비지땀씨의 손에는 라벤더향유병이 들려 있었다. 며칠간 비지땀씨도 빈둥거리기만 한 것은 아닌 모양. 향기치료가 정신건강은 물론 물리적 치유효과도 있다는 말을 들먹이며 득의만만한 표정으로 병을 흔들었다. <6>
아빠 닮아 땀 많은 초복이를 찬물로 씻어준 뒤 자리에 뉘었더니 금방 새근거렸다. 산들이는 녹차로 몸을 닦아주니 기분좋게 손가락을 빨며 잠들었다. 애들이 모두 잠든 밤, 한여름씨와 비지땀씨는 라벤더향유를 섞은 욕조물에 함께 몸을 담갔다. 앞으로는 서늘하고 깊은 밤을 보내자고 약속하면서.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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