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특집] 축구를 읽는다

지구촌을 뜨겁게 달구는 특별한 매력… 현란한 몸짓·짜릿한 승부 이면의 논리들

스포츠는 언어다. ‘체육’이 신체를 건강하게 육성하는 훈련인 데 비해, 스포츠는 일정한 ‘규칙’을 정해놓고 편을 갈라 실력을 겨루는 게임이다. 그 세계는 현실과 분리된 자기 완결적인 구조를 갖는다. 그래서 관중은 그 결과가 자기와 전혀 무관한데도 승부에 집착하면서 울고 웃는다. 거기에서 이뤄지는 상호작용을 통해 참가자와 관중은 매우 복합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행한다. 선수들의 현란한 몸짓과 전술, 그 움직임 배후에서 펼쳐지는 감독들의 두뇌싸움이 상쾌한 긴장을 자아낸다. 뿐만 아니라 자기가 흠모하는 스타들을 지지하면서 팬들은 일체감을 형성한다.

가장 보편적인 언어로 정착한 까닭

스포츠는 보편적인 언어다. 문학이나 영화는 말할 것도 없고 음악, 미술 등도 오랫동안 형성돼온 전통과 문화의 자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다른 문화로 전파되거나 이해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장벽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스포츠는 다르다. 스포츠라는 장르는 근대에 접어들어 생성·발전되었는데, 그것은 지역적 특수성을 극복하면서 널리 통용되는 규칙을 만들어온 과정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핵심에 바로 축구라는 종목이 있었다. 축구의 원형이 될 만한 놀이들은 세계 각지의 전통민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발견된다.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그 방식이 지역에 따라 큰 편차를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근대에 접어들며 그 경기는 학교라는 제도에 의해 유지되기 시작했고, 학교대항 시합을 벌이면서 서로 달랐던 규칙을 규칙을 통합해 보편적 원칙을 다듬어온 것이다.

그 이후 지금까지 스포츠 가운데서 축구는 가장 보편적인 언어로 정착돼왔다. 문화의 차이를 가장 쉽게 넘어 소통될 수 있는 언어로서 리터러시의 진입 장벽이 낮은 점에서 포르노에 버금간다고 할 수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유엔보다 더 많은 가입국을 가진 최대의 국제조직이 된 것, 그리고 거기에서 주최하는 월드컵 축구대회가 최대의 국제이벤트가 된 것은 바로 이것을 뒷받침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수익은 대회를 거듭할수록 엄청난 규모로 불어나고 있다.

그런데 스포츠 가운데서 유독 축구가 그렇게 관심을 집중시키는 까닭은 무엇일까? 월드컵이나 유로축구 같은 국제시합이 벌어지고 결승에 임박할수록 수많은 사람들에게 밤잠을 설치도록 하는 매력은 어디에 있는가?

우선 축구라는 종목의 특징을 살펴보자. 축구의 가장 큰 매력은 자유분방함과 단순함이다. 축구는 적당하게 거칠다. 아슬아슬한 폭력성이 재미를 더한다. 또한 구기 가운데 장비와 기본규칙이 가장 적다. 어려운 룰은 오프사이드 정도다. 따라서 누구든지 쉽게 경기를 볼 수 있고, 어디서나 공 하나만 있으면 판을 벌일 수 있다. 축구가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보급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단순성과 간편성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복잡함이 함께 숨어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축구는 22명의 선수 하나하나가 완전히 독자적인 변수로 움직인다. 작전상 선수들에게 위치를 부여하기는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 그것은 얼마든지 무시될 수 있다. 골키퍼인데도 가끔 뛰어나가 상대방 골문에 공을 집어넣을 수 있는 것이다. 드넓은 공간에서 22명의 선수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을 이뤄 상대방의 골문을 공격하는 전략과 전술, 그 변화무쌍함과 예측 불가능성이 축구의 재미를 배가한다.

스포츠는 인간의 몸이 드러낼 수 있는 뛰어난 경지를 예술적 극치의 뉘앙스로 보여준다. 축구는 그 짜릿함을 가장 극명하게 느끼게 해준다. 한 경기에서 몇 차례 되지 않는 골이 터지는 순간 경기장의 시계는 열광속에 잠시 멈추고, 그 정지된 시간에 폭발하는 분위기가 어쩌면 축구의 가장 큰 매력인지 모른다. 이 장면은 텔레비전이라는 미디어를 통해 더욱 화려하게 증폭되어 연출된다. 이런 점에서 축구는 영상미디어 환경에 잘 어울리는 종목이다. 그러한 볼거리 요소가 점점 중요해지면서 축구에서는 골인 이후에 온갖 기발한 몸놀림이 이어진다. 그리고 외모에서도 장발, 머리염색, 귀걸이 등 다양한 장식으로 자기를 어필한다. 광고업계에서 축구선수를 모델로 선호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단순한 규칙·복잡한 전술로 재미 배가

축구시합이 자아내는 재미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국가를 경계로 하는 집단적 고양감이다. 축구는 기존의 집단적 경계를 분명하게 드러내면서 그 대립 속에서 결속의식을 북돋운다. 때로는 현존하는 중요한 사회적 분열들을 연극화하기도 한다. 월드컵대회에서 극명하게 드러나지만 축구는 민족주의적인 감정을 극도로 고양시킨다. 대립적인 구도를 설정하고 거기에서 유발되는 긴장과 쾌감을 만끽하는 것은 놀이의 일반적인 속성인데 스포츠 그 가운데 특히 축구는 그러한 페이소스를 농밀하게 창출한다. 그것은 복잡한 현대사회를 응집시키는데 기여하면서 전체로서의 통일감을 육성함으로써 질서의 기반을 세워주는 것이다.

축구의 왕국 브라질의 경우를 보자. 브라질은 다양한 주민들로 구성된 거대한 국가로서 지역적 차이가 커 사회가 통합되기 어려운 조건을 갖고 있었다. 더구나 제3세계 가운데 가장 급속하게 도시가 성장하면서 브라질은 농촌에서 한꺼번에 도시로 흘러들어온 사람들의 다양한 집단을 동화해야 하는 문제에 직면했다.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축구는 근원적인 아이덴티티를 배양함으로써 정치적 통일과 근대시민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쌓아올리는 문화적 시스템을 제공해준 것이다.

한국의 경우에도 축구는 민족주의와 밀접한 연관을 맺으면서 발전해왔다. 평소에 축구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한-일전이 벌어지면 일을 제쳐두고 텔레비전 앞에 모여앉는다. 한국에서 계층, 남녀, 세대 등의 경계를 가로지르면서 일체감을 불러일으키는 애국 충정은 한-일 축구경기에서 단연 두드러지게 표출된다. 그런데 이제 그러한 편향된 정서적 충동만으로는 한계에 다다랐다. 국내 프로축구 경기장에 관중이 많이 오게 하기 위해서는 민족주의적 감정이 아니라 축구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는 문화가 형성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 내년에 월드컵대회가 열릴 때 낯선 나라들끼리 시합하는 스타디움에는 한국 관객이 거의 찾지 않을 수도 있다.

실제로 최근 스포츠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국가나 민족이라는 범주가 조금씩 상대화돼가고 있다는 점이다. 국경을 넘어서 선수들이 자유롭게 프로구단에 계약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팬들은 국경을 넘어 자기가 좋아하는 선수에게 지지를 보낸다. 유럽축구에 사람들이 흥분하는 것은 그 어느 나라에 자기를 동일시하면서 응원하기 때문이 아니라, 세계 최고의 스타들이 펼치는 탁월한 기량에 매료되기 때문이다. 그렇듯 순수한 놀이적 재미를 추구하는 문화가 풍성하게 가꿔지면서 스포츠 그 자체도 더욱 발전되어갈 수 있을 것이다.

한국축구의 성숙한 면모를 보여줄 건가

한국축구는 지금 중대한 전환기를 맞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He thinks’라는 별명이 붙은 히딩크 감독은 오로지 ‘한국인’의 근성과 투지로 버텨왔던 한국축구를 근원적으로 새롭게 디자인하려 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한편으로는 강압적인 훈련방식과 권위주의적인 조직문화가 선수들의 몸을 경직시키고 생각을 위축시킨다. 다른 한편으로 국민들의 빗나간 애국심에 편승해 과찬과 비방의 양극단을 반복하는 선정적 언론보도가 선수들의 꾸준한 성장에 걸림돌이 된다. 이는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를 그대로 함축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한국축구가 구태의연한 굴레를 벗고 한단계 성숙하는 모습을 통해 사회 전체의 변화 시나리오를 발굴하고 싶다.내년의 월드컵 대회는 그 탈각의 훌륭한 계기가 될 수 있다.

김찬호/ 연세대 강사·문화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