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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넌 왜 새단장해도 미운 거니? 여전히 학생들 지적욕구 자극하지 못하는 새 교과서…삶의 현실 반영 못하고 암기에 치중
바탕글 유명작가 편중 여전
결국 나름대로 애를 썼지만 아직 학생들의 흥미와 언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는 못했다는 평가다. <국어> 교과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왜 학생들이 재미없어하고 지루해 하는지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중학교 1학년 <국어>의 1단원은 ‘문학의 즐거움’이다. 바탕글은 ‘(1)새 봄 (2)땅속 나라의 도둑 (3)어린 날의 초상 (4)이해의 선물’로 선정되었다. 이 글들은 그래도 학생들이 읽는 데는 크게 어려움이 없는 수준의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이들 작품이 문학 작품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는 것인지는 의심스럽다. 네편의 글 모두가 재미보다는 교훈적인 성격이 강하다.
1학년에서 처음 배우게 되는 ‘(1)새 봄’을 보자.
언뜻보면 매우 짧고 단순한 시지만 이 시는 김지하의 시 중에서도 자연을 관조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단순치 않은 시다. 이 시는 경계를 넘어서는 인생의 경지가 담겨 있다. 이 시의 경지를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 충분히 이해하기는 매우 힘들다. 1학년 첫 시간에 다루는 내용이 이처럼 난해한 시로 시작했을 때 학생들이 국어시간에 대해 갖는 부담이 어떨지는 훤하다.
언어의 기능별 분리가 무슨 소용
<생활 국어> 7단원 ‘고쳐쓰기’에는 글수준, 문단수준, 그리고 단어수준에서 고쳐쓰기를 하도록 하고 있다. 고쳐쓰기에 관한 모든 학습을 이 한 단원에서 다 하도록 하고 있다. 이것은 중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 무리다. 고쳐쓰기를 2학년이나 3학년 학생들에게 시켜도 잘 못한다. 고쳐쓰기를 하려면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글을 보는 안목이 있어야만 하고 단계적으로 훈련되어야 가능하다. 이 단원의 내용은 활동 방식으로 편성되어 있지만 사실은 고쳐쓰기에 대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베풀어놓은 것에 불과하다. 국어 교과서를 읽기, 문학, 언어 중심의 <국어>와 듣기, 말하기, 쓰기 중심의 <생활 국어> 두권으로 펼쳐 듣기/말하기, 읽기, 쓰기를 분리한 것도 심각한 문제다. 실제 언어 현상은 이 네 가지가 함께 이루어지는데 교과서는 기능별로 따로따로 가르치도록 기획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우리 교과서의 핵심적인 문제는 학생들의 삶의 현실을 바탕으로, 학생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학습의 중심에 세우지 않고 대상화된 학문적 연구의 성과를 그대로 중·고등학교 교육과정 내용으로 삼고 있는 데 있다. 교과서가 학생들의 삶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실제적인 학생들의 사고능력을 키워주기보다 관련 지식을 암기하도록 할 뿐이라는 문제는 비단 국어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교과에 일관되게 드러나는 문제다. 영어의 경우도 최근 6년을 배워도 말 한마디 못한다는 지적에 따라 외국의 교육과정을 많이 반영해서 의사소통 중심으로 구성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교과서 내용을 살펴보면 학생들이 학습의욕을 느끼기 어렵게 돼 있다. 바탕글은 영이야 놀자 수준의 지적 사고를 자극하지 못하는 일상적 생활 내용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고 활동은 유치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외국어에 미숙하다고 해서 사고 능력도 미숙한 것은 아니다. 또한 의사소통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상대방의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실제적 활동 중심으로 구성해야 학생들의 흥미를 이끌어낼 수 있는데도 대부분의 교과서에서는 의미없는 대화체 문형을 단순히 반복하는 활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언어능력이 사고능력이라는 관점에서 내용과 형식을 함께 고려하지 못하고 기능적인 면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수학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난이도면에서 보면 우리나라 교과서는 외국과 그리 큰 차이가 없다. 내용 자체가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문제는 학습량이 많아서 한 가지라도 제대로 익히기 어렵다는 것이고 교재를 풀어가는 방식이 실제 우리 현실에서 수학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활동 중심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이론 중심이라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축구공을 만드는 데 어떻게 수학적 원리가 활용되는지를 이해하도록 함으로써 우리의 삶의 현상을 수학적으로 사고하도록 만들어야 하는데도 수학의 학문적 지식을 요약해서 정리해놓고 마는 것이 현실이다.
학문권력과 관료주의 권력의 야합
교과서는 학습의 수단이다. 중요한 것은 교과서 내용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문학적 지식을 배우기보다 문학 감상 능력과 표현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교과 내용은 이런 사고 능력을 자극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그런데 우리 교과서는 여전히 이런 학생 중심의 관점과 내용을 제대로 구현하고 있지 못하다. 학생들의 삶의 현실과 흥미, 사고 능력 수준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교과서가 이런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 때문일까. 바로 교육과정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교과교육의 내용은 대부분 해당 교과의 학문적 내용을 적당히 짜깁기한 수준이다. 학생들이 언어능력을 어떻게 발달해야 하고 이 과정에 필요한 지식이 무엇인지는 탐구되거나 연구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교육과정은 대부분 교과 교수들이 참여하기 때문에 절충적이고 타협적인 경향이 강하다. 저마다 자기 전공 내용을 반영하려고 하기 때문에 양이 많아지고 타협적이며 공동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절충적이다. 국어의 경우는 문학 전공자와 어학 전공자, 국어교육학 전공자들이 적절히 타협해서 만들었고, 역사 교과서도 근현대사 전공자, 고대사 전공자들이 따로따로 나눠서 내용을 집필하기 때문에 통일적 관점은 기대하기 어렵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지식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과 판단이 중심에 있지 않고 전공교수들끼리 나눠먹기 방식으로 교육과정이 짜여지기 때문인 것이다. 더욱이 문제는 이런 교육과정을 금과옥조로 여기고 그대로 반영해야만 교과서 검정에 통과할 수 있는 획일적인 교과서 제도, 그 자체이다. 1종이든 2종이든 일일이 교과서 내용을 지정하고 있기 때문에 새롭고 다양한 교과서를 만들고 활용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학문권력과 관료주의가 적절히 타협해서 서로의 이익을 보장해 주는 방식이 바로 이 획일적인 교과서 제도이기 때문이다. 교과서 개발에 교사들이 들러리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도 이런 학문권력과 관료주의 권력의 야합 때문이다. 교과서 생산과정의 혁신이 필요한 이유와 교과서 자유발행제가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혁신이 없는 학생중심의 교과서는 공염불이나 화장술에 불과하다.
김주환/전국국어교사모임 회장(서울 장위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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