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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정치판의 유령 ‘킹메이커’ 대선정국 앞두고 정치적 영향력 확대 몸부림… 누가 그들에게 대통령을 만들라 했나
JP가 불 지피자 YS가 기름 끼얹어
킹메이커는 말 그대로 ‘왕(대통령)을 만드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학술 개념이라기보다는 언론에 의해 만들어진 저널리즘 용어라는 게 정치학자들의 설명이다. 정치학자들은 대체로 킹메이커를 자신의 지분을 갖고 대통령 당내경선과 대선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력정치인 내지 막후 실력자로 받아들인다. 이런 점에서 대선후보의 당선을 위해 선거전략을 짜고 기획하는 선거전략가, 선거매니저, 선거참모와는 다른 셈이다. “정치권 내부의 세력관계를 중재하고 그 역학관계를 이용해 대선과정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박상병 한국정당정치연구소 정책연구실장), 또는 “일정 정도 표를 동원할 수 있는 정치인이 이념과 원칙보다는 향후 정치적 영향력의 확대나 유지를 목적으로 야합과 흥정을 수단으로 대선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김영명 한림대 교수)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특유의 정치현실에서 나오는 현상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정치학자들은 대체로 동의한다. 특히 지역구도에 주목한다. 윤순각 경북대 교수는 “킹메이커는 한국정치의 특수성에서 기인한 것이다. 지역을 볼모로 하는 정치현실에서 봉건영주처럼 ‘내가 우리 지역을 대표하니까 표를 얻으려면 나한테 잘보여야 한다’는 의식이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현표 한서대 교수는 “우리 정치지형이 지역구도로 분할돼 있고, 또 한 지역만으로는 정권을 장악하기 어렵게 돼 있기 때문에 차기를 노리는 사람들은 각 지역 맹주의 협조를 얻어야 한다는 구도에서 킹메이커라는 게 가능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만큼 킹메이커론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이다. “대통령을 몇 사람 소수가 결정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박재창 숙명여대 교수)라는 지적에서부터 “봉건적 냄새가 난다. 우리 정치의 후진성을 드러내는 것”(조경근 경성대 교수)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조금 색다른 설명도 있다. 킹메이커라는 말 자체가 시대착오적인 것은 틀림없지만 이런 용어는 일정 정도 정치발전을 반영하는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황태연 동국대 교수는 킹메이커가 권위주의가 끝나가고 민주사회로 이행하면서 과도기적으로 나오는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는 킹메이커도 없었다. 그 당시에는 누가 킹 앞에서 킹메이커를 자임할 수 있었겠나. 봉건적이라기보다는 과도적인 현상으로 이해하는 것이 맞다. 민주주의가 완성되면 사라질 말이다. 그때는 누가 누구를 만든다는 게 불가능해질 것이다. 이번이 킹메이커를 운운하는 마지막 단계로 본다. 아직은 이른바 ‘어른’들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원조 킹메이커’라 불리우는 김윤환
그러나 이런 킹메이커 구도는 97년 정권교체를 계기로 깨지게 된다. 우선 DJ와 JP가 손을 잡으면서 옛 여권의 장기집권을 가능하게 했던 호남 대 비호남의 대결구도가 무너지고, 영남, 호남과 충청권이 정립된 새로운 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따라서 킹메이커의 조건도 변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여권 내 대선후보 결정과정뿐 아니라 본격적인 대선에서 지역의 표를 몰아줄 수 있는 지역맹주가 큰소리치게 된 것이다. “확연한 지역구도에서 특정지역 하나만으로 대선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사정에다 더욱이 지금 차기대선 예비주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도 3김처럼 확고한 지역기반을 갖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지역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3김으로서는 ‘내 허락없이 누가 대통령이 될 수 있겠느냐’ 하고 대놓고 얘기할 수 있는 구도가 된 것이다.”(여권의 한 관계자) 김윤환 대표쪽 사정을 잘 아는 야권 인사도 “상황이 변했다. 허주는 지역기반이 약하기 때문에 과거처럼 막강한 킹메이커로 활동하기는 힘이 달린다. 3당 정책연합 등을 추진하는 것도 그림을 크게 그려 추동력을 얻겠다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들 킹메이커론의 정치적 의미는 무엇일까. 현 구도에서는 YS, JP, 허주가 언급하는 킹메이커론의 내용은 반이회창 연대쪽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한 최고위원쪽 관계자는 “한나라당의 후보는 사실상 결정된 상태다. 반면 여권후보는 아직 유동적이다. 따라서 아직은 어떤 형태가 될지 판단하는 게 이르지만, 민주·자민·민국당의 3당 정책연합이 논의되고 있고, JP가 YS와 접촉하며 움직이는 상황 등 큰 그림이 반이회창 구도를 겨냥한 것 아닌가 싶다. 그러면서 여권주자에 대해서는 충성경쟁을 요구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한나라당쪽에서도 JP가 DJP회동을 마친 뒤 킹메이커론을 들고 나온 점을 들어 JP를 매개로 신3김연대를 추진해 이회창을 포위하겠다는 전략으로 보고 경계하는 분위기다. 사실 JP와 김윤환 대표의 경우 최근 DJP공조 복원, 3당 정책연합 추진 등의 정국흐름상 사실상 범여권을 염두에 두지 않고 대선전략을 구사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JP의 경우 이 총재를 ‘바가야로’라고 표현하는 등 대립각을 세워왔고, 김윤환 대표도 지난해 한나라당 공천탈락 이후 이 총재를 겨냥해 “인간도 아니다”며 인간적 배신감을 토로하는 등 이회창 총재의 손을 들어주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실제 김 대표는 23일 “정국구도상 차기 대선에서는 3당이 공동후보를 내는 것이 앞으로 큰 흐름이 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며 속내를 드러냈다. YS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조금은 자유로운 처지다. YS의 대변인격인 박종웅 의원은 “JP나 허주는 모두 킹메이커 이야기할 때는 여권후보를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야를 통틀어 폭넓게 우리 입장을 밝히겠다는 것이다”고 차별성을 강조했다. 그렇지만 한나라당의 대선후보가 이회창 총재가 아닌 제3자로 결정되지 않는 한 YS가 한나라당의 후견인으로 나서기는 쉽지 않다는 게 정치권의 지배적 시각이다. 이 총재에 대한 YS의 불신이 상당하고, 또 이 총재쪽에 서더라도 향후 얻을 게 별로 없다는 점 등 때문이다. 그렇다면 킹메이커들의 실제 위력은 얼마나 될까. 정치권에서는 대체로 이들의 잠재력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YS, JP 등이 옛날만은 못해도 아직은 지역정서를 움직이는 힘이 있다. 차기 대선이 박빙의 승부가 될 가능성이 많다는 점에서 이들의 움직임은 당락에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특히 이들이 힘을 모아 한 후보를 집중적으로 밀게 되면 대선승부의 결정적인 변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민주당 관계자) 민주당 차기 주자들이 대부분 킹메이커론과 관련해 말을 아끼는 것도 이런 분위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민주주의 원칙 흔들 건가
지역구도에 넌더리치면서도 지역정서에 옭매여온 게 우리 국민의 투표성향이다. 킹메이커론은 이런 정치환경을 파고들고 있다. 주권재민의 민주주의 기본원칙을 부정하는 킹메이커론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것은 결국 깨어 있는 국민의식일 것이다.
박병수 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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