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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씁쓸한 구애, 나만 밀어줘! 킹메이커 영향력에 초조한 대선주자들… 이인제·이회창 떨떠름, 김중권·김근태 우호적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와 이인제 민주당 최고위원은 잔뜩 긴장하며 경계의 눈길을 늦추지 않는 쪽이다. “내년 대선에서 도울 사람은 세컨 샷이 안 되면 서드 샷을 치더라도 돕겠다”는 3월16일 JP의 발언 이후 확산되고 있는 킹메이커 논쟁이 현재 여야의 유력한 대선주자인 이들 두 사람이 아닌 ‘제3의 인물’을 밀 수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주위에 기댄 퇴행적 행태라는 비판
특히 그동안 민주당 안에서 “국민이 지지하는 사람이 대권후보가 돼야 한다”고 주장해온 이인제 최고위원의 반응은 아주 민감하다. 이 최고위원은 JP 발언 사흘 뒤인 3월19일 “봉건시대도 아닌데 킹이라는 말은 이상하다. 우리나라도 이제 민주화를 거쳐 21세기 지식정보화사회로 가고 있는데 킹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JP를 정면으로 맞받아쳤다. JP의 킹메이커 발언은 구태정치의 표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최고위원은 내친 김에 “김 명예총재와의 만남에 연연해하지 않겠다. 논산시장도 각자 후보를 내면 될 것”이라고 내질렀다. 그동안 자민련에 논산시장 공천권 양보하는 방안 등을 매개로 JP와 관계개선에 잔뜩 공을 들여온 데서 180도 돌아선 것이다. 이 최고위원이 이렇게 발끈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최고위원쪽 인사들은 “대선에서 유불리를 떠나 킹메이커는 말이 안 된다. JP가 아니라 누구든 마찬가지다. 대통령은 국민이 정하는 것이다”고 일단 입을 모은다. 킹메이커론은 지역주의에 기댄 퇴행적 정치행태인 만큼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최고위원쪽은 3월19일 박종웅 의원의 입을 통해 “진짜 킹메이커”를 자처하고 나선 YS나 그동안 킹메이커를 자신의 특허상표처럼 달고 살아온 김윤환 민국당 대표에 대해서는 전혀 비판하지 않는 모순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 최고위원은 “왜 YS는 비판하지 않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그 얘기는 그만하자”고 받아넘겼다. 이와 관련 이 최고위원의 한 측근은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지만 YS와 우리의 관계는 좋다. 가끔 YS를 찾아가 인간적인 얘기를 많이 한다”고 말했다. YS는 대선행보에 도움이 되고 JP는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이 최고위원의 다른 한 최측근 인사는 속내를 좀더 정확히 드러냈다. “우리가 1년이 넘도록 만나자고 했는데…. 그만큼 했으면 됐지. 민주당과 자민련 공조도 상호간에 단 1%라도 존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런데 남의 것은 전혀 배려하지 않고 무작정 내놓으라고만 한다. 부부간에도 이런 경우는 없다.” 충청권의 맹주자리를 놓고 JP와 경쟁해온 이 최고위원이 최근 JP의 현실적 영향력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선에서 화해를 모색했는데, JP는 충청권 전체에 대한 배타적 공천권을 요구하고 한 단계 더 나가 아예 다음 대선에서 충청권의 맹주 노릇을 독점하겠다고 선언한 만큼 더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최고위원쪽은 “현실적 영향력과 양당공조 등을 고려해 JP가 만나주기만 하면 논산시장 정도는 양보하고 모양좋게 가려고 했다. 그런데 JP가 너무 튀었다. 그러나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았으니 좀더 두고 보자”면서 JP와 완전한 결별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어쨌든 다음 대선에서 이 최고위원이 충청권에서 확고한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JP의 협조가 필요한 만큼 타협의 여지는 남겨놓겠다는 계산인 것이다. 반면 이회창 총재를 비롯한 한나라당 주류쪽은 킹메이커론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자제하며 짐짓 느긋한 표정을 짓고 있다. JP나 YS쪽 킹메이커 발언에 대해 이 총재는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3월20일 가회동 자택을 찾은 기자들에게 “정치권에서는 이 소리, 저 소리 나오는 거 아니야?”고 되물은 게 유일한 언급이다. 이 총재 측근들도 예상보다 공격 수위를 낮춰잡고 있다. “이미 검증이 끝난 상표를 들고 나와 색깔을 다시 칠하고 모양새만 바꾼다고 달라지는 게 있겠느냐”(JP 발언 직후 권철현 대변인) “JP야 워낙 노련하니까 지금 누구를 지지할지 마음에 두고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보고 결정할 것이다.”(양정규 부총재)
킹메이커 무시할 뾰족한 묘안 없어
이 총재와 한나라당의 고민은 킹메이커론에 대해 최근 내부적으로 이렇게 적색경보를 발령했지만 정작 이를 막을 뾰족한 묘안이 없다는 데 있다. “앞으로 상황이 너무 가변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당장 선택할 수 있는 게 없다. 킹메이커를 자처하고 있는 사람들을 괜히 자극해 척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우리쪽으로 당길 수도 없다. 여권이 그리는 전체판의 대체적 모습이 드러나고, YS나 JP, 허주의 선택수가 보일 때 우리도 그들을 상대로 한 나름의 작업에 나설 수 있다.” 이들과 달리 김중권 대표나 김근태 최고위원은 킹메이커론에 상당히 우호적이다. 김중권 대표쪽은 상당히 조심스런 표정을 지으면서도 킹메이커론이 불거지는 게 싫지 않다는 태도를 보인다. 대표비서실 관계자들은 “YS나 JP를 만나는 것도 당 대표로 공무일 뿐 대선과 관련해서는 손을 놓고 있다. 우리는 대선전략을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상황에서 초월한 듯한 겉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속마음은 다르다. “다음 대선은 지역적 기반을 확고하게 구축하지 못한 후보들간의 박빙의 싸움이 될 것인 만큼 킹메이커를 자처하는 이들의 영향력이 과거보다 떨어졌다고 해도 승부에는 영향을 끼칠 것이다. 더욱이 과거에는 한 사람이 킹메이커였지만, 이제는 여러 사람이 영향을 끼치고 있다. 결국 차기 후보 싸움은 누구를 적극적으로 좋아한다는 것보다는 누가 덜 싫어하느냐의 싸움일 가능성이 높다.” 결국 JP와 YS, 허주 모두에게 호감을 사고 있는 김 대표가 여러 킹메이커들을 동시에 만족시킬 카드라는 주장인 셈이다. 김근태 최고위원은 좀더 적극적으로 킹메이커의 역할을 인정하는 논리를 펼쳤다. “지역주의에 기댄 것이기 때문에 퇴행적이라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무작정 비판할 일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처럼 킹메이커를 자임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정치세력 내부의 의견이 몇몇 개인으로 집중되지 않는다. 특히 킹이되는 사람과 킹메이커 사이에 정책노선이 접근된다면 킹은 그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고, 궁극적으로 1인 보스정치를 막는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김 최고위원은 특히 ‘3김시대’의 대표적 인물들이 킹메이커를 자처하고 나선 데 대해서도 “지역에 기대 분열을 획책하는 ‘3김식 정치’는 비판받고 극복돼야 하지만 3김씨 자체는 지난 시대 나름대로 긍정적 역할을 했던 만큼 그 역사성은 계승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토세력을 극복하고 대중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올 초 상도동을 방문하고, 지난 2월21일 JP를 만나는 등 보폭을 넓혀온 김 최고위원은 킹메이커론마저 이런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비해 노무현 장관은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 노 장관쪽은 킹메이커론에 관한 한 “노코멘트하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전했다. 이런 방침은 개혁의 명분과 현실적 이익을 모두 지켜려는 노 장관 나름의 묘수풀이다. “개혁정치를 기본 컨셉으로 하는 노 장관은 지역주의에 기댄 킹메이커론자들을 이용해 이익을 볼 생각은 없다. 그러나 솔직히 우리도 이들의 현실적인 힘에서는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 이들이 우리쪽에 직접적인 도움은 안 되지만 선거 때 ‘노무현은 안 된다’라는 식으로 비토를 놓으면 영향을 받는다. 더욱이 최근 이인제 최고가 JP와 틀어졌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우’는 받을 수 있는데, ‘미’를 받겠다고 공연히 나설 필요는 없는 것 아니냐.”(노 장관의 한 측근) 노 장관 자신의 개혁 명분까지 꺾어가며 킹메이커를 자처하는 사람들과 영합해 이익을 얻겠다고 나서지는 않겠지만, 최근 이인제 최고와 JP의 갈등관계에서 나타나는 반사이익 같은 부산물마저 먼저 나서 뿌리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이런 고민의 결과물이 바로 “노코멘트”다.
남에게 가면 싫고, 나에게 오면 좋다
결국 여야 대권주자들 모두 킹메이커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현실정치에 미치는 힘을 분석하고 자신의 대권행보에 도움을 주는 쪽이면 긍정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부정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아닌 남에게 도움을 줄 때는 반대하지만, 나에게 이익을 주는 것일 때는 굳이 마다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박병수 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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