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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국보법 개정, 수위를 낮춰라? 이해당사자 반발 첨예한 개혁입법… 민생관련 법률안 재·개정도 수월치 않아
“좀 미흡하더라도 일단 개정을…”
개혁모임이 첫 화두로 설정한 국가보안법 개정은 정치·사회적 의미가 상당하다. “국보법은 단순한 법률개정 문제가 아니다. 개정이 실현되는 순간 개혁모임의 정책연대는 견고해지고, 현재 흩어져 관망하는 개혁성향의 의원들까지 묶는 반죽 역할을 한다. 더욱이 크로스보팅을 전제로 하고 있는 만큼 정치권과 사회전반에 뿌리내린 이념갈등 등 각종 대립을 푸는 새로운 해법을 제시하는 기능도 할 것이다.”(김홍신 한나라당 의원) 국보법 개정에 우리 시대의 모든 화두가 녹아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개혁모임은 국보법 개정을 정책연대의 핵심고리로 잡았을 뿐 아니라, 2월28일까지 개정안을 제출한다고 시기까지 못박았다. 남은 문제는 어떤 내용과 방식으로 개정을 관철하느냐는 것이다. 국보법은 민주당이 지난 2년간 논의를 거쳐, 지난 99년 7조의 고무찬양 및 이적단체 가입 및 처벌조항을 엄격히 제한하고, 불고지죄를 폐지하는 것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 잠정안까지 만들었다. 그러나 “상호주의”를 내세운 한나라당과 자민련의 반발 때문에 아직 국회에 개정안조차 못 내고 있다.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최근까지도 “국보법 개정 논의는 좌우논쟁을 촉발해 국론을 분열시킨다”면서 개정불가 방침을 고수하고 있는 상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개혁모임 안에서 가장 강력한 국보법 폐지론자인 김영춘 의원(한나라당)조차 “당파적 이해가 민감한 국보법을 매개로 당장의 성과를 내려는 것은 위험하고, 그렇다고 피해갈 수도 없고 고민이다”라고 말할 정도다. 개혁모임 차원에서 여야간 국보법 개정안 공동발의를 위한 4인소위(정범구, 송영길, 안영근, 김영춘)를 구성해 조문화 작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미 개정 골자는 나와 있다. 2조 반국가단체 정의에서 ‘정부참칭’ 조항을 삭제하고, 7조의 찬양고무 조항은 개인적인 찬양, 고무, 선전죄를 삭제하는 대신 직접 활동하거나 반국가단체 구성원의 지령을 받고 찬양, 고무, 선전한 경우에 대해서만 처벌하도록 엄격화하는 것 등이다. 개혁모임의 고민은 이것조차 여의치 않다는 데 있다. 일단 이 총재를 비롯한 한나라당 주류가 개정논의 자체를 반대하고 있고, 크로스보팅이 이뤄진다 해도 여야 의석 수와 민주당 내 반발세력 등을 고려할 때 적어도 한나라당 안에서 30명 안팎의 동조세력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국보법 폐지론자가 다수인 개혁모임에서 이런 상황을 고려해 개정안의 수위를 낮추면서 우회통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나라당 간사인 김원웅 의원은 “여야 의원들의 소속 정당간 이견이 너무 첨예한 만큼 서로의 입장을 세워주면서 궁극적으로 개정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면서 “개정안의 수위가 낮아지고 민주당쪽에서 좀 미흡하다고 느끼더라도 일단 개정을 이뤄내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범구 의원(민주당)도 “야당의 입장을 이해하고 끌고 가야 한다”면서 수위조절론에 공감했다. 폐지론자인 서상섭 의원(한나라당)은 “한나라당이 당론으로 거부만 결정하지 않는다면 상당한 동조세력을 모아낼 수 있는 만큼 국보법에 관한 반대 당론을 정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개혁모임의 현실적인 목표를 삼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 경우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의 95%를 양산하는 7조 고무찬양 조항을 목적범 처벌쪽으로 엄격화하는 선에서 절충될 것으로 전망된다.
낙천·낙선운동 보장?
선거법의 경우 현역의원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후보자간 공정경쟁, 시민단체와 유권자의 선거운동 보장, 후보자와 관련된 정보 완전공개가 이뤄지도록 개정한다는 원칙에 합의한 상태다. 현역의원의 경우에는 의정보고대회를 무제한 허용하면서도 원외의 경우 명함만 돌려도 처벌하는 불공정 조항을 타파하고, 시민단체와 유권자의 낙천낙선운동을 보장하는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홍신 의원(한나라당)은 “우리가 현역의 기득권을 포기해서라도 물 흐르듯 자유롭게 신진 정치세력이 유입될 수 있도록 선거법을 고치겠다”고 말했다. 민생법안도 개혁모임에서 애착을 갖고 있는는 부분이다. 그러나 아직 구체화된 것은 없다. 정범구 의원은 “국민에게 실질적으로 봉사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데서 출발했고 아직 원칙적인 선언만 돼 있는 상태”라면서 “곧 구체화 작업이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최근 한국부동산신탁 부도로 쟁점화된 ‘상가임대차보호법’은 상당한 진전이 있다. 참여연대 등 20여개 시민단체가 400만명으로 추산되는 영세상인의 보호를 목적으로 지난해 9월 출범시킨 ‘상가임대차보호공동운동본부’와 개혁모임이 함께 법안 마련을 위한 논의를 벌이고 있다. 공동운동본부는 이미 천정배 의원(민주당)을 통해 국회에 입법청원까지 낸 상태다. 현재 건물주가 일방적으로 임대료를 인상하는 것을 제한하기 위해 인상범위를 대통령령으로 정하고, 임대계약기간을 현행 2년에서 5년으로 연장하는 데는 대체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러나 지난 2월15일 논의과정에서 이종걸 의원 등 율사 출신들이 “공동운동본부 요구 가운데 사계약 자유원칙과 약자보호라는 명분 사이에 충돌이 발생한다”는 이견을 제기함에 따라 이를 보완하는 방안을 모색중이다. 논란의 핵심은 권리금 산정부분과 임대차보호 범위다. 특히 공동운동본부쪽이 악덕 건물주가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할 경우 권리금이 상실되는 것을 막자고 주장하고 있지만, 권리금은 시가산정이 어렵고 상인들간에 주고받은 권리금까지 건물주가 책임지도록 한 것은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맞물려 있다. 더욱이 개혁모임쪽 율사들은 은행인연합회나 건물주들의 반대가 거세고 국회 법사위원 15명 가운데 10명이 비거주용 건물주로 분류된 상황에서 이런 내용이 포함될 경우 법안 자체가 법사위에서 사장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결국 앞으로 상당한 논란과 조정이 필요한 대목이다.
“이자제한법 부활시키자”
이자제한법도 개혁모임이 염두에 두고 있는 민생 관련 법안이다. 이자제한법은 IMF의 고통이 엄습한 99년 1월 규제개혁 차원에서 폐지됐다. 그러자 연리 300%를 넘나드는 사채업차의 횡포에 걸려 가정이 파탄나고, 자살하는 사람이 등장하는 등 사회 문제가 발생했다. 개혁모임은 이런 폐단을 막기 위해 월 2.5% 이상의 이자를 받을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이자제한법을 부활시키는 게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개혁모임은 이렇게 정치·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개혁법안과 민생법안을 주도적으로 처리함으로써 정치권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고 있다. 그 꿈이 실현될 수 있을지 관심있게 지켜볼 일이다.
박병수 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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