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01년02월20일 제347호 

[특집] 여야 23인의 정면도전!

보스·당론정치에 조직적으로 맞선 ‘개혁모임’… 지도부의 압력을 뚫고 국민의 열망을 입법화시켜라



“초선의원들은 그동안 정치개혁, 명분없는 거수기와 공격수 거부, 당내 민주화 등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기존 정치의 벽이 높다는 것만을 확인했다. 이 과정에서 초선들도 당지도부의 눈치를 보고 일부 꼬리를 내리는 등 기존 정치권에 순치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실질적으로 정치문화의 체질을 개선할 힘의 결집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런 반성을 토대로 구체적 실천을 위해서는 조직적 기반이 필요하다는 데 이르게 됐다.”(김성호 민주당 의원)

“16대 들어 많은 시도를 했다. 그러나 당내 지도부 경선 때 초선들이 서로 다른 캠프에서 각자 다른 목소리를 내는 등 기성 정치권에 쉽게 무너졌다. 벌써 1년이 다 돼가는 데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르겠다. 앞으로 어떤 일 할 것인지, 함께 고민했다. 의원 개개인이 국민대표인 헌법기관인데도 당총재 지시에 따라 거수기 노릇만 하는 상황 아니냐. 이런 것을 한번 깨보자는 것이다.”(서상섭 한나라당 의원)

이재정과 김원웅의 첫 만남

지난 2월14일 국회 귀빈식당. 이른바 ‘23인의 반란’은 이렇게 막이 올랐다. 이날 개혁적 성향의 여야 소장파 의원 23명이 ‘정치개혁을 위한 의원모임’(개혁모임)을 출범시키고 그동안 국내 정치문화를 무겁게 짓눌러왔던 지역주의와 당론정치 타파를 기치로 내건 것이다.

개혁모임의 결성은 여러 가지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우선 의원들이 여야 정당의 틀을 뛰어넘어 연대의 틀을 마련한 것은 국내 정치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국내 정치문화에 깊게 뿌리내린 지역주의와 보스정치, 당론정치에 대해 조직적으로 정면 도전한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사실 개혁성향의 소장파 의원들의 조직적 활동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15대 국회에도 당시 국민회의 초선의원들의 모임인 ‘푸른정치모임’이 개혁적 목소리를 담아냈다. 또 87년 총선을 전후해 정치권에 진출한 재야 출신 의원들의 모임인 ‘평민련’도 활동해왔다. 그러나 이번처럼 소속 당지도부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한 적은 없다. 더욱이 여야 의원간 조직적 연대는 꿈도 꾸지 못했다. “16대 국회와 그 이전 국회는 정치 환경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이전에는 정권교체가 최대 화두였다. 민주화와 개혁을 위해서는 정권교체가 최우선 과제라는 입장이었다. 따라서 지금처럼 잘못된 정치문화에 대해 본격적으로 문제제기할 만한 환경이 아니었다. 이에 비해 16대에서는 정권교체가 이뤄진 데다, 여야를 막론하고 386 세대 등 새로운 피가 대거 수혈되면서 한 단계 높아진 수준에서 정치적 과제가 제기되는 것 같다.”(재야 출신의 민주당 관계자)

개혁모임의 결성이 처음 논의된 것은 지난해 12월20일께였다. 평소 자주 왕래해오던 이재정 민주당 의원과 김원웅 한나라당 의원이 이 의원 방에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던 끝이었다. 이 의원이 “지난번에 우리당 소장파 의원들과 송년회를 했는데 ‘이대로 한해를 마감할 수 없다. 뭔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럼 여야 개혁성향의 소장파들이 송년회라도 하면서 함께 의논해보자”는 김 의원의 맞장구가 되돌아왔고, 이 의원이 “그게 좋겠다. 그럼 서로 시간을 맞춰보고 다시 연락하자”고 동의하면서 모임의 구상이 구체화한 것이다.

그러나 연말이라 모두 일정이 빡빡해 송년모임이 어렵게 되자 1월9일 신년회로 계획이 바뀌었다. 그렇게 해서 이날 여야 소장파 의원 26명이 모이게 됐고, 이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모임의 명칭을 정하고 △모임을 정례화하며 △국가보안법, 인권위법, 부패방지법 등 개혁입법의 제·개정을 추진하고 △국회관행과 제도를 개선하는 데 노력하자는 데 합의했다. 그리고는 이 모임을 주선했던 이재정, 김원웅 의원을 여야 간사로 뽑고, 여기에 정범구 김태홍 송영길 김성호(민주당), 김홍신 안영근 서상섭 김영춘(한나라당) 의원을 보태 10명의 운영위원에게 이 모임을 구체화하는 작업을 맡기게 된다. “당시 분위기는 정말 좋았다. 곧바로 의기투합했다. 특히 천정배 의원이 ‘여기 있는 분들에게 지난해 날치기를 한 것에 대해 사과한다’고 말하는 등 서로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앞으로 개혁에 앞장설 것을 다짐하는 자리가 됐다.”(김원웅 의원)

그러나 이렇게 쉽사리 소장파 의원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었던 것은 지난해 당지도부와 마찰을 빚으면서도 당내 민주화와 자유투표(크로스보팅)를 주장하는 등 서로 공통의 정치지향점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9월 한가위를 전후해 여야 소장파 의원들이 당시 공전을 거듭하던 국회 정상화를 위한 공동방안을 모색한 경험은 개혁모임의 직접적인 자양분이 됐다고 이재정 의원과 김원웅 의원은 입을 모았다. 당시 김태홍 민주당 의원과 김원웅 한나라당 의원의 주도로 여야 소장파 의원들은 △국회법개정안의 여야 합의처리 △정쟁중단과 국회 즉각적인 정상화 △여야 총재회담을 통한 경색정국 해소 등을 촉구하는 공동성명 초안까지 마련했다. 이 모임은 끝내 여야 소장파들 사이의 내부 이견과 여야 지도부의 견제 때문에 무산되고 말았지만, 이를 통해 여야 의원들의 연대모색의 씨앗이 뿌려지게 된 것이다.

“심각한 당 지도부의 압력!”



여야 소장파 의원들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여야 지도부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의 경우 이들이 내세우는 국보법 개정 시도가 민주당의 국보법 개정 방침과 맞아떨어지는 점 등을 들어 순수성을 의심하는 분위기다. 실제 한나라당은 이회창 총재가 1월26일 직접 한나라당의 핵심 소장파 의원을 가회동 자택으로 불러 “자칫 국보법 등 때문에 분란이 일어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자제를 요청하고 나섰다. 특히 언론을 통해 소장파 의원 모임이 보도되자 당내 중진들을 동원해 본격적으로 소장파 의원들 단속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한 소장파 의원은 “1월29일 당연찬회를 앞두고 당지도부에서 한번 보자고 해서 갔더니 당내 보수적인 인사들이 나와 ‘당이 안기부 자금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당내 분란을 일으키지 말고 단합된 모습을 보여달라’고 종용했다. 최근에는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상당히 심각하고 결정적인 지도부의 압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소장파 의원은 “당 중진들이 은근히 압력을 넣는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려고 그런 모임을 하느냐’고 묻는 등 신경쓰게 한다. 16일 국회 본회의장에서도 중진들이 ‘자네도 그것 하나, 거기서 뭘 하려고 그러느냐’며 못마땅한 표정이었다”고 말했다.

반면 민주당은 상대적으로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박상규 총장은 “초선의원들의 모임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국보법 개정 등 개혁적인 목소리를 내겠다는 것인데, 우리당으로서는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긋해 했다. 그렇지만 이들 모임에 대해 한나라당이 민주당 지도부의 사주에 의한 것이라고 의심하는 등 향후 정국운영에 변수가 될 가능성이 있고, 이들이 대선정국에서 만만찮은 세를 과시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 등 때문에 경계를 늦추지는 않고 있다.

느리게, 그러나 쫄깃쫄깃하게…



그렇다면 개혁모임은 이런 견제를 헤쳐나갈 방도를 마련하고 있는 것일까. 개혁모임은 처음부터 욕심부리지는 않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우선 자유투표 실시에 의한 국보법 개정을 첫 과제로 추진한 뒤 다른 개혁입법들과 상가임대차보호법 등 민생법안들을 단계적으로 처리해나갈 계획이다. 김홍신 한나라당 의원은 “너무 욕심을 내며 빨리빨리 하려고 하면 망가진다. 괜히 외압을 자초하고 그로 인한 내부 혼선을 야기할 필요가 없다. 개혁모임은 ‘낮게 좀 느리게 그러나 쫄깃쫄깃하게’ 가야 한다. 너무 앞서가지 않고 느슨한 가운데 실천을 중시한다”고 조심스러워 했다. 김성호 민주당 의원은 “처음에는 아주 느슨한 단계다. 낮은 단계의 정책연대로 한다. 일을 중심으로 꾸려가며 그 이후는 성과를 봐가며 논의하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다른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은 “국보법 등 개혁 3법과 상가임대차보호법 등 민생법안 선거법 개정 등을 구체적으로 잘 실천해내면 그 과정에서 자연히 국민에게 하나의 정치실체로 자리잡을 것이다. 그저 꾸준히 실천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개혁·민생법안 입법화 등 하나하나 성과를 내가며 구체적인 전망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쓸데없는 오해와 마찰을 피해가겠다는 것이다.

사실 개혁모임은 모임의 이름 때문에 첫 출발부터 곤욕을 치렀다. 개혁모임 운영위원 일부가 1월24일 모임을 가졌다. 이른바 ‘청진동 해장국집 모임’. 그날이 마침 설날이어서 어렵게 찾아낸 모임장소였다. “우리 모임 이름을 국회바로세우기독립연대로 하는 게 어떠냐. 낡은 정치와 당론정치로부터 독립한다는 의미가 있지 않느냐”, “바로세우기는 YS의 전매특허 용어니까 피하자. 대신 국회독립을 위한 의원연대가 어떻겠느냐.” 이렇게 해서 대략 국회독립연대로 의견을 모아갔다. 그러나 문제는 정작 그 다음부터였다. 며칠 지난 뒤 ‘여야 소장파 의원들이 국회독립연대를 구성한다’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부터 여야 지도부로부터 “신당 만드는 게 아니냐”는 식으로 의혹과 함께 압력이 거세졌다. 그뒤 몇 차례 내부회의에서도 “이름이 너무 강성이라서 지도부 압력이 너무 크다. 참여자도 줄어들 것이다. 수위를 낮추자”는 의견이 제기됐다. 그래서 ‘힘이 잔뜩 들어갔던’ 애초 이름에서 ‘독립’과 ‘연대’가 빠지고 정치개혁을 위한 의원모임으로 순화(?)된 것이다.

그렇다면 개혁모임이 일을 추진하는 방식은 어떤 것일까. 개혁모임은 내부 참여자 인선에는 상당히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구성원들의 ‘순도’를 높이는 반면, 부족한 힘은 일단 시민단체쪽의 도움을 받을 계획이다. 이에 따라 개혁모임은 14일 참여연대 등 35개 시민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관계자들과 만나 법률소위 등을 구성하고 필요할 경우 법안연구 토론과 제·개정 문제를 함께 논의하기로 했다. 또 시민단체쪽에서는 21일 ‘1만인 시국선언’을 발표하고, 다음달 1일에는 대규모 장외집회까지 벌이는 등 정치권을 압박하는 방법으로 개혁입법 처리에 힘을 보탤 계획을 세워뒀다.

첫 과제, 국보법 개정 만만찮다



대신 참여자에 대해서는 상당히 엄선하고 있다. “일단 우리 활동의 성패를 좌우할 첫 시도는 국보법 개정이다. 그런데 국보법에서 딴소리하면 안 된다. 구태청산, 개혁, 정의구현 등 총론에는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문제는 각론이고 실천이다. 자기희생과 정치적 손실을 감수하면서 당론에 굴복하지 않고 행동에 나설 수 있느냐를 판단의 최우선으로 했다. 말보다 실천, 행동을 중시할 사람을 참여자로 제한하기로 했다.”(한나라당 소장파 의원) “지도부 압력을 이겨내고 독자적인 의견을 못 모으면 이 모임은 잘될 수 없다. 이것은 친목모임이 아니라 정책연합이다. 지금은 외연확대보다 순도가 더 중요한 때다. 현단계에서는 공연히 내부분란만 일으킬 사람은 경계대상이다.”(다른 한나라당 의원) 이런 원칙 때문에 한나라당 초·재선의원 모임인 미래연대도 개별적으로 참여를 제의받게 됐다.

반면 민주당쪽은 상대적으로 문호가 개방됐다. 일단 국보법 개정이 당론이어서 큰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당쪽도 회원 선정은 조심스럽게 한다는 원칙은 확고하다. 민주당쪽 핵심의원은 “개혁모임이 언제나 순항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국보법에 관한 한 민주당쪽은 부담이 적지만, 어느 날 한파가 몰아칠지 모른다. 몇 차례 그런 과정을 통해 걸러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참여한 사람들이 모두 끝까지 함께 갈 것으로 보지는 않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옥석이 가려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제 막 돛을 올린 개혁모임의 앞길은 만만치 않다. 우선 참여자 확정을 어느 수준에서 할 것인가가 의외로 난제가 될 수 있다. 지나치게 ‘순도’를 강조할 경우 배타적인 세력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김홍신 한나라당 의원은 “다른 의원들이 너희만 개혁이냐는 식의 반발을 가져올 정도로 너무 독립적인 구조로 비치는 것은 옳지 않다. 자칫 배제된 의원들이 자신들이 개혁반대세력으로 대비되는 것에 대해 반발할 수 있다. 그러면 곤란하다”고 말했다. 참여자 구성에서 민주당 의원이 한나라당에 비해 지나치게 많을 가능성도 부담이다. 민주당 초선의원은 “애초 한나라당이 10명 확보하면 우리는 15∼16명으로 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부적으로는 재선 배제 원칙을 정했는데도 참여자가 많아 어떻게 해야 할지 더 논의를 해봐야 할 것 같다. 무작정 오지말라고 할 수도 없고 묘안이 마땅찮다”고 털어놨다.

향후 정국이 대선국면으로 들어가면서 여야가 정권쟁탈전이라는 사실상의 ‘전쟁’에 들어가게 된다는 정치상황도 개혁모임에는 역풍이 될 수 있다. 우선 대선이 본격화할수록 양당 지도부가 이들에게 ‘이쪽이냐, 저쪽이냐’의 결단을 강요하는 등 외부환경이 한가하게 적과의 정책공조를 허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민주당쪽 초선의원은 “하기 나름이다. 개혁모임의 정체성이 확실치 않다면 대선국면에 흡입될 수 있겠지만, 우리가 단단히 모여 있으면 큰 문제없다. 우리의 정체성을 확대발전시켜나갈 뭔가를 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당장 현실적으로는 개혁모임이 첫 과제로 삼은 국보법 개정 자체가 만만찮다는 점이다. 자칫 첫발부터 삐끗하면 아직 뿌리가 튼튼하지 못한 개혁모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개혁모임 관계자들도 이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개정 수준을 낮춰 동조자를 최대한 끌어들인다는 방침이지만 사실상 개정에 반대하는 한나라당과 자민련의 당론 앞에서 얼마나 효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박병수 기자 suh@hani.co.kr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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