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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대우차 회생, 비방은 있다 헐값 해외매각에 매달리지 않고 독자생존 모색… 종업원·채권단 공동 출자전환 통해 돌파구 마련해야
대우차인수 우선협상대상자였던 포드가 지난해 9월 갑자기 인수포기를 선언하자 단 하룻만에 국내 주식가치총액이 23조원이나 줄었다. 환율과 금리도 요동을 쳤다. 그만큼 한국경제 전체에 큰 충격을 던진 사건이었다. 그뒤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른 GM마저 포기하게 된다면, 우리 경제는 포드의 경우보다 훨씬 더 큰 충격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4대 부문 구조조정을 오는 2월 말까지 마무리한다는 정부의 계획이 물거품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이에 따라 정부와 채권단도 또다른 대우차 처리방식을 신중하게 모색하고 있다. 금융감독위원회 고위관계자는 “아직 예단을 내릴 수는 없지만 GM협상단이 실사를 끝낸 지 한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만약 GM이 인수를 포기한다면 일단 법정관리에 넘겨놓은 상태에서 시간을 갖고 대우차 처리를 원점에서 재검토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매각협상 실무창구인 산업은행쪽의 설명은 더욱 답답하다. 산은 관계자는 “GM에서 새해 사업계획과 세계경영전략을 먼저 확정하고, 그 결과에 따라 대우차 인수여부와 조건을 다시 정하려는 것 같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는 “채권단이 GM의 인수에만 매달리지 않고 있다. 단지 GM이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상황을 잘 파악했기 때문에 대우차의 빠른 처리를 위해서 GM 인수가 바람직하다는 판단을 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채권단 “GM 인수에 연연하지 않는다”
불과 한달 전까지만 해도 ‘선인수-후정산방식’의 매각을 부르짖던 채권단의 태도와는 사뭇 다르다. 뭔가 다른 대안이 모색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대우차 경영진들도 정부와 채권단으로부터 이미 언질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대우차 이종대 회장은 지난해 12월 초 기자간담회에서 “포드가 막판에 인수를 포기하는 바람에 우리가 당황해 했던 상황을 GM협상에서 되풀이해선 안 된다”며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해 필요한 작업을 진행중”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채권단이 조심스럽게 방향을 틀고 있는 이유는 단지 GM이 하염없이 구물거리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GM이 곧 인수가격과 조건을 제시할 수도 있다. 문제는 GM의 지금 태도로 봐서는 인수가격을 후려칠 게 뻔하다는 데 있다. 채권단은 인수가격이 3조원을 밑돌면 굳이 해외매각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포드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될 때 대우차 정상화에 당장 필요한 신규투자자금을 28억달러로 책정했다. 대우차의 생산·판매조직을 추스르는 데 약 3조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포드가 제시한 총인수금액 70억달러의 나머지는 채권단이 받을 수 있는 몫이다. 그런데 만약 GM이 3조원 밑으로 대우차를 가져가게 되면, 당장 회사 정상화에 필요한 자금은 누가 부담해야 할까? 당연히 채권단 몫으로 돌아온다. 채권단으로서는 매각대금으로 받은 돈을 다시 대우차 정상화에 쏟아부어야 하는 셈이다. 게다가 GM은 대우차 사업장의 분할매수 의사를 공공연하게 내비치고 있다. 알짜배기 사업장만 가져가면, 부실사업장에서 추가로 발생하는 손실은 모두 채권단 몫이다. 또 대우차 전체의 생산-판매 네트워크와 연계되지 않은 사업장은 곧바로 몰락할 수밖에 없다. 일관생산체제를 갖춘 완성차업체로서의 존립기반은 완전히 무너진다. 어쨌든 정부와 채권단은 대우차 처리와 관련해 해외매각 이외에 대우차를 빨리 정상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처지이다.
현대의 위탁경영, 유력한 대안?
위탁경영은 먼저 대우차가 적정 영업이익을 낼 수 있는 수준으로 구조조정을 하고, 채권단은 출자전환을 해 대우차를 소유하되 부채를 대폭 탕감해주고, 경영을 맡는 회사에는 영업이익의 일정비율을 위탁수수료로 제공하는 조건이 제시될 가능성이 크다. 경영을 맡는 회사는 영업이익을 많이 내면 낼수록 더 많은 수수료를 챙기는 구조여서 정상화 노력을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 있다. 또 한 단계 발전시켜 대우차가 완전 정상화한 다음에는 아예 위탁경영회사가 채권단의 지분까지 인수해가는 방법도 있다. 일정기간이 지난 다음 위탁경영회사에게 채권단 지분의 우선매입권을 주는 것이다. 경영정상화를 좀더 빠르게 추진하도록 유도하는 장치이다. 다만 이런 조건까지 제공한다면, 위탁경영회사가 경영정상화 노력을 게을리할 경우를 대비해 대우차 부채의 일정부분에 대해 지급보증을 서도록 하는 조건도 필요하다. 그러나 위탁경영은 현실적으로 현대차 이외에 마땅한 대상을 찾기 어렵다는 게 정부와 채권단으로서는 고민이다. 현대차에 대우차 경영을 맡길 경우에는 독점시비와 통상마찰의 소지가 많다. 또 현대차가 나쁜 뜻을 품는다면, 대우차에서 그마나 경쟁력 있는 차종까지 씨가 말라버릴 가능성도 있다. 위탁경영에 비해 시간이 조금 걸리지만, 미국 크라이슬러식 위기탈출법도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크라이슬러는 70년대 말 큰 위기를 맞았을 때 400여개 채권은행들이 총부채 20억달러 가운데 10억달러를 우선주로 전환하고, 원금 7억달러를 탕감해주는 조처를 취한 다음 경영진 교체, 적자 생산라인의 정리 등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해 회생했다. 당시 구조조정의 주체는 크라이슬러의 종업원들이었다. 종업원들은 임금채권의 출자전환 등으로 모두 2억6천만달러를 회사에 투자했다. 채권단은 종업원들이 자발적으로 인원을 대폭 정리하고, 임금을 삭감하는 데 따른 대가로 종업원들의 출자자금을 지원해줬다. 그러나 당시 크라이슬러 채권단이 적극적으로 움직인 데에는 미국 정부와 의회의 확실한 지원이 큰 구실을 했다. 미국 정부는 79년 12월 ‘크라이슬러사에 대한 대출 지급보증법’을 상하 양원에서 통과시켜 약 35억달러에 이르는 구제금융을 지원했다. 이로부터 3년 만인 83년에 크라이슬러는 흑자로 돌아서 정부 보증채무를 전액 갚았다. 대우차에도 이미 이런 크라이슬러식 구조조정을 제안한 미국의 금융기관이 있다. 미국의 종업원기업인수 전문 투자은행이자 컨설팅회사인 Keilin & Co는 얼마 전 대우차 노조에 종업원과 채권단의 공동 출자전환에 의한 구조조정을 제시했다. 그 다음에는 필요한 외국자본의 유치와 신규자금 조달까지 주선해줄 수 있다는 의사까지 덧붙였다. 이 회사는 미국의 유나이티드에어라인, 위어턴철강 등 유명한 종업원기업인수를 주선했던 경험이 있다.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의 심상환 연구원은 “종업원들이 회사를 살리기 위해 새롭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라며 “문제의 핵심 당사자인 대우차 경영진과 종업원들이 먼저 재활의 주체로 나서고 여기에 채권단과 협력업체 등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힘을 모으면 폭발적인 상승효과를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크라이슬러식 해법을 대우차에 적용하면…
인천대 이찬근 교수(무역학)는 “대우차 노조가 독자회생을 주장하려면 그 전에 희생없는 회생이 불가능함을 인정해야 한다”며 “종업원들의 희생이 국민과 채권단, 나아가서는 지역사회로 하여금 책임을 분담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다만 희생의 대가로 종업원들이 기업지배구조에 참여함으로써 그동안 김우중 회장 체제에서 빚어졌던 파행경영의 근본을 불식시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이런 방식으로 독자회생 방안을 마련하려면, 종업원들은 물론이고 각 이해당사자들의 실천의지를 결집하는 데만도 상당한 시일이 걸린다는 데 있다. 경영효율화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가도 만만치 않다. 당장 대우차 직원들 내부에서도 회사의 중장기 생존가능성과 사업타당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다행히 대우차 노사는 연말연시를 아랑곳하지 않고 회사의 독자생존방안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지루한 줄다리기 끝에 지난해 12월 29일부터 노사 동수의 경영혁신위원회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처음 안건은 12월 초에 회사쪽에서 제시한 구조조정 방안이지만, 노조쪽에서도 나름대로 검증절차를 거친 2005년까지의 경영수지 예상자료를 제시하며 협상에 나서고 있다. 공교롭게도 대우차 노사는 2001년 사업목표와 비용절감 방안에서만 서로 예측이 어긋날 뿐, 그 다음해부터 2005년까지는 서로 전망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조안에 따르면, 회사쪽에서 올해 연간 56만대 수준으로 낮춰잡은 판매대수를 2002년에 80만대, 2003년까지 93만3천대 수준으로 늘리면 대량해고와 임금삭감 없이도 2003년부터 약 1300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둘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노조의 유광준 정책실장은 “이런 영업수지 전망은 대우차가 워크아웃 이전 수준의 가동률을 유지하며 대당 판매단가도 회사쪽 안을 그대로 적용했기 때문에 달성에 무리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회사쪽 역시 2003년에 1360억원의 영업이익을 예상하는데, 현재 1만9천명선이 종업원 수를 1만2천명선으로 줄이는 등 대대적인 인원감축과 재료비의 절감을 전제로 한다는 게 노조안과의 차이이다. 가장 큰 비용항목을 차지하는 재료비의 경우 회사 안에서는 현재 매출액의 75%에서 69%선으로 6%포인트를 낮추는 것으로 돼 있다. 이는 그만큼 납품업체들에게 단가인하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노조에서는 또 회사쪽에서 제시한 2001년 판매대수(공장가동률이 50% 수준)는 실제로 그럴 가능성보다 여기에 맞춰 인력을 6천명 이상 줄이기 위해 의도저으로 낮게 잡은 측면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해당사자의 희생없는 회생은 없다
이런저런 시각 차이에도 불구하고, 대우차 노사는 ‘빨리 영업이익을 낼 수 있는 구조를 갖춰야 한다’는 데는 인식을 같이한다. 노조에서는 비용절감이 불가피하다면 임금도 일정부분 양보할 수 있다는 유연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영업이익을 낸다고 해서 회사가 정상화된다고 볼 수는 없다. 현재 대우차의 금융권 부채만 13조원에 이르는 현실을 감안하면, 영업이익에서 금융비용을 뺀 경상이익은 2005년에 가서도 적자이다. 인천대 이찬근 교수는 “협력업체를 포함해 1만개 기업, 종업원 60만명의 생존권이 걸려 있는 문제를 단순히 금융논리 차원으로만 접근해서는 곤란하다”며 “앞으로 4∼5년 동안 채무상환을 유예해주고, 신차 연구개발에 필요한 필요한 자금을 지원해줄 경우 대우차가 살아날 수 있다면 지원을 하는 게 마땅하다”고 말했다. 박순빈 기자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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