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베테랑은 ‘평화’를 말한다

베트남의 슬픔을 먼저 헤아리는 미 참전군인 조직들… “지뢰를 뽑고 그들의 유해를 찾아주자”

순식간에 공중으로 튕겨져 올랐다.

뭔가 잘못 밟았다고 느낄 새도 없었다. 대나무 밑에 숨겨진 폭발물이었다. 기다렸다는 듯, 숨어 있던 적 매복조가 공격을 가해왔다. 그는 땅에 떨어지자마자 오른팔에 총탄까지 맞고 완전히 정신을 잃었다.

1969년 4월의 어느 날, 베트남의 타이 닌(Tay Ninh)지역. 남베트남군 병사 60여명을 이끌고 한 마을로 정찰을 나간 미군 전투자문관 에드 마일즈는 불의의 기습을 당했다. 정규군을 만났다면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적’은 단 두명의 베트콩뿐이었다. 그래도 상처는 치명적이었다. 호치민 근교 구치병원으로 긴급후송된 그는 총탄제거 수술을 받은 뒤 고향에 있는 매사추세츠 병원으로 옮겨졌다. 사랑하는 아내가 불구가 된 남편을 맞았다. 그리고 목발없이는 단 하루도 걸어다닐 수 없는 운명이 시작됐다.

“전쟁 책임이 미국에 있기에…”

에드 마일즈의 인생을 반전시킨 드라마의 무대, 베트남. 그리고 그의 발목을 꺾어버린 대인지뢰. 대개의 베트남전 참전군인들, 특히 부상의 악몽을 지닌 상이군인들이 그러한 것처럼 그의 머리는 31년이 지난 아직까지 그곳으로부터 탈출하지 못했다. 원한과 증오? 아니다. 그의 화두는 ‘평화’다.

‘미국 베트남전 참전군인 재단’(VVAF·Vietnam Veterans of America Foundation). 에드 마일즈(56)가 부대표로 있는 베트남전 참전군인 단체의 이름이다. 1980년에 창립된 이 조직은 분쟁지역 또는 전쟁 후유증을 앓고 있는 지역의 대인지뢰를 제거하고 대인지뢰 희생자들에게 의족을 만들어주는 일을 해오고 있다. “베트남을 중심으로 캄보디아, 시에라리온, 코소보, 예멘 등 13개국이 활동무대다. 참전군인들이 회비를 모아 대인지뢰 제거와 의족제작에만 매년 600만달러의 예산을 지출한다. 그중 베트남에 100만달러를 쓴다.”

그는 71년 제대 직후부터 대학 캠퍼스에서 베트남전 반대운동을 주도했다. 전투병 출신들의 워싱턴 반전데모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뒤 노동부에 들어간 그는 참전군인 구직 카운셀링을 하다가 89년 이곳에 합류했다고 한다. “베트남전은 미국의 패권주의가 일으킨 결과물이다. 300만명의 베트남인들이 죽었고, 수백만명이 고엽제 피해를 겪고 있다. 아직도 제거되지 않은 지뢰들이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미국 정부는 해결할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는 명백히 베트콩에 의한 피해자지만, 베트남에 있는 피해자들을 먼저 생각했다. 전쟁의 책임이 미국에 있고, 훨씬 큰 상처를 베트남이 받았다고 판단하는 탓이다. “지뢰를 밟고 총탄에 맞았을 때도 나는 적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나도 그들처럼 죽였기 때문이다. 그저 나에게 화가 났을 뿐이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미국 정부의 고엽제 피해보상도 미국 사람들만 일부 해주었지, 베트남인들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우리는 베트남을 어떻게 실질적으로 도울 것인가를 늘 고민한다. 이것이야말로 평화로 가는 길이다.”

미국 내 참전군인 조직은 50여개 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에드 마일즈가 공동대표로 있는 ‘미국 베트남 참전군인 재단’이 진보적 색채라면 잰 세루그스(50)가 대표로 있는 ‘베트남 참전군인 기념재단’(VVMF·Vietnam Veterans Memorial Fund)은 보수성향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평화’의 개념을 놓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두 단체의 거리가 멀지만은 않다.

고엽제, 후유증과 후유의증의 딜레마

10만명의 참전군인 회원을 거느린 ‘베트남 참전군인 기념재단’의 가장 큰 역점사업은 ‘참전군인의 삶과 역사, 전쟁의 참상’을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잰 세루그스 대표는 “지난 10월 미국의 모든 공립 고등학교에 베트남전 비디오와 소책자 2만7천 세트를 제작·배포했다”고 자랑했다. 2001년 2월까지는 모든 중학교에도 보낼 예정이며 청소년들을 위한 베트남전 교육센터 설립을 추진중에 있다고 한다. 또 11월11일을 ‘베트남 참전군인의 날’로 정하고, 4월 세 번째 월요일은 ‘고엽제 피해자의 날’로 정해 활발한 기념사업도 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사업과 기념사업이 전부는 아니다. 이 단체의 또다른 주요사업 역시 베트남의 대인지뢰 제거이다. 세루그스 대표는 “베트남 쾅 짜(Quang Tra)지역에 여전히 남아 있는 지뢰를 제거하기 위해 2년간 50만달러를 투자했다”고 설명했다. “다시는 같은 참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참전군인들이 구체적 실천을 하지 않는다면 청소년들을 위한 전쟁교육은 의미가 없다”는 설명이다. 지난 4월 베트남전 종전기념일에 45명의 사업가들을 조직해 하노이대학에 컴퓨터 기증사업을 편 것도 그러한 평화사업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메릴랜드 카메론 거리에 있는 또다른 참전군인 단체인 ‘미국 베트남 참전군인회’(VVA·Vietnam Veterans of America). 이 조직은 참전군인들의 권익옹호가 주목적인 단체다. 미국 650개 지역에 지부를 갖고 있고 5만명의 회원들을 뒀다. 이곳에서 가장 큰 이슈는 ‘고엽제’다. 이 단체의 홍보담당 마크 립슨(Marc Leepson·55)은 “한국의 고엽제 환자들이 겪는 딜레마를 미국의 고엽제 환자들도 똑같이 겪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명백한 ‘고엽제 후유증’과 모호한 ‘고엽제 후유의증’ 사이에서 피곤한 싸움을 벌여왔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가 처음으로 공식 인정한 것은 피부로 드러나는 증상뿐이었다. 우리는 의학적 조사연구 결과를 법정으로 가져가 20년간 싸웠다. 그 결과 수많은 다른 증상들도 고엽제 후유증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표 참조). 마크 립슨은 “이를 위해 베트남 고엽제 피해자들과 만나 정보를 교환하고 공동 연구조사 활동을 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베트남 인식표·군모 모으기 운동

권익옹호란, 고엽제 환자나 생활이 어려운 회원 가족들을 돕는 것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참전군인 회원과 그 가족들의 궁극적인 권익을 위해서, 이 단체는 거꾸로 베트남전 참전군인 가족들의 슬픔에 눈을 돌렸다. 이 프로젝트의 이름은 ‘우리가 먼저!’. ‘베트남 군인 실종자’를 찾아주는 운동이다. 미국땅에서 베트남 군인들의 유해를 어떻게 찾는가 하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가능하다”는 게 이 단체 봉사위원회 대표 몬트 윌슨(53)의 말이다. 베트남전 당시 미국 참전군인들이 습득해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는 베트남 군인들의 인식표나 군모 등 각종 유품을 모아서 베트남쪽에 갖다주는 이벤트였다. 이를 힌트로 당시 작전기록을 샅샅이 훑어 베트남에서 무려 1천여명의 유골을 찾아주었다고 한다. 이 단체 관계자들은 이를 위해 10여차례에 걸쳐 베트남을 방문했다. 몬트 윌슨은 “이 사업은 결국 베트남쪽의 미군 실종자 찾기 운동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내비쳤다.

“베트남전에 갔던 많은 전우들이 베트남인들을 ‘적’으로 생각하고 돌아왔다. 그러나 이젠 적이 아닌 친구로서 서로를 바라보는 마음이 필요하다. 참전군인들을 조직해서 베트남에 들어가는 일은 그들을 정신적으로 치유하는 프로그램이 될 것이다.” 이 단체 홍보담당자 마크 립슨의 말이다.

마크 립슨과 몬트 윌슨 두 사람에게 “아직도 공산주의자를 적으로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두 사람은 “지금은 냉전시대가 아니다”며 “그렇게 볼 근거가 희박하다”고 웃었다.

그렇다. 그들에겐 여유가 있었다. 형식적 민주주의의 든든한 울타리와 경제적 풍요. “미국 홈리스의 40%가 각종 전쟁참전자 출신”이라는 통계의 그늘이 있기도 하지만, 미국 참전군인단체들은 넉넉한 마음으로 ‘평화’를 주장하고 있었다. 아직도 세계평화의 물을 가장 어지럽히고 있는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그것은 역설적인 일이었다.

“베트남 부채 전액 탕감해줘야”

미국-베트남의 자유무역협정을 미심쩍은 눈으로 보는 ‘APC’의 앤드루

“클린턴 정부는 베트남에 공식 사과해야 합니다.”

‘정의와 평화를 위한 아시아 태평양 센터’(APC:Asia Pacific Center for Justice and Peace) 기획실장 앤드루 웰스(Andrew Wells-Dang·30)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클린턴 대통령이 정말 사과할 것이라고는 그 역시 믿지 않는다. 실현불가능하고 원칙적인 얘기라는 걸 안다. 미국 군부가 ‘밀라이 사건’을 ‘Murder’라고 말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2년 전의 일이다. 그 전까지는 ‘Incident’로 불렀던 것이다. 68년 3월 밀라이학살 현장에서 병사들을 말린 헬기 조종사에게 훈장을 준 것도 2년 전에 처음 있었던 일이다.

앤드루는 다시 솔직하게 요구수준을 낮춰 이렇게 말했다. “클린턴은 베트남과 화해하기 위한 더 많은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합니다.” 최근 그가 속한 ‘아시아태평양 센터’를 비롯 20개 NGO는 ‘클린턴 대통령에게 드리는 서한’에서 이런 주장들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교회인권운동을 목적으로 창립되어 전쟁반대운동을 주로 벌여온 ‘아시아태평양 센터’가 최근 가장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것은 ‘베트남전 과거청산과 두 나라의 진정한 우호관계’이다. 그동안 대인지뢰 금지협약에 좀더 많은 나라들이 참여하도록 추동해온 이 단체는 요즘 부쩍 미국-베트남의 경제관계를 감시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다. 미국과 베트남간의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11월 중순 베트남에 간 클린턴의 마음은 순수하지 않다. 미래를 위한 협력을 이야기하면서 2천명의 비즈니스맨들이 따라갔다. 결국 한편에선 자유무역을 강화해 새로운 식민지적 경제구조를 강화하려는 것이다. 돈을 많이 투자할수록 베트남으로부터 부채를 빨리 받아내려는 꿍꿍이다. 클린턴 정부는 돈밖에 모른다.” 미국-베트남 무역협정 체결에 앞서 베트남은 예전 남베트남 정부가 갚지 않았던 1억4500만달러를 연차적으로 갚겠다고 약속했다. 경제적 투자확대를 받아내기 위해서 정치적 타결을 한 셈이다. 앤드루는 “미국이 과거청산의 문제에 대한 요구를 경제적인 문제로 봉쇄하려는 함정”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베트남에 대한 부채 전액 탕감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럼에도 베트남에 대한 과거청산은 포지티브한 방향으로 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쟁 후유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NGO들이 먼저 화해프로그램들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한 예로 ‘평화의 나무’(Peace Tree)라는 미국의 평화단체가 베트남 비무장 지대 주변에 ‘평화공원’을 준비중인 것을 예로 들었다. 참전군인 출신 감독이 ‘사죄’의 내용을 담아 만든 <사운드 오브 바이올린 앤 밀라이>(Sound of Violine & Mylai)라는 영화 이야기도 했다.

그 역시 97년부터 98년까지 베트남에서 NGO활동을 했던 경험이 있다. 가톨릭 계통 NGO에 있으면서 전쟁으로 인해 불구가 된 베트남 장애인들을 위해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했다고 한다. 그 인연으로 베트남 여성과 결혼도 했다. 현재 베트남에는 미국 NGO가 120개나 들어가 있는 상태다.

워싱턴 ·메릴랜드=글 ·사진 고경태 기자k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