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당신의 영감을 인터넷 예술로…인터넷 세대들이 플래시로 빚어낸 넷아트… PC를 화구로 삼아 동영상 창조
인터넷과 기술의 ‘예술적 만남’
그들이 낳은 적자는 뭐니뭐니해도 넷아트이다. 비디오 아트가 비디오를 매개로 하듯이 넷아트는 인터넷을 매개로 한다. 외국에서는 이미 94년부터 넷아트가 부각되기 시작했다. 당연하게 우리나라에도 인터넷이 소개되면서 자연스럽게 들어왔다. 인터넷 유저들이 외국사이트를 이곳저곳 서핑하면서 자연히 알게 된 것이다. 그러나 실지로 넷아트라는 이름을 달고 공식적인 행사가 열린 것은 지난해부터다. 가나웹갤러리가 기획한 제1회 국제 디지털 아트 페스티벌(IDAF, www.idaf.org)이 그것이다. 도대체 그들이 전시하는 것은 무엇일까? 디지털 이미지, 동영상, 음향, 3D애니메이션, 게임 등 넷에서 구현 가능한 모든 것들은 크게 보아 넷아트의 영역에 속한다. 올해도 온라인상에서 12월1일부터 열릴 예정이다. 이게 과연 예술일까? 이 행사의 기획자인 블라인드 사운드 대표 이상윤(36)씨는 “예술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 자체가 굳은 발상”이라고 말한다. 과연 이것이 예술인지 아닌지 따지기 이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일단 자신의 창조물들을 즐기는 것 같다. 이번 행사에 참여한 강하나(16)양은 “너무 좋아요”라는 말로 넷아트에 빠진 자신을 표현한다. 강양은 고교 생활중에 공부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 불만을 비주얼로 표현해서 자신의 웹에 띄웠다. 나이는 어리지만 강양의 솜씨는 프로와 맞먹는다. 실제로 중학교 3학년 때 아버지 회사의 상업용 홈페이지를 제작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2학년인 이휘영(17)군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재미로 소프트웨어를 다루다가, “내가 느끼는 감정을 이걸로 표현할 수 있겠구나”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하루에 새로운 웹을 50개씩 방문한다는 이군은 “솔직히 우리나라 웹은 외국의 웹을 많이 따라한다. 그게 싫어서 나 스스로 다른 걸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플래시만 보여주는 인터넷 극장도 수두룩
‘한개의 PC로 쳐들어오는 아이들’의 주무기 중 하나는 플래시다. 플래시는 원래 예술장르의 이름이 아니라 홈페이지를 만들기 위한 소프트웨어의 이름인데, 플래시로 만든 동영상을 통틀어 ‘플래시’라 일컫기도 한다. 플래시를 쓰는 방법은 상대적으로 간단하다. 예를 들어 한장에는 네모를 그리고 한장에는 동그라미를 그린다. 그뒤 모션트위닝이라는 기능을 주면 네모가 자연스럽게 동그라미로 변하는 식이다. 정지영상이 어느새 동영상이 되는 것이다. 플래시가 워낙 대중화돼 있어 넷아트하면 일반적으로 플래시를 떠올리기도 한다. 그러나 넷아트는 플래시보다 더 넓은 개념이다. 플래시로 작품을 만드는 사람을 가리켜 플래셔라고 부른다. 원래는 홈페이지를 막 열 때 메뉴가 뜨기 전, 동영상을 짧게 보여주기 위해 많이 쓰였다. 플래시말고도 동영상을 만드는 프로그램은 많지만 프로그램 용량이 작다는 이유로 플래시를 선호하는 제작자들이 많다. 1분짜리 동영상이 1.44Mb용 디스켓 한장에 충분히 들어가는 것이다. 이 매력적인 프로그램은 일반인들의 예술적 욕구를 크게 자극했다. 지금은 플래시만을 보기 위한 인터넷 플래시 극장도 수두룩하다. 처음에는 사이트 저작을 위한 기능적인 도구였는데 현재는 예술저작의 도구로 변모한 것이다. 올 3월에 플래시를 배우기 시작해서 지금은 <딴지일보> ‘플래시 TV’에 작품을 연재중인 김정현(24)씨는 플래시의 매력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어릴 때 공책 구석에 쪽마다 다르게 로켓을 그린 다음 책장을 ‘파라락’ 넘기는 것 해보셨어요? 딱 그거 하는 재미예요. 손으로 스케치를 할 수 있는 역량만 되면 좋은 작품이 나와요.” 김씨가 처음 플래시를 접하게 된 것은 친구 때문. 플래시 책까지 쓴 김씨의 친구는 기회있을 때마다 플래시를 배울 것을 권했고, 결국 김씨는 친구로부터 꼭 하루 플래시를 배웠다. 그 하루에 재미가 붙은 김씨는 3주 동안 혼자 책을 보면서 공부해 플래시를 마스터했다. 이렇게 생겨난 플래셔는 국내에 적지 않다. 이에 따라 작품 역시 천차만별이다. 줄거리 없이 색의 아름다움만 추구한 작품이 있는가 하면 철학적인 주제를 다룬 작품도 있다. 인터넷에서 소재를 얻어와 인터넷으로 돌려보낸 작품도 있다. 전지현이 테크노를 추는 장면을 변형시켜 육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동영상 ‘Dance with me’(유성훈 제작)는 바로 그런 작품이다. 인터넷에서 광고를 다운받아 재창조해 다시 인터넷으로 띄운 것이다. 경향닷컴의 플래시 코너(http://3co.co.kr) 책임자인 전범준 팀장은 플래셔들의 열기에 대해 이렇게 답한다. “인디작가들이 작품을 자발적으로 많이 보내와요. 야한 것, 폭력적인 것 가릴 것 없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그러면 거기서 걸러서 내보내는 겁니다.” 더욱 잘 알려진 홈페이지에 작품을 시험받고 싶은 사람들이 만만찮게 존재한다는 증거다. 또한, 잘 알려지지 않은 홈페이지에 작품을 넣어두는 것도 만드는 쪽에서는 득되는 요소가 있다. 검열을 피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많기 때문이다.
기술 습득 수월해 누구든 자기세계 표현
플래시가 국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를 관계자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플래시는 동영상 제작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이 씁니다. 빨리 뭔가 거대한 것을 만들고 싶어하는 국민성과 맞물려서 인기가 좋은 것 같아요.” 실제로 일본에서는 동영상 제작에 플래시가 한국만큼 인기를 끌고 있지 않다. 그보다는 약간 어렵고 CD롬 저작에 이용되는 MMD를 선호하는 편이다. 한편 어느 정도 기술 습득이 끝나고 자기만의 세계를 표현하게 되면, ‘이것이 예술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플래셔도 있다. “플래시는 용량문제 때문에 선을 더 자세하게 그리고 싶어도 지울 때가 있어요. 웹에 띄우기 위해서 창작욕구를 조절하는 거죠. 그렇다면 이건 예술이 아닙니다. 도구 때문에 예술적 영감을 표현할 수 있는데, 기술의 제한 때문에 예술 영감의 제한을 받는 아이러니가 생긴 겁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기술적인 측면은 점점 나아지고 있다. 버전이 높아가면서 소프트웨어의 기능은 좋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플래시로 극장용 만화영화를 만들겠다고 나선 감독까지 생겨났다. 애니메이션 그룹 ‘달’을 이끄는 이성강 감독(38)이 그다. 현재 그는 플래시를 절반, 다른 프로그램을 절반 이용해서 제작중이다. 이 감독이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 주위에서는 “과연 될까” 하는 시선들이 많았다. 그러나 실제로 작업은 상당량 진척돼 있고, 내년 가을에 극장에서 개봉할 예정이다. “일단 제작비가 저렴하게 먹히고 나중에 인터넷에 띄울 때 편리한 것이 강점입니다.” 이 감독의 말이다. 애니모나 유에스애니메이션 같은 소프트웨어는 한 카피에 2천만원가량인 반면, 플래시는 40만원 정도이기 때문이다.
여럿이 함께 채팅창 통해 음반 만들기도
플래셔와 같은 저작도구가 시각예술쪽을 자극하는 동안 음향예술 역시 가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미국회사인 로켓 네트워크사는 지난해 공연의 개념을 통째로 바꿀 수 있는 시도를 했다. 런던, LA, 샌프란시스코, 요하네스버그, 함부르크의 각기 다른 스튜디오를 인터넷으로 연결해서 싱글음반 <뎀 벨리 풀>(벗 위 헝그리)을 실시간 녹음한 것이다. 보컬은 대서양 저편에서 노래를 부르고 세션맨은 태평양 건너에서 연주를 하는 식이다. 이런 기술적 발전은 결코 딴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 로켓 네트워키사의 아시아지역 파트너인 소리네트워크(www.sorinetwork.com)의 기술을 이용하면, 바로 내가 우리나라에서 서로 다른 지역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채팅창을 이용해 음반을 만들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은 최고 10명이 참여할 수 있다. 이 개념을 발전시키면 공연연주를 할 때조차 구성원들이 한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어진다. 자기 목소리를 MP3 파일로 만들고 그것을 다시 음반으로 만드는 프로그램을 무료로 배포하는 곳도 있다. 뮤직웨어(www.musicware.co.kr)가 그곳이다. 이곳에서는 나만의 음반을 만들 수 있다. 현재 이 사이트에서는 내년 1월 말까지 ‘MP3학생 가요 콘테스트’가 진행중이다. 영상과 음향이 인터넷을 통해서 문자 그대로 몸을 바꾸기도 한다. 음향신호를 영상으로, 영상신호를 음향으로 변환시키는 것이다. 올 7월 ‘2000 새로운 예술의 해’ 음악분과위원회는(위원장 이돈응· 한양대 교수) 대전에서 보낸 음향을 광주에서 포착해 영상으로 바꾸고, 광주에서 보낸 영상을 대전에서 추는 무용과 섞는 시도를 했다. 음향을 영상으로, 영상을 음향으로 전환시킨 ‘인터랙티브 네트워크 아트시리즈2’ 콘서트였다. 이외에도 인터랙티브 무비, 인터랙티브 소설 등 여러 예술장르가 인터넷과 동거하고자 이런저런 시도를 하는 중이다. 그러면 인터넷을 통한 예술이 이토록 매력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넷아트 전문가 이상윤 대표는 웹에서는 권력이 두루 퍼져 있다는 점에서 이유를 찾는다. “인터넷에서는 거대한 신문사 홈페이지나 개인 홈페이지나 모두 같은 레벨, 같은 선상에 있습니다. 1초 만에 이 사이트에서 이 사이트로 넘어갈 수 있으니까요. 오히려 젊은 사람들의 커뮤니티에서는 자기끼리 만들어서 뜨는 홈페이지가 대기업 홈페이지보다 훨씬 중요할 수 있어요.”
국제 교류도 활발… 예술이 익어가고 있다 웹의 특성상 해외와의 교류가 상대적으로 용이하다는 것도 한 장점이다. 해외의 주요 웹아트 사이트 및 어워드로는 미국 샌프란시스코현대미술관(www.sfmoma.org)에서 주는 웨비상(Webby Prize)이 있다. 올해 국내 웹아티스트인 장영혜(www.yhchang.com)씨가 ‘Young-Hae Chang Heavy Industries’이라는 작품으로 특별상을 받은 그 어워드다. 또 미국 매크로미디어사가 주최하는 매크로미디어(macromedia.com), 영국의 뉴미디어 언더그라운드 페스티벌(http://www.unclickable.com), 파일 일렉트로닉 랭귀지 인터내셔널 페스티벌(http://www.file.org.br)등도 주목할 만하다. 이런 열린 공간 속에서, 국내 대학생들의 웹아트 워크숍 그룹인 블라인드 러브(www.blindlove.org)는 일부 작품이 영국의 웹아트페스티벌에 스페셜게스트로 초대받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문화평론가 정윤수씨는 웹이라는 표현양식 자체가 젊은 세대의 언어라고 말한다. “문학이나 영화 같은 기성세대들의 문화는 기존의 언어를 습득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웹아트의 경우는 자기가 가장 잘 아는 방식으로 손쉽게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거지요.” 모니터를 화판으로 삼고 마우스를 붓삼은 인터넷 세대, 이들은 앞으로 웹을 통해 어떤 예술품들을 만들어낼 것인가? 1천만명의 예비고수들이 숨어 있는 전국의 PC방만이 알고 있다. 이민아 기자mi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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