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미국이 선택한 ‘고-부 갈등’

정연주 논설주간에게 듣는 미국의 선거제도… 최악의 정치상황, 그 뿌리는 과연 무엇인가

“미 대선 파문 장기화”, “미국 최악의 정치위기”, “재개표 파문, 여론 양분”…. 투표결과를 놓고 논란을 거듭하는 미국의 대통령 선거전을 국내 언론들은 이렇게 보도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보도를 접하는 많은 국민들은 다음과 같은 궁금증을 갖는다. “세계 최첨단에 민주주의를 주도한다고 자부해온 미국에서 어떻게 저리 우스꽝스런 일이 발생할까”, “왜 그런 모순된 제도를 개선하지 못할까”, “과연 이 혼란을 어떻게 극복할까”….

<한겨레21>은 이런 궁금증을 풀어보기 위해 지난 11년 동안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을 지내며 미국 정치에 대해 폭넓은 식견을 쌓아온 정연주 논설주간과 대학생들간의 대화의 장을 마련했다. 대학생의 눈높이에서 복잡하게 전개되는 미국 대선의 밑바닥을 들여다보자는 것이다. 이날 대화에는 김지현(연세대·인문학부 1학년), 이화준(한국외국어대·정외과 2학년)씨가 참석했다.

▶너무나도 복잡한 미국의 선거제도

-정연주: 너무 복잡한 문제인 만큼 편한 마음으로 이야기해보지요. 긴장하면 하고 싶은 이야기도 못하니까요.

-김지현: 신문을 보면 선거인단 얘기가 많이 나와요. 주마다 선거인단 숫자도 다르고, 선거인단을 뽑는데 투표용지에는 대통령 후보 이름이 나오고. 선거제도부터 헷갈려요.

=미국은 각주의 가치를 매우 중시합니다. 때문에 상원의원은 무조건 주별로 2명씩 배정합니다. 그런데 하원의원 숫자는 인구수에 따라서 정해지지요. 예를 들어 인구가 많은 캘리포니아주의 하원의원은 52명이고, 인구가 적은 델라웨어주 하원의원은 1명입니다. 상원의원은 인구가 아무리 적어도 무조건 2명이고요. 바로 그런 상·하원의원 수를 모두 합친 게 각주의 대통령 선거인단 수가 됩니다. 그래서 주별로 선거인단 수에 차이가 있는 겁니다.

-이화준: 선거인단은 어떻게 선정되며, 특별한 자격요건이 있나요.

=각 정당이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를 정할 때 주별로 선거인단 수만큼 후보자를 선임합니다. 당원이면 누구나 선거인단이 될 수 있어요. 다만 정부관리나 의원 등 정치인은 선거인단이 될 수 없습니다. 각 정당에서 선출된 대통령 후보를 놓고 11월 첫 화요일에 각 주별로 본선거가 치뤄지는데, 여기서 단 1표라도 더 얻는 정당의 후보가 그 주의선거인단을 모두 독식합니다. 그렇게 선출된 선거인단이 12월 두번째 화요일 다음의 첫 월요일(올해는 12월18일)에 대통령을 최종적으로 뽑습니다.

-이: 선거인단은 다른 후보를 찍을 수는 없나요.

=선거인단은 자기가 누구를 찍어야 하는지 이미 결정돼 있습니다. 가령 뉴욕주 대의원 33명은 고어가 이겼으니까 모두 고어를 찍어야 합니다. 앞에서 이야기한대로 선거인단은 당원 중에서 뽑히기 때문에 다른 후보를 찍는 문제는 발생하지 않지요.

-김: 그런 역사적 사례는 없나요. 또 그런 경우 대책은 있나요.

=지난 60년대 공화당 선거인단 1명이 자기당 대통령 후보인 제럴드 포드 대신 로널드 레이건을 찍은 적이 있어요.하지만 당락에 영향을 주지는 않아 문제가 안 됐습니다. 그런데 만약 부시에게 가기로 돼 있는 테네시주 선거인단 11명 가운데 2명이 마음을 바꿔 “나는 이 고장 출신 고어를 찍겠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유권자의 선택을 무시한 이런 ‘신의없는 선거인단’을 막기 위해 1887년에 ‘선거인단 계산법’이 생겼는데 이 법은 각주에 결정권을 줬어요. 현재 24개 주에서는 반란을 아예 금지하고 있지요. 그러나 특별한 규정이 없는 주는 ‘선거인단 계산법’에 따라 해당주 상·하원에서 과반수 이상이 찬성하면 반란이 인정됩니다. 극단적인 예로 테네시 선거인단 중 일부가 고어를 찍겠다고 반란하고 주 상·하원이 다수결로 그것을 인정하면 고어표가 되는 것이지요. 법적으로는 거기까지 가능합니다.

-김: 이번 혼란은 일반 유권자 표를 더 많이 얻은 고어가 선거인단수가 적어 대통령이 안 되는 모순에서 생긴것 같은데, 과거에도 그랬나요.

=지금까지 나온 결과로 보면 고어가 대중투표는 이기고 선거인단에서 지게 생겼는데, 1876년에도 지금 같은 일이 있었어요. 당시 공화당 헤이즈 후보가 47.95%를 얻고, 민주당 새뮤얼 틸든이 50.97%를 얻었는데 선거인단은 헤이즈가 185개, 틸든이 184개를 확보했어요. 1표차로 공화당이 집권한 것이지요. 또 1888년에는 벤자민 해리스라는 공화당 후보가 총투표에서 47.82%를 얻었는데, 민주당의 글로버 클리브런드는 48.62%를 얻었어요. 그런데 실제 선거인단은 공화당이 233개, 민주당이 168개를 확보했습니다.

-이: 총투표에서 이기고도 대통령이 못되면 무척 억울하고, 선거제도를 바꾸자는 얘기도 많았을 텐데요. 왜 ‘승자독식’제도가 안 바뀌나요.

=미국은 여러 주가 모인 연방국인 만큼 아무리 작은 주라도 그 가치를 인정합니다. 이번 선거에서 델라웨어주에서는 고어가 18만여표를 얻어 13만여표를 얻은 부시를 누르고 선거인단 3개를 다 먹었고, 반대로 32개 선거인단이 달린 텍사스주에서는 부시가 379만표 얻고, 고어가 242만표 얻어 부시가 모두 독식했습니다. 다수결원칙으로 보면 텍사스에서 고어가 얻은 242만표가 사표가 됐는데, 델라웨어의 18만표는 생생하게 살아난 것이지요. 작은 주 처지에서 보면 그 존재 가치가 높게 인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국민의 의사 한표를 동등하게 보면 문제가 됩니다. 때문에 지난 60년대에 주별로 총득표 비율로 선거인단을 나누자는 법안이 나왔는데 하원에서 통과됐지만 상원에서 부결됐습니다. 2번이나 그랬습니다.

-이: 상원에서 부결시킨 이유는 뭔가요.

=작은 주의 존재 이유가 없어진다는 것이지요. 델라웨어 같은 곳은 그나마 선거인단을 나누면 ‘피래미’가 된다 뭐 이런 거지요. 미국은 전통을 중시하는데, “별 문제 없었다. 왜 고치려 하느냐”는 반론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너무 복잡해서 어떻게 풀릴지 잘 모릅니다. 고치자는 이야기는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헌법을 수정해야 하니까, 어떻게될지 지켜봐야할 것 같습니다.

-김: 우리는 20살이 되면 자동적으로 유권자가 되는데, 미국은 다른 것 같아요.

=미국은 투표할 연령이 되면 본인이 “투표할 의사 있다”고 등록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절차가 복잡하고, 주마다 제도가 다릅니다. 자동차면허를 낼 때 자동으로 등록해주는 손쉬운 제도부터 아주 복잡한 것까지 각색이지요. 때문에 흑인들은 등록을 못하는 경우도 많고 재시 잭슨 같은 사람은 유권자 등록을 손쉽게 하자는 운동까지 합니다.

▶네이더는 정말 고어표를 잠식했을까.

-이: 네이더 후보가 고어표를 잠식했다는 분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는 네이더가 실제로 생각만큼 고어표를 많이 깎아 먹지 않았다고 봅니다. 네이더나 그 지지자들은 공화당과 민주당이 다르다고 보지 않습니다. 모두 기업의 이익을 옹호하는 집단으로 보는 것이지요. 또 민주당이 변했다는 정서도 강합니다. 더욱이 클린턴이나 고어는 전통적인 민주당에서 볼 때 중도우파입니다. 때문에 네이더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들은 네이더가 출마하지 않았다면 투표장에 아예 안 나왔을 겁니다. 여론조사에서도 네이더 지지가 5%였는데 실제는 2%밖에 안 나왔으니, 3% 정도는 “부시가 되게 해서는 안 된다”며 이미 고어쪽으로 움직인 것으로 보입니다. 네이더 지지표 2%는 그다지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 이번 결과를 볼 때 네이더의 녹색당이 유럽처럼 진보정당으로 약진할 가능성은 없나요.

=5%를 득표했다면 연방정부 지원도 받고 진보정당이 될 수 있었을 텐데…. 2% 가지고는 뿌리내릴 수 있을지 회의적입니다.미국은 양당제도가 뿌리깊습니다.

▶플로리다의 위력은.

-김: 현재 플로리다가 관건인데, 선거 때마다 결정적인 역할을 했나요.

=플로리다에는 은퇴 노인들과 공산주의가 싫어서 미국으로 건너온 쿠바난민이 많습니다. 이들은 성향이 보수적입니다. 그래서 플로리다 주는 부시가 그냥 이길 것으로 여겨졌지요. 그런데 노인들이 생각보다 고어에게 많은 지지표를 던졌습니다. 고어가 은퇴한 노인들의 복지, 특히 처방전 의약품에 대한 의료보험 확대 등 의료보험제도 개선을 주장했는데 그게 어필한 것이지요. 여기에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파인 흑인과 유대도 똘똘 뭉쳤습니다. 그래서 박빙으로까지 왔습니다. 선거가 전반적으로 팽팽해지다 보니 플로리다 주의 25개 선거인단이 어느 쪽으로 가는가가 승부의 결정적 요인이 되었으며, 그래서 플로리다주가 관심의 초점이 된 것입니다.

-이: 이번 선거에서 흑백간 빈부간 갈등이 더 심해진 이유는 뭔가요.

=워싱턴 특파원 11년 동안 미국사회가 양극화되는 과정을 목격했습니다. 강경보수인 뉴트 깅그리치의 주도로 94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대승을 거둬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고, 그때부터 미국사회에는 강경보수의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거기다 클린턴과 고어의 중도성향에 반대하는 랄프 네이더 같은 또 다른 쪽의 저항도 강해지게 됐습니다. 이들은 낙태,총기규제 등 사회적 쟁점에서 매우 첨예하게 대립했습니다. 여기에 신경제를 추진하면서 도시와 농촌, 빈부간 격차가 더심해졌어요. 이번 선거는 그런 양극화 현상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지요.

-이: 우리는 총선시민연대 활동을 놓고도 선거법위반 논란을 벌였는데 미국은 언론은 물론 총기류협회까지 특정후보 내놓고 지지했는데요. 아무런 제제가 없나요.

=미국인들은 정치적 태도를 밝히는 게 헌법이 보장하는 정치적 권리요 언론의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든 내가 저 후보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 의사를 밝히며 반대운동도 할 수 있어요. <뉴욕타임스>가 고어 지지 사설을 쓰고, 총기류협회의는 공화당을 지지하는 텔레비전 광고를 합니다. 상·하원 선거 때도 환경보호단체가 반환경적 후보를 낙선후보로 찍어놓고 그들의 지역구에서 텔레비전으로 낙선광고를 합니다. 총선연대 활동이 선거법 위반이라면, 그 선거법은 우리 헌법에위배되는 것입니다.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니 당연히 고쳐야 하는 것이지요.

▶논란은 어떻게 해결될까.

-김: 일부에서 고어에게 “그만 버티고 들어가라”, “그것이 4년 뒤 재도전에 더 유리하다”고 말했다던데, 고어가 물러설 가능성이 있나요.

=보통 때 같으면 고어가 승복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을 결정할 플로리다주에서 300여표밖에 차이가 안 납니다. 더욱이 고어가 볼 때 당연히 이길 것으로 봤던 팜비치 카운티의 투표결과가 너무 엉뚱하게 나왔습니다. 팜비치는 플로리다 안에서도 흑인과 유대인이 많은 곳입니다. 그곳에서 극우강경파에다 백인우월주의자로 공공연히 흑인을 깔보는 뷰케넌이 3400여표나 얻었습니다. 다른 카운티에서는 100여표, 많아야 600여표 나오는데 유대인과 흑인이 많은 곳에서 뷰케넌 표가 이렇게 나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뷰케넌 스스로도 “내표가 아니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결국 민주당이 ‘그럴 리 없는데’라면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투표용지가 문제였다는 것이지요. 더욱이 주법에 따라 전역을 자동으로 기계 재검표한 결과 팜비치에서만 고어가 751표, 부시가 108표 더 나왔습니다. 그 덕분에 플로리다주에서 두 후보의 표차가 327표로 줄어든 것입니다. 더욱이 팜비치 카운티 등 4개 투표구에 대해 “손으로 재검표하자”는 고어쪽 주장에 따라 12일 1%인 4500여표를 재검표 했더니 고어표가 부시에 비해 19표나 더 늘었어요. 또 아직 부재자 투표가 남아 있고 공식결과도 안 나왔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고어쪽에서 “내가 졌다”고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결국 플로리다주 각 카운티에서 재검표와 부재자 투표 결과를 모두 합친 공식 집계가 나오면 그 때 어느 후보든 패배를 인정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김지현: 민주당 안에서도 “고어, 그만하라”고 말했다던데요.

=민주당 지도부에서는 2년 뒤 중간선거와 4년 뒤 대선을 생각하자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2년 뒤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하원에서 모두 다수 의석을 차지할 수 있는 찬스가 생겼다는 것이지요. 중간선거는 대개 야당이 이기는 게 전통입니다. 더욱이 대선과 함께 이번에 치러진 상·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크게 약진했습니다. 상원의 경우 선거전 공화당 54석, 민주당 46석이었는데, 민주당이 3석을 더 얻었어요. 공화당 50석 대 민주당 49석(1석은 아직 개표중)이 됐습니다. 1석만 더 얻으면 뒤집는 것이지요. 하원도 공화당이 민주당보다 13석 많았는데, 그 차이가 이번 선거결과 9석으로 줄었고 2석은 아직도 결정이 안 났습니다. 다음 선거에서서 민주당이 5석만 더 얻으면 하원도 장악하기 때문에 고어더러 물러서자는 얘기도 나오는 겁니다. 공식집계가 고어에게 불리해지면 그렇게 될 가능성도 높습니다.

-이: 소송이 제기됐는데 법 절차는 어떻게 되나요.

=팜비치 주민 2명이 소송을 냈는데 일단 주지방법원서 “선거를 다시하라”고 선고하면, 주고법과 주대법원까지 가게됩니다. 그런데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워낙 시급한 문제니까 빨리 처리한다 해도 3∼4주는 걸릴 것입니다.

-이: 민주당도 투표용지 결정에 참여했고, 주민들에게 사전에 인지시킨 만큼 법원이 기각하지 않을까요.

=기각 가능성 얘기도 있는데 플로리다 주법에 후보 이름 오른쪽에 구멍 뚫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문제된 ‘나비형 투표용지’는 그런 선거법에 위반된다는 주장이 있기 때문에 법 논쟁도 만만찮습니다. 법정에서 싸움이 붙으면 어떻게 될지 예측불허입니다.

-이: 전혀 예상할 수 없나요.

=예측 불능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서는 미국 대통령이 누가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과거 팜비치에서 지자체 선거를 다시 한 경우가 있고, 또 판사들은 대체로 친민주당 성향이 많습니다.

-김: 만약 재선거를 한다면, 그 결과는 어떨까요.

=재선거할 경우에는 지난번에 투표한 사람만 할 것입니다. 결과는 아무래도 고어에게 유리할 것으로 보입니다.

-김: 그렇다면 갈등해소 방법은 없는 것인가요.

-“플로리다를 빼고 하자”, “선거인단 일부를 고어나 부시에게 몰아주자”는 등 온갖 아이디어가 나옵니다. 하지만 압도적으로 국민적 지지를 받는 방안이 없습니다. 18세기 말에 도입된 선거제도를 그대로 유지한 데 따른 모순이 팽팽하게 맞선 고어와 부시, 즉 ‘고-부간의 갈등’에서 극단적으로 드러났습니다. 앞으로 이 문제를 미국이 어떻게 민주적으로 극복하고 처리할지 관심있게 볼 일입니다.

-김: 최악 상황이 벌어져 클린턴 임기 끝날 때까지도 다음 대통령이 결정 안 되면 어떻게 되나요? 클린턴이 계속해야 되나요?

=미국 수정헌법 12조에서 선거인단이 대통령 선거를 12월 두번째 수요일 다음의 첫 월요일에 하게 돼 있어, 그때까지 답이 나올 것입니다. 그러나 소송 등으로 그때까지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미국 의회가 개입하게 됩니다. 그러나 미국이 그렇게 비이성적인 사회는 아니고, 또 여론이 혼란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답이 나오리라 봅니다. 그 답은 부재자 투표를 포함한 플로리다주의 재검표에 대한 공식발표에서 나올 것입니다. 여기서 고어가 이기면 아무 문제없이 고어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고, 부시가 이기면 고어도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만약 고어가 계속 버티면 “고어, 그만해라”는 압력 여론이 높아질 것입니다. 고어로서도 4년 뒤를 생각해야 하고, 민주당도 2년 뒤 중간선거를 생각해야 하니까 공식발표 근방에서 문제가 풀어질 것으로 봅니다.

▶선거 이후, 그 파장

-이: 이번 선거결과를 볼 때 앞으로 누구도 정국주도권을 쥐기 힘들다든데요.

=고어건 부시건 누가 돼도 상처투성이로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앞서 말한 대로 공화당의 상·하원 장악력도 크게 줄었어요. 때문에 부시가 대통령이 돼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예산안을 통과시키는 정도의 일상적인 것에 불과할 것입니다. 경제정책이나 대외정책에서 주요한 정책변화를 시도하기 어렵죠.

-이: 해외에서도 조롱당하고 있는데, 옛날처럼 패권적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리더 그룹은 상처를 입었지만 그 정도는 극복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에 노출된 심각한 제도의 결함에 대해 토론할 것이고, 고어든 부시든 새로 들어선 대통령은 서로간에 깊어가는 적대심과 상처를 극복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할 겁니다. 미국에는 극단적인 무리들이 있는 반면, 다수는 타협을 잘합니다. 대혼란에 빠져 있지만, 플로리다 공식 재검표결과가 나오면 마무리 지을 것 같아요. ‘카오스 상태’로는 가지 않을 겁니다.

-김: 부시가 대통령이 될 경우 대북정책이 변화되지 않을까요.

=부시가 크게 이겼어도 야당으로 여당을 공격할 때와 실제 대통령일 때는 크게 다릅니다. 실제 대통령이 되면 선택 가능한 정책이 제한돼 있어요. 대북정책은 포용 외에 별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상처투성일 때는 더욱 그렇죠. 고어 때보다는 껄끄럽겠지만 <조선일보> 등 국내 강경 보수들이 원하는 근본적인 대북정책 변화는 없을 것입니다.

-이: 우리는 그동안 미국과 공조를 중시했는데요. 잘될까요.

=김대중 대통령이나 민주당은 고어가 됐으면 마음이 편했을 겁니다. 민주당이 전통적으로 북한에 덜 대결적이었고, 포용정책을 직접 지지하고 도와줬으니까요. 그런데 부시도 강경론자는 아니에요. ‘따뜻한 마음 갖는 보주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흑인과 히스패닉 등 소수민들도 공화당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포용성 있는 인물이죠. 물론 그의 주변에 대북 강경론자가 많고, 특히 북한의 미사일, 핵문제에 강경대응을 주문할 가능성은 있습니다. 때문에 지금처럼 원만하게 한국과 미국이 함께 가지는 않을 터이지만 그렇다고 훼방을 놓을 정도는 아닙니다. 어쨌거나 지금 중요한 것은 남북관계에요. 남북관계가 잘 풀려 가면 미국에서 아무리 초강경론자가 나와도 그 진전을 뒤집을 수는 없죠.강경론자들조차도 남북관계 진전은 강조해 왔어요.

▶미국도 지역감정 있나?

-김: 투표결과를 보면 지역간 지지후보가 뚜렷하게 차이나는데 그 이유는 뭐죠. 또 고어가 자기 고향인 테네시에서 졌는데, 우리 정서로는 잘 이해가 안 돼요.

=미국은 지역에 따라 보수냐 아니냐로 갈립니다. ‘선벨트’로 불리는 남쪽 딥사우트 지역인 텍사스, 오클라호마, 테네시, 조지아, 캐롤라이나 등은 전통적으로 보수에요. 완전히 보수화됐죠. 중서부인 미드웨스트가 있는데, 이곳도 성경을 곧이 곧대로 믿어 ‘바이블 벨트’라고 불릴 정도로 보수적이죠. 이 두 지역의 역대선거결과를 보면 공화당 표밭입니다. 성향자체가 보수적이라 자기 땅에서 대통령 후보가 나오든 말든 보수쪽으로 기웁니다. 미국은 냉전이 끝난 뒤냉전시대의 진보·보수 이데올로기는 아니지만 여전히 사회쟁점과 경제정책을 바라보는 시각에서는 진보·보수로 갈려져있어요. 낙태, 총기규제, 감세, 큰 정부 작은 정부 등의 쟁점에서 분명한 이데올로기적 차이와 대립이 있습니다. 그것이 이번 선거에서 명확히 확인됐고, 고어가 자기 고향 테네시에서 진 것은 그 단면을 극적으로 드러낸 것이죠.

-김: 뷰캐넌은 공화당 출신인데 “팜비치 표는 내표가 아니다”고 말했잖아요. 그렇게 말하는 게 좀 의외인데요.

=뷰캐넌은 극우강경입니다. 공화당 안에서 두번이나 대선 후보경쟁에 나왔는데 후보가 못됐고, 이번에도 나왔다가 안 될 것 같으니까 개혁당으로 갔죠. 가슴에 공화당과 부시에 대한 적대감이 깔려 있을 수밖에 없어요. 또 그는 해설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으니, 다시 복귀할 때를 대비해 ‘공정한 인물’이라는 이미지에도 신경써야 하겠죠.

-이: 경제가 미국 선거에 가장 큰 영향을 준다든데 경제 호황에도 불구하고 여당인 고어가 고전한 것을 어떻게 봐야 하나요.

=클린턴이 오래하니까 국민들 사이에 ‘클린턴 퍼티그’(클린턴 피로)가 있습니다. 특히 선벨트쪽 유권자는 가치를 중시하기 때문에 바람둥이에 스켄들이 끊이지 않은 클린턴을 “지긋지긋하다”고 말할 정도죠. 그런데 고어도 캘리포이니아주에서 선거자금 모금을 위해 절에 찾아가 절을 하는 등 선거자금모금 스캔들이 있었어요. 그것을 지겨워하는 거에요. 또 경제가 잘 되다보니 전반적으로 두 후보를 갈라놓는 뚜렷한 쟁점이 없어요. 당연히 후보의 인품, 캐릭터를 중시하는데 고어는 뻣뻣하다는 인식이 박혀있죠. 별명이 ‘스틱’(막대기)이에요. 미국 사람들은 고어하면 떠오르는 게 ‘보어링’(지루하다)이라고 말합니다. 또 고어 자신이 인터넷을 만들었네,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이네 하는 헛소리를 했죠. 그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표를 많이 깍아먹었어요. 1∼2차 텔레비전 토론 실패도 원인중 하나입니다. 부시와의 차별성을 심었어야 했는데, 전당대회 후 고어가 부시를 크게 리드하는 여론조사가 나오니까 ‘안전 일변도’로 나갔어요. 너무 수세적이어서 부시와의 정책적 차별성을 드러내지 못했죠. 반면 부시는 아버지가 대통령을 했기 때문에 누구나 이름을 알고, 친화력도 굉장합니다. 부시를 만나면 다 좋아한다고 말할 정도니까요. 이건 제가 직접 아이오와주 공화당 코커스에서 확인했습니다. 당시 포브스를 위해 열렬이 운동했던 한 자원가가 부시와 악수하고 몇 마디 말하더니 “아이 러브 부시”를 외치고 다니는 거에요.

정리=신승근 기자sk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