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우리집 아이는 아빠가 키운다

당당하게 육아의 주체로 떠오른 남자들… 젖병 물리고 기저귀 가는 보람을 아는가

2세를 키우는 일은 영원히 어머니들의 몫인가.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육아능력이 선천적으로 뛰어난 것일까. 혹시 아버지들에게 숨어 있는 육아능력이 기존질서에 의해 퇴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동물의 세계에서는 뜻밖에도 2세 육아를 전적으로 책임지는 수컷들이 많다. 남극에 사는 황제펭귄은 새끼를 겨울에 낳는다. 알을 낳느라 지친 어미가 먼 바다로 떠난 뒤, 평균기온 영하 36도의 혹독한 추위 속에서 알들을 55일 동안 꼼짝 않고 품어서 부화시키는 것은 아비들이다. 행여나 알에 한기가 전달될까 아비는 꼼짝달싹 못한다. 부화한 뒤에도 아직 털이 없어 체온조절을 못하는 새끼들은 아비의 뱃가죽을 둥지 삼아 자연에 적응해간다. 아비는 두달 가까이 굶주려 탈진하기 직전이지만, 새끼들에게 먹이려고 자신의 몸에서 식도를 타고 꾸역꾸역 묽은 죽을 게워낸다. 펭귄들에게 언어가 있다면 ‘펭귄죽을 게워내보지 않고는 펭귄의 삶을 말하지 말라’는 격언이 있을 법하지 않은가.

‘황제펭귄’이 늘어나는 추세

남아메리카의 초원지대에 사는 레아의 아비도 마찬가지다. 수컷 한 마리가 어미들이 버린 60여 마리나 되는 갓난 새들을 줄줄이 이끌고 다닌다. 유치원생들이 선생님을 졸졸 따라다니듯이. 아비 레아들은 얼마나 세심한지 알을 품고 있는 과정에서도 가만히 앉아 있으면서도 쉴새없이 일어나 부리로 알을 살짝살짝 굴려 위치를 바꿔 놓는다고 한다. 모든 알에 온기를 골고루 나눠주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쯤되면 암컷이 육아를 전적으로 전담하는 게 변하지 않는 자연의 섭리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들어 인간사회에서도 가사노동을 남녀가 공동으로 책임지는 현상이 보편화하면서 일정 기간 남자가 육아를 전담하거나 육아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래서 <한겨레21>은 ‘인간 황제펭귄’ 또는 ‘인간 레아’들을 찾아나서보기로 했다.

수소문 끝에 권병희(31)씨를 만날 수 있었다. 지난 11월2일 서울 고덕동의 한 아파트로 권씨를 찾아갔을 때 권씨는 아기에게 먹일 이유식으로 ‘된장죽’을 준비하다 실패해 낙담해 있었다. “책까지 사서 연구중인데 역시 이유식은 어렵더라구요. 조금 있으면 깨어나서 배고프다고 난리칠 텐데 큰일이네요. 중·고등학교 때 가정이나 가사 과목을 배웠거나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도 야단맞지 않는 집안이었다면 이렇게까지 고생하지는 않았을 것을….”

권씨가 태어난 지 열달을 맞은 딸 진이에게 요즘 먹이는 이유식은 계란찜, 닭죽, 당근과 감자 등을 섞어 끓인 야채죽, 바나나·사과·배를 함께 갈아 만든 과일쥬스 등이다. “닭죽은 가장 부드러운 가슴살로만 해야 합니다. 전에는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죠. 계란찜은 이제 어느 정도 잘할 자신이 있어요. 분유와 이유식을 병행하는 시기인데 그래도 진이가 먹성이 좋아서 다행이죠.”

권씨는 행정고시 출신으로 노동부 사무관(5급)으로 일하다 올해 9월부터 9개월 반 동안의 육아휴직을 받고 한달 반째 육아와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전업주부’ 생활을 하고 있다.

“맞벌이를 그만둘 수 없어 처음에는 인천에 있는 친척집에 아이를 맡기고 ‘주말부모’ 노릇을 했어요. 그렇지만 아기에 대한 그리움을 채우기에는 너무나 부족했죠. 얼마나 보고 싶었든지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아기사진을 아내와 제가 자는 사이에 놓고 ‘진이야 잘자라’ 하고 얘기했다면 믿으시겠어요? 우습고 슬픈 일이었어요.”

그는 결국 아기를 직접 키워보겠노라며 육아휴직을 결행했다. 예상대로 주변에서는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젊은 동료들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환영했지만 남자 상사들은 노골적으로 반대의 뜻을 밝혔다. “앞길이 구만리인데 연공서열을 중시하는 공무원 사회에서 1년 가까이 쉰다는 것은 너무 치명적이다”는 충고에서부터 “다른 꿍꿍이속이 있는 게 아니냐. 사법고시 보려는 거냐, 아니면 유학 가려고 영어공부 하려는 거냐”는 의심까지 받았다. 집안의 반대도 불을 보듯 뻔해 부모에게는 사후 통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전업주부의 그 고된 육체노동을 체험하며

“동요를 불러줄 수도 없고 함께할 놀이도 마땅치 않고…. 참 난감합니다. 그래서 아내가 늦게 귀가하는 게 제일 서운해요. 정말 연장근로나 야간·휴일근로는 없어져야 합니다. 남자들이 직장동료들과 술먹고 당구 치고 화투치느라 밤늦게 들어오는 건 범죄행위죠.” 그는 그래서 출근하는 아내의 등에 대고 일찍 오라고 노래를 부른다고 했다.

그가 육아휴직을 결심하게 된 데는 부인의 분만과정에 참여해 평생 못 잊을 경험을 한 것도 큰 구실을 했다. “열 시간 이상 진통을 하면서도 꿋꿋이 이겨내는 아내를 보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느꼈다”는 게 권씨의 고백이다. 그런데도 아내는 법적으로 규정된 60일의 출산휴가를 다 쓰지 못하고 45일 만에 회사에 나가야 했다.

그는 요즘 온전한 전업주부가 되기 위해 동네에서 전업주부 친구를 사귀려고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나가보지만, 아직은 경계하는 눈치가 있어 부담스럽다고 했다. 아파트단지 상가에 아기엄마들을 위한 강좌가 있어서 “남자도 됩니까” 물어봤지만, 안 된다는 대답을 들어야 했다. 권씨는 “우리 사회가 아직 남자가 아이를 키우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만큼 성숙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겨레> 편집국에서 취재기자로 일하는 권복기(36)씨 역시 한달간의 휴직 동안 큰딸 서래와 갓난아기인 둘째딸 지해를 키우는 전업주부로서 혹독한 육아체험을 했다. 그의 아이키우기는 ‘잠과의 전쟁’이었다. 경찰 출입기자 시절 어머니 젖을 먹던 아기가 젖에 눌려 질식사한 사건을 보고 한심하다면서 이해하지 못했던 자신의 과거를 후회할 정도였다. 그래서 그는 “금요일쯤 되면 파김치까지는 아니더라도 숨죽인 배추 정도는 되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많았다”고 고백했다. 그는 또 “발로는 둘째 아이의 흔들침대를 흔들어 재우면서 큰애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가스레인지에서 끓고 있는 국을 신경써야 하는 멀티태스킹 능력도 생겼다”면서 “아이를 키워낸 체력과 정신력, 인내심이라면 무슨 일을 해도 군대 갔다온 남자들 못지않을 거라는 결론을 얻었다”고 덧붙였다.

‘애기똥 예찬론’에 담긴 아름다운 부성애

그의 ‘애기똥 예찬론’을 들어보면 아이에 대한 아버지의 감수성이 어머니 못지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이가 태어나서 짙은 쑥색의 태변을 본 뒤 얼마 뒤부터 싸는 똥의 빛깔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황금색보다 훨씬 밝고 개나리 꽃잎보다 훨씬 맑고 투명한 그런 황활한 똥색을 보면서 나는 할 수만 있다면 저 똥으로 염색을 하면 너무나 고운 빛깔이 나오겠다고 감탄을 했다. 기저귀를 들고 화장실에 뛰어가 변기에 털어넣을 때마다 그 아름다운 빛깔이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아까워했다. 지금은 황금색과 쑥색이 뒤섞인 그야말로 똥색인 똥을 아무런 미련없이 변기에 버리지만 그 빛나던 똥색을 잊을 수가 없다.” 그는 애기똥에 대한 관찰을 한 뒤에야 한국의 야생화중에 양비귀과로 두해살이 들풀인 ‘애기똥풀꽃’의 색깔이 왜 그런지를 알게 됐다.

육아를 철학적 사유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영남대 이강옥(44) 교수의 육아에세이 <젖병을 든 아빠, 아이와 함께 크는 이야기>는 남자가 아이를 키울 때 느낄 수 있는 희로애락의 고갱이들을 모아놓았다.

그는 예로부터 우는 아이의 울음을 뚝 그치게 했다는 ‘곽쥐 온다’는 말의 어원을 설명하면서 육아의 고단함을 설파하고 있다. 그는 아이가 울어대는 바람에 14일째 밤잠을 설치면서도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에서 엄마없는 아이를 키우다가 일주일 만에 울어대는 아이를 도저히 참지 못하고 패대기쳐 죽인 청석골 두령 곽오주를 반면교사로 삼아 자신을 다잡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그러면서 “내 존재 전체를 바땅에 깔고 아이에게 우유병을 물렸다고 한다면 누군가 웃을까”라고 묻는다.

그는 전업주부 노릇을 한 뒤 전업주부 여성들이 겪는 건망증의 본질에 대해 전혀 다른 시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즉, 전업주부들은 평소 머릿속에 아이와 가사에 관한 중요한 정보들을 잔뜩 집어넣고 지내기 때문에 좀더 덜 중요한 정보들은 잊어버릴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해석이다. 그는 같은 처지의 동네 ‘어머니 친구’들과 함께 아기 기저귀는 어떤 걸 쓰는지, 머리깎을 때 우는 아이를 어떻게 다독거리는지를 얘기하면서 동류애를 느꼈으며 그 동류애는 모성을 발달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자신이 아이를 키웠지만, 아이도 역시 자신을 키워줬다는 육아철학을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아이가 잉태되고 난 뒤부터 더 많은 것을 진지하게 생각했고 생명이란 어떤 형태, 어떤 상태이건 소중하고 고귀하다는 진실을 알았다. 그 생명의 지속과 보살핌을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한데, 그 희생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고 인간을 아름답고도 숭고하게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숭고한 희생

육아휴직의 형식은 아니지만 영아기를 지난 3∼5살 유아들의 육아를 상당 부분 책임지는 아버지들도 늘어나고 있다. “아침에 잠깐 그리고 밤에 30분 정도씩만 자식과 함께 있는 그런 상투적인 직장인 아빠가 되기 싫었다”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서울대 동양음악연구소 전임연구원인 김세중(37)씨는 네살 된 딸 새미와 지금까지 전국의 온천 18군데를 돌아다녔다. 김씨의 부인은 한 언론사의 기자이다. 음악평론과 강의로 바쁜 김씨보다 더 시간을 내기 힘든 직업을 가진 아내 덕분에 김씨는 새미의 일상생활을 도맡아 책임져야 했다. 어린이집으로 출퇴근시켜주는 것은 물론이고 음악공연이나 심지어는 제주도에서 열리는 3박4일짜리 학회에도 동행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의 육아철학은 즐거운 쪽으로만 치우쳐 있지는 않다.

“아이를 일상적으로 책임진다는 것은 어쩌면 평생의 굴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죠. 아이와 같이 있으면 원수 질 일도 많아집니다. 기본적 의무감이 앞서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나는 아이와 단둘이만 있는 시간을 감당할 자신이 있기 전에는 애를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요. 육아는 무한책임입니다.” 그는 육아체험을 인터넷 홈페이지(www.odelmio.com)에 정기적으로 올리고 있다.

인천에 사는 차영회(41)씨는 구제금융 시절을 겪으면서 일자리를 잃고 4년째 본격적인 전업주부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육아와 가사노동을 책임지면서 사물과 세상을 보는 세계관이 달라졌다”면서 “나보다 아내나 가족공동체를 먼저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초기에는 자신에 대한 정체성이 흔들려 무척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고 털어놨다. “집안의 장손으로서 부엌 문턱에만 들어가도 뭐 떨어진다는 얘기를 듣고 자랐는데…. 솔직히 가장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나 하는 자격지심을 없애는 데 꼬박 1년이 걸리더라구요.” 그렇지만 지금 와서는 두 아이들이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지 않는 의식을 보이는 등 건강하게 크는 것을 보면서 위안을 삼고 있다.

최근 아버지들이 인터넷 홈페이지에 자식들을 기르면서 겪는 일들을 소상히 적어 올리는 ‘아버지 육아일기’도 유행이라고 할 만큼 늘어나고 있다. 이같은 변화는 무엇보다 지금까지 여성의 고유한 영역으로만 인식돼온 ‘임신→출산→육아’의 전 과정에 남성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인식의 확산에서 비롯하고 있다. 요즘엔 예비아빠가 될 남성들이 의사들의 편의를 위주로 이뤄지는 획일적인 종합병원 분만보다는 수중분만이나 폭력없는 분만 등 대안의 분만법에 관심을 쏟고 있기도 하다.

아이의 가슴에 아빠로 살기 위하여…

11월3일 오후 7시30분 서울 혜화동에 있는 임산부전용도서관 ‘토끼와 여우’(www.ohmybaby.co.kr)의 태교와 출산 관련 강좌를 둘러봤다. 18명의 예비엄마들 가운데 7명 옆에는 직장에서 막 퇴근한 예비아빠들이 열심히 노트에 강의내용을 적고 있었다. 강의가 끝나자 한 예비아빠는 “르바이에르 분만법에 따르면 적당한 시간이 지난 뒤에 탯줄을 잘라주라고 하는데 국내에서 실제로 그 철학에 따라 운영되는 병원이 있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예비아빠들의 출산 관련 지식은 임산부들 못지않아 보였다.

옆 강의실에서는 출산에 대비한 체조교실이 한참이었다. “자, 케겔운동 합시다. 응아 하려는 걸 참을 때 기분으로 항문을 조이고, 질근육을 당기고…. 옆에 있는 아빠는 성기를 올리는 기분으로….” 쑥스러워 할 만도 한데 예비아빠들은 주위에 아랑곳 않고 체조에 열중했다.

육아에 뛰어드는 남성이 늘어난다는 것은 인간공동체를 유지하는 인류의 가장 중요한 과업이 이제 드디어 본궤도에 올랐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탈리아의 심리학자 피에로 페르치가 지적한 것처럼 아이의 가슴에는 부모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김창석 기자kim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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