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낙하산, 행복하지만은 않다

공천포기 대가로 감투 쓴 전직 의원들… 직원들 반발에 화려하지만 괴로운 나날

조홍규 사장은 정부의 공기업 구조조정 방안을 전면으로 거스르는 공사발전 방안 관철을 직원들에게 약속했다.‘낙하산’의 한계를 보충하기 위해 정부정책을 뒤집는 무책임함을 보였다는 비판을 듣고 있다.

의원직을 잃었다고 모두가 상실감에 젖어 있는 것은 아니다. 현역의원 때만큼 큰소리는 못 쳐도 여전히 넓직한 사무실에 적잖은 판공비와 비서, 기사 딸린 승용차 등 온갖 편의를 제공받으며 왕성한 활동을 계속하는 인사도 있다.

조홍규 한국관광공사 사장, 채영석 고속철도건설공단 이사장, 양성철 주미대사, 박태영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등이 그 주인공. 이들은 모두 4·13 총선 공천과정에서 민주당 지도부의 뜻에 따라 경쟁자에게 지역구를 내준 경우다. 힘의 변화를 인정하고 정치적 기득권을 포기한 대가로 실리를 챙긴 셈이다.

노조 반대투쟁에 자질공개 검증 약속

하지만 이들이 마냥 행복한 것은 아니다. 정치권 출신 ‘낙하산 인사’라는 태생적 한계가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한결같이 임명 전후로 노조의 저항과 시민단체의 비난으로 큰 홍역을 치렀다. 최근까지 업무와 관련해서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조홍규 관광공사 사장. 3선의원으로 공천 때 광주시의회 부의장 출신인 전갑길 의원(광주 광산)에게 지역구를 내준 그는 관광공사 사장 내정설이 나돈 5월 초부터 잡음에 휩싸였다. 5월12일 관광공사 노조는 “정치퇴물 낙천대상 인물을 사장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반대투쟁에 들어갔다. 문화관광부가 끝내 그를 사장으로 임명했지만 직원들의 저지로 6월1∼2일 이틀 동안 16층 사장실에 발도 못 들이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조 사장은 결국 노조에 공기업 사장 최초의 인사청문회인 ‘자질 공개 검증’을 약속하고서야 사장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6월5일 열린 인사청문회는 또다른 분란의 싹을 낳았다. 조 사장이 정부가 추진중인 공기업 구조조정 방안을 전면으로 거스르는 공사발전 방안 관철을 직원들에게 약속한 것이다. 정부는 98년 7월 ‘2차 공기업 경영혁신방안’에 따라 관광공사 소유의 경주 보문과 제주 중문 골프장 즉각 매각, 2001년까지 독점운영중인 공항면세점 민영화, 관광단지 개발사업권 지방자치단체 이양, 관광요원 교육 민간위탁 및 교육원 부지 매각 등을 내용으로 한 관광공사 구조조정안을 확정했다. 관광공사쪽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이 방향으로 구조조정이 추진됐다. 그러나 조 사장은 청문회에서 “관광공사가 이들 사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고, 1년 뒤 그 실적에 따라 노조의 재평가를 받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최근 청와대와 기획예산처 등을 상대로 집중 로비를 펼치고 있다.

그러나 조 사장의 행동은 기반이 취약한 ‘낙하산’의 한계를 보충하기 위해 정부정책을 뒤집는 무책임함을 보였다는 비판을 불러왔다. 당장 기획예산처는 물론 영종도 신공항 건설로 막대한 부채를 떠안은 인천국제공항공사는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기획예산처의 한 고위관계자는 “공기업 개혁에 앞장서야 할 여당 중진 출신이 도리어 이를 막는 꼴”이라며 “한곳의 예외라도 인정하면 구조조정 자체가 어려워지는 만큼 원칙대로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조 사장은 “민간업체와 조건을 똑같이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면서 “기획예산처가 방침을 바꾸든지 아니면 공사에 대한 정부 지원금을 더 내놓든지 하라”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낙하산 단체장이 구조조정 전반을 흐트리고 있는 셈이다.

양성철 의원은 국적시비까지 휘말려

조홍규 사장과 함께 민주당 권노갑 고문이 주도하는 일오회(一梧會·15대 의원 중 총선 불출마자 친목단체) 회원인 채영석 고속철도건설공단 이사장과 양성철 주미대사도 안팎의 비판 여론에 곤욕을 치렀다.

3선의원인 채 이사장은 총선 직전 한나라당에서 민주당에 입당한 강현욱 의원에게 지역구(전북 군산)를 내줬다. 그런 만큼 지역구 포기의 대가로 임명된 ‘낙하산’이란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경실련 등 시민단체와 한나라당은 “고속철도와 인연이 없는 인사를 지금까지 수많은 문제를 야기했고, 2004년 개통 때까지 10조원의 예산이 더 집행돼야 할 기관의 장으로 앉히는 것은 적합지 않다”고 비난했다.

채 이사장은 특히 공단민영화 및 임금인상과 관련한 노조 파업을 처리하는 데 한계를 노출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전임 유상렬 이사장 때인 6월21일 시작된 파업을 취임 한달이 지나도록 해결하지 못해 50일 동안의 장기파업을 불렀기 때문이다. 노조는 지난 8월9일 파업을 자진 철회했지만, 아직 노조위원장은 노사협상안에 최종 서명을 거부하는 등 파문은 계속되고 있다. 노조 관계자들은 “임명 초반 몇 차례 교섭에 응한 뒤 아예 협상테이블에도 나오지 않는 등 파업을 방치했다”고 채 이사장을 비판했다. 그러나 채 이사장은 “7월7일 협상타결 직전 노조가 터무니없는 주장을 펼치며 소모적인 행동을 계속해 생산적 협상 차원에서 일정기간 실무자에게 협상을 맡겼을 뿐 사태 해결을 위해 밤낮으로 직접 뛰었다”고 반박했다. 그는 경영능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이사장은 공단 내 수많은 건설기술자들의 보고를 토대로 업무를 판단·조정할 능력을 갖추면 되지 건설기술자일 필요는 없다”면서 “국회 교통체신위와 건교위원을 역임하면서 나름의 전문성을 쌓았다”고 주장했다.

8월 초 미국대사로 부임한 양성철 전 의원도 한동안 ‘낙하산’ 논란과 함께 국적시비에 휘말렸다. 양 대사 자신이 77년부터 99년까지, 부인은 지난 3월까지, 아들(32)과 딸(29)은 출생 뒤 지금까지 미국국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부인은 양 대사가 지역구(전남 곡성·구례) 포기 대가로 미국대사직을 보장받은 뒤에야 국적을 포기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박태영 전 의원. 그는 지난 총선 때 전남 담양·장성·곡성에 출마하려 했으나 권노갑 고문과 가까운 김효석 의원(당시 중앙대 교수)에게 자리를 빼앗겼다. 그리고 지난 6월16일 지역의보와 직장의보의 조직 통폐합에 따른 내부분란이 한창인 때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직을 맡아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노조 간부들에 따귀 맞은 박태영

지역의보노조 후신인 전국사회보험노조원들은 그가 청와대의 노조파괴 특명을 받고 임명됐다는 등의 의혹을 제기하며 파업을 벌이고 있다. 박 이사장은 지난 6월30일에는 노조간부들로부터 공권력을 투입해 노조를 말살하려 한다는 비난과 함께 따귀를 맞는 등 인간적 수모까지 겪었다.

“나도 정말 이곳에 오기 싫었고 개인적으로도 엄청난 괴로움을 겪고 있다”는 박 이사장은 “노조를 위한 공단이 아닌 국민을 위한 공단을 만들기 위해 난마처럼 얽힌 지역의보의 병폐를 반드시 개혁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원하지 않는 곳에 낙하산으로 떨어졌지만 직접 겪어보니 정말 문제가 심각하더라는 것이다. 그는 “지난 1년간 모두 10회에 걸쳐 107일간 파업을 벌이고도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 막강 노조와 이들의 눈치를 보느라 지휘권을 포기한 관리자들이 존재하는 조직에 대한 개혁없이는 공단의 미래도 없다”고 주장한다. 노조 개혁을 외치는 박 이사장과 “노조파괴 음모를 띤 낙하산”이라며 그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보험노조. 맞대결 속에 갈등의 골은 깊어만 간다.

공천 포기 대가로 주어진 ‘낙하산’ 감투. 그들이 있는 곳에는 정말 말도 많고 탈도 많다. 본인도 괴롭고, 직원도 괴롭고, 국민은 피곤하다.

신승근 기자sk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