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무너진 건물, 떠도는 청년

퇴락한 지중해 중심도시 남부 팔레르모… 살인적 실업률에 허덕이며 관광개발도 미흡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주의 수도 팔레르모. 바라 거리에는 한낮에도 실업자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삼삼오오 뒷골목 싸구려 술집에 모여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 몇몇은 골목 담에 기대어 풀린 눈으로 행인들을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다. 관광객들에게 손을 내미는 동냥 어린이 모습도 심심찮게 보였다. 이탈리아 북부의 화려하면서도 깔끔함과는 동떨어진 풍경이었다.

팔레르모의 실업률은 20%가량이다. 그래도 주의 수도이기 때문에 나은 편이지 시칠리아의 다른 곳들은 35%쯤 된다고 한다. 북부의 5.7%의 몇배에 이르는 살인적 실업률이다.

남부에는 특히 청년 실업자가 많다. 두 사람 중 한사람꼴로 실업자다. 청년층의 실업문제는 장년층의 그것보다 더 심각하다. 청년이 직장을 얻지 못한다면 장래가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범죄나 마약 따위에 빠지기도 쉽다.

2차대전 때 폭격당한 건물 그대로

팔레르모 시내를 동행하던 리오토 교수(나폴리동양학대학)가 손가락을 들어 한곳을 가리켰다. 4층 건물의 한쪽 벽면이 무너져내려 있었다. 그러나 반쯤 부서진 건물의 나머지 온전한 층의 발코니에는 울긋불긋한 빨랫감들이 내걸려 있었다. 무너진 건물에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이다.

“2차대전 당시 폭격을 맞아 부서진 건물입니다. 저런 건물이 50여년이 넘도록 수리되지 않고 있습니다. 남부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만큼 중앙정부는 남부에 대한 투자에 인색했습니다.”

팔레르모의 항구를 찾았다. 부두 시설은 제법 컸다. 그러나 입항한 선박이 많지 않았다. 한마디로 썰렁했다. 항구 한쪽에는 시칠리아 최대 산업으로 꼽히는 칸티에리 나발리 조선소가 자리잡고 있다. 1950년대에 건설돼 한동안 잘 나가다, 70∼80년대 세계적인 조선업계 불황으로 거의 문을 닫다시피했다. 그러다 최근 수주량이 늘어 가동일수를 늘리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 도크에서 건조중인 선박 규모는 한국의 울산이나 거제도 조선소와 비교할 때 보잘 것 없었다.

시칠리아는 장화 모양으로 생긴 이탈리아 반도의 장화 콧등쯤에 자리잡은 섬이다. 면적은 제주도의 10배쯤 된다. 시칠리아와 육지 캄파니아주는 바다로 불과 3km 떨어져 있다. 그런데도 연육교가 없다. 한국은 훨씬 작은 섬인 남해도와 거제도에도 모두 다리를 놓았는데…. 연육교가 놓이면 철도로 로마는 물론이고 유럽 전역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관광산업 차원에선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여기서는 연육교를 놓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몇십년 동안 말뿐이라고 한다. 심지어 몇년 전에는 한 미국인 자본가가 “모든 비용을 내가 들여 건설하겠다. 대신 90년간 통행료 징수권을 달라”고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차적인 이유는 2차대전 종전 뒤 47차례나 정권이 바뀐 이탈리아의 정치 불안정이다. 그래서 일관된 정책이 불가능했다고 한다. 두 번째로는 역시 북부 위주 투자정책이다. 극심한 정치 불안정 속에서도 북부는 철도와 도로가 사통팔달이지만, 남부는 인접 주들을 잇는 도로와 철도가 없어 빙빙 돌아다녀야 한다.

연육교만 놓아도 살 길이 열리는데…

팔레르모는 12∼13세기까지 지중해의 중심도시였다고 한다. 아랍과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로 이어지는 지중해 문명이 꽃을 피우던 시절, 팔레르모는 지중해의 한복판에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지리적 이점을 톡톡히 누렸다. 당시 노르만왕조(시실리에서 나폴리 일대를 영토로 함)의 왕 프레데릭 2세는 유럽 전역에서 학자들을 불러모아 연구비를 넉넉히 대면서 학문과 예술에 전력하도록 했다. 그 무렵에는 인구가 30만명에 이를 정도로 번영했다. 그래서 팔레르모에는 그리스, 사라센, 노르만에 이르기까지 여러 문명의 공존을 알리는 문화유적도 풍성하다.

이에 따라 시칠리아인들은 기왕에 뒤진 산업시설은 접어두고 공해없는 산업인 관광으로 경제를 진흥시켜야 한다는 공감대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역시 문제는 편중된 지역 정책이다. 벤트 파로디 시칠리아 기자협회장은 “중앙정부의 관광홍보도 로마, 베니스, 밀라노 등 중·북부 위주로 편중돼 있다”고 말했다.

팔레르모=박창식 기자cspcsp@haniam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