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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변호사 독점’은 깨져야 한다 법무사·손해사정인 등은 왜 법률사무 취급 못하나… 결국 변호사 밥그릇 위한 것일 뿐
“제가 고안해낸 놀이기구를 대기업에서 도용해 다른 상품에 끼워 팔고 있는 사실을 알고 특허법원에 소송을 냈죠. 하지만 특허법원에서 나중에 이기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동안 장사는 다 해먹을 텐데. 늦기 전에 이런 짓을 막으려고 서울지법에 가처분신청을 냈는데 졌단 말이에요.”
소송, 조금만 알면 아무나 한다?
김씨는 자신이 진 이유를 돈이 없어서 변호사를 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었다. 특허법원에 낸 소송은 변리사한테 맡겼지만 서울지법에 낸 소송은 ‘돈이 없는 죄’로 변호사를 구하지 못해 졌다는 게 김씨 주장의 요지였다. “문과교육만 받은 판사들이 실용신안 도면과 의장 도면이 어떻게 다른지 알겠어요? 그래도 변호사만 샀더라면 이길 수도 있었을 텐데….” 결국 문제는 김씨 주장이 맞는지 틀리는지 여부가 아니라 김씨처럼 과학기술에 관한 내용을 가지고 소송을 하는 사람들조차 비싼 돈을 주고 변호사를 사야만 한다는 얘기였다. 두 가지 소송 모두 그런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변리사들이 맡을 수 있다면 돈도 덜 들고 소송하기도 훨씬 쉬웠을 것이다. 최근 급증하고 있는 법률정보 인터넷사이트 중에는 법조계 인물정보를 자세히 실어주는 곳이 몇 군데 있는데 인기가 높다. 특히 학연이나 지연까지 알아낼 수 있도록 한 프로그램이 있는 사이트도 있다. 예를 들어 판사 이름을 치면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동문 변호사와 검사들이 나타나고, 사법시험 동기까지 소개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아무리 인맥을 중시하는 사회라고 해도 도대체 이런 사이트까지 생겨나는 이유는 뭘까. “사실 90%에 가까운 소송은 수임료가 비싼 변호사가 하든 사법연수원을 지금 막 수료한 변호사가 하든 마찬가지다. 일부 복잡하고 전문적인 분야를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소송은 기초적인 법률지식만 갖고 있으면 누구든지 수행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의뢰인들은 그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왕이면 자기 사건을 맡은 판사와 친한 변호사를 찾게 되는 것이다.”(서울의 한 변호사) 시간도 많이 들고 쓰는 말도 어렵고 해서 아무나 할 수 없는 게 소송이지만 조금만 알고보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또 소송이다. 굳이 비싼 수임료를 주면서까지 변호사를 선임해야만 하는 소송은 별로 없다. 아예 ‘나홀로’ 소송을 한다는 세상 아닌가. 그렇다면 아직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변호사를 선임해야만 하는 이유는 뭘까. 그 이유는 바로 현행 변호사법상 ‘변호사가 아닌 자가 법률사무를 취급해선 안 된다’고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상자기사 참조) 이 변호사 법규정의 유일한 예외는 특허법원에서 변리사가 재판에 참여할 수 있다는 규정뿐이다. 이렇듯 변리사를 제외하면 변호사가 아니면서 법을 다루는 직업군이 소송을 대리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다. 법무사는 흔히 브로커로 오해받고 손해사정인들은 가끔씩 검찰의 일제단속에 걸리고 변리사들은 사무실 간판에 ‘법률’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이것도 모자라 최근 법무부는 고등법원 이상의 민사재판에는 반드시 변호사를 선임하도록 하는 ‘변호사 강제주의’를 채택하려다 여론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철회하기도 했다. 변호사 독점을 보장해주고 있는 변호사법 조항을 없애야 하다는 주장이 나오면 변호사들은 한결같이 “법무사나 손해사정인, 변리사가 법에 대해 뭘 알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변호사가 아니라고 해서 법무사 등이 이른바 ‘법률사무’를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다. 실제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가도 상담을 해주는 사람은 변호사가 아니라 사무장들인 경우가 많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라도 알고 있다.
형사법정의 지겨운 풍경들
서울지법의 한 판사는 “같은 소송이라도 변호사를 쓰면 더 받아낼 수도 있는데 비슷한 직역(職域)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고용하면 통상적인 수준에서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걱정은 그야말로 ‘기우’에 불과하다. 실제로 법무사나 손해사정인 등보다 변호사가 더 받아낼 수 있다면 굳이 법으로 변호사의 독점을 보장해주지 않아도 사람들이 알아서 변호사를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직도 변호사법 조항이 남아 있는 이유는 뭘까. 결국 이 조항은 변호사의 밥그릇을 보장하기 위한 것일 뿐이라는 지적이 법조계 일각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아무나 할 수 있다면 누가 목숨을 걸고 공부해서 변호사가 되려고 하겠어요. 제도적으로 변호사들의 밥그릇을 보장해주지 않으면 인재들이 사법시험을 보지 않을 테고 결국 양질의 변호사가 공급될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한 변호사의 이같은 솔직한 고백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추진하는 사법고시 정원제 반대와 자격증 시험으로의 전환 운동’에 법무부까지 나서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이유에 대한 해답이 될 듯하다. 서민들에게 그처럼 많은 돈을 줘도 만나기조차 어려운 양질의 변호사가 필요할까. 아니면, 적은 돈을 받고 성심성의껏 소송을 대신해줄 사람들이 필요할까. 대답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이충원/ 연합뉴스 기자chungw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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