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00년12월06일 제337호 

[특집] 아이들에게 콘돔을 주자?

춤추는 10대의 성… 강박적 순결이데올로기와 왜곡된 성문화 사이에서의 곡예



아이들이 음악도 없이 춤추고 있었다. 머리를 땅바닥에 대고 몸을 돌리는 헤드스핀부터 팔힘으로만 몸을 세우는 프리즈(일명 뻐기기), 어깨로만 몸을 지탱해 움직이는 노 핸드…. 한명씩 번갈아 나와 기량을 뽐내면 구경하던 아이들은 자세를 지적해줬다.

11월30일 저녁 6시 서울의 한 지하철역. 춤추는 아이들은 인근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었다. 수업을 마친 뒤 집에서 옷을 갈아입고 삼삼오오 모인 것이다.

“삐돌이(남자 백댄서)들은 여자친구 별로 없어요. 술, 담배, 여자, 콩은 금기죠. 삐걸들은 따로 연습해요.” 왜 여자애들은 없냐는 질문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현성(가명·15)이 대답했다. 콩은 성관계를 뜻하는 10대들의 은어다.

남고생 17.9%가 ‘성경험’



아이들은 저녁 9시까지 춤을 추고 집으로 돌아간다. 가끔 근처 먹거리촌으로 몰려가 노래방, 비디오방, 소주방, PC방 등으로 ‘방순례’를 하기도 한다. 몇몇 아이들은 방순례 과정에서 여자친구들을 만난다. 현성이는 “콩까는 애들은 따로 있어요”라고 귀띔한다. 주로 어떤 애들이냐고 물었더니 대답을 머뭇거린다. 그리고는 자기들만의 은어로 한참 떠든다. ‘아다’는 성경험이 없는 사람, ‘후다’는 성경험이 있는 사람, ‘한 접시’는 100번 성관계를 했다는 뜻이라고 한다. 교복을 입고 있던 순혁(가명·15)이는 자기는 아직 경험이 없지만 “중3 마치기 전에 안 해보면 놀림감”이라고 말했다. 현성이가 다시 말을 받았다. “하지만 나는 사랑하는 여자애랑은 절대 안 해. 좋아하는 여자애하고는 할 수 있지”라고 말했다.

11월29일 서울 서초구의 한 중학교 3학년 교실. 교실에 설치된 모니터에서 강사는 한자어 성(性)을 빌려 “마음 심(心)과 날 생(生) 즉 몸이 하나가 되는 게 성관계이므로 쾌락과 감각만을 따르다가는 인격적 완성을 지향하는 인간의 본질을 잊는다”는 설명을 하고 있다. 지도교사가 있어도 몇몇 아이들은 엎드려 있다. 한국청소년순결운동본부에서 진행하는 순결교육 시간이다. 11월 말에 이 교육을 받았던 고교생 김민준(가명·16·서울시 성북구)군은 “지루하고 짜증나서 혼났다”고 말했다. “대체 지금이 어느 땐데 계속 순결하라는 건지 이해를 못하겠다”는 주장이다. 아이들 표현으로는 한마디로 “깝친다”는 것이다.

지난 9월 말 서울YMCA청소년성교육상담실에서 발표한 남자 청소년들의 성행태 조사결과에 따르면 남자 고교생의 17.9%가 성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1월 말 한국여성의전화연합에서 발표한 전국 6개 지역 남녀 고교생의 성의식 조사결과는 더 충격적이다. 전체 학생의 34.1%, 남학생의 37.9%가 성관계 경험이 있다고 답변했다. 같은 조사에서 응답자의 49.4%는 ‘청소년의 성관계를 이해한다’고 답변했고, ‘조금 이해할 수 없다’가 31.0%, ‘단호하게 이해할 수 없다’가 17.2%였다. 10대가 성관계를 할 수 있다, 없다는 논란은 최소한 반수 가까운 10대들 사이에서는 비켜나 있는 상황인 셈이다. YMCA 박현이 상담원은 “성문제는 일부 일탈청소년이나 가출청소년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상담 분포를 보면 가정환경이나 학업능력, 지역특징이 아이들의 성행동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현우와 민영이 싸운 이유


(사진/길위의 아이들.밀리오레는 10대의 해방구다.사진은 다큐멘터리 <가출이데아-밀리오레에서 길을 잃다>의 장면)


서울 동대문 밀리오레 상가 8층 계단. 이곳은 음식물을 나르던 10대들이 담배를 피우거나 쉬는 장소다. 11월28일 밤 10시께 잔뜩 차려 입었지만 한눈에도 10대로 보이는 이들 셋이서 8층과 7층 계단 사이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다. “오늘 OO 오빠 방에 가자.” “OO이는 새벽까지 몇탕 더 뛰어야 해.” 이들은 잠잘 곳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 말을 걸자 아이들은 잔뜩 경계하는 표정으로 자리를 떴다. 10여분쯤 뒤 특별히 갈 곳이 없는지 다시 원래 자리로 왔다.

현우(가명·17)와 민영(가명·중3)은 애인 사이이고, 경화(가명·중3)는 민영의 친구라고 한다. 현우와 민영이 다퉈서 화해하려고 만났는데 싸운 이유는 “오빠가 딴 여자애를 만나서”라는 것이다. 현우는 “씨바, 걔랑 안 했다니까” 하면서 볼멘소리를 낸다. 민영이가 울자 이들은 다시 자리를 떴다. 경화는 다음날 전화통화에서 민영이가 운 이유를 털어놓았다. “사실은 민영이가 얼마 전에 애를 뗐는데, 현우 오빠가 연락을 잘 안 해서 화가 난 것”이라고 한다. 민영이와는 이틀 뒤 어렵게 연락이 됐다.

민영은 현우와 1년 전에 만나서 올 봄부터 본격적으로 사귀어 오는 중이었다. “별로 같이 자고 싶지 않았는데 오빠가 기분 나빠할까봐 몇번 같이 잤다”고 한다. 주로 친구집이나 비디오방을 이용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생리가 끊겼다. 약국에서 파는 자가테스트기로 확인해보니 임신이었다. 친구 두명이랑 병원을 찾았다. 현우가 돈을 구해다 줬다고 한다. 민영이는 이야기를 하는 도중 “이름 절대로 안 나오는 거죠?”라며 몇번씩 확인을 했다. 엄마, 아빠가 쓰러질 거고, 학교에서 알면 바로 자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영이는 집을 나올 생각은 없고, 대학교까지 진학하고 싶다고 했다. 대학은 집에서 먼곳으로 가서 현우와 동거하고 싶다는 말을 덧붙였다. 나름의 인생 그림을 그리고 있었지만 또 임신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감추지 않았다.

각종 상담소에서 조사한 통계를 보면 10대들의 성지식은 성행동에 비해서 무척 낮다. YMCA 상담실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임신과 피임에 관한 객관식 문항의 정답률은 평균 49.9점으로 대부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 또 성경험이 있는 남학생 네명 중 세명은 피임을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고, 피임을 하는 아이들 중 과반수가 정확한 피임방법이 아닌 ‘질외사정’을 피임방법으로 택한다고 답변했다. <표 참조> 청소년성문화센터 김영란 관장은 “성경험이 있거나 없거나 피임에 대해서는 대체로 무지하고, 심지어 엉뚱하게 알고 있는 경우도 있다. 또 정확하게 알아도 제대로 실천하는 아이들이 드물다”고 말한다. 어떤 아이들은 열번까지는 임신이 안 된다고 알고 있거나 배란주기를 거꾸로 알고 있기도 한다는 것이다. 김 관장은 “아이들이 또래의 이야기와 경험에만 의존하다보니 점점 더 왜곡된 성지식을 갖게 된다”고 지적했다.

성교육 담당 교사들은 갈등한다


(사진/영등포 청소년 성문화센터에서 교육받고 있는 청소년들)


성의식으로 가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특히 남자 청소년들의 성의식은 기성세대의 남성우월적 사고와 세대 특유의 개방적 태도가 합쳐져서 극단적인 양상을 보인다. 11월29일 한국여성의전화연합에서 개최한 ‘남학생 성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에 나온 한세전산공업고등학교 정연희 교사는 “상당수의 남자애들이 강한 남자 콤플렉스에 시달리며, 성을 따먹거나 바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또 “남녀관계를 성행위를 하고 안 하고의 여부로 보는 탓에 제대로 이성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없다. 결국 여자애들이 거부하는 것을 빼는 것으로 여기고, 피임에 대해서도 무책임해진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각종 성지식을 접하는 통로는 또래집단과 인터넷 등을 통해서이다. 각급학교에서 체계적인 성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런 가운데 성교육 담당 교사들은 열의가 높을수록 갈등이 크다. 제도교육 내에서 성교육의 범위와 수준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보수적인 학교 안팎의 분위기는 여전히 사사건건 교사들의 발목을 잡는다. 더 큰 문제는 훈련된 성교육 담당교사의 수가 수요에 훨씬 못 미친다는 점이다.

‘남학생 성교육…’ 토론회에서 객석에 있던 한 남자고교의 양호교사는 성교육을 “어떻게 시킬까가 아니라 언제 시킬까가 더 큰 문제”라고 하소연했다. 그의 경우를 보면, 하루에 보건실을 찾는 학생들은 평균 20명. 한 사람당 10분씩 돌본다고 치면 4시간 이상의 수업을 하는 셈이다. 그 밖에 건강기록부 관리 등 각종 사무를 처리하면 하루일과가 다 끝나 버린다. 학교에서 의식적으로 성교육시간을 배정해주는 일은 거의 없다. 이런 가운데 교육부가 권장하는 학년당 10시간 교육은 형식적인 순결교육으로 대체되고 있는 것이다. <상자 기사 참조>

11월28일 오후 서울 관악구 봉림중학교 2학년 교실. 교사가 각종 피임기구를 보여주며 피임의 종류와 특징에 대해 빈 칸을 채워넣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하자, 아이들이 흥미를 보였다. 오늘의 주제는 피임과 성병예방이다. 봉림중학교는 교육부가 지정한 성교육 시범학교이다. 지난 2년간 성가치관 형성에서 성지식까지 체계적인 프로그램에 따라 멀티미디어 방식을 통해 수업을 진행해왔다. 특히 자신의 인생계획표 작성하기 등의 통합 교육방식은 성공적인 효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이혜란 양호교사는 수업을 마친 뒤 “오늘 수업이 가장 조심스러웠다”고 말을 꺼냈다. 교육내용의 가이드라인을 교사의 재량과 의지로만 정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특히 피임에 대해서는 중학교 2학년을 상대로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할지 판단이 잘 안 된다. 정확한 피임교육이 필요한 아이들이 있지만, 상당수의 아이들은 충격을 받거나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다.”

엄마 손에 이끌려 낙태를 하는 소녀


(사진/서울관악구 봉림중학교 2학년의 성교육 수업시간.봉림중학교는 교육부 지정 성교육 시범학교이다)


교사용 성교육지침서 개발을 마무리중인 교육부 여성정책담당관실도 이 대목에 고민이 많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연령에 맞게 성적 자기결정권과 성폭력 대처법, 양성평등까지 포괄하는 내용이지만, 중학교 과정부터 포함되는 피임교육의 수위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이 나지 않은 상태다.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의 성은 ‘윤리교육’으로는 허용돼도 ‘지식교육’으로서는 여전히 금기의 대상인 탓이다. 교육부 남승희 과장은 “편차가 다양한 아이들을 상대하는 공교육이 민간단체 활동 프로그램과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다수의 아이들이 일정한 부담을 감수하더라도 소수의 아이들이 불행한 상황에 처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게 담당자로서의 소신”이라고 말했다.

가정과 학교로 상징되는 ‘집안’에서의 강박적인 순결이데올로기와 인터넷과 사회로 상징되는 ‘집밖’에서의 왜곡된 성문화 속에서 아이들은 계속 불안한 곡예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다음은 서울 노원구의 ㅇ산부인과 원장이 전하는 경험담이다.

“얼마 전 엄마 손에 이끌려 온 한 10대 소녀에게 낙태수술을 해준 일이 있다. 교복을 입은 채로 와서 ‘싸게 수술해줄 수 없느냐’고 묻는 ‘되바라진 아이’들은 종종 보곤했지만, 거의 죽을 듯한 표정으로 엄마 손에 이끌려 오는 아이는 거의 한번도 보지 못했다. 그런데 그 아이가 그런 모습이었다.” 원장은 정작 엄마의 태도에 더 당황했다고 말한다. “소식을 듣자마다 홧김에 병원으로 달려왔는지, 수술 전후로 내내 아이를 다그쳤다. 내가 그 엄마 입장이라도 그런 감정에서 자유롭지는 않았겠지만, 엄마는 아이가 순결을 잃었다는 사실을 정도 이상으로 끔찍해 했다.” 원장은 이럴 경우 부모가 평정심을 놓치면 아이는 커다란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진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부모가 받을 충격이 걱정돼 비밀로 하고 친구들하고 오는 아이들 심정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며 “아이들 못지않게 부모의 성교육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미혼모와 성폭력, 매매춘 등 극단적인 성문제를 접하는 현장활동가들과 사회복지사들은 ‘아이들 손에 콘돔을 쥐어주자’는 다소 과격한 처방을 내놓기도 한다. YMCA 박현이 상담원은 그런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진다며 “우리 사회에서 콘돔이 상징하는 것은 성적 자기결정권과 몸에 대한 소중함,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다. 구체적인 피임교육은 이를 위한 준비교육이다”라고 말했다.

부모세대의 잣대를 강요하지 말자





(사진/성교육박물관.영등포 청소년성문화센터 성교육 전시관에는 다양한 교육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 옆에 있는 청소년성문화센터는 아이들을 위한 전시관을 두고 있다. 지난해 12월 초에 문을 연 이래 대략 7천여명의 아이들이 ‘교육코스’를 밟고 갔다. 남녀 몸의 특징, 성관계 방법과 잉태 과정, 피임법, 뱃속에서 아이가 자라는 과정까지 차근차근 설명해주는 이 ‘성교육 박물관’은 아이들이 체계적으로 성교육을 받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설이다. 기사 맨앞에 등장했던 지하철역의 현성이 역시 이곳을 두고 “다른 성교육은 졸라 재미없었는데, 거기 다녀와서는 한 이주일 동안 심각한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런 현성이가 택한 방법은 엉뚱하게도 “사랑하는 애하고는 절대 안 하고 좋아하는 애랑은 하는 것”이지만, 그의 생각은 언제 어떤 계기로 달라질지 모른다. 김영란 관장은 “성적 욕구가 있는 인간이라고 인정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성에 대해 조금은 신중하고 책임있는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이런저런 길이 있는데 너의 길은 네가 선택해야 한다’는 것 이상의 교육을 바라지 않는다.”

인천여성의전화 배임숙일 부회장은 “지금은 청소년들에게 성관계 때의 에티켓을 가르쳐야 할 정도로 아이들이 급속히 개방되고 있다. 성적 자기결정권을 지닌 아이들에게 부모세대의 잣대를 강요할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자기 삶을 자기의지에 따라 연출해갈 수 있도록 돕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는 10대의 성에 대해 차선은커녕 차악의 방법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인지 모른다.

김소희 기자so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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