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00년11월14일 제334호 

[특집] 50년 버텨온 ‘신기한’ 투표기

속속들이 드러나는 투표과정의 문제점…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이번에 문제가 된 플로리다 팜비치 카운티의 투표기의 경우, 지난 50년대 기본 디자인된 것으로, 심각한 문제점이 이미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다. 이 기계는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사무용 펀치의 원리를 이용해서 카드에 구멍을 내는 식인데, 여러 사람이 반복해서 카드를 찍게 되면 카드에서 잘려져 나온 원형종이 조각이 펀치의 구멍을 막아 다음 사람은 정상적으로 기계를 작동하더라도 제대로 구멍이 찍히지 않거나 잘려진 종이조각이 떨어져 나가지 않는 수가 많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개표기는 그 구멍을 인식하지 못하고 무효처리시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같은 형태의 기계를 쓰고 있는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서는 이같은 사례를 막기 위해서 일정 사용횟수가 지나면 선거관리요원이 기계 구멍을 청소하도록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0표 중 한표꼴로(0.3%이다) 개표기가 정상적으로 읽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나마 플로리다에서는 이같은 청소규정 조차도 없기 때문에 이같은 이상이 발생할 확률은 훨씬 높다.

이처럼 제대로 잘려지지 않았거나 잘려졌지만 떨어져나가지 않고 원형구멍에 대롱거린 채 매달려 있는 종이조각을 차드(chad)라고 부르는데, 이 차드는 개표기를 반복해서 거치면 충격을 받아 얼마간은 떨어져나간다. 고어 후보가 1차 개표에서의 1700여표 차이를 똑같은 개표기를 이용한 2차 개표에서 300표 차로 줄일 수 있었던 것도 개표기를 한번 더 거치면서 차드가 떨어져나간 카드들이 그만큼 많았기 때문이다. 고어가 재개표를 요구하고 다시 수작업 개표를 요구한 것은 바로 이같은 ‘기술적 문제점’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며, 부시 후보쪽이 정치적 부담을 무릅쓰고 연방법원에 수개표작업의 중단을 요청한 것도 바로 이런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두 후보 모두 개표과정의 문제점을 이미 계산에 넣고 움직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투개표 과정에서 속속 드러나고 있는 문제점들은 이것만이 아니다. 뉴멕시코주에서는 선거 4일 뒤가 되어서야 부재자 투표를 포함하지 않았던 사실을 ‘발견’하고 뒤늦게 개표에 포함시켰으며, 200여표를 분실했다가 다른 빈 투표함과 함께 개표장 밖 창고에서 뒹굴고 있는 것을 ‘발견’해 뚜껑을 열었다. 플로리다주의 볼루시아 카운티에서는 투표함을 자원봉사자가 차 트렁크에 넣어 집에 가져가는 바람에 한바탕 소동을 겪었다. 미국 도처에서 투·개표를 마치 처음 해보는 것처럼 소동을 빚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미숙함’에서 나온 실수라고 치더라도 좀더 사회적 문제를 띠고 있는 것들도 있다. 미국유색인종지위향상협의회는 “플로리다에서 흑인들이 경찰의 위협을 받아 투표하지 못했다”고 밝혔으며, 마이매미에서는 투표함 중 하나가 호텔방에 놓여 있다는 제보를 받고 사진을 찍어 공개했다. 또 히스패닉 유권자들이 통역자가 투표장에 준비되어 있지 않아 투표를 하지 못했다는 등의 각종 사례를 모아 연방 법무부에 조사를 요청했다. 적어도 60년대 시민권운동 이전의 흑인 투표배제 사례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잔재는 여전히 남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전혀 새로운 문제들은 아니다. 선거 때마다 나름대로 지역신문의 한구석에 실렸던 화제였다. 다만 아무도 그것이 자신들의 정치를 위협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뿐이다. 아니 오히려 그것이 미국의 정치를 이루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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