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00년11월14일 제334호 

[특집] ‘분열의 늪’에 빠진 미 대선

백인-남성-중산층과 비주류사회의 충돌 가시화… 재검표를 지켜보는 미국은 떨고 있다



미국 대통령 선거의 당선자를 확정짓지 못하는 사상초유의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다. 투개표 과정에서의 논란 때문에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한 채 묻혀 있지만,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가장 중요한 특징의 하나는 이른바 ‘국론분열’이다. 선거과정 및 결과에서 인종별, 계급별, 성별, 지역별로 투표성향이 너무나도 확연히 구분되었고, 그 어느 쪽도 압도적인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했으며, 그 어느 때보다도 ‘당파적’이었다. 이는 누구를 대통령으로 인정할 것이냐 하는 절차상의 문제를 둘러싼 분열보다도 사실은 훨씬 더 심각하고 근본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선거당일 개표 방송을 진행하고 있던 의 앵커 댄 래더는 아직 개표과정의 문제점이 불거지기 전에 그때까지의 선거결과를 보고 “미국이 이토록 심하게 분열되어 있다는 사실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비록 이 차이들이 이념적이거나 격화된 대립의 수준까지 이르지는 않았지만, 전통적으로 타협과 조정의 정치를 자랑해온 미국으로서는 상당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선거의 참여율은 역대 선거에 비해 상당히 높았다. 미국의 독특한 선거방식 때문에 정확한 투표율 집계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지난 대선에 비해 10% 포인트 이상 늘어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처럼 투표율이 높아진 것은 단지 자신에게 유리한 후보에 대한 지지표를 던진 것뿐만이 아니라 서로가 상대방의 정책과 통치에 대해 수용할 수 없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투표율 상승의 원인은 마이너리티


(사진/플로리다주의 의도적인 흑인투표 방해에 항의하는 군중들)


물론 지난 20년 이래 최대 투표율이 될 것이라는 이 계산도 사실 전체 인구 수에 비교해보면 투표권이 있는 미국인들의 고작 50%를 약간 상회하는 사람들만이 투표에 참가한 것에 불과하다. 지난 96년 공화당의 밥 돌 후보에 대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클린턴 현 대통령은 전체 투표가능 인구 수에 비교해본다면 사실 20여% 정도의 득표로 대권을 움켜쥐었다. 지난 70년대 이후 미국을 휩쓸었던 정치적 무관심, 또는 대중을 정치로부터 배제시키는 기제는 참여민주주의의 위기를 논할 만큼 강력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이번에는 개표 초반에 “대중이 선거에 많이 참여한 것은 민주주의가 살아 있다는 증거”라며 체제의 건강성을 희망적으로 논할 만큼 예상밖의 인구가 선거에 참여했다. 애초 두 후보가 서로 백중세를 보여 투표율이 다소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기는 했지만 이같은 정도의 대거참여(다른 국가에 비교하면 여전히 과소참여라고 할 수 있지만)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대중의 정치참여는 정치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는 것, 즉 대중이 정치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왜 이처럼 투표율이 높아졌는가? 그리고 왜 이 높아진 투표율은 어느 쪽도 우위를 점하지 못한 채 숨넘어가는 백중세를 만들어냈는가?

투표율 상승의 가장 큰 요인은 그동안 정치적으로 거의 배제되어 있던 소수민족, 이른바 마이너리티(minority)들의 대거 선거 참여를 들 수 있다. 흑인들뿐만 아니라 히스패닉(중남미의 스페인계 및 혼혈, 원주민들)의 선거 참여가 두드러졌다. 여기에는 기본적으로 민주당 고어 후보의 선거전략이 한몫 했다.

고어 진영은 선거 초반부터 소수민족과 여성, 노동자 계층을 자신들의 지지기반으로 삼았다. 연방정부의 역할 강화나 의료보험, 사회보장 제도의 확충 등 마치 지난 30년대 뉴딜 때의 민주당과 유사한 목소리라는 평을 받아가면서까지 이 문제에 매달렸다. 다른 한편으로 이같은 선거전략은 고어에게는 화근이기도 했다. 그의 정책이 사회의 소외계층에 주목하면서 ‘좌파’라는 평가를 받게 되고 이것이 특히 중부에서의 백인층의 지지를 상실하는 계기가 됐다. 고어가 자신의 출신지역인 테네시주에서까지 패배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고어 후보를 좌파라고 부르는 것은 한국의 시각에서 본다면 그다지 사태에 부합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미국의 정치지형은 이번에 뉴욕주 상원의원에 당선된 힐러리 클린턴이 ‘공산주의자’라고 불릴 만큼 우편향이 강하다.)

여기에다가 소수민족의 진출에 불안감을 갖고 있는 중남부의 백인-남성-중산층의 표가 클린턴 행정부에 대한 불만과 함께 대거 부시 지지표로 나타났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부시 후보의 선거전략 역시 이같은 백인사회의 전통적인 가치에 호소하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선거는 투표율이나 그 백중세에 있어서 백인주류사회와 증가하는 소수민족의 정치적 영향력이 정면으로 충돌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먼저 민주당을 보면, 비록 전통적으로 민주당이 노조에 지지세력을 갖고 있었지만 지난 80년대 초반 레이건에 의해 ‘뉴딜 코얼리션’이 붕괴된 이후 가장 폭넓고 강력한 노조의 지지를 고어 후보는 받았다. 미국의 대표적인 산별노조 전국연맹체인 AFL-CIO는 일찌감치 고어를 밀기로 결정한 뒤 전 조직력을 동원해 적극적으로 선거운동에 가담했다. 중북부의 산업지대에서 민주당이 승리한 지역은 노조의 조직력이 강한 지역과 거의 대부분 일치한다. 그러나 미국에서의 노조 조직률이 역사적으로 최저수준인 15%를 맴돌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것만 가지고는 고어가 곧 노동자들을 대표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중남부의 신흥산업지대에서는 부시 후보가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다. 따라서 고어는 노동자 일반이 아닌 조직화된 노동자들을 대표했다고 볼 수 있다.

고어가 소외계층 문제에 매달린 이유는?

성별로 본 투표성향에서는 고어는 여성 유권자들에게 더 많은 지지를 받았다. 전체 투표 여성의 60%가 고어 후보에게 표를 던진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고어의 여성표 공략은 다분히 전략적인 것이었다. 지난 94년의 깅그리치가 이끄는 공화당의 약진 이후 60년대부터 쌓아올린 여권운동의 성과들이 조금씩 무너져가는 추세 속에서 고어는 특히 낙태문제에 대해 강력한 지지의사를 밝혔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선거전략가들은 고어의 이런 전략이 남성 및 중도보수파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역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전망할 정도였다.

비록 그 강도나 지지세에 있어서 지난 10여년간보다는 더 확대되었다고 하더라도 조직화된 노동과 여성표는 전통적으로 민주당의 지지기반이었기 때문에 이것을 이 선거의 가장 큰 변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인종문제에 들어서면 정치적 지평은 확연히 달라진다.

고어 후보는 자신을 소수민족의 대변자로서 비치도록 정치적 연출을 계획했고 이 전략은 90년대 들어 히스패닉 인구 수 급증으로 인구구성비가 바뀐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다. 부시가 레이건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면서(캘리포니아는 공화당과 노동자계층, 전통적 가치 그리고 미국우선주의의 혼합물인 레이건 코얼리션의 본고장이다) 그곳에서 역전을 시도했지만 실패한 것은 팽팽했던 균형을 히스패닉 투표가 깬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현재까지의 조사결과로는 투표에 참가한 흑인의 90%, 히스패닉의 80%가 고어 후보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심지어는 전통적으로 공화당 지지로 분류되던 한인들조차 이번 선거에서는 힐러리 클린턴에게 거액의 선거자금을 대줄 만큼 민주당쪽으로 기울었다. 물론 이들이 고어의 정책에 더 호의적이기는 하지만 사실 이들의 지지열기가 고어 후보를 자신들의 정치적 대변자로 일치시킬 만큼 강력한 것은 아니다.

부시, 전통적인 미국인상의 전도사





(사진/선거재검표에 착수한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카운티 선관위(맨위).문제가 된 플로리다주 투표용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몰표가 쏟아진 것은 단지 고어의 마이너리티 코얼리션 선거전략 이상의 의미가 있다. 즉 그들에게 부시 후보가 소수민족에 차별적인 백인주류사회의 대표자로 비쳐진 점이다. 그런 만큼 이들의 투표는 지난 200년간 미국을 지배해온 전통적인 백인사회의 가치에 도전한다는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다. 여기에는 물론 부시 후보가 주지사로 있는 텍사스주가 미국 내에서도 보수적이고 차별적인 것으로 악명높다는 점도 한몫 한다. 예컨대 지난해 텍사스주에서 일어난 백인우월주의자들이 흑인을 차에 매달아 찢어죽인 사건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뿐만 아니라 90년대 후반 들어 급증하고 있는 백인우월주의 범죄(이는 이민자 급증과 소수민족 영향력 증대에 대한 백인사회의 반발이다)가 소수민족들 사이에 강력한 위기 의식을 불러일으켰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부시 후보는 가장 전통적인 미국인 상을 부각시키는 데 선거전략을 맞추었다. ‘기회’와 ‘개인의 선택’이라는 가치는 심지어 사회보장정책에까지 확대되어 자신이 낸 세금을 개인적으로 돌려받아 다시 민간부문에 재투자해 그 이윤을 챙길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고 중산층 이상의 세금을 대폭 감면하는 조세정책을 전면에 내걸었다.

그러나 부시 지지자들이 고어 지지자에 비해 훨씬 정열적으로 부시를 지지한 것은 단지 이같은 정책의 선호도 때문만은 아니다. 여기에는 부시의 퍼스낼리티 전략(쉽게 우리말로 하면 ‘인간성’ 부각 전략이다)이 주효했다. 부시는 fun guy(재미있는 사람- 미국사회에서는 몹시 중요하다. 고어의 딱딱하고 유머없는 인간성과의 비교는 주요한 선거전략이었다)로 자신을 내세웠고 무엇보다도 ‘성실성’을 제일의 무기로 삼았다. 그는 너무 유식하지도 않았으며(정반대라서 오히려 문제였다), 인간적이었고(동정적 보수주의가 그의 정치이념이다), 잘못으로부터 교훈을 배울 수 있는 사람(부시는 술로 문제를 일으킨 경력이 있다)으로 제시되었다. 특히 성실성은 온갖 불성실이 난무한 클린턴-고어 행정부의 재임 기간 동안의 미국의 이미지 실추에 대한 보상으로서 미국 제일주의와 함께 가장 중요한 동원 전략이 됐다.

따라서 백인들은 위기에 빠진 자신들의 정치적, 도덕적 영향력에 대한 해결사로서 부시를 해석했다. 그는 확실히 메시아는 아니었더라도 전도사쯤은 되었던 것이다. 놀랍게도 그동안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책에 대한 선호도는 공화당원들 사이에서조차 부시쪽보다는 민주당의 고어쪽에 더 가까웠다. 그럼에도 부시가 그만큼의 득표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정책에 대한 이견보다도 누가 이 사회를 정치적으로 지배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미국사회가 둘로 나눠진 모습을 역설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다.

연방법원에 소송 제기한 공화당의 속내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선거 투개표와 관련해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공화당쪽이 만일 연방법원에서 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수검표나 부재자 투표에서 패할 경우 입게 될 엄청난 리스크를 감수해가면서까지 정치적 문제에 사법적 판단을 의뢰한 것은 설사 여기서 부시 후보의 정치적 생명이 종료되는 한이 있더라도 앞으로 4년 동안의 고어의 민주당 정권을 최대한 무력화시키겠다는 의도로 풀이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정권은 더이상 과거의 전통적인 민주당 정권이 아니기 때문이다. 설사 대통령 선출을 둘러싼 문제들에 대해 양당 체제의 약화와 정치적 무능력에 대한 비난을 두려워한 양당이 정치적으로는 일정한 합의에 도달한다 치더라도 분열이 가시화된 데 대한 두려움과 처방은 끊임없이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미국의 정치적 변화가 가능한 조건은 바로 더이상의 외적도, 경제적 위기도 없는 상태, 냉전이 끝나고 모든 사회주의가 해체된 바로 그 상태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뉴욕=이공순 통신원ks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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