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00년09월20일 제326호 

[특집] 시를 읽으면 생기 얻는다

부담없는 친구로 막막한 마음 달래… 내면 들여다보며 자기성찰에 이르러

왜 시를 읽어야 하는 것일까. 도대체 시를 읽는 게 어떤 즐거움과 가치를 주는 걸까.

점점 빠른 속도로 사람을 옭아매는 산업사회 속에서 시는 다른 어떤 장르보다도 시대의 흐름에서 비껴서 있는 듯 보인다. 그리고 시는 왠지 어려운 것으로만 느끼고 그래서 일부 사람들만의 취미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런 세상일수록 시는 더욱 읽을 가치가 있다고 시인들은 제언한다. 시가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삶의 지혜와 이치를 깨닫게 해주는 것을 새삼 깨달을 때 더욱 삶은 풍성해질 것이라고. 그렇다면 지금 우리 시대의 대표적 시인들이 권하는 시읽기의 의미와 재미는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좋은 시 읽기는 과연 어떤 것일까.

도종환 시인은 “우리가 어떻게 마음을 다스릴지 몰라 갈피를 못 잡을 때, 우리가 어느 길로 갈지 몰라 헤매고 있을 때 시는 마음을 다스려주고 길을 찾아준다”고 예찬한다. 도 시인은 집에 돌아와 조용히 방에 들어가서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때, 직장에서도 크고 작은 일처리를 마치면 몇분이라도 시를 읽어보라고 제안한다. 바쁜 세상 속에서 소홀히 했던 내면의 모습을 가꾸는 방법을 시에서 찾으라는 권유다. “사람들은 거리를 지나가면서 자신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나 유리는 자주 쳐다본다. 그처럼 외모에 대해서는 본능적으로 관심을 갖지만 자신의 내면의 생김새에 대해서는 얼핏 유리로 고개가 돌아가는 것의 10분의 1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외모를 돌아보는 10분의 1만큼이라도 내면을 돌아보라, 시는 그 방법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내면적 성찰이란 부담스러운 명제가 다소 버겁게 느껴지겠지만, 그럴 필요도 없다. 시란 다른 사람의 언어에 공감하는 것이고, 부담없이 시를 읽고 시인의 이야기를 느껴보는 것만으로도 안정과 자기 성찰의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호승 시인은 “고통스런 세상에서 다른 사람의 시를 통해 비슷한 정서와 감정을 확인하고 맞장구치는 순간 고통은 저절로 승화된다”며 “시 속에 자신의 삶이 얼마나 투영되는지를 발견해나가면 된다”고 주관적이고 부담없이 시와 친해지라고 권고한다. “시를 읽을 때 ‘왜 이렇게 썼을까, 무슨 뜻일까’하고 생각할 필요없다. 그러면 시가 너무 어렵게만 느껴진다. 이 시가 내 삶에 어떻게 투영되는가를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혼자만의 느낌이라고 생각하던 생활 속 소소한 감정을 다른 이의 시에서 발견하는 반가움이야말로 시를 읽는 가장 큰 즐거움이자 효용이란 점은 많은 시인들이 공통적으로 짚는 대목이다. 시인 김사인씨도 그런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시를 읽지 않아도 세상을 사는 데 지장없다고 믿는 것이야말로 삶을 반듯하게 잡아주는 좋은 수단을 놓치는 것이라고 아쉬워한다. “많은 사람들이 시가 필요없다고 하지만 이 영혼과 정신적인 ‘무엇’이 없이 살아가는 게 얼마나 힘든지는 스스로 알 것이다. 그리고 그 무엇에 대한 욕구가 시에 대한 욕구라는 점을 모르고 넘어가는 것이다.” 김 시인은 바로 그런 욕구가 시에 대한 욕구라는 점을 깨닫기를 바란다. 시를 읽을 때 시를 읽는 이와 읽지 않는 삶은 커다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시인의 말은 한 가지 귀결로 통한다. 이 답답한 세상, 억눌리고 막막한 마음을 달래주는 한줄의 시는 그 가치가 영원하고, 그것을 읽는 것은 중요하다는 것이다. “열여덟살 때 나는 시라는 것이 단순히 남에게 환희를 전달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스무살 때, 시는 연극이라는 걸 깨달았죠. 가끔씩 나는 시를 갱도 속 함정에 빠져서 미칠 것 같은 불안 속에서 자기를 구출해줄 다른 갱부들이 오기를 고대하고 있는 사람에게 생기를 주는 희망과 비교해봤습니다.” 토인비가 장 콕토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처럼 살아가며 희망을 주는 친구가 있다면 그게 바로 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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