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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브레이크! 속도를 늦춰보라 “창조의 전제, 풍요한 삶의 대안” 대중적 문화코드로 떠오르는 ‘느림’의 열광적인 매력
잘 나가는 ‘느림보 캐릭터’
다레판다의 인기는 캐릭터시장의 특성에 비춰볼 때 이변에 가까울 정도다. 오로지 상품용으로만 만들어진 캐릭터임에도 만화영화의 인기를 업고 있는 피카추, 미키마우스나 푸, 버니는 물론 수십년 전통을 자랑하는 키티, 미피 등 쟁쟁한 캐릭터들을 눌렀다는 점이다. 도대체 그 이유는 뭘까. “공부만 해야 하고 늘 바쁘게 빨리 살아야만 하는 생활 속에서 실컷 잠자고 싶고 쉬고 싶은 감정에 이 다레판다를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잖아요. 다레판다는 느린 게 매력이에요.” 다레판다 팬클럽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는 김윤지(16·서울 신목고 1년)양의 말이다. 다른 다레판다 팬들도 “빠른 세상과는 동떨어져 여유롭게 사는 모습이 매력”이라고 입을 모은다. 다레판다의 느리고 한갓진 모습이 빠르고 바쁜 세상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느림보 캐릭터’가 요즘 뜨고 있다. 다레판다와 함께 요즘 젊은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스노캣’이라는 고양이 캐릭터가 조용하지만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다. 20대 일러스트레이터 권윤주씨가 만든 이 스노캣 역시 늘 뒹굴며 잠자거나 빨리빨리 돌아가는 세상과는 동떨어진 ‘느린’ 캐릭터다. 오로지 권씨의 개인 홈페이지에서만 선보이는데도 입소문이 퍼져 내려받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권씨의 홈페이지(http://www.snowcat.co.kr)에는 요즘 일주일에 수백개의 글이 게시판에 오를 정도다. 다레판다와 스노캣 같은 ‘느림보 캐릭터’의 인기에는 너무나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의 흐름 속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현대인의 욕망이 투영돼 있다. 세상은 하루 자고 일어나면 바뀌어 있을 만큼 빠르게 흘러간다. 느림과 빠름을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 ‘속도’지만, 이제는 ‘속도’라는 말 자체가 ‘빠름’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정도다. 그리고 그런 빠른 흐름에 섞여 끌려다니는 현대인들에게는 한숨 쉴 여유도, 잠시 낮잠을 잘 자투리 시간도 없다. 뒤돌아볼 시간조차 아껴 앞만 보고 뛰어가도 그 속도를 따라잡기 힘들다. 외국인들이 처음으로 배우는 한국어가 “빨리빨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유달리 빠름을 강조하는 우리 사회는 더욱 그런 현상이 심하다. 그런 현실 속에서 느림보 캐릭터들은 역설적으로 매력적인 존재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그동안 잊었던 ‘느림’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느림’의 매력은 더욱 강렬하게 현대인들을 유혹한다. 요즘 문화계에서는 이 ‘느림’이 새로운 주제로 떠오르고 있다. 현대사회의 미덕인 ‘빠름’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게으름’ 또는 ‘무능함’으로 상징되던 ‘느림’의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는 것이기도 하다. ‘느림’이 오로지 빠름에만 매달리는 요즘 세상에서 새로운 인본주의적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 이런 변화가 사람들의 삶으로 파고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문화쪽에서는 느림의 의미와 미학을 강조하는 요즘 부쩍 많아졌다.
속도의 개념에 대한 다양한 질문
시간개념을 전복시키는 사진작가 박홍천(40)씨의 작업은 ‘느림’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원래 사진이란 장르는 미술에서도 가장 ‘찰나’의 순간 미학을 추구한다. 기술발전과 더불어 더 짧은 시간을 포착해내는 카메라가 등장하고 있고, 이제 수천분의 1초까지 셔터를 누를 수 있다. 그러나 박씨의 사진은 그 반대다. 반대로 아주 느리게 촬영한다. 한곳에서 무려 30분 동안 노출해 아주 느리게 사진을 찍는 것이다. 박씨가 서울 근교의 놀이공원에서 이 방식으로 찍은 <앨리스에게 시리즈> 연작을 보면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사라지고 정지한 것, 아주 느리게 움직이는 것들만 남아 있다. 시간철학과 존재론에 대한 역설적인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사진의 시간성에 대해 한번 생각해봤어요. 원래 사진이 처음 발명됐을 때에는 노출시간이 이렇게 길고 느렸거든요. 사람들이 필요에 의해 도시를 만들었지만 이제는 정작 사람들이 도시의 부속으로 먼지 같은 존재가 돼버렸잖습니까. 이런 이미지를 사진으로 표현해보고자 하는 거죠. 시간 역시 사람이 만들어낸 개념이지만 이젠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우리의 그런 삶을 되돌아보자는 의미입니다.”
“나는 머무른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이 두 권의 책 이전에도 ‘느림’의 가치를 강조하는 책들은 꾸준히 선보여왔다. 지난 95년 밀란 쿤데라의 소설 <느림>(민음사)이 처음 등장했고, 98년에는 인간의 시간의식이 어떻게 변화해왔으며 시간이 어떻게 현대인의 일상을 지배하는지를 문화사적으로 설명한 휘트로의 <시간의 문화사>가 소개됐다. 지난해에도 현대인을 지배하는 근대적 시간관념에서 벗어나 인본주의적 시간으로 돌아가자는 독일 철학자 가이슬러의 책 <시간>(석필출판사)이 소개된 바 있다. 이들 책들은 한결같이 현대산업사회가 점점 가속되는 시간으로 사람들을 옭아매는 점을 지적했다. 쿤데라의 <느림>은 시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산업문명사회를 냉소했고, <시간의 문화사>는 시간개념이 서구 합리주의의 근간을 이루며 현대인을 지배하는 과정을 설명했다. 가이슬러의 <시간>은 현대인들을 끊임없이 추동하는 빠름 대신 느림과 기다림, 그리고 쉼을 강조한다. 느림이야말로 바로 창조의 전제이고, 느림이 신뢰와 사랑 그리고 결속을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그는 “나는 바쁘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20세기 근대적 시간관념을 “나는 머무른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탈근대적 시간관념으로 바꾸라고 역설했다. 그리고 이들에 뒤이어 최근 나온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와 <느리게 사는 즐거움>은 아예 “느림이야말로 각박한 삶을 풍요롭게 가꾸는 대안”이라고 역설한다. 일찍이 “가속은 시간의 사회적 공허함”이라고 설파했던 에밀 뒤르켐의 주장이 이제 세기말적 현상과 맞물려 새로운 반향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시간없이 바쁜 사회에서 어떻게 느림을 실천할 수 있을까.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는 느림을 “부드럽고 우아하고 배려깊은 삶의 방식”이라고 예찬한다. 느림이란 게으름과는 다른 주관적 의지가 반영된 치열한 삶의 방식이고, 그래서 결국 느림을 추구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라고 본다. 이를 실천하는 방법으로 지은이는 한가로이 거닐기, 사람의 말에 몰입해 듣기, 권태를 즐기기, 꿈꾸기, 기다리기, 글쓰기 등의 실천적 요강을 제시한다. 시간의 재촉에 떠밀리지 말고 하던 일을 잠깐 멈추고 생각해볼 시간을 가지라는 것이다.
젤린스키의 ‘느리게 사는 즐거움’
물론 모든 사람들이 젤린스키의 방법을 실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알지만 행동에 옮길 수 없는 것이기에 사람들은 더욱 이런 ‘느림’에 열광하며 잠시나마 느리게 사는 꿈을 꾸는 것이 아닐까.
구본준 기자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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