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00년08월30일 제324호 

[특집] 브레이크! 속도를 늦춰보라

“창조의 전제, 풍요한 삶의 대안” 대중적 문화코드로 떠오르는 ‘느림’의 열광적인 매력


(사진/네티즌 사회에서 인기높은 느림보 캐릭터 ‘스노캣’. 느린 것과 잠자는 모습에 네티즌들은 “나와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내가 바라는 삶을 보여준다”며 열광하고 있다)


느릿느릿 굼뜬 모습으로 널브러져 있는 캐릭터가 있다. 일본 산엑스사가 만든 ‘다레판다’란 캐릭터다. 대부분의 동물캐릭터들이 활발하고 까불거리지만, 다레판다는 절대로 그런 법이 없다. ‘늘어져 있다’는 뜻의 일본어 ‘다레’가 이름일 정도로 느림보다. 그저 누워 있거나 옆으로 뒹구는 모습으로만 그려진다. 활달한 동물캐릭터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에게는 도대체 왜 이런 캐릭터를 만들었나 싶을 정도다. 그런데, 요즘 이 다레판다가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데 이어, 요즘에는 국내에서도 선보인 지 몇달 만에 현재 팬시업계 최고의 인기상품이 됐다.

잘 나가는 ‘느림보 캐릭터’


(사진/느림보 팬더곰 ‘다레판다’는 요즘 가장 잘 나가는 캐릭터 상품이다. 느리고 귀여운 모습이 젊은이들을 사로잡고 있다)


서울 교보문고의 초대형 팬시상품 매장에서도 다레판다는 요즘 여러 캐릭터 가운데 단연 매출 1위를 달리고 있다. 매장 담당 권헌교 주임은 “다레판다 상품 판매량이 2위 그룹 매출의 두배가량”이라고 설명했다. “보고 있으면 편하고 여유로워서인지 찾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보통 캐릭터상품은 10대들만이 수요층인데 다레판다는 특히 20대들도 많이 찾고 있어 인기가 당분간 계속될 것 같습니다.”

다레판다의 인기는 캐릭터시장의 특성에 비춰볼 때 이변에 가까울 정도다. 오로지 상품용으로만 만들어진 캐릭터임에도 만화영화의 인기를 업고 있는 피카추, 미키마우스나 푸, 버니는 물론 수십년 전통을 자랑하는 키티, 미피 등 쟁쟁한 캐릭터들을 눌렀다는 점이다. 도대체 그 이유는 뭘까. “공부만 해야 하고 늘 바쁘게 빨리 살아야만 하는 생활 속에서 실컷 잠자고 싶고 쉬고 싶은 감정에 이 다레판다를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잖아요. 다레판다는 느린 게 매력이에요.”

다레판다 팬클럽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는 김윤지(16·서울 신목고 1년)양의 말이다. 다른 다레판다 팬들도 “빠른 세상과는 동떨어져 여유롭게 사는 모습이 매력”이라고 입을 모은다. 다레판다의 느리고 한갓진 모습이 빠르고 바쁜 세상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느림보 캐릭터’가 요즘 뜨고 있다. 다레판다와 함께 요즘 젊은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스노캣’이라는 고양이 캐릭터가 조용하지만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다. 20대 일러스트레이터 권윤주씨가 만든 이 스노캣 역시 늘 뒹굴며 잠자거나 빨리빨리 돌아가는 세상과는 동떨어진 ‘느린’ 캐릭터다. 오로지 권씨의 개인 홈페이지에서만 선보이는데도 입소문이 퍼져 내려받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권씨의 홈페이지(http://www.snowcat.co.kr)에는 요즘 일주일에 수백개의 글이 게시판에 오를 정도다.

다레판다와 스노캣 같은 ‘느림보 캐릭터’의 인기에는 너무나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의 흐름 속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현대인의 욕망이 투영돼 있다. 세상은 하루 자고 일어나면 바뀌어 있을 만큼 빠르게 흘러간다. 느림과 빠름을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 ‘속도’지만, 이제는 ‘속도’라는 말 자체가 ‘빠름’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정도다. 그리고 그런 빠른 흐름에 섞여 끌려다니는 현대인들에게는 한숨 쉴 여유도, 잠시 낮잠을 잘 자투리 시간도 없다. 뒤돌아볼 시간조차 아껴 앞만 보고 뛰어가도 그 속도를 따라잡기 힘들다. 외국인들이 처음으로 배우는 한국어가 “빨리빨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유달리 빠름을 강조하는 우리 사회는 더욱 그런 현상이 심하다. 그런 현실 속에서 느림보 캐릭터들은 역설적으로 매력적인 존재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그동안 잊었던 ‘느림’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느림’의 매력은 더욱 강렬하게 현대인들을 유혹한다.

요즘 문화계에서는 이 ‘느림’이 새로운 주제로 떠오르고 있다. 현대사회의 미덕인 ‘빠름’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게으름’ 또는 ‘무능함’으로 상징되던 ‘느림’의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는 것이기도 하다. ‘느림’이 오로지 빠름에만 매달리는 요즘 세상에서 새로운 인본주의적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 이런 변화가 사람들의 삶으로 파고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문화쪽에서는 느림의 의미와 미학을 강조하는 요즘 부쩍 많아졌다.

속도의 개념에 대한 다양한 질문


(사진/30분 동안 노출해 ‘느리게’ 찍은 박홍천씨의 사진 작품. 빠르게 움직이던 것들은 사라지고, 정지해 있거나 아주 느린 것들만 남았다)


느림과 빠름의 의미, 곧 속도의 개념에 대한 다양한 질문과 시도가 나오는 장르로는 미술이 있다. 원래 전통 동양회화는 느림의 가치를 추구해왔다. 동양화에서 느림과 빠름의 속도개념은 상대적이고 모호하다. 동양화에서 그림을 수련하는 시간은 무척이나 길고 느리지만, 실제 그림을 그릴 때에는 일필휘지로 순식간에 그려나간다. 과연 느린 것이 꼭 느린 것인지, 빠른 것이 진짜 빠른 것인지 잘라 말하기 어려운 것이 동양화다. 반면 서양화에서는 이런 철학적 시간개념이 별로 없다. 사실 지난 세기 세계미술은 ‘빠름’을 강조하는 서구의 근대적 시간관이 지배해왔다. 20세기 초 “폭주하는 경주자동차가 그리스의 명품 <사모트라케의 승리의 날개>보다 아름답다”고 외쳤던 미래파들의 주장은 이런 속도관을 대변한다. 그리고 한국 현대 미술 역시 속도적 관점으로 볼 때는 빠름을 추구하는 서구근대사회의 가치관이 배어있었다. 그러나 90년대 후반들어 일군의 젊은 국내 작가들이 ‘느림’이란 동양적 개념을 우리 미술에 도입하고 나섰다.

시간개념을 전복시키는 사진작가 박홍천(40)씨의 작업은 ‘느림’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원래 사진이란 장르는 미술에서도 가장 ‘찰나’의 순간 미학을 추구한다. 기술발전과 더불어 더 짧은 시간을 포착해내는 카메라가 등장하고 있고, 이제 수천분의 1초까지 셔터를 누를 수 있다. 그러나 박씨의 사진은 그 반대다. 반대로 아주 느리게 촬영한다. 한곳에서 무려 30분 동안 노출해 아주 느리게 사진을 찍는 것이다. 박씨가 서울 근교의 놀이공원에서 이 방식으로 찍은 <앨리스에게 시리즈> 연작을 보면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사라지고 정지한 것, 아주 느리게 움직이는 것들만 남아 있다. 시간철학과 존재론에 대한 역설적인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사진의 시간성에 대해 한번 생각해봤어요. 원래 사진이 처음 발명됐을 때에는 노출시간이 이렇게 길고 느렸거든요. 사람들이 필요에 의해 도시를 만들었지만 이제는 정작 사람들이 도시의 부속으로 먼지 같은 존재가 돼버렸잖습니까. 이런 이미지를 사진으로 표현해보고자 하는 거죠. 시간 역시 사람이 만들어낸 개념이지만 이젠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우리의 그런 삶을 되돌아보자는 의미입니다.”

“나는 머무른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사진/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는 작가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김수자씨의 영상작품.'느린 감상'을 필요로 한다)


올해초 이런 미술적 시도들을 모은 전시회인 ‘느림’전이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기도 했다. 당시 이 전시에 참여했던 김수자씨의 작품도 이런 경향을 보여준다. 김씨는 이후 열린 개인전에서도 ‘느림’을 방법론적으로 사용하는 비디오작품을 선보여왔다. 비디오 속에서 김씨는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 한가운데 서 있다.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서 멈춰있는 김씨의 모습은 되려 더욱 도드라진다. 또한 하염없이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는 김씨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찍은 작품을 감상하는 데도 무척이나 느리게 흐르는 시간을 필요로 하는 점에서 ‘느림’이 주요한 도구로 적용된다.미술에서 ‘느림’ 현상이 아직 소수의 시도에 머무르고 있다면, 출판계에서는 요즘 ‘느림’이 대중적인 문화코드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소개된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상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동문선)와 미국 작가 어니 젤린스키가 지은 <느리게 사는 즐거움>(물푸레)은 이런 현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책들이다. 두 책 모두 느림을 갈구하는 사람들의 동감을 얻으면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상소의 <느리게 산다는 의미>는 요즘 주요 대형서점 베스트셀러 종합순위에서 4∼6위에 올라 있고 비소설 부문에서는 1∼2위를 기록하고 있다. <느리게 사는 즐거움> 역시 발매 첫주에 교보문고 비소설부문 9위에 올랐다.

이 두 권의 책 이전에도 ‘느림’의 가치를 강조하는 책들은 꾸준히 선보여왔다. 지난 95년 밀란 쿤데라의 소설 <느림>(민음사)이 처음 등장했고, 98년에는 인간의 시간의식이 어떻게 변화해왔으며 시간이 어떻게 현대인의 일상을 지배하는지를 문화사적으로 설명한 휘트로의 <시간의 문화사>가 소개됐다. 지난해에도 현대인을 지배하는 근대적 시간관념에서 벗어나 인본주의적 시간으로 돌아가자는 독일 철학자 가이슬러의 책 <시간>(석필출판사)이 소개된 바 있다.

이들 책들은 한결같이 현대산업사회가 점점 가속되는 시간으로 사람들을 옭아매는 점을 지적했다. 쿤데라의 <느림>은 시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산업문명사회를 냉소했고, <시간의 문화사>는 시간개념이 서구 합리주의의 근간을 이루며 현대인을 지배하는 과정을 설명했다. 가이슬러의 <시간>은 현대인들을 끊임없이 추동하는 빠름 대신 느림과 기다림, 그리고 쉼을 강조한다. 느림이야말로 바로 창조의 전제이고, 느림이 신뢰와 사랑 그리고 결속을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그는 “나는 바쁘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20세기 근대적 시간관념을 “나는 머무른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탈근대적 시간관념으로 바꾸라고 역설했다.

그리고 이들에 뒤이어 최근 나온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와 <느리게 사는 즐거움>은 아예 “느림이야말로 각박한 삶을 풍요롭게 가꾸는 대안”이라고 역설한다. 일찍이 “가속은 시간의 사회적 공허함”이라고 설파했던 에밀 뒤르켐의 주장이 이제 세기말적 현상과 맞물려 새로운 반향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시간없이 바쁜 사회에서 어떻게 느림을 실천할 수 있을까.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는 느림을 “부드럽고 우아하고 배려깊은 삶의 방식”이라고 예찬한다. 느림이란 게으름과는 다른 주관적 의지가 반영된 치열한 삶의 방식이고, 그래서 결국 느림을 추구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라고 본다. 이를 실천하는 방법으로 지은이는 한가로이 거닐기, 사람의 말에 몰입해 듣기, 권태를 즐기기, 꿈꾸기, 기다리기, 글쓰기 등의 실천적 요강을 제시한다. 시간의 재촉에 떠밀리지 말고 하던 일을 잠깐 멈추고 생각해볼 시간을 가지라는 것이다.

젤린스키의 ‘느리게 사는 즐거움’


(사진/빠른 속도만을 추구하는 세태를 비판하고 느림의 가치를 역설하는 책들이 요즘 인기다)


<느리게 사는 즐거움>의 저자 젤린스키 역시 비슷한 해법을 내놓고 있다. 잠시 속도를 늦추고 더없이 귀중한 순간들을 즐기라는 것이다. 차에서 내려 잔디 위를 맨발로 걸어보고, 한달에 한번은 무조건 샴페인을 마셔본다든지, 또는 낮잠을 자는 것 등 누구나 알면서 실천하지 못하는 단순하지만 명쾌한 방법론을 그는 강조한다. “당신이 더 많은 것을 살수록 당신이 이미 갖고 있던 것들을 즐길 시간은 줄어든다. 불이 당신을 따듯하게 해주길 기다리며 서성거리지 말고, 당신이 먼저 불을 피우면 되는 것이다.” 실제 그는 일주일에 나흘만 일하고, 영어 달 이름에 ‘r’자가 들어가지 않는 달(5, 6, 7, 8월)은 무조건 쉰다고 한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젤린스키의 방법을 실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알지만 행동에 옮길 수 없는 것이기에 사람들은 더욱 이런 ‘느림’에 열광하며 잠시나마 느리게 사는 꿈을 꾸는 것이 아닐까.

구본준 기자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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