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00년08월16일 제322호 

[특집] "서울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박계동 전 의원의 택시동승기- 그가 택시 유리창 너머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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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자사자’해야 최고가 9만원 남짓입니다. 잠도 못 자고 화장실도 제때 못 가고, 그렇다고 국회의원 출신 박계동이가 택시운전기사를 대충 놀고 먹고 설렁설렁했단 소린 들을 수 없고요. 죽어라고 하고 있습니다.”


(사진/비눗물 젖은 스펀지로 자신의 애마 ‘59호’를 닦는 운전기사 박계동)


8월3일 새벽 3시, 서울 강서구 화곡동 택시회사 (주)금구상운의 차량기지. 주위는 온통 짙은 어둠에 휩싸여 있건만 이곳은 대낮처럼 환하다. 교대시간에 맞추기 위해 다투어 들어서는 택시들의 소음, 막 운행을 마치고 차량교대에 바쁜 택시 운전기사들의 수런거림…. 박계동(48)씨는 운행에 앞서 택시 이곳 저곳을 부지런히 닦고 있었다. 이번주에는 새벽 3시부터 오후 3시까지 운행하는 주간반이다. 새벽부터 일어나 푸른색 제복을 입고 비눗물 젖은 스펀지로 차량을 이리저리 씻는 그의 모습에서는 제법 이력이 난 운전기사 티가 났다.

육체노동을 택한 이유

그가 잠시 기사대기실에 들렀다. 이 사람, 저 사람이 말을 건넨다. 마침 이날 뉴스에 그의 이름이 거론됐던 탓이기도 하다. “박 의원님, 방송에 8·15 사면·복권 대상자 명단에 들어가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잘될 것 같습니까?” “글쎄요, 복권되면 좋겠지만 어째 개운치 않아요. 들러리 서는 것 같기도 하고….” 이번에는 박씨가 대기실에 홀로 멀쭝히 서 있는 50대쯤 보이는 낯선 사내를 보고 말을 건넸다. “처음 뵙는군요.” “네, 오늘부터 시작합니다.” “아이고, 아저씨도 IMF형 실업자인가봐요. 열심히 하세요.” 비록 짧은 시간이건만 대기실에서 밝은 미소로 일일이 기사들을 상대하며 스스럼없이 얘길 나누는 그는 역시 ‘전직 국회의원 출신의 정치인 박계동’이었다.

박씨가 택시기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처음 세상에 알려졌을 때, 그 반응은 크게 상반됐다. “역시 노태우 비자금을 폭로한 스타의원다운 신선한 충격”이란 반응이 있었다. 그렇지만 “장래 의원자리를 향한 선거전략 차원이 아니겠냐”라는 곱지 않은 시선도 적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가 지금 택시기사를 하는 진짜 속내는 뭘까? 또 한때 화려한 스타의원인 그가 지난 한달 넘게 택시기사를 하면서 무얼 느꼈고, 어떻게 서울과 세상을 읽었을까. 이러저러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직접 그의 택시를 타보기로 했다.

새벽 3시30분. 박씨가 익숙한 솜씨로 자신의 애마 ‘59호’(차량 끝번호 1259) 프린스 차량을 몰고 새벽공기를 가른다. 거리는 간 밤의 비로 촉촉이 젖어 있었다. “밤에는 그냥 무작정 달리는 게 아니라 사람이 있는 대로 가야 돼요. 강서구청 뒷골목으로 일단 가죠. 그곳이 이 동네 유흥가죠.” 낚시를 던질 곳을 재빨리 알아채는 낚시꾼처럼 그는 어디로 가야 돈이 되는 줄 알고 있었다. 어느새 강서구청 뒤쪽에 다다랐다. 벌써 상당수 택시들이 먼저 와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택시기사 왜 해요?” 뜻밖에 박씨는 “좌절감, 무기력증 때문이었다”고 선선히 고백했다. “낙선 뒤 미국 미주리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16대에서 재기를 노렸으나 뜻밖에 선거법 위반혐의로 기소돼 결국 선거에 출마조차 못했죠. 그뒤, 국회도서관에서 연구에 몰두하기도 했습니다만, 맘을 잡을 수 없었어요. 이래선 안 되겠다 내가 나를 세워야겠다고 생각했죠. 뭔가 해야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럴 땐 육체노동을 하는 게 최고란 생각에, 또 앞으로 현실에 뿌리를 둔 생활정치를 위해서도 택시기사가 가장 좋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서울 교통 표지판, 말이 됩니까?

박씨는 지난 92년 14대 국회의원 선거 때 강서갑에서 출마해 당선됐다. 특히 그는 95년 국회의사당 단상에서 노태우비자금 4천억원을 폭로해 세간의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뜻밖에 지난 96년 15대 총선에서 낙선의 쓴잔을 마셔야 했다. 한동안 미국에서 공부를 하다 16대 총선에서 재기를 노렸으나 이번에는 선거법 위반이 발목을 잡았다.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지난해 법원은 박씨에게 사전선거운동 혐의로 6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이 때문에 그는 99년 16대 총선에서는 자격미달로 아예 출마하지도 못했다.

택시기사를 하는 이유에 대해 그는 8월10일, 국회도서관 연구실에서 가진 두 번째 인터뷰에서 한 가지 이유를 더 보탰다. “생각은 96년 미국에 있을 때부터였죠. 늘 세계적인 대도시 서울의 교통시스템이 문제가 많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이를 직접 확인해 개선책을 찾아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는 사례를 직접 살펴보고 싶었습니다. 자, 서울의 교통표지판 보세요. 말이 됩니까. 초행인 사람도 바로 찾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외국인들은 어디 지도 가지고 제대로 길찾을 수 있겠어요.” 교통문제만 나오면 박씨의 말은 늘 한 옥타브 높아진다. 그동안 택시기사 경험에 따른 자신감도 다분히 있는 것 같다. “예컨대 연세대 앞에서 수색으로 가려고 한다 합시다. 연세대에서 죽 가다가 고가도로 앞에서 표지판이 나오는데 성산대교와 모래내 방향으로 각각 나눠 표시돼 있습니다. 그런데 수색방향 표시가 없죠. 갑자기 수색은 사라진 것입니다. 낯선 사람들은 수색표시를 쫓아가다 수색이 갑자기 사라지니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죠. 이러다가 교통사고가 나는 것입니다.”

손님이 잘 잡히지 않자 이번에는 강서구청에서 시내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얼마쯤 갔을까. 30대 후반쯤으로 뵈는 한 사내가 차를 세웠다. 드디어 오늘의 첫 손님이다. 택시기사로서 제일 신날 때가 이때란다. 그런 만큼 손님을 맞는 그의 목소리가 힘차다. “어서오세요” “어, 아니 박 의원님 아니십니까? 이거 영광입니다.” 놀란 쪽은 되레 상대방이다. 뒷자리에 앉아있던 기자가 “어떻게 박 의원을 금방 알아보느냐”고 묻자 첫 손님은 “신월동에서 30년 동안 산 이곳 토박이”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강서갑에서 출마한 박 의원을 왜 모르겠냐는 반문이다. “회사원들을 상대로 지갑이나 시계를 팝니다만 사실 이미테이션 장사죠. 불법 장사인 셈이죠. 죄책감이 들기도 합니다만 먹고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의원님!” 어느새 박씨는 택시기사가 아닌 의원님이 돼 있다. “의원님, 우리 같은 없는 사람도 돈벌어 기 한번 피우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 잠깐 저기서 유턴해 세워주십시오.” 첫 손님은 꼭 전화번호를 적어 달라고 했다. 나중에 연락하겠다며. 내리면서 그는 다음에 출마하면 자신의 친구들을 동원해 확실히 도와주겠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여하튼 택시기사로의 변신은 나름대로 박씨에게 또다른 부가가치를 올리고 있는 것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았다.

박씨는 택시 일을 마치고 남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국회도서관 524호으로 간다. 그는 “우리 국가 시스템에 대한 총체적 처방전을 담은 책을 펴낼 작정”이란 포부를 밝혔다.

“언젠가는 택시기사들 들고 일어날 겁니다”


(사진/95년 국회의사당 단상에서 노태우비자금 4천억원을 폭로하던 박계동 의원. 15대 총선에서 낙선의 쓴잔을 마셨던 그는 16대 때는 선거법 위반으로 출마조차 하지 못했다.)


그의 첫 벌이는 기본요금인 1300원. 시간은 벌써 1시간이 훌쩍 넘어갔는데 아직 2000원도 못 넘고 있다. 큰일났다. 적어도 새벽나절 2∼3시간에 2만원 이상을 반드시 올려야 그나마 하루벌이 기본은 하는데. 박씨는 급히 다시 차를 강서구청쪽으로 몰았다. 돈을 보니 솔직히 벌이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벌이는 어땠어요?” “택시기사란 게 하루종일 뼈빠지게 달려도 기본급 조금 채울 정도입니다. 해보니까, 이게 말이 안 되더라고요. 금구상운은 하루하루씩 계산하는 사납금 제도 대신 한달 총액대비로 계산하는데, 즉 한달 192만원을 입금하고, 그 나머지 벌이와 40여만원 기본급을 합하면 자기 봉급이 되죠. 192만원을 한달 노동일수로 계산하면 하루에 평균 7만7천원 꼴은 벌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적어도 이보다 많이 해야 남는 장사죠. 하지만 보통 8만8천원이고, ‘죽자사자’ 해야 최고가 9만원 남짓입니다. 잠도 못 자고 화장실도 제때 못 가고, 그렇다고 국회의원 출신 박계동이가 택시운전기사를 대충 놀고 먹고 설렁설렁했단 소린 들을 수 없고요. 죽어라고 하고 있습니다.”

박씨는 8월10일 인터뷰에서, 7월 한달간 월급을 이날 받기로 돼 있는데 대충 약 85여만원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한달 죽어라고 한 결과 치고는 터무니없이 적은 돈이라는 생각에 울화가 치민다고 했다. 어느새 울분에 찬 택시기사가 돼 정부의 택시정책에 대해 강한불만을 제기한다. “이대로 가다간 언젠가 택시기사들 들고 일어날 겁니다. 이래가지고 어디 살 수 있겠습니까. 밤에 식당에서 일하는 아줌마들 월급이 120만원 정도입니다. 그런데 죽자사자 화장실도 제때 못 가고 피로에 쩔면서 한달 꼬박 일하는 택시기사 월급이 기껏 80여만원 안팎이라니 이것도 사고가 나거나 딱지라도 떼이면 제대로 못 챙길 때가 많아요.”


(사진/김포공항 택시 승강장. 익숙한 솜씨로 뒷트렁크에 짐을 싣고 손님을 맞이한다)


시간이 벌써 5시에 가까웠다. 하지만 손님들이 차를 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느긋한 박씨에 비해 기자가 더 초조해졌다. 동승 취재한답시고 하루 영업을 망치는 게 아닐까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박씨가 김포공항으로 차를 몰았다. 김포공항은 기사들에겐 매력적이면서 리스크가 있는 곳. 운 좋으면 여유있게 기다리다 ‘장타’(한번에 2만원 이상 버는 장거리 운행)를 날릴 수도 있고, 운 나쁘면 죽쑬 수도 있다. 벌써 수많은 택시들이 꼬리를 물고 대기하고 있었다. 손님을 기다리는 동안 “택시기사를 하면서 가장 크게 뼈저리게 느낀 대목이 뭐냐”고 물었다.

그는 “이 사회의 밑바닥 사람들 얘기를 들으면서 결국 모든 것은 시스템의 문제다. 개혁은 바로 이 시스템을 총체적으로 바꾸어 내는 것이란 점을 절실하게 깨달은 점”이라고 답했다. “이 개혁에는 제일 중요한 게 우선 세제개혁입니다. 지난해 국가예산이 89조인데, 음성탈루소득은 158조나 됐습니다. 1명만 세금내고 2명은 그냥 무임승차했다는 결론이죠. 표준화도 중요하죠. 도로표지조차 표준화가 안 돼 있잖습니까. 쾌적한 환경도 중요하죠. 서울에 디젤차량 진입 금해야 하죠. 유통시스템도 문제입니다. 신자유주의적 경제철학의 문제는 이루 말할 수도 없고요.” 박씨는 택시 일을 마치고 남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국회도서관 524호으로 간다. 바로 이런 문제를 총괄적으로 짚어주는 책을 쓰기 위해서다. 그는 “우리 국가 시스템에 대한 총체적 처방전을 담은 책을 펴낼 작정”이란 포부를 밝혔다.

동료 택시기사들의 격려


(사진/동료 택시기사들의 격려는 그에게 큰 힘이다)


요즘 정치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 시스템이 무너지고 있는 데도 정치권은 여전히 판세싸움에 정신없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조차 없어요.” 박씨의 목소리가 또 갑자기 고음으로 치솟았다. “개혁, 지금 제대로 개혁한다고 보십니까?” 어느새 날이 밝았다. 아침 6시. 박씨가 공항 식당으로 가 아침을 들자고 했다. 식사를 하면서 박씨는 그동안 하루하루 택시운행의 나날을 메모해두었다면서 여러 가지 재밌고 때로는 의미있는 체험을 많이 겪었다고 털어놨다. “종로2가를 새벽 시간에 가 본 적이 있나요? 아니 종로2가 아니라 어느 곳에든 차분히 밤의 서울을 본 적이 있나요. 먹다버린 캔, 구토물 등이 어지러히 늘려 있는 가운데 밤귀신들이 새벽에 유령처럼 떠도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술집종업원, 실업자, 방황하는 청소년들. 이들은 5시께 미화원들이 나타나면 어슬렁어슬렁 거리며 어딘가로 숨어들어가죠.” 박씨는 이들의 모습에서 “흔들리는 서울을 본다”고 했다. “중산층이 흔들립니다. 서울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택시 유리창 너머 서울은 지금 무기력하고 자신을 방어해줄 사람이 없는 모습입니다. 몇년간 강북사람들이 크게 흔들렸습니다. 이젠 강남, 강북없이 모두 흔들립니다. 직업이 없어 흔들리고, 타락해 흔들리고. 이게 오늘의 서울입니다.” “어때요, 이젠 할 만합니까? 약속대로 3달에 그칠 작정입니까?”라고 물었다. “요즘 제가 만성피로에 쌓여 있어요. 이제 제대로 택시기사가 된 것 같아요. 택시기사들은 모두 만성피로군에 쌓여 있거든요. 3달? 6달? 달 수가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뭔가 새로운 변화의 계기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겁니다.” 다시 택시 승강장. 얘기 도중 많은 택시기사들이 다가와 악수를 건네고 격려를 보탠다. 한 택시기사는 싱긋이 웃으면서 쪽지만 주고 후닥닥 가버린다. “힘내세요, 박계동 의원님. 다음에 꼭 당선되세요.” 박씨가 고단한 택시기사를 즐거이 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격려 때문이 아닐까도 싶다.

오전 6시30분. 그의 차례가 거의 다왔다. 그런데 바로 앞차량에서 문제가 생겼다. 타야 할 손님과 운전기사 모두 머뭇거리고 있는 것이다. 해외여행 갖다온 젊은 부부들인데 강서구 가양동으로 가자고 했기 때문이다. 한 시간 넘게 기다린 끝에 겨우 몇천원 나오는 가양동이니 운전기사가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하는 수 없는 듯 박씨가 거침없이 나선다. “저, 타시죠” 하며 익숙한 솜씨로 뒷트렁크에 짐을 싣고 손님을 맞이하는 택시기사 박씨. 어느덧 그는 손님을 싣고 쏜살같이 사라졌다.

이창곤 기자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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