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00년08월16일 제322호 

[특집] 한없이 작아진 당신!

깊은 상실감 쓰다듬으며 재기를 꿈꾸는 낙선의원들의 삶과 회한

“우리 현실은 아무리 선수가 많아도 당선자가 무조건 우선이야. 지역구 행사 때는 연설기회도 잘 안 주고, 공항가면 초선은 의전관이 귀빈실로 모셔가지만 전직의원은 본 체 만 체해.”


(사진/현역 때와는 비교가 안되는 낙선의원의 처지를 실감한다는 임복진 전 의원)


4·13총선이 끝난 지 4개월. 각종 특권과 권위의 상징인 ‘금배지’를 떼고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온 낙선의원들은 변한 현실 속에서 고단한 여름나기를 하고 있다.

현역의원 시절 누리던 각종 특권과 상임위장에서 각 부처 장관들을 준열히 꾸짖던 일도 그저 옛 기억일 뿐이다. 오히려 공무원들에게 전화조차 꺼릴 정도로 위축돼 있는 스스로의 모습에 자괴감마저 느끼며 각자 형편에 따라 적응 방법을 달리하며 재기할 날만 기다리고 있다.

현역 때는 상상도 못하던 일들

‘은둔생활’ ‘해외유학’ ‘문학 동호회 활동’ ‘연구단체 설립’ 등 그 형태도 다양하다. 몇몇 낙선의원들은 심한 무력감에 빠져 집 안팎을 오가며 그저 하릴없이 시간을 때우기도 한다.

서울 여의도 63빌딩 옆 라이프오피스텔 617호. 선풍기와 복사기 한대, 허름한 소파가 놓여 있는 4평 남짓한 좁은 방. 지난 8년간 국회 국방위원과 정보위원으로 활동한 임복진(광주 남) 전 의원이 낙선 뒤 새 둥지를 튼 곳이다.

“집에만 있으면 무력해지고, 국방전문가로의 경험을 살려 남북관계 진전에 맞춰 뭔가 기여할 것이 있을 것 같기도 해서….” 그는 사무실을 차린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매일 아침 10시면 어김없이 출근해 국민 참여를 바탕으로 성역화된 군을 개혁하는 방안, 가칭 ‘참여안보론’을 정립하기 위한 기초작업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현역 시절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조건이 열악하다. 돈이 달려 보좌진은 일찌감치 내보냈다. 두달 전부터는 운전기사까지 다른 곳에 취직시킨 뒤 직접 운전을 한다.

“현역 때와는 비교도 안 돼. 정말 확 달라지더라고. 후원금도 뚝 끊기고 나도 미안해서 손도 못 벌리지. 참 무서운 나라야….” 임 전 의원은 낙선 뒤 자신에게 닥친 변화를 이렇게 설명했다. 운전에 익숙지 못해 차선을 변경하다 교통경찰의 단속을 받고 면허증을 내보이는 수모(?)를 겪은 일 등 현역 때는 상상도 못했던 일들을 담담하게 털어놨다. 그러나 그는 그 정도는 평범한 시민이 겪는 불편이려니 하면 참을만 하단다. 그러나 국방관련 연구서를 쓰려고 하는데 의원 시절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각종 군 관련자료에 접근하지 못하고 정부에 뭔가 할말이 있는데 말문이 막히는 대목에서는 울분마저 느낀다. “솔직히 어떤 때는 울화가 치민다. 의정활동은 참 열심히 했는데….” 한숨 돌린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하지만 어쩌겠어. 유권자가 심판한 것인데…. 더 많은 수양하면서 괴롭지만 정말 소중한 시간으로 활용해야지.”그의 말마따나"군에서는 장성으로 지난 8년간은 의원으로 대접만 받던 인생"에서 깨어나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법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는 셈이다.

15대 국회에서 노동계 몫으로 전국구에 발탁됐던 방용석 전 의원. 그도 공천탈락 뒤 닥친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 “노사분규가 많아지면서 노조쪽에서는 나를 찾아와 여러 가지 어려운 이야기를 하는데, 정말 나서기 어렵다. 현역 때는 효과가 있건 없건 정부나 노조쪽에 대안을 제시할 수 있었지만 요즘은 정부쪽에는 말 꺼내기도 두렵다. 현역 환경노동위원들이 있는데 끼어드는 것 같아 모양새도 안 좋고….”

그는 요즘 집안에서 소일을 하면서 새로운 역할을 모색중이다. “불편함? 그러려니 해야지. 좀더 쉬면서 뭔가 할 일을 찾아야지 뭐.”

한영애·김봉호·조찬형, 지구당 사수 안간힘


(사진/이영일 전 민주당 대변인은 현역 시절부터 맡아온 한중문화협회 사업에 몰입하면서 낙천·낙선의 고통을 잊으려 한다)


낙선 뒤 아예 울화병을 얻은 사람도 있다. 15대 국회에 전국구 의원으로 진출해 본회의장에서 한껏 목청을 높였던 한영애 전 의원. 지난 4월13일 총선 때 민주당 공천자로 전남 보성·화순에 출마했다 무소속으로 나온 박주선 전 청와대법무비서관에게 패한 그는 “요즘 기침이 잦아지고 이가 들떠 병원에 갔더니 울화병이라고 진단하더라”면서 “일체의 활동을 중단하고 몸과 마음을 요양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주변 상황은 그가 분을 쉽게 가라앉힐 수 없도록 한다. 박 의원이 민주당에 입당한 뒤 지역구를 내놓으라는 당 안팎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현재 지구당 사무원과 국장이 매일 출근해 업무를 처리하는 등 정상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일부 호남지역 재입당 의원들과 최고의원 선거에서 표를 더 얻으려는 후보들이 그런 이야기를 한다. 역대정권에서 승승장구한 사람과 당을 위해 평생 봉사한 사람을 어떻게 동일하게 취급할 수 있냐. 그것은 계략이며 낙선한 동지에 대한 확인사살이다.” 한 전 의원이 무작정 버티기를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아직 박 의원이 옷로비 사건으로 계류중이다. 재판결과도 보고 당 기구가 정비된 뒤 개혁완수를 위해 지구당을 겸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자진사퇴하겠다. 하지만 지금 강제로 정리하는 것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 퇴각의 명분이 주어지면 알아서 물러날테니 좀 기다려 달라는 것이다.

국회부의장까지 지낸 5선의 김봉호(해남·진도) 전 의원. 민주당 핵심 중진인 그는 요즘 당사에 발을 끊었다. 대신 서울 아현동 ‘가락김씨 종친회 사무실’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며 무소속 당선 뒤 민주당에 입당한 이정일 의원에 대한 대응 방안 등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그에게도 지구당 포기 요구가 은근히 전달되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 직후 이 의원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수십건씩 검찰에 무더기 고발했던 그는 지난달에는 이책 이상 조직원 1만명의 서명을 받아 “재판 결과가 나올 때 가지 지구당 개편대회를 유보해달라”는 건의문을 중앙당에 내는 등 맞대응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현재 고발내용 가운데 6건이 기소된 만큼 아직 포기할 단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해남진도는 기소된 건수가 많고 재판이 진행중이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그러나 김 전 의원은 자신의 힘이 예전같지 않음을 절감하면서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곳저곳 청원도 하고 뛰어다녔지만 검찰이 고발 안 한 건이 더 많다. 빨리 재수사해야 하는데….”

이미 14대 총선에서 한 차례 낙선을 경험한 이강희(인천 남을) 전 의원운 이들과 달리 낙선의 현실적 의미에 이미 익숙해져 있다.

이길재·이우재, 손잡고 왕성한 활동


(사진/이길재 전 의원은 ‘한국농수산방송설립위원회’ 사무실을 차려놓고 내년 봄 개국을 목표로 뛰고 있다)


“우리 현실은 아무리 선수가 많아도 당선자가 무조건 우선이야. 지역구 행사 때는 연설기회도 잘 안 주고, 공항가면 초선은 의전관이 귀빈실로 모셔가지만 전직의원은 본 체 만 체해.” 그는 특히 낙선 뒤 겪는 공무원들의 매정한 태도를 강조하며 나름의 처신법을 일러줬다. “행정부라는 데는 정말 민감하다. 현역 때는 찾아와 온갖 짓을 다하지만 낙선된 순간 모든 게 단절된다. 나는 그걸 알기 때문에 아예 공무원에게는 전화도 안 한다. 괜히 수모를 겪을 필요가 없지 않냐.” 그는 첫 낙선으로 마음 고생이 심할 다른 낙선자들을 향해 몇 마디 충고도 했다. “물론 절치부심해야지요. 하지만 현역 때 누리던 그대로를 생각하면 속병만 생겨요. 초연하게 수양을 해야지요.” 변화된 현실에 절망하기 보다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낙선자들 가운데는 이 전 의원의 충고처럼 변화된 현실을 일찌감치 인정하고 자신의 특장을 살려가며 때를 기다리는 전직의원들도 적지 않다. 15대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으로 활동한 이길재(민주당·광주 북을), 이우재(한나라당·서울 금천) 전 의원. 이들은 현역 시절 여야로 대립하던 모습을 말끔이 벗고 남북한 농촌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각종 사업에 공동으로 뛰어들었다.

총선 뒤 한동안 낙담했던 이들 두 사람은 지난 7월4일 ‘통일농업포럼’을 창립했다. 이길재 전 의원이 상임대표, 이우재 전 의원이 다른 인사들과 함께 공동대표를 맡았다. 남북관계 개선 속도에 발맞춰 통일농업 교류 확대와 발전 방안을 마련해 남북한 농촌이 함께 잘사는 곳으로 만드는 게 목적이다. 또 농수산물 교류를 전담할 전문 텔레비전 방송채널 확보에도 함께 관여하고 있다.

농민단체와 농협 등을 총망라한 소액주주 형식으로 방송사를 설립해 농민과 소비자에게 그 이익을 돌려주겠다는 것이 이들의 포부다. 이들은 또 지난해 몇몇 시민단체가 시작한 ‘겨레사랑 씨감자 보내기’ 운동에도 적극 동참해 북한의 식량난 해소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이길재의원은 “낙선뒤 한잘리 얻으려고 바둥대기보다는 과거 농임운동할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 남북 농촌발전에 조금이나마 공헌하는게 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낙선의 설움에 얽매이지 말고 조금만 열린 마음을 가지면 얼마든지 사회에 공헌할 길이 있다는 것이다.

서러운 일 당하느니 취미활동을…


(사진/김중위 전 의원은 문인들과 토론을 하며 많은 시간을 보낸다)


자민련 사무총장 출신 4선인 김현욱(충남 당진) 전 의원. 그는 요즘 서울 송파구 한 오피스텔에 자리한 ‘한국교육정책연구회’ 사무실에 상주하며 대학교육 개혁 문제에 깊이 천착하고 있다. 이를 위한 각종 토론과 세미나를 조직하고 주재하는 게 그의 주요한 일거리다. 국회 교육위원장 출신이라는 경험을 살려 나름의 역할을 해보겠다는 것이다. 가끔 시간을 내 연변과학기술대 겸직교수(국제관계학)로 연변에서 동북아 관계 등을 주제로 특강을 하기도 한다. 그는 자신이 사무총장으로 진두지휘한 총선에서 자민련이 패배한 탓에 낙선자의 고충에 대해 상당히 말을 아꼈다. 다만 “링 위에 서야 할 선수가 링 밖의 옵서버가 됐을 때는 그저 열심히 연습하며 다시 설 기회를 잡기 위해 와신상담하는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패자는 그저 묵묵히 자신을 갈고 닦아 스스로의 힘으로 재기해야지 불평한다고 현실 정치판에서 뭐가 이루어지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집권 민주당 대변인에 3선의 경력자로 당 공천에 탈락한 뒤 무소속 출마를 결행했던 이영일(광주 동) 전 의원. 그는 매일 아침 10시면 어김없이 서울 안국동 한 빌딩 13층에 자리잡은 한중문화협회 사무실로 출근한다. 현역 시절부터 맡아온 협회의장으로서 한·중문화 교류 확대 사업에 몰입하면서 낙천·낙선의 고통을 잊으려는 것이다. 그는 최근 베이징대 학생들을 초청해 ‘한국에서 중국문화, 중국에서 한국문화’라는 주제의 토론회를 여는 등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또 인터넷상에 ‘통일꾼 모여라’라는 사이트를 개설해 놓고 ‘짱’ 역할을 맡아 젊은이들과 통일문제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는 등 시대의 흐름을 따라잡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그는 낙선에 따른 회한도 숨기지 않는다. “집권당 대변인까지 지낸 사람이 공천을 못 받고 밀려난 데 굉장한 좌절감을 느꼈다. 하지만 파워게임에 졌고, 유권자도 심판한 것이니 당분간 협회 일에 열중할 생각이다.” 그는 낙선의 고통도 톡톡히 치렀다고 밝혔다. “공항에 가도 의전관이 안 나오니 내가 직접 줄서서 표를 끊는다. 관청 출입 때도 일일이 신분을 밝히고 출입절차를 밟았다. 현역 시절 답지하던 협회에 대한 기부금마저 확 줄어들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게 바로 현실이고, 그것을 극복하는 게 정치인이다.”

서러운 일 당하느니 차라리 독서나 취미, 저술 등으로 소일하며 훗날을 기약하는 낙선의원들도 있다. 또 몇몇은 해외유학을 떠났다.

김중위(한나라당·강동을) 의원. 그는 16년 만의 닥친 낙선의 고통을 문학활동으로 씻어내고 있다. 지구당 사무실에서 책을 읽거나 강동지역 문인들이 모이는 ‘문학마을’ 사무실에서 문인들과 토론을 하며 주로 시간을 보낸다. 매달 이상보, 이유식 등 수필문학회 회원들과 정기토론회를 열고 문학 관련 강의도 듣고 있다. 사상계 편집장 출신으로 <산너머 산 이지만> <순간을 위하여 영원을 위하여> 등 많은 수필집을 낸 그는 요즘 ‘바둑판’과 ‘개판’을 주제로 한 수필을 쓰고 있다. 인간사회 현실의 매정함과 꼴불견을 되집는 내용으로 올 가을쯤 문집 형태로 묶어 낼 계획이다. 그는 “내 현실에서 스스로 소외감과 자괴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어차피 선거는 4년 뒤에 있으니 여유를 갖고 길을 찾겠다”고 말했다.그는 특히 “낙선의원들의 경험을 소속 정당은 물론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활용할 생각을 하지 않고 부작정 방치하는 현실이 안타깝고 서글프다"고 덧붙였다.

국민회의 원내총무를 지낸 3선의 손세일(은평갑) 전 의원은 70년대에 자신이 쓴 <이승만과 김구>라는 인물 비교서의 증보판을 내는 데 대부분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자민련 사무총장 출신 구천서(충북 청주상당) 전 의원은 요즘 일본을 오가며 개인 사업을 구상중이다. 그는 특히 주변사람들에게 “어릴 적 꿈인 영화를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고 밝히고 있다.

이종찬·박철언 유학, 이석현은 은둔


(사진/국회본회의가 끝난 뒤 국회 본청 앞에서 전용차를 기다리는 의원들.낙선의원들에게 이제 이런 특권은 '화려한 옛일'이 돼버렸다)


한때 막강 파워를 과시했던 이종찬(민주당·서울 종로)·박철언(자민련·대구수성갑) 전 의원은 당직을 모두 버리고 해외유학길에 올랐다. 특히 대통령직 인수워원장과 국정원장등을 역임하며 승승장구하던 이종찬 전 의원이 '언론문건'유출 파문과 종로낙선 등 잇따른 상처를 입고 “기약없이 일단 떠나겠다”며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권력의 무상함'을 절감하게했다. 현재 하와이대 동서문화센터 객원연구원 활동하고 있는 이 전 의원은 물론 정치적 야심을 접지 않고 있다. 한 측근은 “종로에서 당선된 정인봉 한나라당 의원의 선거소송 등을 지켜보며 정치재개 시점을 저울질 할 것”이라고 전했다.

만년 총각인 이석현(안양동안) 전 의원은 지난달 내내 아무도 모르게 은둔 생활을 했다. 심란한 마음을 다 잡기 위해 오스트레일리아에 머물며 독서와 명상으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지난 총선 때 “보스정치 타파”를 내걸고 한나라당을 탈당했던 민국당 소속 거물급 낙선자들은 골프모임과 등산 등으로 몸과 조직을 다지며 2002년 대선 국면이 오기만 기다리고 있다. 이들 대부분이 영남권에 기반하고 있는 만큼 대선 때가 되면 명예회복 기회가 생길 것이라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이다.

최다선(7선) 낙선자인 신상우(부산사상) 전 국회부의장은 자신의 보좌관 출신인 신동철씨가 서초구 반포동에 최근 개업한 광고대행사 한쪽에 마련된 사무실에서 주로 시간을 보낸다. 젊은이들과 대화를 하며 시대의 흐름을 놓치지 않겠다는 것이다.그러나 무려 28년동안 수행한 의원직에 대한 회한도 깊다. “내 스스로 개혁적이라고 말했지만 사실상 한나라당의 비개혁적 당론에만 따라갔다. 당론이 잘못됐다면 확실한 정치적 위상이 있던 내가 더 적극적으로 혁파했어야 했는데…그게 못내 후회스럽다.”신 전 부의장은 “다음 대선 국면에서 DJ와 YS가 협조해 영·호남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 인물을 함께 내세울 수 있도록 중간다리 역할을 제대로 해보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현역의원 2명인 초미니 정당인 민국당 대표대행인 김윤환(경북 구미)전 의원은 아직도 왕성한 정치활동을 하고 있다.매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 들러 당무를 챙긴뒤, 오후에는 프레지던트호텔에 마련된 개인 사무실에서 시간을 보낸다. 주로 민국당의 몸값을 올리면서 자신의 정치적 활로를 틀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정치권 안팎의 인사들을 광범하게 접촉하고 있다.

한편 민국당 출범 때 대표최고위원을 맡았던 조순 전 의원은 서울 자택과 강릉 생가를 오가며 경제관련 서적을 읽을 뿐 정치권과의 거의 접촉을 끊고 살고 있다.

15대에 이어 16대까지 연거푸 낙선한 이기택(부산연재)최고위원은 자신이 고문으로 있는 겅기도 한 골프장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내며 울분을 달래고 있다.

김상현 “낙선은 청량제”


(사진/광화문 한 빌딩 사무실에서 일선 초·중·등 교사들과 함께 인터넷을 통한 환경교육을 목적으로 한 ‘그린넷’을 운영하고 있는 김상현 민국당 최고의원)


‘마당발의 신화’를 창조하며 학력의 한계를 인맥으로 극복했던 김상현 (서대문갑) 최고의원. 그는 현역 시절 대표나 고문직을 맡고 있던 15개의 사단법인체를 통폐합하거나 다른 현역의원들에 넘겨주는 등 주변정리에 힘을 쏟고 있다. “현역이 아니라 비용 감당도 어렵고, 운영에도 많은 한계가 있다”는 게 이유다. 최근에는 광화문 한 빌딩 사무실에서 일선 초·중·등 교사들과 함께 인터넷을 통한 환경교육을 목적으로 한 ‘그린넷’을 운영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지금 무슨 악몽에서 깨어난 듯한 느낌이다. 정치를 하겠다며 지난 40년 동안 마누라와 자식들 하나 추스리지 못한 채 살아온 나 자신을 뒤늦게나마 돌아볼 여유가 생겨 다행스럽다. 민주당 공천을 못 받은 게 하느님의 지혜라는 생각으로 당분간 주변 정리에 신경쓰며 재기를 모색하겠다.”민첩한 그에게 낙선은 또다른 시도를 가능하게 하는 청량제인 것이다.

정치 거물이건 초선이건 낙선의원들의 가슴에는 예외없이 상실감과 소외의식이라는 두개의 깊은 골이 패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최대한 이를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면서 각자의 방식과 계산대로 삶을 살고 있다. 그 목표지점은 ‘화려한 시절’로의 정치적 재기다.

신승근 기자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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