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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자본의 논리에 향기가 있다? 시대의 심상 드러내는 광고의 사회사… 소비문화 심기 위한 지배 이데올로기 담아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는 유행어도 그 중 하나다. 각종 유머와 일상용어에 패러디되고 있는 이 광고카피는 다분히 정신분석학과 그 계보를 이은 언어학, 기호학의 자취를 풍기는 명제다. 한 시대의 유행어나 블랙 유머는 그 시대의 심상을 드러내게 마련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카피가 있다면 그것은 동시대인의 욕망과 멘털리티를 자극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욕망과 사랑의 문제는 인류의 시작부터 존재하는 것이지만, 이 광고가 새로운 의미를 갖는 것은 이동통신이라는 이 시대의 사물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탓이다. 한 시대의 배경과 사물들로부터 파생되는 의미는 다른 시대, 다른 시점과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그것이 들뢰즈가 말하는 특이성의 수렴이고 의미인 것이다. 광고는 은연중에 동시대의 계열적인 모습과 시대정신을 담게 된다. 주지하다시피 광고는 자본주의의 꽃이다. 서구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우리 역사에서도 광고는 자본주의가 태동한 순간부터 움을 틔우기 시작했고 21세기에 이르는 현재까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왔다. 광고는 커머셜 메시지라는 제도적 성격 때문에 경제상황과 산업구조를 반영하게 되고, 그 표현 내용과 형식이 동시대인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한 시대의 사회문화를 반영한다. 때문에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를 담게 마련이고 역설적이게도 그에 대한 반동의 모습도 광고에 드러난다.
동시대인의 보편적 욕망 자극하는 광고
우리가 살아온 모습이 오롯이 광고에…
한편 우리 사회가 갖는 가부장제적 이데올로기는 비교적 최근까지 광고에 투영된다. 최진실이라는 무명배우를 전 국민의 애인으로 만든 것도 광고다. 수제비 신화를 일으킨 그녀는 ‘남편 사랑은 가끔 확인해봐야 해요’ ‘남편 퇴근시간은 여자하기 나름이예요’라는 삼성전자의 광고카피를 통해 태어났다. 최진실 신화는 자수성가와 가부장주의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한다. 그녀는 가부장제의 사랑스런 요정인 것이다. 이후 여성에 관한 관점은 드봉 뜨레아 화장품의 ‘늘 애인 같은 아내’나 동서커피의 ‘아내는 여자보다 아름답다’라는 식으로 발전하지만 크게 달라진 구석은 없다. 여성인력의 증가를 반영한 듯 커리어우먼의 모습을 그린 테이스터스 초이스 광고가 등장한 것은 90년대 이후다. 자본주의의 진화와 적응력은 정치나 사회 의식구조보다 더욱 빨리 발전하여, 소비문화와 문화상품은 바야흐로 전지구화하기 시작했다. 주체의식에 대한 고민없이 어느새 서구의 유행에 따라 우리 문화는 주체해체의 시대에 이르게 된다. 90년대 초부터 우리 사회에 밀려온 포스트모던한 문화현상은 광고를 통해 급속도로 전파되었다. 이 문화 양식은 메르콜레디 광고처럼 이미지의 파편화나 서사구조의 해체, 페미니즘적 시선이라는 색다른 양식을 보여준다. 신세대 담론을 퍼뜨린 것도 다름 아닌 광고인데 데미소다 오렌지나, 톰보이, 트윈엑스와 같은 상품 광고들이 재빠르게 X세대 트랜드를 형성해가며 젊은이들의 감성을 자극해왔다. 근자에 이르러 N세대라고 하는 디지털 인간형을 제시하는 것도 광고다. 세대론을 다룬 광고의 특징은 ‘나’를 강조한다는 것이다. 분유광고조차 ‘내 아기는 다르다’고 천명할 정도도 소비자의 개성을 선포하는 일에 주력한다. 이는 획일적인 사회를 벗어나고픈 대중의 심리를 자극하는 것이지만 이미 범주화된 상품에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찾는 규격화된 다양화라는 질곡에 빠진다. 디지털 시대를 대표하는 광고카피는 단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일 것이다. 이동통신과 컴퓨터의 만남으로 해서 움직이는 사랑, 움직이는 상점이 가능해지는 네트워크 문화를 명징하게 설명해주는 카피다. 최근의 현란한 이미지 광고나 빛의 속도를 형상화하는 많은 광고들도 인터넷과 속도에 압도된 우리의 강박관념을 보여준다.
이미지 포장엔 자본주의 전략 담겨 있어
(사진/'감기조심'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했다. 위로부터 79년,91년,92년,96년,97년 판피린 에프 광고 인형의 변화) IMF와 같은 사회의 큰 변화도 광고와 밀접하다. IMF 직전 재벌기업의 문어발 확장은 ‘세계일류’, ‘세계경영’,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도그마로 대중을 휘어잡았다. 그러나 세계로 뻗어나가는 재벌의 꿈이 세계금융체제와 정부의 구조조정으로 인해 좌절되자, 광고는 ‘할 수 있다는 믿음’ ‘다시 뛰어봅시다’ ‘BUY KOREA’라는 구호로 사람들을 위무하고 격려했다. 그런가 하면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감기약 광고다. 스카프를 맨 인형이 ‘감기 조심하세요’라고 외치는 판피린 코프 광고는 감기가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 인류의 질병인 것처럼 몇십년이 지나도 그대로이다. 귀여운 꼬마가 재채기를 하는 코리투살 광고나 ‘열두 시간 지속된다’는 콘택600 광고도 마찬가지. 이는 ‘고향의 맛 다시다’처럼 일관된 컨셉의 장기캠페인 광고와는 다른 차원이다. 자본주의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굴러가듯이 광고는 자본주의의 손에 의해 굴러간다. 그러나 문화산물로서 광고가 갖는 의의도 있다. 결과적으로 대부분 소비문화에 귀속되고 말지만, 광고는 그 시대보다 한발짝 앞서야 하는 생존전략에 의해 그 담론이 의외로 전복적인 경우가 있다. 광고를 만드는 사람도 동시대인이다. 동시대인의 시대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 있다면 광고도 그 모습을 닮아갈 것이다.
마정미/ 광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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