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00년08월09일 제321호 

[특집] 자본의 논리에 향기가 있다?

시대의 심상 드러내는 광고의 사회사… 소비문화 심기 위한 지배 이데올로기 담아

한 시대의 유행어나 블랙 유머는 그 시대의 심상을 드러내게 마련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카피가 있다면 그것은 동시대인의 욕망과 멘털리티를 자극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광고는 은연중에 동시대의 계열적인 모습과 시대정신을 담게 된다.


(설명/서울 광화문에 있는 '광고정보센터'에서 광고인과 대학생들이 광고강의를 듣고 있다)


“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라는 시집 제목과 광고카피가 있다. 어느 것이 먼저일까. 대다수는 시집이 원전일 것이라 답한다. 원로 시인의 유명 시집 제목이 아닌가. 그러나 그 제목은 어느 제화회사의 구두광고카피다. 우리 시대는 시보다 광고카피가 더 읽히고 회자되는 시대다. 지금 거리나 인터넷에 떠도는 유머와 유행어의 대부분은 광고텍스트를 패러디한 것들이다.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는 유행어도 그 중 하나다. 각종 유머와 일상용어에 패러디되고 있는 이 광고카피는 다분히 정신분석학과 그 계보를 이은 언어학, 기호학의 자취를 풍기는 명제다. 한 시대의 유행어나 블랙 유머는 그 시대의 심상을 드러내게 마련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카피가 있다면 그것은 동시대인의 욕망과 멘털리티를 자극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욕망과 사랑의 문제는 인류의 시작부터 존재하는 것이지만, 이 광고가 새로운 의미를 갖는 것은 이동통신이라는 이 시대의 사물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탓이다. 한 시대의 배경과 사물들로부터 파생되는 의미는 다른 시대, 다른 시점과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그것이 들뢰즈가 말하는 특이성의 수렴이고 의미인 것이다. 광고는 은연중에 동시대의 계열적인 모습과 시대정신을 담게 된다.

주지하다시피 광고는 자본주의의 꽃이다. 서구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우리 역사에서도 광고는 자본주의가 태동한 순간부터 움을 틔우기 시작했고 21세기에 이르는 현재까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왔다. 광고는 커머셜 메시지라는 제도적 성격 때문에 경제상황과 산업구조를 반영하게 되고, 그 표현 내용과 형식이 동시대인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한 시대의 사회문화를 반영한다. 때문에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를 담게 마련이고 역설적이게도 그에 대한 반동의 모습도 광고에 드러난다.

동시대인의 보편적 욕망 자극하는 광고


(사진/'아내는 여자보다 아름답다'는 카피에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묻어난다.)


개화기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광고를 섭렵할 수는 없지만 우리의 기억에 남아 있는 광고를 더듬어보자. 광고는 대중매체와 더불어 등장한다. 최초의 신문인 <한성순보>, 그 후신인 <한성주보>에 등장한 독일상사 세창양행의 광고가 국내 최초의 광고로 꼽힌다. 이를 포문으로 각종 근대신문에 등장하는 광고들은 밀려드는 서구문물과 외국기업의 침투를 잘 보여준다. 광고를 통해 우리 사회가 모더니즘의 세례를 받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개화기 무렵의 신문에는 모자 광고와 담배 광고, 자전거와 열차시간표 광고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단발령과 함께 거부감과 두려움을 동시에 품고 문을 연 세계로부터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서구의 문명 기호인 중절모였던 것이다. 궐련이라 불리는 담배도 장죽을 밀어내고 근대 문화에 한몫 한다. 열차시간표 광고도 흥미로운데 아라비아 숫자가 아니라 한글로 빼곡이 출발시간과 도착시간을 새겨넣은 이 광고들은 근대를 형성하는 시간 개념을 보여준다. 시, 분, 초로 나뉘는 근대의 시간, 앞으로 전진하는 서구의 시간이 우리에게 체화되는 기간인 것이다.

우리가 살아온 모습이 오롯이 광고에…


(사진/서민의 시름을 달래주는 CM송으로 유명한 진로 광고. 개발독재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한다.)


그러나 근대성에 대한 경험과 발효의 시간이 없는 채로 우리는 식민시대를 맞게 되었고, 외세에 의해 독립과 분단, 민주주의 정부 수립을 맞게 되었다. 그야말로 ‘왕의 목을 친 경험’ 없이 민주주의를 받아들이게 된 역사는, 우리 사회로 하여금 군부 쿠데타를 묵인하고 그것을 추억하기도 하며 아직도 파시즘과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횡행하도록 방치하는 전근대성의 배후가 된다. 해방 이후 우리 사회는 혼돈 속에서 급하게 자본주의의 열차에 편승하게 된다. 한국 광고산업이 팽창하기 시작한 것은 이즈음부터다. 근대화를 부르짖는 60, 70년대 경제개발은 독점자본주의기업 체제를 형성했고, 광고 역시 이 기업들의 생산품이 주종을 이룬다. 아울러 코카콜라로 대표되는 서구의 소비재가 서서히 우리의 문화를 잠식하기 시작했는데, ‘미제와 똑같은 럭키 치약’ 등의 광고 카피는 서구에 대한 동경을 잘 드러낸다. 한편 허리띠를 졸라맨 서민의 고충은 ‘진로 파라다이스’라는 CM송에 반영된다. 애니메이션으로 구성된 이 광고는 소주 한잔으로 힘든 일과의 시름을 잊자는 내용. 이 CM송은 오란씨나 부라보콘처럼 국민가요로 사랑받았고, 대학가에서 다양하게 패러디되었다.

한편 우리 사회가 갖는 가부장제적 이데올로기는 비교적 최근까지 광고에 투영된다. 최진실이라는 무명배우를 전 국민의 애인으로 만든 것도 광고다. 수제비 신화를 일으킨 그녀는 ‘남편 사랑은 가끔 확인해봐야 해요’ ‘남편 퇴근시간은 여자하기 나름이예요’라는 삼성전자의 광고카피를 통해 태어났다. 최진실 신화는 자수성가와 가부장주의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한다. 그녀는 가부장제의 사랑스런 요정인 것이다. 이후 여성에 관한 관점은 드봉 뜨레아 화장품의 ‘늘 애인 같은 아내’나 동서커피의 ‘아내는 여자보다 아름답다’라는 식으로 발전하지만 크게 달라진 구석은 없다. 여성인력의 증가를 반영한 듯 커리어우먼의 모습을 그린 테이스터스 초이스 광고가 등장한 것은 90년대 이후다.

자본주의의 진화와 적응력은 정치나 사회 의식구조보다 더욱 빨리 발전하여, 소비문화와 문화상품은 바야흐로 전지구화하기 시작했다. 주체의식에 대한 고민없이 어느새 서구의 유행에 따라 우리 문화는 주체해체의 시대에 이르게 된다. 90년대 초부터 우리 사회에 밀려온 포스트모던한 문화현상은 광고를 통해 급속도로 전파되었다. 이 문화 양식은 메르콜레디 광고처럼 이미지의 파편화나 서사구조의 해체, 페미니즘적 시선이라는 색다른 양식을 보여준다. 신세대 담론을 퍼뜨린 것도 다름 아닌 광고인데 데미소다 오렌지나, 톰보이, 트윈엑스와 같은 상품 광고들이 재빠르게 X세대 트랜드를 형성해가며 젊은이들의 감성을 자극해왔다. 근자에 이르러 N세대라고 하는 디지털 인간형을 제시하는 것도 광고다. 세대론을 다룬 광고의 특징은 ‘나’를 강조한다는 것이다. 분유광고조차 ‘내 아기는 다르다’고 천명할 정도도 소비자의 개성을 선포하는 일에 주력한다. 이는 획일적인 사회를 벗어나고픈 대중의 심리를 자극하는 것이지만 이미 범주화된 상품에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찾는 규격화된 다양화라는 질곡에 빠진다.

디지털 시대를 대표하는 광고카피는 단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일 것이다. 이동통신과 컴퓨터의 만남으로 해서 움직이는 사랑, 움직이는 상점이 가능해지는 네트워크 문화를 명징하게 설명해주는 카피다. 최근의 현란한 이미지 광고나 빛의 속도를 형상화하는 많은 광고들도 인터넷과 속도에 압도된 우리의 강박관념을 보여준다.

이미지 포장엔 자본주의 전략 담겨 있어











(사진/'감기조심'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했다. 위로부터 79년,91년,92년,96년,97년 판피린 에프 광고 인형의 변화)

IMF와 같은 사회의 큰 변화도 광고와 밀접하다. IMF 직전 재벌기업의 문어발 확장은 ‘세계일류’, ‘세계경영’,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도그마로 대중을 휘어잡았다. 그러나 세계로 뻗어나가는 재벌의 꿈이 세계금융체제와 정부의 구조조정으로 인해 좌절되자, 광고는 ‘할 수 있다는 믿음’ ‘다시 뛰어봅시다’ ‘BUY KOREA’라는 구호로 사람들을 위무하고 격려했다.

그런가 하면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감기약 광고다. 스카프를 맨 인형이 ‘감기 조심하세요’라고 외치는 판피린 코프 광고는 감기가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 인류의 질병인 것처럼 몇십년이 지나도 그대로이다. 귀여운 꼬마가 재채기를 하는 코리투살 광고나 ‘열두 시간 지속된다’는 콘택600 광고도 마찬가지. 이는 ‘고향의 맛 다시다’처럼 일관된 컨셉의 장기캠페인 광고와는 다른 차원이다.

자본주의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굴러가듯이 광고는 자본주의의 손에 의해 굴러간다. 그러나 문화산물로서 광고가 갖는 의의도 있다. 결과적으로 대부분 소비문화에 귀속되고 말지만, 광고는 그 시대보다 한발짝 앞서야 하는 생존전략에 의해 그 담론이 의외로 전복적인 경우가 있다. 광고를 만드는 사람도 동시대인이다. 동시대인의 시대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 있다면 광고도 그 모습을 닮아갈 것이다.

마정미/ 광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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