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00년08월09일 제321호 

[특집] 광고언어가 일상을 지배한다

대중의 심리 꿰뚫는 리얼리티로 선풍적 인기… 그 얄팍함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온통 대화가 광고패러디로 이어지고 있다. 통신이나 인터넷의 유머난에도 광고패러디가 넘치기는 마찬가지다. 아예 천리안 유머난에는 ‘내 꿈꿔 패러디 시리즈’, ‘선영이 패러디 시리즈’ 코너가 따로 마련되어 있을 정도다.


(사진/카피와 영상에서 리얼리티가 빼어난 한국통신프리텔NA광고)


선생님이 칠판 가득 방학숙제를 적는다. 따라 적는 아이들, 딴 짓을 하는 아이들, 끼리끼리 잡담을 하는 아이들…. 다 제각각이다. 선생님이 숙제를 다 적고 “다들 빠짐없이 (숙제를) 해와야 한다”고 근엄하게 말한다. 그때 갑자기 한 아이가 일어서서 외치는 말. “내가 니꺼야?” 교실은 일순간에 아이들의 폭소로 뒤집어진다. 잠시 어리둥절한 선생님. 하지만 곧 그 아이의 당돌한 말이 광고패러디란 걸 알아차리고 그냥 씨익 웃고 만다.

방학식을 하던 7월15일, 서울 동대문구 신당동에 있는 성동고등학교 3학년7반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런 식의 광고패러디는 비단 이 학교뿐만이 아니다. 서울 잠실여고 2학년 한 반의 수업풍경.

선생님이 칠판을 지우면서 “방금 설명한 거 알겠지?”라고 묻는다. 일제히 “아뇨”라고 답하는 아이들. 선생님이 “왜?”냐고 되묻는다.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워낙 순식간에 지나간 일이라…”고 외친다. 그냥 피식 웃고 마는 선생님. ‘깜찍이소다’ 광고카피를 수업시간에 습관처럼 쓰는 아이들에게 교사는 이미 익숙하다. 좀 유행이 지나기는 했지만 이 말은 다른 반 아이들도 여전히 즐겨 쓴다.

광고로 대화를 이어가는 학교 풍경

7월28일 저녁 9시.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서영(잠실여고2), 전형(둔촌고1), 박현수(성동기계공고3). 이들은 유별난 ‘테순이’ ‘테돌이’(텔레비전을 많이 보는 아이들을 일컫는 말)는 아니다. “다른 애들 보는 만큼 텔레비전을 볼 뿐”인 아이들이다. 하지만 TV에 나오는 광고카피만으로 몇 가지 답을 막힘없이 할 만큼 광고를 줄줄 꿰고 있다.

“나이를 물어보면?” “‘나는 만팔천원이다’라고 말하죠.” 18살인 서영이의 대답이다. “나는 만칠천원이다.” 옆에서 17살인 전형이가 거든다. 두 아이의 대답은 “나는 18살이다. 나는 만팔천원이다”라는 한솔엠닷컴018 광고카피를 패러디한 것이다.

다음엔 “그럼 집이 어디냐?”는 질문. 두볼에 손가락으로 점을 찍으며 전형이가 “서영점 하이홈점 컴”이라고 대답한다. “채림점 하이홈점 컴”이라는 인터넷사이트 광고카피를 패러디한 것이다. ‘채림’이라는 광고모델 이름 대신 제 이름만 바꿔 끼웠다. 콜라를 홀짝이던 찬현이가 “찬영점 핫메일점 골뱅이라고도 하잖아”라며 나선다. 하이홈 광고에 ‘골뱅이’가 나오는 천리안 광고를 섞어 만든 표현이다.

“몸무게를 물어보면?” 찬현이가 손바닥으로 머리를 비비며 “나두 잘 몰라∼”라며 씨익 웃는다. 한참 뜨고 있는 한국통신프리텔NA 광고의 아저씨를 흉내내 본 거다.

세 고등학생의 반응에서 보듯 광고언어의 힘은 날로 커지고 있다. 그 징표는 일상 곳곳에서 확인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얼마 전부터 개그맨 유행어가 사라졌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지난해 개그맨 남희석씨가 유행시킨 “빠라바라 바라밤∼”이 머리 속에 떠오르는 마지막 유행어다.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이 광고언어. 이제 광고는 젊은이들의 생활에 깊숙이 침투했다. 심지어 10대와 20대는 광고카피로 몇 마디 말을 이어갈 수 있을 정도다.

중앙대 3학년 김민기(21)씨는 동아리 후배들과 어울리다 술 떨어지고 돈 떨어지면 ‘박카스’ 광고처럼 “지킬 것은 지킨다. 이제 집에 가야지?”라고 말한다. 그러면 후배는 ‘한솔엠닷컴018’ 광고를 흉내내 “내가 니꺼야? 난 어디든 갈 수 있어!”라고 되받는다. 다시 ‘한솔엠닷컴 틴틴러브’ 광고를 인용해 “넌 선배마음을 몰라!”라고 답하는 김씨. 이내 마음을 바꾼 후배는 “잘 자∼ 내 꿈꿔!”(한국통신프리텔016 광고)란 말로 작별인사를 한다.

상상의 날개달고 생활에 파고들어


(사진/한솔엠닷컴018 광고.“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고 매몰차게 말하는 여자모델에게서 변화된 여성의 이미지가 읽힌다.)


온통 대화가 광고패러디로 이어지고 있다. 통신이나 인터넷의 유머난에도 광고패러디가 넘치기는 마찬가지다. 아예 천리안 유머난에는 ‘내 꿈꿔 패러디 시리즈’, ‘선영이 패러디 시리즈’ 코너가 따로 마련되어 있을 정도다. 인터넷 유머사이트 어디든 들어가서 ‘광고’라는 검색어를 치면 여러 개의 유머가 뜬다. 올 초부터 유행한 내 꿈꿔 패러디 시리즈는 수십 가지에 이른다.

한껏 목소리를 깔고 “내 꿈은 내가 꾼다!”고 타이르는(?) 최민수 버전부터 “어머… 오빠는 잘 때도 이쁜이 꿈만 꾸고 그래?”라고 애교떠는 김자옥 버전, “꿈은 학실히 내 꿈꿔야 됩니다 여러분∼”이라고 외치는 김영삼 전 대통령 버전까지. 패러디 대상도 다양하고 시시때때로 새로운 버전이 뜬다. 최근에는 드라마 <허준> 열풍을 타고 “내 꿈을 꾸지 않는다면 침을 놓겠소∼”하는 허준 버전까지 등장했다. ‘내 꿈꿔’ 광고가 막을 내린 지금에도 ‘내 꿈꿔 패러디 시리즈’는 끝날 줄 모른다.

‘내 꿈꿔’에 이어 최근에는 모델 김민희씨가 “내가 니꺼야? 난 어디든 갈 수 있어!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고 냉정하게 내뱉는 한솔엠닷컴018 카피가 패러디의 주요 원천이 되고 있다. “난 니꺼야! 난 아무 데도 갈 데가 없어! 사랑은 들러붙는 거야”(한솔엠닷컴 반대버전), “내 꿈이 니꺼야? 난 어떤 꿈이든 꿀 수 있어! 꿈은 움직이는 거야. 한솔꿈닷컴”(내 꿈꿔와 결합버전). 이 둘에 이어 새로운 패러디 버전도 속속 등장할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상황에 맞는 각종 패러디가 가능한 광고카피의 속성이 광고의 인기를 높이는 데 한몫 하고 있다.

채팅방 이름에서도 촌철살인 기지는 여지없이 발휘된다. 7월27일 저녁 8시30분, 나우누리 대화방. 연령별로 나뉜 대화방에 어김없이 카피를 패러디한 채팅방 이름이 떠 있었다. 한국통신프리텔NA 광고를 대화체로 살짝 바꾼 ‘아들:나 누구예요? 아빠:너 누구냐?’(중학생방), ‘2% 부족할 때’를 패러디한 ‘사랑이 입으로 부족할 때’(직장인방)가 대표적인 예다. 같은 시간 천리안 대화방과 채팅사이트 ‘하늘사랑’에도 숱한 광고패러디 방들이 떠 있었다. 10대들이 즐겨하는 온라인 게임도 예외는 아니다. 인하대 재료공학부 3학년 김철(21)씨는 “온라인 게임을 할 때도 카피를 패러디한 방제목을 많이 쓴다”며 “‘길럿(무기이름)이 2% 부족할 때’와 같은 이름이 바로 그것”이라고 말했다.

대중매체에서도 위력적인 일상의 권력

일상뿐 아니라 대중매체에서도 광고는 자주 패러디된다. 이제 광고는 더이상 광고시간에만 방영되는 게 아니다. 토크쇼는 물론 시트콤, 심지어 드라마에서도 자주 패러디되기 때문이다. 지난 7월26일 방영된 서울방송의 <김혜수 플러스유> 100회 특집. 이 토크쇼는 예고부터 광고를 패러디했다. 사회자 김혜수씨가 “너 400번 보낼 수 있어?’라고 묻는 한솔엠닷컴 틴틴러브 광고의 주인공을 그대로 흉내낸 것이다. “너 100번 볼 수 있어?” 이게 김혜수씨의 대사였다. 카메라 움직임이나 모델 의상도 광고를 그대로 따왔다. 이날 방영된 특집 토크쇼에서 광고가 패러디된 회수는 다섯번. 이제 광고패러디는 토크쇼의 주요한 소잿거리다.

한때 방송에서 여성사회자들이 프로그램이 끝날 때 “안녕히 주무십시오. 내 꿈꾸시기 바랍니다”라고 맺는 게 유행하기도 했다. 광고가 쇼나 드라마 등 대중문화의 다른 장르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유행을 선도하는 장르가 됐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대목이다. 신문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일간지 기사제목에도 광고패러디는 심심찮게 등장한다. 지난 7월28일 <중앙일보> 시평란의 제목, ‘국민이 물로 보이나?’는 그 한 예다.

10대나 대학생뿐 아니라 직장인들도 일상생활에서 광고카피를 자주 빌려 쓰는 추세다. 인터넷 홈페이지 제작일을 하는 이재욱(27·DIT 사원)씨가 그런 경우다. 그는 상사가 식사하러 가자고 하면 한국통신프리텔NA 광고를 패러디해 “선배님, 전 공짜가 좋아요”라고 말하곤 한다. 이씨는 “상사들이 버릇없는 놈으로 여기기보다는 오히려 재미있어 한다”며 “직장생활에 웃음을 주는 활력소”라고 말한다.

TV에 민감한 아이들도 광고카피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너무나 적절한 인용에 교사들도 가끔 놀라곤 한다. 서울 창신초등학교 교사 홍의표(27)씨는 “아이들에게도 이미 광고카피는 일상용어가 되었다”며 “우리반 아이들은 인터넷사이트 ‘다음’광고에 나오는 원성스님을 ‘다음스님’이라고 부른다”며 웃는다. 이 반의 하교인사는 “내 꿈꿔”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각종 캠프나 행사에서 사회를 보는 우태호(31)씨도 최근 들어 부쩍 광고언어의 열풍을 체감하고 있다. 우씨는 일부러 채널을 돌려가며 광고만 볼 때도 있다. 유행하는 광고카피를 모르고는 아이들과 대화가 안 되는 탓이다. 우씨는 “캠프 가서 콩트를 시키면 최소한 셋 중 둘 이상은 광고패러디를 한다”며 “그 내용도 참 기발하고 다양하다”고 말했다.

대중매체의 확산 속에 점점 얄팍해지는 독서풍토도 한몫 거들었다. 얄팍해진 독서는 빈곤한 언어환경을 낳았고 이는 광고언어의 열풍으로 이어진 셈이다. 감각에만 치우친 광고카피가 유행함으로써 자기성찰적인 언어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트렌드의 변화를 읽는 눈이 중요하다

사실 이전에도 유행어가 된 광고카피는 있었다. 하지만 요즘처럼 유행어의 원천으로 독보적인 지위를 누린 적은 없다. 최근 들어 광고카피가 부쩍 더 인구에 회자되는 이유는 무얼까. 우선 광고카피의 리얼리티가 높아졌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전통적인 광고카피는 예쁜 말, 좋은 표현 위주였다. 기업이나 제품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한 의도였지만 사람들이 쓰는 일상언어와는 간극이 있었다. 그만큼 쓰기도, 패러디하기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동통신광고와 닷컴광고가 새로운 주류광고로 떠오르면서 광고는 급변했다. 평소에 즐겨 쓰는 말들이 광고를 채우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입말’에 가까워졌다. 광고평론가 김홍탁(제일기획 카피라이터)씨는 변화의 이유를 광고타깃의 변화에서 찾는다.

“닷컴시대에는 소비주체가 10대와 20대로 연령이 낮아졌다. 흔히 ‘광고 빠꼼이’라고 불리는 젊은층들은 인위적인 광고언어를 촌스럽고 낡은 것이라고 여긴다. 무엇보다 타깃의 심리변화에 민감한 광고가 생활언어에서 그 키워드를 찾는 것은 당연하다.”

이제 카피라이터의 미덕은 글 잘 쓰는 게 아니다. 트렌드의 변화를 적확하게 읽어내 타깃 연령층이 자주 쓰는 말을 빨리 찾아내 광고카피로 써내는 게 중요해졌다. 제품의 속성과 연결되면서도 타깃인 젊은층의 감성에 어필하는 카피. 요즘 유행하는 카피들이 공통적으로 갖춘 요소다. 한편으로 ‘일상어’가 광고화되었을 때 오히려 새롭게 느껴지는 측면도 크다. 일종의 ‘낯설게 하기’ 효과. 수십년 동안 문어체적인 카피가 점령해온 현실 탓이 크다.

하지만 카피가 일상에 파고든 이유는 단순히 말의 구체성이 높아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닷컴광고를 비롯한 젊은층을 타깃으로 한 광고는 예전보다 훨씬 더 빠르게 사회변화를 흡수하고 그들의 욕망을 짚어내고 있다. 이른바 ‘뜨는’ 광고는 젊은이들의 세계관에 영향을 끼쳐 세태를 바꾸기도 한다.

우선 “내가 니꺼야?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는 카피를 보자. 이 카피에는 변화된 연애관이 반영되어 있다. 지금껏 광고를 비롯한 대중매체는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한 사람만을 바라보며, 상대에게 헌신하고 희생하는 것’이라고 강변해왔다. 하지만 현실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이미 마음이 떠났는데도 도덕관념 때문에 얽매여 있어야 한다고 여기는 젊은이들은 많지 않다. 한 사람만을 평생 사랑하겠다는 ‘낭만적 사랑’의 신화는 점점 깨져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니꺼야?”라는 모델 김민희씨의 항변은 새롭다. 이 카피는 마치 연애의 틀 속에서 남성에게 속박당했던 여성들의 자아찾기 선언으로 읽힌다. 김민희씨가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고 냉정하게 못박을 때, 여성은 자기 욕망의 주체가 된다. 한솔엠닷컴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들은 이런 변화를 옹호한다. ‘나의 옛날 기억이 떠오른다’(ID:kms2279)며 김민희를 응원하는 사람, 심지어 ‘사랑은 빼앗는 것’이라는 얘기까지 눈에 띈다.

가벼움으로 변화한 세태 어김없이 반영

이외에도 여러 광고에서 여성 이미지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김민희와 차태현(한솔엠닷컴018), 이정현과 조성모(한국통신프리텔016 ‘내 꿈꿔’편), 김규리와 류시원(한국통신프리텔 ‘RUN’편). 이동통신 서비스광고에 등장하는 커플은 한결같이 강한 여성과 유약한 남성 이미지의 조합이다. 화자가 모두 여성인 것도 공통점이다. 김규리는 류시원을 향해 장미 이모트콘(emotcon 문자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보내며 “걸렸어”라고 말하고, 이정현은 “내 꿈꿔”라는 음성메시지로 조성모를 감동시킨다. 여자들의 행동에 따라 류시원은 놀라고, 조성모는 실망하고, 차태현은 눈물을 찔끔거린다. 광고 속에서 연애의 주도권을 행사하는 사람은 여자들. 변화된 연애관계를 상징한다. 물론 저변에는 여성이 소비의 주체로 떠오른 현실이 깔려 있다.

커피광고에서도 연애관계의 변화는 발견된다. 연하의 남성과 연상의 여성이 커플로 등장한다는 게 공통점. ‘까페라떼’ 광고에서 유지태는 친구의 누나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레쓰비’ 광고에서 남학생은 여교수와 사랑에 빠진다. 역시 변화한 세태가 반영됐다.

요즘 광고카피의 또다른 키워드는 ‘물’이다. 이 말은 겉보기엔 물과 비슷하지만 과즙이 살짝 가미된 음료군의 광고에 주로 등장한다. ‘2% 부족할 때’ ‘니어워터’ 등이 이런 음료군에 속한다. 이 중 ‘2% 부족할 때’ 광고가 가장 튄다. 지금까지 4편의 시리즈로 이어진 이 광고에서 모델들은 항상 다툰다. 핑클 멤버들끼리 다투고 최진실 최진영 남매가 토닥거린다. 유행한 카피는 ‘날 물로 보지마’와 ‘난 노는 물이 달라’. 두 카피에 나오는 ‘물’이란 말은 마시는 물과는 다른 맥락을 지닌다. ‘날 물로 보지마’라는 말에는 왕따를 피하고 싶은 욕망이 숨어 있고, ‘난 노는 물이 달라’에는 평범한 사람이 되기 싫은 젊은이들의 욕망이 투사되어 있다. 무엇보다 이 카피의 특징은 전혀 착하지 않다는 것. 거친 말투에 신경질이 묻어난다.

리얼리티 광고의 선풍을 몰고 온 한국통신프리텔NA 광고에서는 젊은 세대가 선망하는 인간형을 읽을 수 있다. 어느 후미진 달동네 골목에서 후줄그레한 쫄티를 입은 채 “아버지 나는 누구예요?”라고 묻는 10대. 차림새나 건들거리는 행동이 흔히 ‘양아치’라고 불리는 이미지와 맞닿아 있다. 하지만 “난 공짜가 좋아요!”라며 순진하게 웃는 그 캐릭터에서 양아치 특유의 폭력성은 거세돼 있다. 요약하면 ‘폭력성 없는 양아치’ ‘건전한 날라리’의 이미지다.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우면서도 폭력적이지 않은 이미지, 지금 한국사회가 사랑하는 캐릭터다.

얄팍함의 승리는 빈곤한 철학의 산물

이처럼 광고가 대중을 사로잡는 사회적인 배경은 뭘까. 문화평론가 엄혁씨는 “대중이 광고 이외에 쉽게 해볼 수 있는 문화적 체험이 적기 때문”이라며 척박한 문화토양을 지적한다. 이렇게 척박한 토양에서 광고가 조금이라도 예술적 감흥을 제공하면 대중이 쉽게 열광하게 된다는 얘기다. 또 엄씨는 “요즘 뜨는 리얼리티 광고는 진정한 리얼리즘 정신에 입각했다기보다 광고전략에 따라 계산된 리얼리즘, 희화된 리얼리즘일 뿐”이라고 한계를 긋는다. 대중매체의 확산 속에 점점 얄팍해지는 독서풍토도 한몫 거들었음은 물론이다. 얄팍해진 독서는 빈곤한 언어환경을 낳고 이는 광고언어의 열풍으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한편 경박한 언어사용의 폐해를 지적하는 이도 적지 않다. 언어학자 이병혁 교수(서울시립대)는 “감각에만 치우친 광고카피가 유행함으로써 자기성찰적인 언어가 점점 더 사라지고 있다”고 우려한다. 가볍고 즉자적인 언어가 우리 언어생활을 망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은 리얼리티가 살아 있는 광고에 열광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사이버공간에서 날로 확산되는 광고언어의 사용과 패러디. 이미 젊은이들은 그 속에 자신들의 희로애락을 담아 소통하고 있다. 하지만 리얼리티 광고가 영원한 건 아닐 것이다. 다음엔 어떤 광고에 그들이 열광하게 될까.

신윤동욱 기자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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