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00년08월02일 제320호 

[특집] '행복한 동거'는 가능하다

지역주의 청산를 위한 유럽 3개국 집중 취재, 그 연재를 마치며


(사진/분권화에 따라 새로 출범한 웨일스 자치정부 건물에 웨일스 깃발이 걸려 있다)


지역갈등을 주제로 한 6월18일부터 7월8일까지 3주간의 유럽 취재. 그 결론은 무엇일까?(이탈리아와 독일, 영국 세 나라에 1주일씩 머물렀으니 한국 언론의 해외취재 관행에 비춰보면 짧지는 않은 기간이었다.)

미리 밝힌다면 그들의 경험으로부터 무엇을 어떻게 참고할 것인지를 한칼에 재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다. 지역주의는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어느 나라에든 존재했다. 또한 사안의 속성상 정치, 경제, 역사적 배경이 뒤얽혀 그 산물로 표출되는 것이 지역갈등이기 때문에, 배경이 다른 나라에서 도출된 해법을 우리 현실에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부적절함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들의 경험을 그대로 적용할 순 없어도

그러나 연재를 마치는 기회를 빌려 몇 가지 단면들은 다시 생각해봐도 좋을 것 같다. 독일에서 만난 동독 출신 환경부 공무원 피플로는 기자와 이런 문답을 나눴다. 그는 통합 정부에서 근무한 지 10년째로, 그동안 서독 출신 동료들은 두 단계씩 승진했는데도 자신은 제자리걸음이라며 좌절감을 털어놓았다.

-독일의 언론들은 당신이 겪는 것과 같은 문제들을 종종 다루는가.

“그렇지 않다. 그저 사석에서 넋두리처럼 이야기를 나눌 뿐이다.”

여기에는 배경이 있었다. 통독 이후 동독 지역의 언론사들은 대부분 문을 닫았다. 아니면 서독 언론자본에 흡수·민영화됐다. 문제는 서독에 뿌리를 둔 언론매체들이 기본적으로 서독의 가치관, 서독인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게 마련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상당수 동독인들이 느끼는 상실감과 박탈감이 그 깊이만큼 충분히 공론화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기자가 방문했던 동베를린의 신문사 <노이에스 도이칠란트>처럼 동독지역에는 동독인의 이익을 대변하려는 언론매체가 존재하긴 한다. 그러나 서독에 뿌리를 둔 언론사들의 압도적 우위에 눌려 대부분 군소 매체에 머물고 있다).

이탈리아는 남북부간 갈등의 역사가 100년이 넘는다는 점에서 좀더 ‘악성’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탈리아사회는 갈등의 뿌리는 깊되, 비교적 덜 적대적인 방식으로 그것을 표출하거나 때로는 용해시키는 방법을 찾은 것으로 보였다.

두 나라의 차이는 이탈리아의 경우 남북부간 격차 문제를 둘러싸고 학계·언론계·정계가 뒤얽혀 오랫동안 공개적인 토론을 벌여왔다는 점이었다. 낙후한 남부문제를 연구하는 학자 등을 일컬어 ‘남부론자’라는 용어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활발한 공론화의 전통을 알려주는 것이기도 했다. 또한 60만∼80만부씩 판매하는 유력 시사주간지 <에스프레소>와 <파노라마>가 각각 좌·우파 및 남·북부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며 균형 속에서 양립하는 언론환경도 인상적이었다.

객관적인 사실 규명 작업부터 시작하자

우리 사회에서는 가깝게 98∼99년간에 편중인사 시비가 쟁점이 됐다. 이 과정에서 한쪽은 “현 정권에서 극심한 편중인사가 자행되고 있다”며 자신들에게 유리한 통계자료를 들이댔고, 다른 한쪽에선 “과거의 편중을 바로잡는 과정”이라며 반대의 자료로 반박했다. 이와 동시에 집권쪽과 야당쪽은 격렬하게 그것도 감정적으로 대립했다.

문제가 그러하다면 양쪽이 함께, 또는 제3의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공직인사 정책의 과거와 현재를 객관적으로 확인하기 위한 작업을 벌여볼 만도 했다. 과연 사실은 무엇인가를 놓고 공통의 인식을 만들어낸다면 시비의 상당부분은 종식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전혀 그러하지 못했다. 갈등이 존재하는 것 자체보다 갈등을 공적으로 다루는 방식이 더욱 문제인 셈이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한국의 지역갈등, 그리고 갈등의 원인이 된 격차와 원인 따위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객관적인 사실 규명이 매우 부족하다고 한다. 이런 측면에서부터 문제 해결의 출발점을 잡아도 좋을 것 같다.

박창식 기자cspcsp@hani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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