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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영국식 해법 "권력을 나눈다" 중앙권력을 지방정부에 이양해 갈등 봉합…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오랜 대결 끝날 건가
숀 코너리가 기사작위를 받기까지
노동당의 압승과 보수당의 참패. 비밀의 열쇠는 노동당이 내건 지방분권화(devolution)라는 공약이었다. 집권할 경우 중앙권력을 과감히 분산해 스코틀랜드와 웨일스, 북아일랜드에 각각 지역자치 정부를 구성하겠다는 공약이 돌풍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선거결과의 이면에 독특한 지역갈등이 작용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영화 007시리즈 제임스 본드 역으로 유명한 배우 숀 코너리(69)가 지난 7월5일 스코틀랜드 수도 에든버러에서 영국여왕 엘리자베스 2세로부터 기사작위를 받았다. 영화계 업적으로 볼 때 그는 진작 작위를 받을 만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맹렬한 스코틀랜드 독립 지지자인 그는 영국왕실에 무릎을 꿇을 수 없다며 그동안 작위를 거부해왔다. 독립을 추구하는 스코틀랜드민족당 집회에 수시로 참석하고 매달 수천파운드를 헌금해온 그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당 집권 이후 스코틀랜드 정부가 출범함으로써 어느 정도 지역갈등이 해소되자 작위를 받아들이기에 이른 것이다.
그렇다고 런던의 공직사회 등에서 스코틀랜드인이 뚜렷하게 차별받는 일은 없다고 한다. 영국 외무부 관리 매튜 도널리는 “외무부에 나를 포함해 스코틀랜드 출신이 100여명에 이르지만 승진상 불이익 등 장벽은 없다”고 말했다. 특히 노동당 정권은 스코틀랜드가 당의 주요 기반 중 하나이기 때문에 각료진에 스코틀랜드 출신이 즐비하다. 영국 학자들이 “같은 나라라기보다는 두개의 영국”이라고 종종 규정할 정도로 잉글랜드-스코틀랜드간 갈등은 심각하지만, 공직 인사를 놓고 지역별 연줄로 싹쓸이하거나 차별하는 우리 풍토와는 다른 셈이다. 두 지역간 갈등은 역사적 뿌리가 깊다. 별개의 왕국이던 두 지역은 1707년에 통합했다. 그전까지 잉글랜드는 북부를 종종 침공했으며, 스코틀랜드는 완강하게 독립을 방어했다. 그러다 후사가 끊어진 잉글랜드 왕실이 스코틀랜드 귀족(제임스 1세)을 후계자로 받아들이면서 통합이 이뤄진 것이다(영국의 현재 공식 국명은 ‘대브리튼과 북에이레 통합 왕국’으로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등 네개 지역으로 이뤄져 있다. 그 중 북아일랜드는 지역갈등보다는 민족 및 종교갈등 성격이 짙고, 웨일스는 잉글랜드에 좀더 통합된 편이어서 갈등이 덜한 편이다).
스코틀랜드 굴뚝산업 위기로 치달아
그러나 19세기 말부터 대영제국이 쇠퇴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1950년대와 60년대 들어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해외 식민지가 완전히 독립하자 스코틀랜드인들은 ‘잉글랜드에 붙어 있어도 더이상 먹을 게 없는’ 상황이 됐다. 게다가 런던 중심의 잉글랜드 남부는 중·북부를 해외 식민지의 대용으로 삼는, 일종의 ‘내부 식민화’를 진행시켜나갔다고 한다. 잉글랜드 남부가 금융산업과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활로를 찾은 반면에 글래스고 등의 전통적 굴뚝산업들은 문을 닫았고 거리는 실업자로 넘치게 됐다. 스코틀랜드인들은 당연히 반발했다. 이에 따라 분리독립을 기치로 내건 스코틀랜드민족당이 70년대 들어 급속히 세를 확대하기 시작했다. 스코틀랜드민족당은 그전까지(1928년 창당) 힘을 쓰지 못하다 74년 총선에서 71석의 스코틀랜드 의석 중 7석, 유효표의 30%를 획득함으로써 노동당 다음의 제2당이 됐다. 스코틀랜드민족당은 “독립하면 더 잘살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북해 유전에서 나오는 세금만 런던으로 보내지 않고 챙겨도 된다는 논리들이 등장했다. 노동당은 74∼79년 집권기에 스코틀랜드의 지역분권화 요구를 수용했다. 이에 따라 중앙권한을 일정 정도 이양해 분권화하는 안을 만들어 79년 주민투표에 부쳤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주민들의 각성이 덜 되었다. 투표 참가자의 52%가 지역분권화에 찬성했지만 유권자의 40%를 넘어야 한다는 조항에는 미달해 법안은 폐기됐다. 동시에 노동당 정권도 무너졌다. 그뒤로 보수당의 18년 장기집권이 펼쳐졌다. 영국 정치에서 보수당은 권력의 중앙집중, 노동당은 권력분산을 지지하는 전통을 갖고 있다. 그 중에서도 대처 집권기간은 중앙집중화의 절정을 이뤘다.
대처 총리 시절의 끝없는 긴장과 대립
대처는 심지어 “스코틀랜드는 열심히 일하는 잉글랜드인이 쉬러 가는 휴양지”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스코틀랜드인들은 격분했다. “스코틀랜드인들의 좌파적 전통과 대처의 중앙집권주의, 민영화 정책 따위가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런던과 스코틀랜드간 대결이 격화했다. 그 기간에도 내각에 스코틀랜드 담당장관이 있었지만 그는 대처의 대변인에 불과했다.”(에든버러대 에버하드 보트 교수) 노동당은 87년 총선에서 또다시 패배하자 임의기구로 스코틀랜드 헌정회의를 만들었다. 스코틀랜드민족당과 노조와 교회, 시민단체 등이 참여해 분권화 방안을 공론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보수당은 당론이 분권화 반대인 만큼 불참했다. 보수당은 부유하며 지역패권적 기득권을 갖고 있는 남부잉글랜드를 표밭으로 하고 있다. 97년 총선에서 노동당 대 보수당의 논쟁은 절정을 이뤘다. 노동당은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의 분권화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노동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인 ‘노동계급+소외지역 연합’의 전략을 택한 것이다. 이에 보수당은 “지역자치 정부를 허용하면 나라가 깨져나간다”며 분열적 발상이라고 공격했다. 그러나 노동당은 “틀어쥐는 시대는 끝났으며 권력을 분산하는 것이 나라의 통합성을 강화하는 좀더 나은 방도”라고 맞받았다. 노동당의 총선 승리에 이어 스코틀랜드에선 같은 해 9월11일 자치의회 구성을 놓고 주민투표가 실시됐다. 그 결과 74.3%가 찬성함으로써 스코틀랜드는 영국으로 통합된 지 300년 만에 독자적인 의회와 자치정부를 갖게 됐다.
300년 만의 실질 자치로 지역감정 완화 조짐
분권화는 영국의 민주주의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한다. 숀 코너리가 여왕으로부터 작위를 받은 일이 상징하듯, ‘런던’을 겨냥한 지역감정도 완화 가능성이 엿보였다. 보수당이 애초 격렬하게 반대했지만, 보수당 주장대로 “나라가 깨지지는” 않았다. 따라서 보수당도 분권화를 인정하되, 시행방법을 개선하는 쪽으로 선회했다(도미니크 그리브 보수당 하원의원의 설명). 런던에는 대처 시절에 해체됐던 광역시 정부가 시장 선거를 거쳐 7월 초 출범했다. 이와 함께 뉴카슬, 버밍엄 등 잉글랜드 중·북부에서는 “우리도 분권화해서 자치정부를 만들자”는 움직임이 속속 일어나고 있다. 잉글랜드 안에서도 중·북부는 굴뚝산업의 퇴조와 함께 경제적 격차가 벌어지면서 남부와의 지역갈등이 싹터오던 참이었다. 런던대학 정치경제학부 브렌든 올리어리 교수는 “분권화는 중앙집중화된 권력을 분산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원리에 좀더 맞는 것”이라며 “분권화의 추세는 되돌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분권화라는 아이디어는 한국의 현실에도 시사점을 제공한다. 잘 알려지다시피 한국은 모든 권력이 극단적으로 중앙에 집중된 사회다. 지역개발이건 공직 인사건 많은 문제가 청와대의 결정에 좌우된다. 그러다보니 소소한 취업·승진 또는 기업활동의 애로가 발생해도 “청와대 직원이 전화 한 통화 해준다면…”이라는 문화마저 생겼다.
권력분산은 지역통합을 위한 첫걸음
97년의 정권교체 이후 정치권이 각기의 지역기반을 근거로 격렬한 대결정치를 벌이는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정권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지역쪽에서 개발과 인사, 경제활동, 문화생활 등 모든 것을 “정권을 되찾음으로써 한방에 해결하자”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다. 그 이전까지 소외당하던 지역민들이 품었던 “정권교체만이 해법”이라는 논리도 속성은 비슷하다. 99년 초 부산 삼성자동차 사태에서 보듯이 무슨 문제만 불거지면 곧바로 정권적 차원의 쟁점으로 확산되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민주주의 원리를 생각하고, 지역갈등을 완화시키려 한다면 우리도 중앙권력을 적극적으로 분산시켜 나가는 게 옳다. 그러나 이 점에서 볼 때 김대중 정권은 중앙 행정권한의 지방이양을 비롯해 권력분산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김 대통령 1인 중심의 ‘철인 정치’를 강화하려는 모습마저 엿보인다. 한나라당 역시 권력분산을 위한 제도개선에는 관심이 덜하다. 그들도 내심은 “한꺼번에 모든 것을 되찾아오자”는 쪽이다. 런던=박창식 기자cspcsp@hani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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