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00년07월26일 제319호 

[특집] 닫힌 공장서 저항이 싹튼다

불안이 감도는 동독 대도시 드레스덴… 잇단 공장폐업으로 실직자 속출


(사진/ 동독 작센주 드레스덴의 한 서민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노동자들. 노동자들은 통일 이후 물건을 살 때 줄서지 않아도 되는 것은 좋지만 고용불안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한다)


동독 작센주의 드레스덴은 ‘엘베강의 플로렌스’라고 불린다. 즈빙거 궁전을 비롯해 바로크 건축의 명물들이 즐비하고,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의 오페라 하우스 등이 멋들어지게 복원됐다. 국립악단, 합창단 등의 높은 명성을 내세워 드레스덴은 세계 음악계를 다시 주도하려는 꿈을 부풀리고 있다.

그러나 꿈은 관광객들이 찾는 중심가 한쪽만의 일인 것일까.

민영화 후유증, 5천명이 220명으로

시내 한 식당에서 만난 노동자 클라우스 쾨르노(42)는 펜타콘이라는 카메라 공장에서 87년부터 일한다고 했다. 90년 통독 당시 고용 규모는 5천여명. 통독과 동시에 서독 자본에 의해 민영화되면서 규모는 당장 220명으로 줄었다. 쾨르노는 “노동자 전원이 해고됐다가 그 중 일부만 재고용됐다”고 말했다. 동독 시절과 비교해 살기가 좋아졌느냐고 묻자 그는 “물건을 살 때 줄서지 않는 것은 좋다. 그러나 일자리가 불안하다”고 답했다.

공단지역에서는 방사선 의료기기를 만들던 TUR이란 회사가 올해 초 문을 닫았다. 통독 당시 2천여명이 근무하던 공장이, 통독 뒤 민영화 바람 속에서 500여명 규모로 줄었다가 결국 폐업한 것이다. 노동자들은 항의시위를 벌였으며, 주지사도 발벗고 나서 폐업을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폐업을 막지 못하고 대다수 노동자는 연금수령자로 돌았다. 일부는 다른 공장으로 옮겼는데 1년짜리 계약직이어서 고용불안을 느낀다고 했다.

민영화와 동시에 고용규모가 4분의 1에서 심한 경우 10분의 1까지 준 것은 사회주의 경제와 자본주의 경제의 차이가 작용한 탓이 크다. 사회주의 경제 시절 효율이 떨어지더라도 완전고용을 지향하는 차원에서 대규모 콤비나트 체제를 유지했다면, 서독 자본들은 인수한 기업의 설비를 현대식으로 교체하면서 자동화를 단행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근년 들어선 임금 상승 등의 이유로 동독지역에서 한 회사씩 철수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이에 따라 드레스덴 지역의 공장 가동률은 50%선에 머물고 있다(민사당 드레스덴 지부 책임자 안젤리카 체르브스트의 설명). 실업률은 14%쯤인데, 다른 동독지역에 비해선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한다. 민영화와 함께 대량 실직자가 발생했는데도 실업률이 14%선인 것은 다수가 연금수령자로 빠지면서, 통계 기준인 경제활동인구로 잡히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여성 결혼연령 높아지고 취업률 급감


(사진/ 드레스덴은 관광산업 진흥에 힘쓰지만 외곽 공단의 기업 가동률은 50%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사진은 드레스덴 공업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닫은 공장)


통독으로 달라진 변화 중 하나는 여성의 결혼연령이 10살쯤 높아졌다는 점이다. 동독 시절에 여성들은 20살이면 결혼해 곧바로 출산했다. 국가에서 결혼자금을 대출해줬고, 아이를 낳으면 장려금도 지급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어리더라도 국영 유치원이 잘되어 있어 육아도 문제가 안 됐다. 아이가 딸려 있다고 해서 직장을 쉬거나 공부를 중단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되면서 이 모든 것이 없어졌다. 남자도 취직하기 어려운 판에 여성 취업은 더욱 바늘구멍이 됐다. 자연스레 젊은 여성들의 결혼·출산 기피 현상이 나타났다.

이로써 통독 당시 1700만명이었던 동독지역 인구는 서서히 줄고 있다. 드레스덴만 해도 90년에 50만명이던 인구가 요즘은 46만명선으로 감소했다.

인구 감소는 유년기 아동에서부터 나타났고 자연히 초·중등학교의 학급 숫자도 급격히 줄고 있다고 한다. 최근 드레스덴 학부모 단체와 주정부 사이에선 밀고당기는 승강이가 벌어졌다. 주정부 기준에 따르면 한 학급을 유지할 최소 학생이 30∼35명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14∼17명밖에 안 되는 학급이 속출하자 부득이 학급 또는 학교를 폐쇄하겠다고 나온 것이다. 학부모들은 시위를 벌인 끝에 20명이 되는 학급까지는 없애지 않고 유지한다는 절충안을 끌어냈다.

취학 연령대 아동 줄어 학교 폐쇄 움직임도

사회주의의 유제를 급격하게 청산하려는 시도는 이곳에서도 있었다. 시내 중심가에는 오토 부흐비차라는 저명한 노동운동가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었다. 통독이 되자 행정을 접수한 서독 출신 관리들은 거리 이름을 바꾸도록 요구했다. 일부 주민들이 저항했지만 크게 목소리를 낼 처지는 못됐다. 새 거리 이름은 쾨니히스 부르거로 바뀌었다.

민사당 책임자인 체르브스트는 “이런 사회적 문제들이 나타나자 시민들이 처음에는 패배의식에 젖었다가 서서히 저항의식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 탓인지 지난해 9월 치러진 드레스덴의 지방선거에서 민사당은 24.2%로 기민련의 55.6%에 이어 제2당의 위치를 확보했다. 사민당은 8.4%로 3당이 됐다.

동독인의 짝사랑?

서독 출신 인사들이 동독 주정부 장악… 끗발없는 민사당으론 한계 많아

동독 작센주의 제1당은 기민련이다. 지난해 9월 선거에서 기민련은 56.9%의 압도적 지지를 획득했다(2당은 민사당으로 22.2%, 3당은 사민당 10.7%).

이런 사정은 옛동독지역의 5개주가 비슷하다. 일부 주는 사민당, 일부 주는 기민련이 주정부를 장악하고 있다. 민사당의 지지세가 늘고 있다고는 하지만 독자적으로 주정부를 장악하기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일부 동독지역 주정부는 사민당, 기민당이 쥐고 있을 뿐 아니라 주지사도 서독 출신 인사가 맡고 있다. 그렇다고 쿠데타로 된 것은 전혀 아니며 서독 출신 인사가 출마해 주민의 선택으로 당선된 것뿐이다.

사정이 이렇게 된 것은 주의 행정 등을 담당하는 데 적어도 지금까지는 절대적으로 서독 출신이 유리하다는 인식 때문이라고 한다. 주정부의 역할이 연방정부와의 교섭, 지역경제 발전 전략 수립 등인 만큼 연방정부, 서독의 재계 등과 잘 통할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는 기민련이나 사민당의 주장이 어필했다는 것이다. 반면 민사당 지도부에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이끌어갈 만한 ‘깜’이 아무래도 부족하다. 미디어선거를 특징으로 하는 선거운동 기술 측면에서도 서독에 기반을 둔 사민당과 기민련이 훨씬 앞선다.

동독지역 사람들도 생각이 모두 ‘민사당 방식’인 것은 아니다. 베를린의 한 외국인 기업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슈테판 슈미트(28)는 “나도 동독 출신이지만 동독 출신들이 서독을 원망할 게 아니라 자기 책임의식을 좀더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민사당의 지지세 증가현상에 대해서도 “민사당 주장대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베를린자유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그는 잘 나가는 동독 출신 ‘신세대’로 꼽힌다.

그러나 독일 주요 여론조사기관들의 분석에 따르면 민사당 현상(동독지역의 소외 고착화에 기반한 지역갈등의 심화)은 좀더 계속될 것 같다. 민사당이 동독인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정당이냐는 물음에 동독인의 60% 이상이 그렇다고 대답한다는 것이다. 민사당이 실제 선거 득표율(동독지역 평균 25% 안팎) 이상의 잠재력을 지니고 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드레스덴=박창식 기자cspcsp@hani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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