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00년07월19일 제318호 

[특집] 공존을 위한 긴장의 나날

북부 분리운동 거점도시 밀라노의 표정… 남북부간 지역감정 둘러싼 미묘한 흐름


(사진/인파로 붐비는 밀라노의 쇼핑거리. 북부 상공업의 중심도시답게 풍요가 넘쳐흘러 보인다)
밀라노 말펜사 국제공항으로부터 시내까지 50㎞ 구간에는 8차선 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뚫려 있다. 도로 연변의 농가들도 서유럽풍으로 깔끔하게 단장되어 있다. 톨게이트를 통과하자 큰 공장들이 눈에 들어왔다. 첨단제품을 제조하는 듯 외관들이 깨끗했다. 밀라노는 겉모습부터 남부 도시들과 달랐다.

밀라노는 인구 130만명으로 이탈리아 북부 상공업의 중심도시다. 소득은 단연 높은 편이다. 말펜사 국제공항은 유럽의 관문 역할도 한다.

지역주의 취재와 관련해 밀라노를 찾은 이유는 이곳이 북부 분리운동의 거점 노릇을 하기 때문이다. 밀라노는 롬바르디아주의 수도이며 북부동맹의 기반이 강력하다. 93년 지방선거에선 57%의 압도적 지지율로 북부동맹이 시장을 확보했다. 밀라노에는 또한 여느 북부 공업도시와 마찬가지로 대부분 이주 노동자 출신인 남부인, 또는 남부인 2, 3세들이 20%가량 살고 있다. 따라서 북부 분리주의 운동과 남북부간 지역감정을 둘러싼 미묘한 정서를 관찰하기 알맞은 곳이다.

북부의 우월감 “남부 지원은 악순화 고리”

이곳의 ‘보통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한 기업체를 찾았다. 북부인과 남부 출신들이 섞여 일하는 곳이었다.

북부 베니스 출신이라는 마우리토 파스칼(49)은 이렇게 말했다.

“북부가 열심히 일해 남부를 먹여살리는 구조가 문제입니다. 북부인들은 청소든 페인트칠이든 뭐든지 해서 돈을 버는데, 남부인들은 정치바람 타고 허수아비 일자리를 만들어 월급 타먹을 궁리만 합니다. 남부는 그래서 못삽니다. 정치인의 다수가 남부 사람 아닙니까. 정치인 자제들이 줄을 잡아 공직에 다수 진출하고 있습니다.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는 거죠. 이제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역시 북부 출신인 안젤모(65)는 좀더 극단적인 이야기를 서슴없이 쏟아냈다. “세무 관리도 남부 출신이 많은데, 그들은 마피아한테 세무 관련 정보를 빼돌립니다. 남부 출신 경찰관들도 마찬가지죠.” “그런 식의 이야기를 남부 출신 앞에서도 하나요?”라고 물었다. “글쎄요, 잘 안 하지만 하게 되면 합니다. 그러면 그들도 남부인의 문제점을 인정합니다.”

북부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우월감을 드러냈다. 그들은 또한 북부동맹의 분리주의적 연방제 주장에도 적극적으로 찬동했다. 안젤모는 남부 지원을 중단하자는 주장 때문에 ‘하나의 이탈리아’가 깨져도 좋으냐는 기자의 질문에 “파다니아 공화국이 생겨야 한다. 유럽 단일화폐 가입도 성적순으로 되는 지역부터 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밀라노에 사는 남부 출신들의 정서는 어떨까? 남부 출신 3세라는 미리암 이엘로(29·여)는 “남부 출신이라고 차별받아 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남부가 못사는 원인도 “남부인들이 일 중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노는 것만 좋아한다”고 답했다. 이주 3세대쯤 되고 아무래도 젊은 층이라는 느낌이 짙게 풍겼다.

이주 2세대인 쥐세페 기아마루치(42)는 조금 달랐다. “초등학교, 중학교 다닐 때 남부 출신이라고 북부 아이들한테 천대받은 기억이 납니다. ‘나도 너희들과 똑같다’며 어떻게든 어울려보려고 노력했지만…. 하지만 장성해서는 차별을 받아보지 않았습니다.”

동구권 이주민 밀려와 노골적 차별은 줄어

50∼60년대 북부로의 이주 초기에 남부 출신 노동자들은 적지 않은 설움을 받았다. 집을 구하려 해도 출신을 묻고는 임대를 거절당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노골적인 차별은 사라졌다고 한다. 최근 들어선 동구권 이주민들이 밀려들어 좀더 하층을 형성(새로운 ‘왕따’ 대상)한 것도 남부인에 대한 차별이 줄어들게 된 한 요인이 됐다고 한다.

그러나 밀라노의 남부 출신들은 남부에 대한 지원중단에 대해서만은 한결같이 고개를 저었다. “이탈리아는 ‘하나의 나라’이다. 자기 이익만 앞세워 특정 지역을 돕지 않겠다는 것은 곤란하다.” 이런 반응들은 남부 출신들이 현지 적응과 생존을 위해서라도 자연스럽게 북부의 이데올로기를 수용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뿌리에 대한 애착을 품고 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었다. 내면세계의 긴장은 여전히 존재하는 셈이다.

밀라노=박창식 기자cspcsp@hani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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