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00년07월19일 제318호 

[특집] 세계의 지역주의, 벽을 넘어서!

유럽 각국의 현안으로 떠오른 지역적 차별, 그 감정과 갈등의 뿌리는 무엇인가


(사진/이탈리아의 부유한 북부 상공업지역에 기반을 둔 북부동맹은 분리주의적 색채가 짙은 연방제를 주장하고 있다. 사진은 집회에서 환호하고 있는 북부동맹 지지자들)
‘세계의 지역주의’ 취재를 위한 유럽 출장을 떠나기 전인 6월 중순 기자는 몇 사람의 외교통상부 관리들을 만났다. 사전 자료 수집을 위해서였다.

한 관리는 이렇게 말했다. “지역갈등이요? 그거 꼭 필요한 취재입니다. 외국의 사례로부터 우리가 시사를 얻을 점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다른 한 관리는 시큰둥했다. “글쎄요. 취재하는 건 좋지만, 외국과 우리나라의 지역갈등은 성격이 다른 것 아닙니까? 우리나라의 지역감정이야 말 그대로 감정뿐이지, 구체적인 뿌리는 없는 것이니까요.”

민감한 독자들은 짐작하겠지만 두 관리는 출신 지역이 달랐다. 앞의 관리는 과거 정권 시절 자신의 ‘출신 지역’ 때문에 공직 사회 안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과 소외를 겪은 바 있다고 했다. 반면에 뒤의 관리는 그와 반대편(?) 지역 출신이었다. 각각의 지역 출신이 모두 같은 생각을 지닌 것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똑같은 지역갈등의 구조를 놓고도 출신에 따라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존재함을 다시 확인한 것이다.

차별과 소외를 낳는 지역주의의 보편성

사실 감정이나 갈등이 공연히 생겨나기는 어려운 일이다. 거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특히 감정과 갈등이 지역이라는 축을 중심으로 생성해 유지·고착되었다면 그 사회에는 지역간 격차가 반드시 존재하게 마련이다. 또한 지역간 격차는 어느 한 지역에 의한 다른 지역에 대한 차별, 정치·경제·사회적 자원의 독식에 의해 구조화되는 게 보통이다. 지역주의 또는 지역갈등은 한편에서는 이러한 차별과 독식의 구조에 대한 저항에서 비롯하며, 다른 한편에서는 차별 구조를 은폐하거나 억누르기 위한 방편으로 종종 동원된다.

이탈리아와 독일, 영국 세 나라의 지역갈등 취재는 1차적으로 갈등의 이면에 차별과 소외의 구조가 도사리고 있다는 일종의 ‘보편성’을 발견하기 위함이었다. 외국의 사례를 살펴봄으로써 우리나라의 지역갈등도 확연한 불균형 구조(인사 측면에서든, 지역개발의 측면에서든)를 바탕으로 한 것임을 자연스럽게 확인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현실을 인정한다는 것은 늘 해법을 모색하는 출발점이다. 한국에서 97년 정권교체 이후 인사의 공정성 따위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격렬한 정치적 대결의 이면에도 결국은 불균형의 역사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현실을 인정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라는 인식의 간극이 자리잡고 있었다.

취재의 두 번째 목적은 유럽의 사례로부터 해법과 아이디어를 얻자는 것이었다. 지역갈등의 역사는 사실 유럽 여러 나라의 그것이 한국보다 훨씬 길다. 이탈리아의 남부 문제만 해도 100여년의 내력을 지닌 것이며, 영국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간 갈등은 18세기 초 잉글랜드에 의한 스코틀랜드 합병 때부터로 거슬러올라간다. 따라서 지역갈등을 해소해 국민 통합을 꾀해야 하는 과제를 우리보다 일찍부터 안고 있었다.

이탈리아는 96년 총선에서 좌파민주당(옛공산당 후신)이 주도한 올리브동맹이 승리를 거뒀다. 무솔리니 시절부터 합친다면 근 71년간의 우파 정권이 마감되고 좌파로의 첫 정권교체가 이뤄진 것이다. 좌파연합의 승리요인 중 하나는 북·중부 공업지역 노동자를 주된 기반으로 하던 좌파민주당이 남부 농업지역에 대한 지원 강화 등을 공약으로 내건 것이었다. 노동자+소외지역 민중간 일종의 동맹전략이 성공을 거둔 것이다.

좌파 정부는 집권 이후 전통적 소외지역인 남부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부패와 비효율의 대명사였던 우파 정권 시절의 남부개발기금이라는 조직을 해체하고 대신 남부공사라는 새 기구를 만들어 가동에 들어갔다. 그러자 북부의 반발이 시작됐다. 북부 공업지역은 소득이 남부의 2배에 이른다. 밀라노 등을 기반으로 한 북부동맹 같은 우파 정당은 96년 가을 이탈리아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고 국호를 파다니아 공화국이라고 지어 붙였다.

북부동맹의 분리주의 주장은 “북부로부터 걷은 세금으로 게으름 때문에 못사는 남부를 더이상 지원할 수 없다. 차라리 우리끼리 따로 나가 살겠다”는 것이었다. 종전과 달리 중앙권력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게 되자 반발하되, 그 행태가 사뭇 극단적이었던 것이다.

이탈리아 북부 우파정당들의 도전은 그뒤로도 계속되고 있다. 우파연합은 지난 4월 지방선거에서 분리주의적 색채가 짙은 연방제 공약을 내걸었다. 이탈리아의 사례는 우리 정치 현실에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정권 상실 이후 기득권 세력의 반발이 있을 수는 있되, 거기에도 금도가 있어야 한다는 교훈이다. 그러한 ‘선’을 넘을 때 나라의 통합 기반은 무너지며 민주주의에도 위기가 올 수 있다.

통합 기반 무너지면 민주주의도 위기


(사진/영국 스코틀랜드가 노동당 정권의 분권화 정책에 따라 처음으로 의회를 구성한 뒤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두 번째로 찾은 나라는 독일이다. 독일은 얼마 전까지 지역갈등이라곤 별 게 없었다. 남부의 유난히 부유한 바이에른주가 기사당(CSU)이라는 지역당을 중심으로 독자성을 내세우긴 했지만 숫적으론 워낙 소수였다. 그래서 다소간의 지역간 격차는 있지만 그런대로 연방제가 잘 유지되는 나라로 꼽혀왔다.

그러나 90년 동·서독의 통일 이후 독일은 새로운 갈등 요인을 안게 됐다. 통일된 지 10년이 되도록 옛동독지역이 독일 전체의 일부로 통합되기는커녕 동·서 양 지역간 괴리가 갈수록 깊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양 지역간 격차는 통독 이후 동독지역으로 물밀듯이 밀고 들어간 서독 자본의 ‘약탈적’ 행태가 주요 요인으로 지적된다. 90년의 통독이 서독 자본에겐 ‘동독 특수’의 기회였지만 다수의 옛동독 주민들에게는 갑작스럽게 시장경제에 적응해야 하는 고통스런 경험의 출발이었던 것이다.

양독 지역의 괴리는 사회심리적 측면에서도 요인을 찾을 수 있었다. 옛동독 지역 주민들에 대한 교화는 철저하게 사회안전 차원에서 진행됐다. 이념 대결의 특수성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과거 동독 시절의 가치관은 거의 깡그리 무시되고 서독 위주의 그것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도록 요구됐다. 한마디로 “동독은 망했으니, 그 시절의 것은 모두 버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동독지역을 좀더 ‘부드럽게’ 통합하려면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고용 정책은 물론이고, 공직 인사 따위에서도 소외지역을 좀더 세심하게 배려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독일의 현 사민당 내각에는 17명의 장관 가운데 동독 출신은 1명에 불과하다. 지금의 연방정부 공무원으로 근무중인 옛동독인들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서독 출신 동료가 두 단계씩 승진할 동안 나에게는 한 차례도 승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며 좌절감을 토로했다.

동독 공산당의 후신인 민사당(PDS)이 동독 지역의 지역당으로 지지기반을 날로 넓혀가고 있는 사실은 동독인들이 느끼고 있는 박탈감과 상실감의 유력한 근거다. 민사당은 애초 통독에 따른 일시적 불만, 그것도 옛공산당원과 옛체제에 향수를 느끼는 노인들 위주로 잠깐 표를 얻다 소멸할 것으로 예측됐다. 그러나 민사당은 갈수록 의석을 늘려가고 있으며, 여론조사 결과들은 그 지지기반이 노·장·청을 망라해 넓어지고 있음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따라 서구 언론에서는 동독지역이 독일의 ‘메조지오르노’(이탈리아 남부문제를 일컫는 말로, 소외지역으로 고착되는 현상을 가리킴)가 될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겨레21>은 독일의 사례로부터 소외지역을 통합시키기 위해 어떤 식의 적극적인 지역안배와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 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영국에서는 분권화(devolution)라는 특수한 경험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분권화는 중앙권력과 갈등을 빚는 소외지역에 자치권을 부여하는 것으로, 영국 노동당 정부는 97년 집권 이후 총선 공약대로 스코틀랜드와 웨일즈, 북아일랜드의 분권화를 추진했다. 이에 따라 스코틀랜드에는 올해 초 독자적인 의회와 정부가 출범했는데, 스코틀랜드 정부의 권한은 우리나라의 지방자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권한이 크다. 외교와 국방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분야의 입법권이 부여됐으며, 조세율도 중앙정부의 그것에서 일정 비율까지는 조정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스코틀랜드 의회와 정부는 새로운 활력에 넘쳐 있다. “스코틀랜드의 경영은 스코틀랜드인의 손으로”라는 구호가 실감난다. 분권화는 소외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일 뿐아니라, 권력분산이라는 측면에서 민주의의의 원리와도 좀더 들어맞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성적 접근으로 해법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지역갈등이 좀더 악성대결로 치닫는 것은 어쩌면 모든 권력이 극도로 중앙에 집중된 사회체제 때문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과거의 소외지역 주민들은 차별과 소외를 한꺼번에 해결하는 유력한 방법으로 정권교체를 열망했고, 반대로 다른 쪽 지역에선 오늘날 “빼앗긴 정권을 되찾아 오는 것말고는 방법이 없다”며 지역주의적 표결집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사실 정부권한의 지방이양을 비롯한 권력분산에 인색하기로는 현 김대중 정부도 과거 정권과 크게 다르다고 보기 어렵다.

우리사회는 웬만한 취직이건 승진이건, 기업활동이건 “청와대 전화 한 통화면 해결된다”는 사회다. 그만큼 고도로 중앙집중화된 사회인데다가 지역갈등이 겹치면서 “오로지 대권 위주로 한방에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대결적 정치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기자는 이번 기획을 위해 6월18일부터 7월8일까지 한 나라에 1주일씩 머물며 각국의 주요 정치 지도자와 대학교수, 언론인 등의 전문가를 두루 인터뷰했다. 취재에 응한 인물들에게는 당연히, 또는 불가피하게 취재의 배경인 한국의 현실을 설명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기자의 마음은 무거워지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취재를 마친 다음에도 “그렇다면 이렇게 해야 한다”라고 한마디로 답을 내릴 수 없는 사정이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한마디쯤 제언을 해본다면 이런 것이다. “우선 감정과 갈등의 배경이 된 격차의 실상과 원인을 이성적으로 진단해보자. 거기서부터 한 걸음씩 해법의 실타래를 풀어보자”고….

박창식 기자cspcsp@hanimail.com


.




↑Back to the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