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베이징 : 표지이야기 : 한겨레21

계엄 베이징

일자리 빼앗긴 농민공과 시민·삼엄한 감시받는 외지인… 올림픽 통해 중국 ‘조화사회’의 붕괴를 보다

▣ 베이징(중국)=글 박현숙 전문위원 strugil15@hanmail.net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장샤오핑. 30살. 후베이에서 올라온 농민공

웃통을 벗어젖힌 그가 동네 한 식당 구석에서 대낮부터 맥주를 들이켜고 있다. 가마솥을 삶아놓은 것처럼 날은 연일 푹푹 쪄대고 맥주까지 들이켠 탓에 그의 얼굴은 ‘붉은 태양’이 돼버렸다. 요즘 하는 일이라곤 매일 대낮부터 술을 마시고 고향에서 같이 올라온 삼촌에게 신세한탄을 늘어놓는 것뿐이다. 그는 현재 무직에 무일푼 신세다. 식당에 진 술값, 밥값 외상을 못 갚은 지도 벌써 한 달이 넘는다. 올림픽을 앞두고 7월20일부터 환경정화를 이유로 베이징 시내의 모든 건축현장 공사가 중단되는 바람에 그는 당분간 어디 가서 ‘빌어먹을’ 일자리도 없다. 그나마 그전에 몇 달간 일했던 노임도 현장 책임자가 가지고 달아나버렸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당장 여비조차 없다. 설령 여비를 마련한다 해도 무일푼으로 고향에 가서 아내와 딸을 볼 면목도 없다. 화상을 입은 것처럼 붉게 농익은 얼굴을 한 그가 넋두리를 쏟아놓는다.

△ 막바지 올림픽 준비가 한창인 중국 베이징의 톈안먼 광장에서 정복 차림의 공안요원들이 줄을 맞춰 행진하고 있다. 혹시나 있을지 모를 테러에 대비하기 위해 곳곳에 배치된 공안요원이 삼엄한 경계를 펴고 있는 톈안먼 광장의 분위기는 올림픽 개막식이 다가올수록 차갑게 식어간다.

“올림픽이 우리하고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어. 국가적으로는 좋은 일이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지지는 해야겠지만…. 그래도 먹고살게는 해줘야지. 올림픽도 잘되고 우리도 돈 벌게 해주면 어디가 덧나나. 제기랄!”

저녁 무렵, 그는 근처 마을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갔다. 친구가 사는 마을은 베이징 최대의 농민공 집단 거주지다. 그런데 마을 들머리에서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팔에 ‘치안 유지’라는 빨간 완장을 두르고 무장을 한 군복 차림의 보안요원들이 제지를 한다. ‘출입증 제시’를 요구한다. 연락을 받고 달려나온 친구가 대신 해명을 하고서야 마을에 들어설 수 있었다. 장샤오핑의 친구 말을 빌리자면, 역시 7월20일을 전후해 마을 입구마다 올림픽 조직위원회에서 특별 파견한 보안요원들이 중무장을 하고 봉쇄에 들어갔단다. 마을에서 임시로 발급한 ‘출입증’이 있어야지만 차량이건 사람이건 드나들 수 있다. 각 나들목에는 5~6명의 무장 보안요원들과 3~4명의 마을 치안 담당자들이 이리저리 눈을 ‘부라리며’ 지키고 서 있다. 그들이 팔에 두른 빨간 완장에는 ‘올림픽 치안 자원봉사자’라는 조그만 글씨가 새겨져 있다. 마을 안 곳곳에도 이런 빨간 완장의 ‘치안 자원봉사자’들이 사람들 속을 헤집고 다니며 삼엄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문화대혁명 시절로 돌아간 거 같아. 마치 홍위병들이 우리를 하루 종일 감시하는 것 같다니까. 내 참!” 역시 건설현장 인부로 일하는 장샤오핑의 친구는 침을 퉤 뱉으며 담배를 하나 꺼내문다. 그들은 또 술판을 벌이고 떼먹힌 임금과 졸지에 실직자 신세가 된 타령을 늘어놓는다. “이놈의 올림픽, 빨리 좀 지나갔으면 좋겠네. 살 수가 있어야지, 원….”

리핀. 37살. 같은 마을에 사는 장쑤에서 올라온 농민공

그가 아내와 함께 베이징에 돈벌이를 온 지는 10년도 더 된다. 판잣집 앞의 작은 도랑가에 역시 웃통을 벗고 더위를 식히고 있는 그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다. 말을 시켜도 몇 마디 짧게 대답하고는 다시 심드렁한 표정이 된다. 그의 무표정한 얼굴 뒤로는 온갖 근심과 고민이 드리워져 있다. 단칸방 나무침대 위에는 방학을 맞아 고향에서 올라온 초등학생 아들이 혼자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옆에서는 아내가 점심 준비를 하고 있다. 그는 며칠 뒤 가족을 데리고 산시 지방으로 이사를 갈 거라고 한다. 올림픽 때문에 더 이상 베이징에서는 일자리를 구할 수 없어서다.

△ 올림픽 개막식을 앞두고 주경기장인 ‘궈자티위창’ 진입로에 오륜마크 등 올림픽 상징물이 내걸려 있다.

“우리도 중국 사람인데 당연히 올림픽이 잘되기를 바라지. 나라에서 하는 일이니 어련히 알아서들 하겠어. 근데 아무리 잠시라고 해도 우리는 그동안 어디 가서 뭘 먹고 살란 말이야. 오죽하면 10년째 살던 베이징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사갈 생각을 했겠어. 그래도 거기는 아직 할 일이 있다고 하더라고. 우리도 같은 중국 사람인데….”

5일쯤 뒤 다시 찾은 그 마을에는 이미 리핀의 가족이 사라지고 없었다. 이웃 사람은 꼭 이틀 전에 가족이 모두 이사를 했다고 전했다. 그의 단칸방 판잣집 문은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다.

장신. 20살. 기업체 견습사원

그는 베이징에서 가까운 친황다오에서 대학을 다니다, 지난 7월 초 베이징의 한 회사로 ‘실습’을 나왔다. 숙소는 회사에서 가까운 한 아파트 내 ‘합숙소’ 같은 단칸방이다. 그는 얼마 전 아파트단지 주민위원회 소속 ‘치안 자원봉사자’들의 단속에 걸렸다. 그동안 유명무실했던 각 아파트단지 주민위원회가 올림픽을 한 달여 앞두고 대대적으로 인원을 동원해 치안 자원봉사위원회로 ‘돌변’했다. 이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매일같이 아파트 내 낯선 사람들을 탐문하고 다닌다. 가가호호 방문해 일일이 신분을 확인하고 혹시라도 정식 주민이 아니거나 ‘잠주증’(외지 사람이 발급받는 임시 거주 증명서)이 없는 사람들은 여지없이 불려가 조사를 받아야 했다.

장신도 며칠 전 갑자기 셋집 초인종을 누르며 들이닥친 주민위원회 치안 봉사자들에게 ‘걸렸다’. 얼마 전 신분증을 분실한데다 잠주증도 미처 신청하지 않은 그는 의심받기 딱 좋은 대상이었다. 다행히 여성인데다 대학 재학생임을 증명하는 학생증이 있었기에 구체적으로 ‘취조’를 받는 것은 면했다. 하지만 일주일 안에 신원보증서와 잠주증을 만들어오라는 명령을 받았다.

“아무리 올림픽이라고 해도 이렇게 심하게 감시를 하는 건 너무한 거 같아요. 고향 친구들도 올림픽 기간에 베이징에 오고 싶어했는데 요즘 베이징 들어오는 데 각종 안전검사 등 단속이 너무 심하다고 포기했어요. 여행사 가이드를 하는 친구는 지금 일이 없어서 내내 놀고 있대요. 친황다오 여행사도 이런데 베이징 여행사들은 더 손님이 없어서 파리만 날린다고 하더라고요. 이렇게 무서운 분위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요즘은 베이징에 있어도 올림픽을 치르는 건지 무슨 전쟁을 치르는 건지 모르겠어요.”

△ 올림픽을 앞둔 베이징 시내 모든 지하철역 출입구마다 검색대가 설치돼 드나드는 시민들을 검색하고 있다.

베이징의 각 아파트단지도 출입증 제시만 요구하지 않을 뿐 농민공 마을의 감시 체계와 별반 다를 바 없다. 지하실을 폐쇄해서 유동인구를 ‘몰아내고’, 주민위원회를 임시 치안 감시단속반으로 전환해서 비상 감시체제로 운영하고 있다. 이런 철저한 올림픽 치안 유지 탓인지는 몰라도, 얼마 전 베이징 외곽의 한 아파트단지에서는 신장에서 올라온 위구르족 청년들 한 무리가 검거됐다. 평소에 낯선 사람들과 외지인들을 주의해서 보라는 주민위원회 홍보와 ‘테러분자’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신고하면 높은 보상을 해준다는 베이징 공안국의 홍보에 힘입어 같은 단지에 사는 주민 신고로 검거됐다고 한다. 며칠 전 공안국에서는 베이징에서 테러분자로 의심되는 신장 위구르족 사람들을 몇십 명 검거했다는 발표를 한 바 있다. 하지만 그들이 바로 ‘그들’인지는 알 수 없다.

리스마오. 59살. 베이징 골목여행 인력거꾼

베이징 스차하이 골목. 이곳은 베이징에서 가장 유명한 ‘골목길 여행코스’이다. 리스마오 할아버지는 근 20년 넘게 이곳 스차하이 골목에서 인력거꾼으로 일해왔다. 비가 오거나 눈 내리는 날만 제외하고 그는 하루 종일 이 골목길 입구에서 인력거 여행객을 기다리고 있다. 몇 년 전 이 골목이 베이징시 문화보호지역으로 지정되면서 국내외에서 밀려드는 골목길 여행객들로 여름과 가을에는 내내 호황을 누렸다. 불과 지난해까지만 해도 그는 올림픽 특수를 누릴 꿈에 부풀어 있었다. 올림픽 때는 당연히 외국 손님들도 많이 오고, 국내 각지에서 베이징 올림픽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웬걸. 올림픽이 한 달도 채 안 남았는데도 밀려드는 손님은커녕 비수기인 겨울 장사와 다를 바 없이 썰렁하다.

“죽을 쑤고 있지. 한여름 성수기에 그것도 올림픽을 앞두고 이렇게 철퇴를 맞을 줄 누가 알았겠어. 지금 우리는 한겨울이나 마찬가지야. 통 손님이 없어. 1년 365일 이 골목에서 하루 종일 죽치고 있지만, 올여름에는 돈 벌기 그른 것 같아. 정부가 ‘안전 올림픽’을 치른다고 외국인들이나 외지인 여행객들을 제한해서 그래. 올림픽이 잘돼야 나라도 잘되니 나같이 힘없는 서민들은 그저 꾹 참는 수밖에 없지. 그래도 이 올림픽을 하려고 우리가 100년을 기다려왔잖아. 참아야지, 쩝….”

‘참는 사람들’은 리스마오 할아버지뿐만이 아니다. 올림픽 특수를 노리던 식당이나 숙박업, 유흥업소들 그리고 모든 베이징 시민들이 이를 악물고 ‘공안 올림픽’ 한파를 견뎌내고 있다. 올림픽을 앞두고 베이징은 사실상 ‘경제마비 상태’에 빠졌다. 관광업, 서비스업뿐만 아니라 외지의 물류차량들도 베이징행이 봉쇄되고, 공장도 가동을 중단시켰다. 심지어 그동안 계속 오르던 채소가격이 물류차량 진입 저지로 폭등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하락하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유동인구가 대폭 감소하면서 ‘먹는 입’이 줄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 베이징대학교 후문 옆에 위치한 탁구경기장 앞에서 노동자들이 간이 화장실 공사에 한창이다. 베이징 시당국이 올림픽을 앞두고 ‘환경미화’에 쏟아부은 비용은 가히 천문학적이다.

세홍샤오. 나이 알 수 없음. 인터넷 블로거

중국의 포털 사이트 ‘신랑닷컴’에 한 블로거가 ‘올림픽이 뭐기에!’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의 일부다.

“며칠 전 DVD 몇 장을 베이징으로 소포로 부치려고 퀵서비스 회사에 연락을 했다. 그런데 업체 직원이 배달을 거부하는 게 아닌가. 이유를 물으니 ‘올림픽 때문’이라고 한다. 올림픽과 소포가 무슨 상관이냐고 물으니까, DVD를 가장한 폭발물이 들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란다. 세상에나! 정 부치고 싶으면 우체국에 가서 안전검사를 받고 부치라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이런 망할 자식 같으니라고! 도대체 올림픽이 뭔데 그깟 DVD도 맘대로 부치지 못한단 말인가. 제발 이 지긋지긋한 올림픽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아~, 돌겠다 돌겠어!”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08년, 중국 톈진의 난카이대학 건립자인 장바이린은 톈진의 한 신문에 다음과 같은 ‘호소’를 했다. “중국은 과연 언제나 올림픽에 선수 1명이라도 파견할 수 있을까? 중국은 과연 언제나 한 무리의 선수단을 이끌고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을까? 중국은 과연 언제나 올림픽을 치를 수 있을까?”

2008년 8월8일, 꼭 100년 만에 그의 마지막 꿈은 이루어진다. 그 ‘100년의 꿈’을 손에 쥐던 2001년 11월,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그 날, 베이징을 비롯해 중국 전역에서는 눈물과 환호, 축포로 온 거리가 밤새 잠을 못 이뤘다. 그날의 감격은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편의 영화처럼, 바로 어제의 일처럼 생생히 기억한다”고 말한다.

그날로부터 약 7년이 지난 2008년 8월, 올림픽을 코앞에 둔 베이징 거리는 차갑게 얼어붙었다. ‘준계엄 상태’나 다를 바 없다. 베이징 올림픽의 3대 주제인 ‘과학 올림픽, 녹색 올림픽, 인문 올림픽’ 정신은 이미 ‘안전 올림픽, 평안 올림픽’ 구호에 묻혀버린 지 오래다. 현재 베이징 곳곳은 반봉쇄 상태다. 각 지방에서 베이징으로 들어오는 톨게이트가 봉쇄되고, 기차나 지하철역에서는 이중삼중의 안전검색이 이뤄지고 있다. 이 때문에 베이징에서 나가기는 쉬워도 들어오기는 아주 힘든 상황이다. 내국인들 입에서마저 ‘계엄 올림픽‘이라는 불만이 나올 정도다.

2001년부터 2008년 올림픽 개최 전까지 중국은 지난 7년 동안 ‘올림픽을 향해’ 분주히 달려왔다. 가장 분주하게 움직인 건 역시 베이징이다. 베이징시는 올림픽을 앞두고 ‘뉴 베이징 플랜’을 만들어 올림픽형 도시구조로 탈바꿈하는 데 막대한 예산과 공을 들여왔다.

△ 지나친 ‘안전 올림픽’ 강조로 애초 기대했던 올림픽 특수는 찾아보기 어렵다. 베이징 거리에서 운행 중인 관광용 삼륜 인력거를 한 외국인 관광객이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다.

‘뉴 베이징 플랜’은 베이징의 하늘을 푸르게 만들고, 낡은 건물을 새 건물로 대체하고, 모든 환경오염 물질 배출 공장들을 베이징 밖으로 몰아내는 데 골몰했다. 일단은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공기를 정화하기 위해 중국 정부는 베이징시에 우리 돈으로 약 18조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다. 버스와 승용차가 환경기준에 부합하는 새로운 기종으로 전면 교체됐고 지난 7월20일을 기해 베이징시의 모든 건설공사가 전면 중단됐다. 베이징 외곽뿐만 아니라 인근의 톈진, 허베이 지역의 오염물질 발생 우려가 있는 공장들도 가동이 전면 중단됐다. 인터넷에서는 환경정화를 위해 취해진 이런 일련의 조치들을 풍자해 “오염도 봉쇄됐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올림픽을 두 달여 앞둔 지난 6월 초부터는 2~3일에 한 번씩 인공강우를 뿌릴 정도로 베이징시는 막바지 환경정화에 비상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 밖에도 모든 식당에서 금연 조처가 취해졌고, 버스 정류장마다 ‘질서 도우미들’이 배치돼 중국인들에게 ‘문명시민’ 의식을 가르치고 있다.

7년 사회모순 정화작업의 실패

하지만 지난 7년 동안 중국 정부가 가장 주력해온 정화작업은 뭐니뭐니해도 ‘사회모순 정화작업’이다. 후진타오 체제 출범 이후 줄곧 강조해온 ‘조화사회 건설’은 일종의 사회모순 정화작업으로 볼 수 있다. 빈부 격차, 지역 간 발전 격차, 관료 부패 등이 낳은 인민 내부의 각종 모순과 대립은 중국 사회를 ‘위험사회’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7년간 중국 전역에서 터진 수많은 탄광 매몰 사고와 각종 시위 및 민중봉기, 눈사태와 지진 등 천재지변은 조화사회 건설에 적색 경보를 울렸다. 게다가 올림픽을 코앞에 두고 벌어진 티베트 사태와 구이저우 웡안현에서 발생한 대규모 민중봉기 등은 올림픽 안전까지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7월 말에는 신장 위구르족 독립단체인 ‘동돌궐 이슬람 해방단’이 비디오테이프을 통해 공개적으로 ‘올림픽 테러’를 경고하기도 했다.

“베이징 외형을 변화시키고 환경을 정화시키는 데 성공했는지는 몰라도, 중국 정부는 사회모순을 정화시키고 조화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왜 올림픽을 앞두고 이런 사회·정치적 모순들이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는지 생각해보라. 환경정화에 쏟아부은 예산만큼 거기에 상당하는 물질적·정신적 예산을 사회모순을 정화시키는 데 쏟아부었더라면 적어도 올림픽 분위기가 이렇게까지 얼어붙지는 않았을 것이다. 봐라. 7년 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던 날 베이징 거리를 꽉 메우며 감격의 함성을 지르던 그 많던 군중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중국청년보>가 펴내는 주말부록 <빙점>의 편집장을 지냈던 언론인 리다퉁은 “베이징 올림픽이 사면이 봉쇄된 채 테러분자의 눈치를 보며 치러지는 ‘안전 올림픽’으로 전락한 책임은 전적으로 조화사회 건설 실패에 있다”고 지적했다.

‘안전 올림픽, 평안 올림픽’ 구호가 가득한 베이징 하늘은 지금 먹구름이 가득하다. 그 먹구름 낀 하늘 사이로 입간판 속의 다섯 마리 푸와(베이징올림픽 마스코트)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그리고 손짓한다. “베이징은 당신을 환영합니다!”

농민공은 누구인가

호구제가 만든 도시의 유랑민

중국에는 세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농민과 도시인, 그리고 농민공(農民工)이다.
‘농민공’은 농민이자 노동자이기도 한 사람들이다. 농민의 신분으로 도시 노동자 생활을 하는 그들은 중국에만 존재하는 특수한 부류다. 1949년 건설된 사회주의 신중국은 농민들의 낫과 곡괭이가 만들어낸 ‘농민혁명’의 역사다. 사회주의 신중국은 그들에게 토지를 돌려주었고 계급의식이 가장 투철한 ‘붉은 혁명계급’이라는 완장을 채워줬다. 하지만 30년 전, 중국에서 시작된 개혁·개방 정책은 중국 농민들의 삶을 하루아침에 갈아엎었다. 개혁·개방과 함께 불어닥친 ‘시장경제’ 바람은 그들을 도시 한복판 시장 속으로 내몰았다.
남아도는 농촌 인구와 부족한 경작지, 1년 내내 아무리 땅을 파도 목구멍에 겨우 풀칠 정도밖에 못하는 ‘한 줌 닭털 같은’ 수입은 그들을 도시의 각종 ‘노가다판’으로 떠밀었다. 본격적인 개혁·개방 정책이 시작된 1980년대 이후 이들은 도시 곳곳에 대규모 군단을 이루며 출몰하기 시작했다. 개혁·개방 30주년을 회고하는 한 중국 신문에서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거대한 농민공들의 물결이 중국 도시 전역으로 넘쳐흘렀다.”
시장경제 바람은 중국을 무서운 속도로 변화시켰다.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 대도시는 자고 일어나면 새 건물이 하나씩 들어설 만큼 초고속 외모 변형을 했다. 농민공들은 도시의 외모를 변화시킨 일등공신이다. 도시 건물을 짓고, 도시 거리를 청소하고, 도시인들의 아이를 돌보는 등 도시 안의 온갖 허드레 잡일은 모두 농민공들의 몫이다.
하지만 이들은 도시의 주인이 될 수 없다. 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그들은 도시 내의 영원한 이방인이자 유랑자다. 농민과 도시민이라는 두 가지 신분체계로 나눠진 중국의 호구제도는 농민공들에게 도시민이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농촌 인구의 도시 유입을 막으려고 만든 호구제도는 농민공들에게 굴레와 속박으로 작용한다. 농민 호구를 가진 사람들이 도시민 호구를 가진다는 건 중국에서는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힘든 일이다.
농민 신분으로는 도시에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것조차 힘들다. 도시민 신분이 아니면 도시 아이들보다 몇 배 더 많은 별도의 학비를 내고 학교를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아무런 신분보장 없이 살아가는 농민공들에게 도시는 ‘잠주증’이라는 것을 발행한다. 말 그대로 ‘잠시 거주하는 사람’이라는 증명서다. 그나마 이런 잠주증도 없으면 그들은 도시의 불법 체류자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