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여당·보수세력의 집중포화 속에 내분까지 겹친 한국방송…1차 방어선 무너지면 독립성 지킬 방법 없어
▣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KBS이사회가 한나라당 이사회냐!”
“보도 내용 불만이면 언론중재위 찾아가라!”
6월17일 오후 3시, 한국방송 이사회가 열릴 서울 여의도 방송사 신관 5층 이사회실 앞에 한국방송 기자 20명이 모여들었다. 기자들은 한국방송 이사진들에게 “KBS 이사진이 무소불위의 권력이냐” “온 국민이 지켜본다. 똑바로 하시라”라고 외쳤다. 이들의 손에는 붓글씨로 급히 쓴 피켓들이 들려 있었다. 한나라당 성향의 권혁부 이사는 기자들을 향해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쏘아대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부동산 투기 파문으로 여성부 장관 내정 단계에서 낙마한 이춘호 이사도 이날 이사회에 참석했다. 이날 임시 이사회는 5월16일치와 25일치 <뉴스 9> 보도가 “사실과 다르”거나 “편향된 보도”라는 이유로 이일화 보도본부장을 인책하기 위해 열렸다.
“이사회, 명백한 편집권 침해”
이에 기자들은 이사회가 뉴스 내용을 문제 삼아 보도본부장을 문책하려고 하는 것은 명백한 편집권 침해라고 판단했다. 김현석 한국방송 기자협회장은 “이사회의 명백한 편집권 침해에 기자들이 발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시위도 미리 계획하고 공지한 것이 아니었다고 했다. 이사회 직전 보도국 등이 있는 회사 3~4층을 돌며 “이사회에 항의하자”고 제의하자 20여 명이 즉석에서 뜻을 같이했다는 것이다. 김 협회장은 “이렇게 많은 기자들이 자발적으로 피켓 시위를 한 것은 10년 만”이라며 “한국방송에 가해지는 유·무형의 압력들이 기자들에게 위기감을 느끼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한국방송은 지금 위기다. 외부에서는 청와대와 정부·여당부터 뉴라이트전국연합 등 보수단체까지 총공세를 펼치고 있다. 내부는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다. 위기가 더 증폭되는 이유다.
지난 5월15일 뉴라이트전국연합 등 보수단체 3곳이 연합해 한국방송에 대한 특별감사를 감사원에 청구했다. 감사원은 △적자 누적 등 부실경영 △인사권 남용 등을 이유로 곧바로 특별감사를 결정했다. 결정에는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이에 반발해 한국방송이 낸 ‘특별감사 행정심판 청구 및 집행정지’ 신청은 각하됐다. 6월11일 한국방송 5층에선 감사원의 특별감사가 시작됐다. 이날 한국방송은 회사 차원의 성명을 내고 “전례 없는 감사원의 결정과 광범위한 자료 요구, 그리고 본감사로 이어지는 과정은 이번 특별감사가 정치적 목적에 의한 표적감사라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고 밝혔다.
시민들은 촛불을 들었다. 6월11일 30여 명의 시민이 처음 한국방송 본관 앞을 촛불로 밝혔다. 다음날에는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촛불이 100여 개로 늘었다. 13일에는 서울광장에 모인 2만여 명의 시민들이 “KBS를 지키자”며 마포대교를 넘어 한국방송 앞에 모였다.
누리꾼 ‘촌시렐라’는 포털 다음의 아고라에 “국민을 대변하는 국회는 이미 한나라당의 손아귀에 있고 이를 바꿀 수 있는 시간도 너무 멀리 있습니다. 탄핵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우며 국민소환제도 역시 국회의 움직임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압니다. 한 가지 방법은 소리를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라며 “한국방송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누리꾼 ‘수원블루윙스FC’는 “개인적으로 K리그 수원 삼성팬으로서 가장 싫어하는 방송사인 한국방송을 위해 촛불을 드는 것은 참 뭐한 기분이었지만, 공영성을 지켜 공정한 방송의 목소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한국방송 앞으로 나갔다고 했다.
이런 촛불을 바라보는 한국방송 내부의 시선은 갈라져 있다. <미디어 포커스>를 진행하는 김경래 기자는 12일 다음 아고라에 “시민들이 스스로 지키러 와줘서 너무 감사하다. 국민들이 KBS를 지켜줄 만큼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지 뼈아프게 반성해본다”라는 글을 남겼다. ‘라마’라는 ID를 쓴 한국방송의 한 기자도 “요 며칠, KBS에 들어온 뒤 가장 부끄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KBS가 뭐가 대단하고 잘났다고, 스스로 지키지도 못하는 KBS, 그냥 둬버릴 것을, 뭣하러 지키겠다고, 작은 ‘촛불’들이 모인 것을 보고, 정말 심한 자괴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눈물나도록 고맙고, 감사했습니다”라고 적었다.
일부 직원들, 시민과 충돌
그러나 한국방송 내부 게시판에 들어가보면 분위기는 달라진다. 한 한국방송 직원은 “촛불시위는 무엇이었나. 선동, 불만, 거짓, 과장, 파괴, 유희가 함께 만든 집단 놀음이다. 정상인이라면 여기에 두려움과 분노를 느껴야 되지 않는가. 회사에 해결해야 할 사안이 있다면 이를 위해 마련해놓은 절차와 시스템이 있을 텐데, 불법 시위를 몇 달이고 벌이던 사람을 끌어와서 해결해보겠다고…?”라고 썼다. 이 게시물에는 찬성을 표시한 이들이 124명으로 반대 의견을 낸 86명보다 더 많았다.
일부 한국방송 직원들은 촛불을 든 시민들과 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11일 “공영방송을 지키자”며 한국방송 앞으로 몰려간 ‘촛불 시민’들은 모순적인 상황과 맞닥뜨렸다. 한국방송 노동조합 집행부가 만들어 회사 주변에 세운 180개의 만장을 본 것이다. “사장 연임 역주행에 KBS 미래도 역주행” “공영방송 파괴하는 정연주는 집에 가라” 등의 문구를 본 시민들은 만장을 뽑으려 했다. 이런 사실을 전해들은 박승규 노조위원장 등 노조 관계자들이 현장으로 왔다. “뽑겠다”는 시민들과 “뽑지 마라”는 노조원들 사이에 설전이 오갔다. 막말이 오갔다.
한 한국방송 기자는 “한국방송이 국민에게 특별히 해준 것도 없고 우리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우리를 지켜주러 온 것인데, 우리는 이들에게 ‘당신들이 와서 우리 정원의 꽃 꺾였다, 잔디 밟았다’라고 말한 식이라 심히 부끄럽다”고 말했다.

△ 6월20일 문화방송 앞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에게 폭행당해 바닥에 쓰러진 문화방송 카메라 기자. 방송의 독립성이 풍전등화같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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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 내부가 이렇게 갈린 제일 큰 이유는 정연주 사장의 연임에 대한 찬반 때문이다. 한국방송 노동조합은 지난 2005년부터 ‘반정연주’를 기치로 내건 집행부가 당선돼왔다. 2007년 당선된 박승규 위원장은 아예 처음부터 ‘연임 반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정 사장에 대한 직원들의 반응도 차가웠다. 지난해 12월 노동조합이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86.2%가 “정연주 사장이 경영 적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응답했다. 즉각 퇴진하라는 소리였다.
그러나 이런 흐름은 한나라당의 집권과 한나라당 쪽 인사들로 쏠린 이사회 재구성,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등장 등 급변하는 외부 상황에 따라 점차 변했다.
노동조합이 2월15일 조합원 51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정연주 사장이 즉각 퇴진해야 한다”고 답한 사람은 126명으로 전체 응답자의 24.31%에 불과했다. 응답자의 43%는 “2월 임시국회에서 수신료 인상안 처리 여부가 결정”되거나 “4월 총선 뒤 KBS 관련 법이 바뀌는 시점”에 맞춰 사장 퇴진 운동을 전개하자고 했다. 상황을 좀더 지켜봐야 한다는 쪽으로 여론이 확 기운 것이다.
이어 한국방송 기자협회가 6월9일부터 이틀간 실시한 내부 여론조사에서는 “공영방송 사수 투쟁이 중요한 시기이므로 이 시기에 정연주 사장 사퇴를 촉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이 53.9%에 달했다. “정연주 사장의 임기가 공영방송 독립성 유지와 관계가 없거나 오히려 걸림돌이다. 따라서 정 사장 사퇴를 촉구하는 것은 적절하다”는 응답은 37.8%에 그쳤다. 대세가 변한 것이다.
노조, 여론 조사 결과 공개 안 해
이런 내부 분위기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국방송 노조는 정연주 사장의 퇴임을 계속해서 요구하고 있다. 한국방송 내부는 지금 정연주 사장을 지켜야 한다는 ‘친정’과, 퇴임을 요구해야 한다는 ‘반정’으로 갈렸다. 한국방송에 쏟아지는 ‘외환’(外患)보다 속 깊은 ‘내우’(內憂)가 병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한국방송 노조는 정 사장 퇴진 운동에 더 몰두하면서 균형을 잃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방송 노조는 지난 5월 정연주 사장의 퇴진 문제와 관련해 한 여론조사 기관에 의뢰해 국민 1천 명과 전문가 13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응답자의 66%가 ‘정연주 사장의 남은 임기를 보장해야 한다’고 답했다. ‘사퇴해야 한다’는 27%에 불과했다. 한국방송의 한 기자는 “노동조합은 자신들의 의도와 전혀 반대되는 결과가 나오자,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여론조사에는 ‘한국방송 사장 선임 구조를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 ‘사장 선임에 국민이 참여해야 하는지’ 등 정연주 이후의 한국방송이 가야 할 길과 사장 선임 방법을 묻는 건설적인 질문도 많았다. 그러나 정연주 사장 진퇴와 관련한 조사 결과를 공개하기가 껄끄러워 전체 조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은 것이다. 노동조합이 ‘정연주 사장 퇴진’이라는 목적에 매몰돼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방송의 한 차장급 기자는 “조직의 내부 역량이 ‘정연주 사장 퇴진 운동’이라는 말초적이고 지엽적인 문제에 매몰됨에 따라, 공영방송의 위기라는 본질적인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구성원들의 뜻을 모으는 작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며 “이 때문에 지금 한국방송을 지켜주겠다고 켜진 촛불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호응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밝혔다. 한국방송을 구하겠다고 수없이 몰려든 시민들 앞에 제대로 나서는 기자나 PD가 없는 이유다.
한국방송 내부의 스텝이 이렇게 엉켜 있는 사이, 정치권에서는 한국방송을 장악하기 위한 작업이 착착 진행 중이다. 한나라당은 지난 6월18일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초선의원 워크숍에서 ‘국가기간방송에 대한 법률안(국가기간방송법) 통과’를 올해의 대표적인 과제로 꼽았다. 국가기간방송법은 한국방송을 겨냥해 한나라당이 오래전부터 다듬어온 법이다. 한나라당이 이명박 정부 시대의 언론정책을 새롭게 만들기 위해 구성하고 있는 ‘21세기 미디어 특별위원회’가 아직 본격적으로 가동하지 않은 상태여서 법안 내용은 일부 유동적이다. 하지만 지난 2004년 발의할 당시 국가기간방송법의 뼈대는 한국방송의 예산 심의권과 인사권을 국회에 넘기는 것이었다. 당시 법안 내용을 보면, 한국방송공사 사장에게는 예산편성권만 주어지고, 편성된 예산은 경영위원회의 의결과 국회의 승인을 거쳐야 확정된다. 예산을 승인할 한국방송의 경영위원회 구성원은 국회의장의 추천으로 대통령이 임명하게 되어 있다. 결국 한국방송은 예산을 장악하게 된 경영위원회와 여당 또는 다수당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이다. 한국방송 관계자는 “이 법안에 따르면 한국방송은 수신료만으로 운영하고 예산권은 물론 수신료 산정·배분권도 없어져, 국회에 로비를 잘해야 프로그램 제작비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사장, 인사권으로 주무를 수 있어
이렇게 되면 한국방송은 집권당이나 다수당에 비판적 보도를 할 경우 국회와 방송통신위원회의 압박을 받게 되고, 반대로 친정부적 방송을 하면 국민의 질타를 받게 된다. 그 결과 한국방송은 무색무취한 방송을 하는 미국의 〈PBS〉나 일본의 〈NHK〉와 같은 길을 가게 될 공산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또한 한나라당의 국가기간방송법안은 경영위원회에 사장과 부사장, 감사의 임명 및 해임권까지 주고 있다. 국회가 예산부터 인사까지 쥐게 되는 것이다.

△ 6월18일 열린 한나라당 초선의원 워크샵. 한나라당은 이 자리에서 국가기간방송법 통과를 올해의 대표적인 과제로 꼽았다. (사진/ 한겨레 강창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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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나라당이 이 법을 처음 만들었던 2004년과 달리 현재는 정부와 의회를 동시에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방송을 정부와 의회의 영향력 아래 동시에 두는 쪽으로 법안을 만들 가능성이 높다.
기자들은 이런 미래상에 벌써부터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최경영 탐사보도팀 기자는 “김대중 정부 때만 해도, DJ 측근 인사들의 압력성 전화로 뉴스 소재가 선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며 “나 역시 2002년 김대중 정부 때 ‘정부가 내세우는 이유가 타당하다’는 논리에 막혀 집시법 개정안 관련 뉴스를 제작하지 못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최 기자는 “당시 압력이 가해질 때 ‘너도 전라도 사람이잖아’라는 비합리적인 말을 듣곤 했다”며 “현재 사장으로 거론되는 이명박 대통령 측근이 사장으로 부임했을 때는 어떤 방식의 압력이 들어올지 알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5년간은 그래도 보도나 뉴스 아이템 선정에 사장의 직접적인 압력이 가해진 적은 없었다”라고 덧붙였다.
해외에 특파원으로 나가 있는 한 기자는 내부 게시판에 “그들이 온갖 난관을 뚫고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것은 결국 KBS라는 막강한 방송사를 정권의 홍보 도구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그의 글을 그대로 옮겨보자.
“입사 뒤 18년 저의 기자생활을 취재의 자율성이라는 관점에서 돌이켜볼 때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취재하고 편집해 방송할지, 그 자율성은 꾸준히 신장돼왔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양심에 반하는 취재와 방송을 강요받지도, 설사 강요받더라도 저항할 수 있는 시스템과 문화가 우리 안에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습니다. KBS가 영향력뿐 아니라 신뢰도에서도 1위로 올라섰다는 사실은 KBS가 정권과 국민 사이에서 어느 쪽으로 이동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일 것입니다. 정연주 사장의 퇴진이라는 1차 목표, 정권의 사장 임명이라는 2차 목표, 정권의 홍보 도구화라는 3차 목표는 유기적으로 결합돼 있습니다. 만일 그들이 1차 목표를 획득하게 되면 2차, 3차 목표를 향해 일사천리로 내달릴 것입니다. 지금처럼 사분오열된 상황에서 1차 방어선이 무너지고 2차 방어선을 지켜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2차 방어선이 무너지고 나면 기자들은 매일매일을 양심의 시험대 위에서 살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여의도 술자리에서 우리의 대화 주제도 바뀌게 될 것입니다.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번민과 하소연으로 날밤을 새우며 무력감과 자괴감에 괴로워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지옥 같은 생활을 저 자신은 물론 그 어떤 한국방송 기자도 맛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입사 20년차의 한 프로듀서(PD)는 “솔직히 정권이 바뀌었을 때 기자와 PD들이 하는 건 세 가지다. 열심히 투쟁해서 장렬히 전사하거나, 남부끄럽지 않을 정도로만 투쟁하다가 적당히 순응하거나, 아예 처음부터 순응하거나. 우리도 월급 받고 노동하는 노동자이자 생활인이기 때문에,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선택지를 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방송 사장은 인사권으로 얼마든지 편집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한국방송 사람들은 입을 모았다. 보도본부장을 비롯해 사회·정치·경제팀장 등 네 명의 데스크급만 ‘코드가 맞는’ 인사로 기용하면, 뉴스를 무색무취하게 만들기나 정권에 유리하게 만들기는 ‘식은 죽 먹기’라는 것이다.
정연주 이후를 고민할 때
한국방송은 2003년 보도준칙을 만들었다. 핵심은 ‘약자 우선 보도’다. 이해당사자가 대립하는 사안이나 집단 시위 등을 다룰 때 어느 한편에 편견을 갖지 않고 공정하게 다루고, 파업에 대해서도 일방적으로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지 않도록 주의하며, 갈등의 원인과 해결 방안도 충실히 보도한다는 것이 골자다. 새 정부의 코드에 맞춘 사장이 등장한 이후 이런 보도준칙이 지켜질 지는 의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지금까지 표방해온 정책에서 ‘약자 우선’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고민 속에 김현석 협회장은 “지금은 사장 퇴진투쟁을 할 때가 아니라 ‘정연주 이후’를 고민할 때”라며 “가장 먼저 낙하산 사장을 막기 위한 제도 마련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한나라당이 추진하고 있는 국가기간방송법의 제정을 막고, 현재의 한국방송공사법을 고쳐 각계 직능대표나 국민들이 참여하는 사장추천위원회에서 정권으로부터 독립적인 사장을 선임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안팎의 조건을 고려하면, 이런 근본적인 수술은 한국방송 구성원들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해 보인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듯 공영방송의 주인 역시 국민임을 청와대와 국회에 각인시켜야 가능한 일이다. 한국방송 앞에 더 많은 촛불이 필요한 이유다.
[한겨레21 표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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