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회사원인 조연숙씨가 광장에서 아무 특별할 것 없는 사람들과 하나가 되는 과정, 민주주의의 새날
▣ 글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표지이야기 1부-타오르는 촛불]
5월29일 저녁 7시, 옅은 어둠이 감싸안은 서울 청계광장. 빨간색과 파란색이 섞인 소라 조형물 앞에 꽃무늬 빨간 미니원피스를 입고 8cm 하이힐을 신은 조연숙(30)씨가 함께 촛불문화제에 동참할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다. 모두 온라인 여성직장인 모임에서 알게 된 사람들이다.
조씨의 원피스는 촛불집회에 내걸린 선명하고 간결한 깃발 같다. 그의 이야기에는 절박함과 화려함, 가벼움과 무거움이 섞여든, 22번에 걸친 촛불 저항의 복잡다단한 내면이 깃들어 있는 것 같다. 조연숙씨가 말한다. 편집자
서로 무관심한 사람들이었는데…
‘mb꺼져! 미소가 아름다운 사람들 모여라’. 이 손팻말은 근무시간에 살짝 출력한 것이다. 나는 10월에 결혼을 앞둔 평범한 싱글 여성이다. 중소기업 회사원이다. 요즘 결혼을 앞두고 마사지권을 끊어서 한창 마사지를 받는데, 이번주 내내 마사지도 포기하고 거리로 나왔다. 지난 5월2일 처음 집회에 참석한 뒤 오늘로 15번째 거리로 나왔다. 집과 직장이 모두 경기 분당이지만, 하루라도 집회에 빠지긴 싫었다. 남의 얘기가 아니라 내 식탁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일 때문에 너무 피곤하거나, 남자친구랑 결혼에 대해 중요한 얘기를 해야 할 때만 빠졌다. 지난 주말에 시위대가 강제 연행됐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너무 화가 나서, 이번주는 ‘전출’이다.
오늘은 아침부터 다음 아고라(agora.media.daum.net)를 비롯해 여기저기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에 대한 장관 고시가 발표된다는 이야기가 떠돌았다. 혼자만으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곧장 온라인 상의 여성 직장인 모임에 글을 올렸다. 매일 아침 컴퓨터 하단에 창을 띄워놓고 업무의 애환을 나누고 쇼핑·자기개발·회사정보 등 갖가지 정보를 교환하는 곳이다.
“오늘 고시됩니다. 유모차 부대도 나온다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나요? 모여주세요!! 오늘이 중요합니다! 가두시위 따위 위험하게 안 해도 됩니다!! 청계천에서 모입시다!! 저 작성한 플래카드 가지고 갈 테니 소라똥(소라 조형물) 옆 배스킨라빈스 앞으로 모여주세요!!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미니스커트 부대의 힘을 보여주세요!!!!”
다행히 댓글이 15개는 족히 달렸다. “청바지 입고 왔는데 같이 껴도 돼요? ㅎㅎㅎ”, “아니 청주 사람은 어케합니까? 나 오늘 미니스커트는 아니라도 하늘하늘 스커트긴 한데”, “오늘 광화문에 저녁 약속이 있는데 2차는 촛불시위 가자고 꼬셔볼게염. 근데 제 친구는 이메가(이명박) 뽑은 전력이 ㄷㄷㄷ. 근데 나도 오늘 좀 아줌마틱한 플레어스커트에 피부진상 최고조라 살짝 안습 ㅠ.ㅠ ”.
이렇게 댓글과 메신저 ‘네이트온’으로 연락을 주고받아 회원들이 모이기로 했다. 그 동안 온라인상에서 친해진 사람도 있고, 처음 이야기를 나눈 사람도 있다. 오후 7시. 김진주(가명)가 9cm 하이힐 소리를 또각또각 내며 먼저 도착했다. 김진주는 오자마자 쭉 늘어서 있는 전경들을 보고 소리쳤다. “전경이 내 가방 가져가면 가만 안둘거야!” 그에 이어 청바지에 쫄티, 단정한 정장 차림, 발랄한 미니원피스트까지 다양한 옷차림의 여성 5명이 모였다. 오늘 집회가 있는 서울광장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는 계속 전경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이날 투입된 경찰만 1만 명이라고 들었다. ‘집회’는 처음 와본다는 김진주는 가방을 사수하겠다며 호기롭게 외치던 처음과 달리 “우린 그냥 걸어가는데, 경찰이 왜 서 있는 거야…”라고 불안함을 살짝 내비쳤다.
오늘은 유독 서울광장에 사람들이 많았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운 가족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다 같이 ‘고시 철회! 협상 무효!’ ‘이명박은 물러가라’ 구호를 외쳤다. 아빠 목에 올라타고 있는 초등학생 남자아이가 정말 큰 목소리로 외쳤다. 아이 주변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물을 건넸다. 다들 예전에는 서로에게 무관심한 사람들이었는데, 여기에 서로를 생각해주는 사람들의 마을이 생긴 것 같아 기분이 좋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마침 강원 강릉에서 왔다는 여중생 ‘강릉 소녀’가 단상에서 자유발언을 하고 있었다. 아이는 많은 말 대신에 <아름다운 강산>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 ‘휴대전화 저널리즘’이 떴다. 사람들은 저마다 휴대전화로 현장을 찍고 전송하며 실시간으로 정보를 주고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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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진짜 잘 한다. ”
“중학생이 강릉에서 버스 타고 온 거야. 그것만으로도, 이명박은 뭐 좀 느껴야 되는 거 아냐?”
“그러니까. 먹기 싫다는데, 왜 자꾸 먹으라는 거야? 이제 안 먹을 자유도 없는 거야?”
우리의 잡담과 우리를 둘러싼 사람들의 잡담이 섞여들었다.
그사이 한 단발머리 여대생도 힘주어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가끔 누가 단상에서 얘기를 하면,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 사람 스타일에 관심이 갈 때도 있다. 아무래도 쟤는 머리에 좀더 층을 주면 세련돼 보일 것 같아, 뭐 그런 생각들. 저기 지나가는 여기자는 옷을 좀더 파스텔톤으로 입는 게 어울리겠다, 얼굴 붓기를 조금 빼면 더 예쁘겠다, 붓기 빼는 데는 팥물이 좋은데, 또 그런 생각들. 이런 생각은 단정하고 적절한 외양에 늘 신경을 써야 하는 우리의 직업병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민가협 어머니들이 나와서 “명박아~~”라고 부를 때는 눈이 시큰거렸다. 그분들이 얼마나 예전 고통이 되살아나셨으면 저렇게 측은하고도 절절하게 이명박 대통령 이름을 부를까 싶었다.
앞에 앉은 대학생은 영상통화를 한다고 난리다. 친구가 시골에 있는 모양인데, 여기 현장을 휴대전화로 직접 보여준다.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다들 휴대전화와 디지털 카메라로 찍고 보낸다. 과연 기록의 시대다.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들은 6mm 카메라를 들었다. ‘뭘 찍냐’고 물었더니 ‘영화를 찍는다’고 한다.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이 허용된 지 15년 뒤, 모두가 광우병으로 죽음을 맞을 때 홀로 살아남은 주인공 이야기, 영화 <나는 전설이다> 패러디란다. 이 고등학생은 근데 고민이라고 했다. “그냥 익명으로 올려야지, 안 그랬다간 반정부로 찍히지 않겠어요?”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저녁 8시30분쯤 됐나. 행진을 한다고 했다. 보통은 밤 10시까지 문화제를 한 뒤에 행진을 했는데, 오늘은 앉자마자 행진이다. 매번 집회의 형식도, 장소도, 참가하는 사람들도 바뀐다. 사람들이 길 따라, 전경들이 막지 않는 길 따라 그냥 쓱쓱 걸어간다. 지난 월요일 걸었던 행진 경로와 오늘 행진 경로도 완전히 다르다. 처음에는 문화제만 했던 것이 토요일을 기점으로 거리시위로 바뀐 것도 달라진 점이다. 사람들은 누군가가 주도한다고 하지만, 사실 주도세력이 없는 것 같다. 괜히 앞에서 저렇게 떠드는 단체 사람들 때문에 ‘주도세력’에 대한 논란이 생기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어느 배우의 말처럼 시민의 마음과 노력에 숟가락 하나 얹은 것 같은 느낌.
오늘은 종로로 가려나 보다. 길을 걷다 보면, 우리처럼 온라인상에서 다른 목적으로 만났다가 함께 나와 길을 걷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온라인상에서 만나 업무의 힘든 점을 토로하고, 간혹 소개팅도 교환하고, 화장법도 나누고, 업무 정보도 공유하던 우리가 어느새 ‘쇠고기’를 말하고 ‘이명박 퇴진’을 말하고 있다.
청계광장도 우리가 사는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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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미친소, 너나 먹어’라는 구호는 어느새 ‘이명박 퇴진’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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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진을 하는 우리 옆으로 20~30명의 사람들이 지나갔다. 그들은 상을 당하면 쓰는 삼베 두건을 머리에 두르고 있었다. 온라인 재테크 카페 사람들이라고 했다. 재테크 정보를 주로 나누던 이 카페도 이제는 ‘소고기 정국’에 관한 이야기가 게시판의 주류를 이룬다고 했다. 한 회원이 글을 올리고, 댓글이 주렁주렁 달리고 결국 오프라인에서 만나 행진하고 있다. 자동차를 판다는 한 남자는 “난 사실 이명박 대통령 뽑은 사람이다. 경제를 살리길 바랐다. 하지만 쇠고기 협상은 아닌 것 같다. 가장 기본적인 국민의 먹을거리를 담보로 협상을 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고, 그것을 가지고 또 길을 막는 것도 잘못된 것 같다”고 연방 투덜댔다. 그는 “여중생, 여고생도 연행되는 걸 보고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길을 걷다가 내 또래의 사무직 여성으로 보이는 사람들 무리도 자주 보게 된다. 앞서 걷고 있는 세 명의 여자는 은행에 다닌다고 했다. 이들도 갑자기 나오게 됐는지, 정장에 높은 구두를 신었다. 다들 우리처럼 회사 끝나고 곧바로 온 모양이다. “다리 안 아프세요?”라고 물었다. 그들이 “아, 이 정도는 감수해야죠”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지나가는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다들 상사 욕부터 이명박 대통령 욕까지 화제가 다양하고도 넓다. 결국 이 청계광장도 우리네 사는 세상 같다.
밤 10시. 종각역 근처로 행진했다. 발목이 시큰거려 더 걸을 수가 없었다. 지난 토요일부터 연일 하이힐을 신고 두세 시간씩 걸었더니, 발목이 버티지 못하는 것 같다. 노란 조끼의 의료봉사단에게 발목 상태를 얘기했더니 곧바로 파스를 뿌려줬다. 그리고 근육 테이핑이라는 걸 해줬다. 근육을 잡아줬더니 발목이 덜 아프긴 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집회를 접기로 했다.
5월30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언제나처럼 온라인 여성직장인모임에 접속했다. 김진주가 <헌법 1조> 노래를 카페에 올렸다. 집회는 처음 참석한 김진주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이 노래를 처음 들었다고 했다. 이 노래는 탄핵반대 집회 때부터 나와서 그때 엄청 불렀던 노래인데. 사실 김진주는 탄핵은 자신과 별로 상관없는 일로 느껴졌다고 했다.
수도권 4년제 대학을 다니다가 도중에 그만둔 나는, 대학 다닐 때는 늘 돈 버느라 여념이 없었다. 커피숍 서빙, 편의점 알바, 내레이터 모델, 식당을 하셨던 부모님 도우미까지. 그렇게 열심히 돈 버는 동안 정치에 관심 가질 겨를이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탄핵 때 왠지 측은함이 느껴져 열심히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김진주도 그때의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걸까.
어느새 이렇게 ‘함께’
오전 11시21분. 어제 참여했던 집회 현장 동영상을 ‘이명박 탄핵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홈페이지에서 스크랩해 온라인 여성직장인모임 게시판에 올렸다. 역시나 댓글들이 달렸다.
“나 어딨지? 우리 어딨어?ㅋㅋㅋㅋ”, “한 번밖에 못 갔는데 남친이랑 또 가려구요!!”, “저 어제 너무 일이 늦어져서 못 갔어요. ㅠㅠ 토욜엔 꼭 갈 거예요~!!! 어제 정말 만나는 사람들마다 심각성을 알렸어요. 그치만 아직도 무관심한 사람은 너무 많다죠..ㅜㅜ”
좀 있다가 내가 어제 도움받았던 아고라 의료봉사단에 대한 글이 올라왔다. 의료봉사단은 지난 월요일에 한 여성이 ‘의료봉사단 모이자’는 글을 올린 지 50분 만에 15명이 손을 들어 즉석 구성된 단체라고 한다. 글은 “시민들 탈진 때문에 생수, 이온음료, 단 과자류 필요하대요. 우리 사무실에 비축해둔 과자 보낼까요?”라고 제안했다. 댓글로 모금을 제안했다. 그리고 2시간여 만에 20만원이 모였다. ‘내 문제’에는 모두가 적극적인 세상이 됐다. 그러다 보니 또 이렇게 ‘함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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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촛불집회의 키워드
청계 마을 사람들이 사는 법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2008년 오뉴월, 서울 청계 마을. 밤이면 밤마다 7시만 되면 촛불을 들고 나와 ‘운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유모차를 타고 나온 아기에서 백발이 성성한 노인까지, 남녀노소 장삼이사 속속 모인다. 이들 중에 원래 여기서 ‘운동’하던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민주노총 조합원도, 한총련 대학생도, 운동단체 회원도 아닌 ‘새로운’ 주민이 대부분. 거리 행진은 처음 해보는, 집회엔 정말 오랜만에 나오는 사람이 다수다.
마을 주민의 구성은 한국 사회의 역사를 반영한다. 1991년 거리의 함성을 기억하는 아기 엄마는 유모차를 끌고 나왔고, 1987년 6월항쟁의 주역이었던 아버지는 청소년인 아들이 걱정돼 같이 나왔다. 여기에 20대 대학생과 직장인은 효순이·미선이와 한 약속을 기억한다. 이렇게 저마다의 절박한 이유로, 한목소리가 아니라 서로 다른 기억으로 모두들 모였다.
마을의 품앗이도 척척이다. 10대가 저항을 시작하니 20~30대가 ‘쪽팔려서’ 나왔고, 40~50대는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나섰다. 평화의 상징인 꽃을 들고 나오는 여성들, 생명을 뜻하는 빵을 나눠주는 사람들도 있다. 거리 행진에 나서면 십시일반 모금해 ‘생명수’도 나누어 마신다. 그래서 여기는 청계 마을. 이렇게 한 달도 넘게 밤이면 밤마다 나타난 마을을 이해하는 열쇳말 하나에서 열까지.
1. 주민의 이중생활?
이들의 광장은 두 개다. 밤에는 청계광장, 낮에는 ‘아고라.’ 회사에서 바쁘지만 틈틈이 다음 아고라 혹은 나의 카페에 들어가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 관련 글을 확인하고 퇴근 압박 시계가 울리면 한달음에 청계광장(요즘엔 서울광장)으로 향한다. 내키면 댓글을 달고 더 내키면 청원도 올린다. 아고라는 마을의 신문고, 청계광장은 서울의 민주광장. 가끔 청계광장에 앉아 있으면 이런 착각도 든다. 여기가 아고라야, 청계광장이야? 여기저기서 손수 만든 유인물을 나눠주는 각종 인터넷 카페 회원들, 카메라를 들고서 손수제작물(UCC)을 만드는 익숙한 얼굴이 보여서다.
2. 여성이 뿔났다
운동 경력 20여년의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도 놀랐다. “여성들이 남성보다 많다니!” 아마도 한국 사회운동 역사상 최초의 사건 혹은 쾌거, 남녀의 성비가 역전됐다. 10대 촛불소녀들이 마스코트를 앞세우고 행진하면, 20~30대 여성들이 하이힐을 신고 따라간다. 먹을거리는 곧 생명 문제, 당연히 여성들이 더욱 민감하단 분석이다. 그리고 여초 현상은 야누스의 얼굴을 지녔다. 여성들의 사회적 성취가 높아졌단 방증이자 여성이 여전히 사회적 약자로서 사회문제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는 증거다.
3. 프락치가 나타났다!
야심한 밤이면 대책위는 호소한다. 여러분 이제 집으로, 내일 만나요! 그러면 시민들이 반발한다. 정말로 그들은 삼삼오오 새벽까지 거리를 누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른다. 그들이 어디로 갈지를. 대책위도, 그 누구도 주도하지 못하고 주도하지 않으므로 미리 짜놓은 행진 코스 따위는 없다. 만약에 누군가 ‘전통적’ 방식으로 이들을 ‘지도’하려 한다면, 어디선가 들려온다. “프락치다!” 어떤 확성기를 든 사람도 이런 의혹을 받았다. 나중에 풀렸지만.
4. 운동가가 방황한다
시민이 운동권보다 과격하다. 오히려 운동가가 당황한다. 아니, 이러다 다치면! 그러나 협의할 지도부도 없고, 시민을 한명한명 만나서 설득할 수도 없다. 운동가들은 고백한다. “솔직히 효순이·미선이 추모 투쟁 때는 범대위가 집회·시위를 주도했지만, 지금은 정말로 아니다.” 2004년 탄핵 반대 집회 때의 시위대가 그나마 ‘조직된 개인’이었다면, 지금의 참가자는 정말 개인들 혹은 개인들 중심의 네트워크. 그들은 인터넷 카페에서 토론하고 결정해서 자신들의 ‘택’(전술)을 짠다. 그래서 때때로 활동가들이 배회한다. 방황한다.
5. 존재는 의식보다 강하다
청계 마을 주민들은 의식화가 필요 없다. 몸으로 느낀다. 이명박 정권이 그들의 안위를 위협했기 때문이다. 0교시로 중고생의 새벽을 위협했고, 의료보험 민영화 운운으로 아픈 사람의 마음마저 아프게 만들었다. 그래서 ‘소아병 어린이 부모회’ 같은 인터넷 카페 회원들은 아픈 마음 부여잡고 촛불집회에 나선다. 노명우 아주대 교수(사회학)는 “한 달 동안 평일에도 촛불집회 참가자가 줄어들지 않고 유지되는 이유는 존재를 위협당한 사람들이 마치 배턴터치 하듯이 번갈아 집회에 나오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리하여 비바람이 쳐도 릴레이 촛불은 쭈욱~ 계속된다. 의식화된 대학생보다 존재에서 출발한 어머니가 끈질기다, 당연히. 다르게 말하면, 한국 사회가 이명박 정권 100일 만에 앗 뜨거 신자유주의! 비명을 지르고 있다는 말씀.
6. 신데렐라는 12시에 닭장차를 탄다
신데렐라는 12시에 마차를 타지만, 시민들은 닭장차를 타러 간다. 이른바 ‘닭장차 투어.’ 일부 시민은 자진해서 닭장차에 오르는 직접 행동을 했고, 아고라에는 ‘주말 1만명으로 닭장차를 채우자!’는 청원이 올라와 호응을 얻었다. 이렇게 마침내 시민 불복종은 닭장차를 타고 한반도에 도착했다. 이원재 문화연대 사무처장은 “10~20대는 공권력에 대해 쿨한 태도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광우병에 대한 공포는 크지만, 공권력에 대한 두려움은 적은 신세대의 등장. 맞아본 30대가 공권력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면, 안 맞아본 10~20대는 트라우마가 없다. 참, 노명우 교수의 지적 하나 더. “심지어 자신을 막고 선 경찰도 쇠고기 문제에 대해선 내심 시위대가 옳다고 생각할 것이란 식으로 이슈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
7. 카메라가 화염병보다 강하다
요즘 정권과 경찰에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것은? 짱돌도 화염병도 아닌 카메라다. 그리고 “인터넷에 퍼뜨릴 거야”라는 말이다. 그러니 분노가 하늘을 찔러도 화염병을 던질 이유가 없다. 왜냐면, 최신 비폭력 무기 카메라가 있으니까. 심지어 휴대전화에도. 게다가 자신이 밤에 찍어온 사진을 낮에 블로그에 올리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리하여 행진은 저항을 넘어선 놀이다. 경찰차 위에 촛불을 밝히고, 번호판 위에는 ‘이명박 OUT’ 손팻말을 덮어씌운 사진은 카메라 놀이의 상징이다.
8. 청계천만 집회 현장이 아니다
꼰대들은 놀랐다. 노트북을 하는 한 명, 카메라를 든 한 명, 두 명만 있으면 인터넷 생중계가 되다니! 그리고 이제는 ‘아프리카’ 같은 인터넷 방송 사이트를 통해 집회 현장이 생중계되니 어디서든 누구든지 집회에 함께할 수 있다. 그래서 시간이 되면 나가고, 시간이 안 되면 인터넷 생중계를 보는 주민이 적지 않다. 더구나 이들은 일종의 5분 대기조. 5월25일 새벽에도 방송을 통해 사람들이 연행되는 모습을 보고 거리로 나온 사람들이 있었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청계천 청반장!
9. 조·중·동, 쫄아~
미처 몰랐다. 조·중·동이 왜 나쁜지를. 어쩌나, 이제는 알아버렸다. 노명우 교수는 “정치 문제에 관한 조·중·동의 왜곡 보도를 알아차리려면 섬세한 관찰과 정치적 식견이 필요했다”며 “너무나 상식적인 쇠고기 문제에 관해선 0.1초만 보아도 조·중·동이 무엇을 감추고 왜곡하는지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쉬운 예를 제시해주니, 안티 조·중·동이 확산될 수밖에.
10. Again 1987?
김종엽 한신대 교수(사회학)는 “두 번의 정권을 거치며 시민적 상식이 생겼는데 이명박 정권이 상식선을 건드렸다”고 지적했다.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고 오히려 시민을 연행하니 마침내 “독재정권”이란 구호가 터져나온다. 한 달이 넘도록 집회가 계속되니 6월항쟁이 떠오른다. 1987에서 2008까지, 시대는 달라도 저항의 성격은 비슷하다. 갈수록 참여 계층과 연령이 넓어지고, 여전히 국가권력을 ‘정상화’시키는 투쟁의 성격도 지녔다. 그래서 ‘도돌이표 1987’의 면모도 있다. 다만 1987년은 조직에서 시작해 조직을 상회하는 대중으로 발전했다면, 2008년은 개인에서 시작해 개인을 넘어서는 대중으로 발전하고 있다. 새로운 민주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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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표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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